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성만찬주일 향린공동체 연합예배]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다

(시편 51:16-17; 골로 3:10-11; 요한 1:2-4)

 

 

김 경 호 목사(들꽃향린교회)

 

생명은 삶의 출발점이고 모든 생명체들이 존재하기 위한 필연입니다. 어떤 사상도 생명의 가치를 뛰어넘을 수는 없습니다. 엄중한 법이라 할지라도 그것의 존재이유는 생명을 지키기 위함입니다. 그러기에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부득이 다른 생명을 희생하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그것은 정당방위로 무죄가 됩니다. 생명은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양보할 수 없는 권리이며 모든 사상과 이념과 제도가 추구해야할 궁극적 목표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바닷 속에 어린생명들이 수장되고 한참이 지나도 도대체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 이유조차 알지 못합니다. 이런 일을 사전에 예방하고, 사건이 생기면 신속히 구조해야할 국가는 자신이 해야할 일을 완전 거꾸로 하고 있습니다. 이유라도 알자는 부모들을 빨갱이라고 몰아붙이며 오히려 진상규명을 방해하는데 전념합니다. 국회에서 정한 조사기간마저 어겨가며 그냥 일을 덮어 놓으려고만 합니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않습니다. 그들은 부패하고 무능하고 거짓말합니다.

 

그러다가 급기야는 국가의 공권력이 무고한 시민에게 물대포를 직사해서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시신마저 탈취해서 칼을 대려고 합니다. 가해 당사자인 경찰은 백남기 농민이 돌아가시자 즉시 애도하는 시민들의 조문과 분향소 차단을 지시 했습니다. “분향소를 차리는 것은 불법집회에 해당하니 그럴 만한 장소를 선점하라, 그 과정에서 저항하는 시민들을 현장 검거하라고 선제지시를 내렸습니다. 국민을 때려잡는 일에는 이렇게 신속할 수가 없습니다. 이들은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고 검거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오늘 제목인 생명은 사람들의 빛입니다은 요한복음의 본문입니다. 태초에 계신 말씀이신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들의 생명으로 오셨고 그 생명은 모든 사람들의 빛이 되셨다고 합니다. 이것을 생명, 사람, 빛의 세 파트로 나누어 말씀 드리겠습니다.

 

모든 생명은 하나이며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골로새서는 오직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시요,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3:11)라고 합니다. 생명이신 그리스도는 모든 것이시고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 과학은 지구상의 모든 생명이 하나임을 밝혀줍니다.

 

지금까지 밝혀진 150만종의 생물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웁게도 이 생명의 구성은 동일합니다. 단순한 종에서 복잡한 종까지, 단세포 생물에서 인간에 이르기까지, 식물에서 동물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생명체를 구성하는 핵심은 동일합니다.

 

생명을 만들어내는 핵심인 DNA는 아데닌, 티민, 시토신, 구아닌의 4종류의 염기로 구성됩니다. 이것이 모든 생명의 기본요소입니다. 이 염기들이 각각 다른 조합으로 구성되어 다양한 생명체로 나타납니다. 이들 4종류의 유전을 결정하는 염기들은 DNA를 이루고, 이것은 생명이 성장하고, 환경을 감지하고, 움직이고, 소화하고, 번식하는 방법을 결정합니다. 그 안에 자신들이 발전하고 생성해온 모든 기억을 간직하고 그 기록대로 새로운 세포들을 복제합니다.

떡갈나무와 우리는 먼 친척입니다. 나비, 늑대, 버섯, 상어는 전혀 다른 생명들이지만 이 생명체들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종이 분화되기 이전에 오랫동안 원시바다에서 발달한 생명 복제 시스템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생명도 지구 생명체의 모든 진화과정을 거쳐서 존재합니다. 최초의 수정란은 단세포생물입니다. 그것은 세포분열을 통해 다세포가 되고 각 기관이 생겨납니다. 뱃속의 아기는 어머니의 양수 안에서 어류의 생태계를 거쳐 출생합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생명이 진화해온 수 십 억년의 과정을 압축하여 경험합니다.

 

생명체들은 어떤 방향으로 진화해 왔을까요?

 

진화에 있어서 어떤 정해진 방향은 없습니다. 생명은 자기 생존을 위해 가장 적합한 조건을 만들고 자기복제를 위해 가장 유리한 조건들을 유전시킬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의 역사를 보면 서로를 돌보고 양육하는 것이 가장 생존에 유리한 조건이 되어 점점 그런 방향으로 진화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뇌는 파충류의 뇌로부터 발전한 부분(R 복합체), 포유류의 뇌로부터 발전한 부분(변연계), 대뇌피질이라는 고등한 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처음에 뇌의 줄기에서 나온 것은 파충류의 뇌입니다. 이들은 공격과 생존의 본능을 가졌습니다. 이들은 공격할 것인가, 도망갈 것인가를 판단하는 간단한 기능을 수행합니다.

 

중생대를 공룡의 시대라고 하는데 약 15천만년동안 지구에서 생존한 파충류입니다. 어마어마한 덩치로 지구상에서 이들을 대적할 생명체를 찾기 힘들었습니다. 이들은 지구상 나타난 어떤 생명체보다도 긴 시간 지구를 점령한 불멸의 생명체였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지구에 충돌한 소행성으로 인해 공룡은 멸종하게 됩니다.

 

공룡은 파충류에 속하지만 이들은 매우 발달한 생명체였습니다. 공룡이 이렇게 오래 지구를 점령한 이유 중 하나는 이들이 어린 공룡을 모아 따로 육아를 전담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른 공룡은 비교적 자유롭게 행동하며 먹이를 구할 수 있었고 어린 생명체들은 양육을 통해 보호 하고 그 개체를 효과적으로 유지해 나감으로 오랫동안 지구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진화는 후에 나타난 포유류들에게 보다 본격적으로 보여집니다. 표유류는 태어나기 전부터 오랫동안 어미의 뱃속에서 새끼를 키웁니다. 어미와의 유착관계는 그의 생명이 시작하는 본질입니다. 이들은 돌봄과 양육을 특징으로 합니다.

 

쥐를 한 무리는 귀여워해주고 한 무리는 격리시켜 실험한 결과 귀여움을 받은 쥐는 조용하고 보다 침착하게 문제들을 해결해 나갔습니다. 이들은 활발하고 주도적이고 새로운 환경에 기꺼이 탐색해 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만져주지 않은 쥐들은 새로운 환경에서 물러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어린 원숭이에게 공간을 나누어 한쪽은 부드러운 모피를 깔아주고 한쪽에는 젖병을 달아 놓으면 어린 원숭이는 항상 모피 쪽에 와서 부비며 지내다가 정말 배고플 때만 가서 젖병을 빱니다. 침팬지는 자기 새끼가 죽었을 때, 그 시체를 몇 일간 품고 다닙니다. 포유류에게는 밀착이 중요합니다. 많이 안아주고 접촉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한 생존의 요소입니다. 접촉자극은 포유류에 있어서 건강한 발달과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것입니다.

 

사람, 호모 사피엔스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돌봄과 양육은 인간에게는 보다 절실합니다. 침팬지는 3년이면 성장을 완료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뇌는 완전히 성장하려면 약 20년 가까이 걸립니다. 인간은 그만큼 불완전한 상태로 태어나지만 부족한 것을 사회적인 관계망을 통해서 배우며 완성합니다. 인간을 사회적 존재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인간은 모태에서 나오자마자 걷고 뛰는 동물들과 달리 두발로 일어서는 데만 일 년이 걸립니다. 인간은 불완전한 생명체로 태어나 관계를 통해 성장해 나갑니다.

19세기 유럽의 고아원에서 한살 이내의 영아사망률이 90%를 보였다고 합니다. 이는 보모의 수가 적어서 안아주고 접촉하지 못한 것 때문으로 밝혀졌습니다. 만져준 아기는 그렇지 못한 아기에 비해 50% 더 빨리 몸무게가 늘어나고 주변에 대해 주의력을 가지며 행동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의 팔이나 손을 만지는 단순한 일이 사람의 혈압을 내려줄 수 있고, 말없이 안아주고 쓰다듬과 터치하는 행위로 위기에 처한 사람을 구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 보다 뛰는데도 느리고 힘이 센 편도 아니며 덩치가 그리 크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불을 사용했습니다. 밤이면 공격해 오는 맹금류들을 피하기위해 불을 피워 놓고 불가에 모여앉아 의사소통을 하며 사회화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그리고 힘을 합해 협업을 하며 자기들 보다 훨씬 큰 동물들을 굴복시켜 나갔습니다. 이렇게 서로 단결할 수 있는 인간은 나아가 삶을 초월해서 죽음이후의 세계까지 연대하는 능력을 발전시켰습니다.

 

초기 인류인 호모 속에 속하는 네안데르탈인과 하일델베르크인에게는 매장 의식이 나타납니다. 이들은 아직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나타나기전 약 70만년에서 40만년 전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고인이 사용하던 손도끼나 사슴을 같이 매장하기도 합니다. 고인에게 삶에 필요했던 것들을 제공하고자 했습니다. 무덤에 부장품들은 고인과 생전에 가졌던 관계들이 죽음 후에도 연결되기를 바라는 문화에서 나왔습니다. 죽음 이후를 생각하고 이를 삶의 연장으로 생각하는 것은 인간에게만 나타나는 독특한 문화입니다.

 

현생 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는 약 20만년전에 동아프리카에서 나타났습니다. 호모 사피엔스의 특징은 이들이 가지는 상상력입니다. 인간은 상상력에 의해 서로 뭉치게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시청광장에 동물을 10만 마리를 모은다고 하면 어떤 동물이라도 그것을 통제하기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가진 상상력은 그것을 가능케합니다. 인간은 단결된 힘으로 사회를 변화시키기도하고 기술적 진보를 이룩하며 문화를 만들어 냅니다.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쓰러지신 날, 우리 향린공동체도 바로 인근 근처에 있었습니다. 그날은 약 13만 명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사람들은 인권, 자유, 정의라는 추상적 목표를 가지고 모이고 흩어지기도 하며 자신들의 목표를 관철하여 나갑니다. 이런 협력이 가능한 것은 인간이 가진 상상력입니다. 인간은 국가, 화폐, 인권, 정의, 평화라는 상상 속에 내재된 가치를 믿을 수 있는 능력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 가치를 구현하는 질서를 만들고 사회를 구성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살아 움직이는 생물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본능은 자기 생존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가진 추상적인 상상력은 그에 반하는 일도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들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생명까지도 헌신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본능으로 사는 동물들과 구별되는 인간만의 특징이며 오늘날 문화의 꽃을 피우게된 원동력입니다.

 

시편 51편은 주님은 제물을 반기지 않으시며, 내가 번제를 드려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고 합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물은 깨어진 마음이라고 하십니다. 깨어지고 짓밟힌 심령을, 하나님은 멸시하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우리가 귀한 것을 드려도 하나님께 아무런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깨어지고 짓밟힌 심령(개역은 상한 심령, 공동번역은 찢어지고 터진 마음)을 사랑하신다고 합니다. 이런 하나님의 마음이 바로 우주를 이끌어 가시는 섭리의 방향이고 인간이 나아갈 방향입니다.

 

생명은 사람들의 빛입니다

 

태초에 어둠이 있었습니다. 첫째날 하나님께서 빛이 있어라하시니 빛이 생겼습니다. 빛은 무엇입니까? 빛의 특징은 상호작용에 있습니다. 소통하는 것입니다. 현대 물리학은 빛의 학문입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모든 우주는 빛의 산물입니다.

 

최초 138억년전 빅뱅을 통해 나온 빛들이 서로 뭉쳐서 모든 물질을 만들었습니다. 지구도 만들고 이 우주를 형성했습니다. 우리 몸도 빛입니다. 우리 몸을 이루는 모든 원소들, 산소, 수소, 탄소, 질소, , 칼슘, .... 등등의 원소도 빛이 뭉쳐서 이루는 빛의 화합물입니다. 우리가 매 시간 호흡하는 공기도 빛의 덩어리이며, 매일 광합성을 통해 빛으로 빚어진 채소, 곡식, 과일을 먹습니다. 모든 생명의 근본이라는 DNA도 빛의 덩어리입니다. 우리들은 빛의 아들, 딸들입니다.

 

이런 것이 가능한 것은 빛이 서로 뭉치고 분열하는 상호작용을 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우주에는 전혀 다른 물질과 상호작용하지 않는 물질이 있습니다. 그것은 빛이 아니기에 자신을 드러내지도 않고, 드러내지 않기에 우리가 알 수도 없는 물질이 있습니다. 그것을 암흑물질, 암흑에너지라고 하는데 이것이 우주의 95%를 차지합니다. 그러나 5%의 빛이 움직이며 지금 보이는 것들, 광활한 우주와 생명을 만들었습니다. 요즘 광고에 우주의 75%는 수소로 되어있습니다라는 카피가 나오는데 그것은 우리가 관측 가능한 우주, 빛으로 형성된 우주의 75%라는 말입니다.

 

과학자들은 단지 그 과정을 들여다 볼 뿐입니다. 기계적인 구성이나 과정은 밝혀주지만 거기에는 생명이 왜 시작되었는지 앞으로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그것은 빛에 대한 완전한 설명이 되지 못합니다 빛은 운동하기 때문에 그 시작과 가는 방향을 설명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분명한 방향을 제시하여 줍니다.

 

그것은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생명은 빛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생명이 이 지구상에 나타났다가 사라지지만 그 과정에서 빛으로 역할을 하도록 덧입혀 주셨습니다. 그 말씀으로 인해 우리는 비로소 삶의 의미를 갖고, 삶의 방향을 갖게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덧입고 그분께서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나아갈 때, 바로 우리의 본질인 빛이 드러납니다. 그것이 교회와 신학이 가지는 임무입니다,

우리의 현실을 보면 매우 속이 터지고 답답합니다. 우리는 날이 새면 또 터지는 생명에 대한, 인간에 대한 배신들을 보게 됩니다. 지금 많이 흔들리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큰 방향으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발전해 온 것이 생명의 방향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혼란은 한국동란이라는 아수라장이 만들어낸 기현상입니다. 모든 인간의 존엄과 상식이 무너지고 무슨 수를 쓰든지 살아남아야 하는 극한 상황이 빗어낸 어긋난 심성 때문입니다. 그 충격이 우리들을 흔들어 놓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일시적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제 큰 방향을 잡아 주실 것입니다. 빛이면서도 빛으로 살지 못하게 하는 마음의 어두운 그림자들을 치유해 주실 것입니다. 오직 담대한 마음으로 빛으로 나아가십시오. 우리 향린공동체가 그 뜻이 이루어지는 세상을 향해 절망하지 말고 함께 힘 모아 나아갑시다.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파송사]

 

편안히 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의 상한 심령을 가장 소중한 제물로 여겨주십니다. 하느님의 마음에 속할 때 우리는 빛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우리는 빛의 아들, 딸들입니다. 빛이면서도 빛으로 살지 못하게 하는 어두운 그림자들을 떨쳐 버리십시오. 오직 담대한 마음으로 빛으로 나아가십시오. 우리 향린공동체가 그 뜻이 이루어지는 세상을 향해 절망하지 말고 함께 힘 모아 나아갑시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편이 되어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