들녘교회 강단교류 

일꾼이 어디 있느냐?”

(시편 79:5-9; 예레 8:18-23; 디모테오 2:1-7; 마태 9:35-38)

 

이 세 우 목사

그간도 안녕들 하셨는지요?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길 빕니다. 저는 자매교회인 들녘교회에서 목회하고 있는 이세우목사입니다. 참으로 반가울 뿐입니다.

 

늘 언제나 사랑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저희 들녘교회는 지난 1년간도 큰 어려움 없이 잘 지내 왔습니다. 요즘 같은 시기에 교회가 어려움 없이 잘 지내왔다고 하는 것이 하느님의 은혜와 축복인지, 아니면 부끄러움과 죄스러움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세상은 계속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는 시대에 이렇게까지 버텨온 것을 생각하면은 한편으로 감사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언제나 묻곤 합니다. 우리교회는 농촌교회다. 농촌교회의 모습과 그 정체성을 잘 간직할 뿐만이 아니라 제대로 실현하고 있는 지를요. 빛 잃은 꺼진 등불 같은 교회, 맛 잃은 소금과 같은 교회는 아닌지, 즉 안락함만을 추구하며 그것이 평안이요, 은혜라며 안주하는데 만족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바울사도가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는데 그 의미에 맞게 예수의 정신이 선포되고 힘들더라도 그 말씀에 따라 행동해 왔는지를 따져보면 아무래도 전자에 가까운 듯해 지난 한해의 평가는 안타깝게도 부끄러운 모습뿐인 것이 사실입니다. 그냥, 건성건성, 어쩔 수 없어 그저 하는 척만 했지 제대로 할 일은 는 것 같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이런 저런 성과가 이만큼 있었습니다.’ 라고 자랑을 했으면 참 좋았을 것 같은데 그렇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립니다. 그러면서 내년 보고 때는 저희교회가 이런 저런 좋은 일을 이만큼 했습니다.’ 라고 당당히 보고를 드려야지 하는 마음을 먹고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농촌은 언제나 그래왔지만 지금은 더 어려운 상황입니다. 올 여름 폭염과 가뭄으로 동물들은 전북에서만 150만마리 이상이 떼죽음 당했고, 밭작물은 타 들어가 교회옆의 인삼밭마저도 모두 말라 죽었으며 들깨도 진작 꽃을 피었어야 열매는 맺는데 이제야 꽃을 피우고 있어 제대로 맺을지는 알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추석 때부터 오늘까지 비가 내리고 있어 해갈에는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걱정인 것은 쌀값입니다. 기록적인 폭염과 가뭄의 한 해 이었지만 다행히 관계시설이 잘 되어 있어 물 공급은 어렵지 않았고 그 덕분인지 올 농사는 대풍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쌀값은 딱 20년 전인 1996년의 가격입니다. 결국 작년에는 15만원 정도는 했는데 올해는 12만원도 못 받는다고 하니 농민들의 시름이 이만저만이 아닙니. 깊은 한숨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불편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쌀은 보통 2종류가 있습니다. 조생종과 만생종, 즉 이른 벼와 늦은 벼가 있는데 추석 전에 먹게 되는 조생종의 쌀 가격은 그대로 늦은 벼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올해 이 가격이 그대로 유지되고 확정된다면 농가에 엄청난 피해가 예상됩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농민의 사기 여부와 관계없이 농민의 생존권과 직결됩니다. 해마다 이 맘 때만 되면 되풀이 되는 쌀값 논쟁, 하지만 올해는 최악입니다. 벌써부터 벼를 태우고 수확을 앞둔 논을 갈아엎고 있습니다. 제가 몇 년 전 향린교회에서 설교를 할 때 그 때에도 농민들이 쌀값폭락에 화가 나서 논을 갈아엎고 있다고 보고를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예배를 마치고 나가는데 향린교회 한분이 저에게 다가 오셔서는 목사님! 농민들에게 쌀을 태우거나 갈아엎지 말라고 말씀 좀 전해 주세요.’ 하시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국민감정과 정서 때문에 오히려 역풍이 일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에 말씀을 주신 것 같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그리고 잘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하고 약속을 지켰던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저 역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화가 나고 절망적이라고 해도 쌀을 갈아엎는 것에는 동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쌀은 우리 민족의 혼이라고 까지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우리 신앙인들은 밥은 하늘이라고 고백까지 하고 있잖습니까. 그런데 아주 고약한 일이 며칠 전에 있었습니다. 쌀값폭락에 대응하기 위해 추석 며칠 전에 쌀값보장을 위한 전북도민 결의대회에 전라북도도청 광장에서 열렸습니다. 대회 도중 갑자기 사회자가 저를 지명하면서 앞으로 나오라고 하더니 햅쌀이 달려 있는 볏단에 저보고 도민을 대표해서 불을 붙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당황스럽고 난감했습니다. 때마침 무대에서는 농민가가 힘차게 울려 나오기 시작했고 참가자들을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게 하더니 팔뚝질을 해대기 시작합니다. 언론사 카메라도 들이댑니다. 공무원들과 경찰들도 수화기와 호수를 들고 저의 손끝을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저에게 먼저 횃불이 전달되었습니다. 각종 화형식에서 횃불을 여러 번 들고 점화를 해 봤지만 쌀 앞에, 볏단 앞에 선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쌀농사 27년간 지어 온 저로서는 삶이냐? 죽음이냐? 정도는 아니었지만 소신을 지키느냐? 현실을 받아드리느냐?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제 의지와는 관계없이 어느 사이에 제 팔은 치켜 올라갔고 순식간에 볏단은 불바다로 변하면서 맹렬하게 타오르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 한참동안 맨붕상태에 빠져 있었던 것이 불과 며칠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저 농촌이 이리도 힘들구나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쌀값이 농민에게 미치는 영향은 막대합니다. 보통은 풍년이 들어서 쌀값이 떨어 진 것으로 이해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핵가족 등 식생활변화로 밥을 옛날처럼 많이 먹지 않기 때문에 쌀값이 내려 간 것이라고 생각들 하고 있습니다. 농민들의 생각은 다릅니다. 옛날에는 껌 값, 커피 값에 쌀 값을 비교했는데 요즘에는 개사료에까지 비교하고 있습니다. 애완견 사료 1KG가 일만원인데 반해 쌀은 1KG1,640원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농민들은 자신들이 개, 돼지도 아닌 개, 돼지만도 못한 존재들이라고들 말하고 있습니다. 이분들은 이렇게 쌀값이 폭락한 원인은 저가수입쌀 때문이라고들 합니다. 해마다 408,70톤의 저가수입쌀(TRQ)5%의 관세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입하지 않아도 되는 밥쌀 수입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20156만 톤이 수입되었는데 올해인 2016년에도 6만 톤을 수입할 계획입니다.

 

농민들은 당장 쌀값폭락을 막으려면 저가수입쌀(TRQ)을 관리하기 위한 민관운용협의회를 구성하고 거기에서 저가수입쌀을 국내시장에서 격리시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남북 쌀 교류, 해외원조를 실시하고, 사료용 사용 등을 검토하라고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저도 이 방법이 합리적이라 생각하고 있는데 정부는 끔쩍도 안하고 있습니다. 진정 농민들은 버림받은 사람이고 등외국민인지, 또는 비국민으로서 개, 돼지만도 못한 존재인지 묻고 싶습니다.

 

교회에 와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교회 주변이 많이 변했고 앞으로도 계속 바뀔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바로 노무현 정부가 추신했던 혁신도시가 인근에까지 자리 잡으면서 생긴 변화입니다. 특히 우리지역으로는 농업관련 기관과 시설들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혁신도시가 들어올 그 당시 저는 혁신도시 대책위원장을 맡고 있었습니다. 몇 번의 회의를 거쳐 행정과 이전기관과 주민들의 몇 가지 합의들이 있었기에 큰 저항 없이 혁신도시는 우리지역에 비교적 순탄하게 올 수 있었습니다. 그 때 합의내용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혁신도시의 기본 취지에 맞게 중앙정부가 일방적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고 무조건 주민들은 따라가는 방식이 아닌 공생관계로서 서로 의논하고 소통을 하면서 기관을 운영하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그래서 단절이 아닌 연결이 될 수 있는 방법으로 새로 질 기관 건물들의 담장을 없애자는 주민들의 의견에 기관들이 동의를 하고 상당히 반영되기도 했습니다. 일자리도 생기고 이런저런 돈벌이도 생기면서 주민들과 기관과는 빠르게 우호적인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입니까? 지난 20여 년간 환경운동과 생명운동을 하면서 가장 역점을 두고 퇴출운동을 펼쳐 왔던 것이 바로 유전자 조작 농산물인 GMO였는데 그것이 바로 코앞에서 재배되고 있었다니 눈앞이 아찔했습니다. 배신도 이런 배신이 없었습니다. 농촌진흥청은 어떤 설명도 없었습니다. 주민들에게만 말을 안 한 것이 아니라 지역의 어느 농업기관은 물론 어느 지방정부와도 협조는 불구하고 알리지도 않고 비밀리에 이 작업을 해 왔던 것입니다. 농진청은 20148월에 전북 완주와 전주에 입주를 했습니다. 2015년에 농진청 GMO시험재배를 시작, 승인재배 면적은 무려 209,877제곱미터나 되며 2016년 상반기 농진청 산하기관 시험재배승인은 벼, , , 감자, 고구마, 유채, 사과, 국화, 잔디 등 모두 14개 품목이나 되는데 현재 모두 이곳에서 재배 중인 것으로 확인이 되었습니다. 동물도 3종류나 되고 곤충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두 146종이 GMO로 개발 중입니다. 현재 전국 21개 지역에서 유전자 조작 작물이 실험 재배되고 있는데 타지역의 시험재배 면적은 매우 작은 편이며 그 대부분은 모두 우리 교회 옆인 농진청 내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갑자기 우리가 사는 완주군 이서면은 GMO의 메카, GMO의 천국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하루아침에 지옥으로 변한 느낌입니다. 위의 많은 사실들은 농진청이 스스로 밝힌 것은 한 가지도 없고 모두 저희들이 직접 조사해서 밝혀낸 사실들입니다.

 

농진청이 위치한 곳은 전라북도의 한 중심이고 우리나라 최고의 곡창지인 호남평야의 시작되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벼를 시험개발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올해부터 재배를 해서 상품화 하겠다고 하더니 계속 문제제기를 하고 부정적 여론이 많다보니 상품화까지는 가지 않겠다고 최근에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농진청이 그 말을 믿으라고 한 것 같지는 않고 또 어떤 농민들도 그 말을 믿지는 않습니다.

 

농진청 주변에는 학교급식으로 사용되는 친환경 벼 영농단지가 조성돼 있기도 하고 친환경으로 개별 농사를 짓고 있는 가정이 많은 지역입니다. 완주군의 대표적인 브랜드인 로컬푸드가 자리 잡고 있기도 합니다.

 

혹시라도 GMO가 유출 및 오염될 시 인근지역으로 순식간에 퍼지는 것은 물론 전국적으로 퍼져 나가는 것도 별로 막힘이 없을 것입니다.

 

위기의식을 느껴 이 일에 뛰어 들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주민들뿐만이 아니라 시민사회단체들도 심지어는 환경단체들도 이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먼저 실천하고 공부하자 설득해서 110여 단체를 모아 지금 반대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주장하는 것은 크게 3가지입니다. 하나는 즉각 노지 실험재배 중단하라는 것이고 다음으로는 농진청 내에 설치되어 있는 GMO 개발 사업단 즉각 해체하라는 것과 마지막으로 유럽 수준의 GMO 완전 표시제를 실시하라는 것입니다. 농진청은 GMO를 재배할 때 최소한도록 지키도록 되어 있는 어떤 관련조항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앞서서 관련 법령들을 지켜야 할 국가기관이 모든 탈법과 위법만을 자행하고 있을 뿐입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은 과장되거나 왜곡됨이 없이 사실만을 말씀드린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한편, 농진청은 안전성 논란을 종식시키기 위해 재배 농작물과 현황 등을 저희 대책위에 모두 공개하겠다고 추석 전에 밝힌 바가 있었지만 그 것 역시도 여론을 호도하고 곧 있을 국정감사를 피하기 위한 수작 일 뿐이지 진실성이 싸라진 거짓임이 곧 밝혀졌습니다. 저희들이 요구한 공개 범위와 일정, 방법들을 모두 거절해 공개하기로 했던 일은 없던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많은 언론에서 질문들을 많이 하십니다. ‘GMO연구 자체도 반대하는 거냐고요.’ ‘과학자들이 연구는 할 수 있도록 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라고 자주 묻곤 합니다. 이토록 불신을 키운 것은 국가기관인 농진청에서 자초한 일입니다. ‘이제는 어떤 말을 해도 믿을 수가 없다. 그러니 GMO와 관련한 어떠한 사업도 인정할 수 없다.’ 당장 중단하라는 것이 저희들의 입장입니다. 다만 꼭 필요하다면 국민동의를 구하는 것이 우선이다. 농진청에서 국민동의를 받아오라. 그러면 그 때가서 우리도 검토해 볼 수 있다가 저희의 공식적인 입장입니다. 안전성 논란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아직 위험하다고 하는 것도, 그렇다고 해서 안전하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 대응하는 것은 우리 몸에 해롭냐, 이롭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갈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판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농진청은 지금도 식량자원의 문제, 이상기온의 문제를 들어 GMO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농진청이 언제부터 식량안보 문제를 고민해 왔습니까. 식량자급률은 쌀을 빼면 그나마 5%도 채 안됩니다. 도대체 한 것이 무엇이 있다고 식량자급 운운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구조조정 때 농진청은 해체위기에 직면해 있었는데 농민들이 주축이 돼서 다시 되살려 났습니다. 그러면 정신을 차렸어야지 지금도 도대체 농업에 대해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지금도 농업을 해체시키고 농민을 말살하는데 방관하고 앞장 서 온 곳이 농진청이 아닙니까. GMO는 결코 미래농업의 대안이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식량안보를 가로막고 이상기온을 가속화시키는 것이 GMO입니다. GMO를 통해 누가 그 이익을 챙기느냐만 지켜봐도 그 답은 분명합니다. 농민이나 국민들이 아닌 종자회사, 농약회사가 침을 흘리고 있습니다.

 

오늘날 농촌이 여기까지 온데는 여러 원인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저 이 모든 것을 아픔으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저는 오늘 성경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온갖 아픔을 고쳐주셨다는 말에 주목을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특권을 지키고 안락함을 누리고 싶어 합니다. 거기까지는 괜찮다고 봅니다. 그 알량한 특권과 안락함을 놓치기 싫어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피해를 주는 것이 문제입니다.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곁에 오지 못하도록 불온시하고 격리조치하면서 폭력을 휘두르곤 합니다. 이에 당하는 사람들은 속수무책이고, 곧 체념하고 익숙해져 갑니다. 결국 노예인지도 모르고 노예처럼 살아가게 됩니다. 주후 1세기 팔레스타인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민중들의 삶은 목자 없는 양처럼의 신세였습니다. 하루 종일 일하고도 터무니없는 돈을 받아 최저생계도 유지할 수가 없었습니다. 늘 삶이 고단한 생활로 피곤하고 재미가 없었습니다. 목자 없는 양처럼의 생활은 미래에 대한 희망조차 저당 잡힌 것이었습니다. 고생에 지쳐 힘이 빠질 대로 빠진 사람들을 가리켜 성서는 오늘 목자 없는 양처럼의 사람들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피해의식 속에 평생을 사는 사람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의 농촌과 농민들의 삶의 모습들을 나타내고 있는 말씀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우리교회 권사님이 언제부터 허리가 굽더니 이제는 그마저도 어려워 지금은 요양원에 누워 계십니다. 추석 때 권사님을 찾아뵈었습니다. 저를 잘 알아보시지도 못하셨습니다. 겨우겨우 기억을 찾아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았습니다. 이 권사님을 생각하면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습니다. 무려 27년 동안 자신의 가족보다도 저랑 더 많은 세월을 보내신 분이십니다. 우리 권사님, 평생을 밭을 일구신 분이십니다. 자신의 일뿐만이 아니라 남의 집 일까지도 엄청 하신 분이십니다. 새벽에 나가 밤늦게까지 말 그대로 소처럼 일하셨습니다. 그렇게 고생고생 하셨지만 그 마지막 길은 너무도 외롭고 힘들기만 합니다. 지금은 자식들도 더 이상 찾아오지 않고 쓸쓸하게 매일같이 병원 침상만을 지키고 계십니다. 왜 평생을 일만 하셨는데 이 분의 노후는 이토록 힘이 드신 걸까요. 모아 놓은 돈은 고사하고 당장 가지고 있는 돈도 없으십니다. 이렇게 한분, 두 분, 제 곁을 떠나시는 분이 갈수록 늘어나고 계십니다. 결국 농사를 지으면 지울수록 손해를 보고, 몸만 망가지고, 그 최후마저도 비참하게 되더라라는 말은 정설이 되고 말았습니다.

 

주후 70년의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이 함락되는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나라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백성들의 생활은 말해서 뭐 하겠습니까? 춥고, 배고프고, 서럽고, 아마 공포의 나날이었을 것입니다. 배고픈 사람, 다치고 병들어서 아프지만 치료도 못 받는 사람들이 넘쳐 납니다. 예수님이 병을 고쳐주시고, 굶주린 무리들을 먹이신 것은 이런 배경에서 이뤄진 사건입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은 꿈도 꿀 수 없었고 하루하루 생존 경쟁에 내몰려 어디든지 팔려가야 하는 신세들, 그 삶에 지치고 지쳐 완전 힘이 빠져 늘어져 있는 처지들, 오히려 정권과 힘 가진 자들의 말만 믿고 그들에게 상습적으로 왜곡과 착취를 당해도 끝까지 그들만 쫓아다니는 무리들, 이런 현실을 보시고 개탄하시면서 우리 주님께서는 그들을 깨워 일으켜 세우고자 하셨습니다. “너희들이 이 나라와 역사의 주인이다. 일어나라!”하셨습니다. 그런 최악의 상황에서 새 일을 하시려고 하셨으니 얼마나 퍽퍽하셨겠습니까? 왜 또 그렇게 말들은 많은지 뚝하면 시기와 질투요, 오해와 원망으로 바람 잘 날이 없었습니다. 하루라도 조용하면 오히려 그게 더 불안해서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현장은 삭막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따르던 제자들 내에서도 예수님을 음해하고 제거의 대상으로까지 몰 정도였으니 그 심정이 오죽 타셨겠습니까? 그래서 탄식하듯 말씀하십니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다. 그러므로 너희는 추수하는 주인에게 일꾼들을 그의 추수 밭으로 보내시라고 전하여라.(마태오 9:38)

 

주님의 이러한 절박한 마음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다. 주님의 탄식이 제 귀에는 생생하게 들려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못 듣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모두가 속도만을 쫓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안전은 모두가 뒷전입니다. 쌀도 그렇고 GMO도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채, 욕망의 덫만을 채우려는 아픔의 소유자들. 누가 이들의 질병과 아픔을 보듬어 안고 치료를 해 주겠습니까. 그들에게 인간 본연의 삶을 가르치고 하나님 나라의 비젼을 알려줄 자 누구입니까. 탄식만으로 세상은 변화되지 않습니다.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대신하여 갈 것인가

 

모두 어디를 간 것인가하는 주님의 간절함과 탄식에 제가 어디 간 것 아니고 주님 곁에 있었습니다.”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를 보내 주세요했던 이사야처럼 우리가 일어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 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