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13() 창조절11/전태일추모주일

사람의 길을 갑시다!

(이사야서 65:17~25, 이사야서(시편) 12:2~5, 데살로니카후서 3:6~13, 루가복음 21:5~13)

[오늘은 전태일 추모주일입니다.]

 

지난 주 우리는 이상한 사람이 미국의 차기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실 이번 미국대선은 선거 운동 초, 중반 트럼프 당선자의 부적절한 언행이 도마 위에 올랐고, 정책토론 없이 상호비난으로 도배되었던 TV토론이 여론의 뭇매를 맞았으며, 막판에는 힐러리 이메일 게이트가 터지면서, 그야말로 미국역사상 가장 저열한 선거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상한 사람문제 많은 사람중 한 사람을 뽑는 선거였던 셈이지요. 어차피 최선이 아니라 차악을 뽑는 것이 선거 아니냐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공개적으로 유색인, 여성, 성소수자를 혐오하고, 자본축적에 반하는 것은 모두 탄압하겠다고 공언했던 이와 그 정당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낸 미국인들은 이번선거를 통해 약소국과 소수자를 탄압하는 남성가부장적 제국의 지위를 당당히 누리겠다는 욕망을 가감 없이 표출한 것으로 보입니다. 선거직후 캐나다 이민안내 사이트가 다운되고, 미국 내 초등학교에서 앵글로색슨계 아이들로부터 인종적 모욕을 겪은 라틴계 친구들이 수치심과 공포에 울음을 터뜨렸다는 내용이 기사화되고 있습니다. 하긴 그런데 우리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미국이 이상한 사람과 문제 많은 사람 중 하나를 뽑았다면, 우리는 이미 이상하고 문제 많은 사람대통령인 나라에서 살고 있지 않습니까? 어제도 모든 교인들께서 황금 같은 주말을 마다하고 여러 삶의 자리에서 각양의 모습으로 하나의 기도제목을 염원하셨던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몸과 마음의 건강 잘 지키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전태일 추모 주일을 맞이해 공동하늘뜻펴기를 진행합니다. 먼저 전소영 교우님의 하늘 뜻을 청해듣겠습니다.

 

[그날이 올 때까지]

                                                                    전소영 교우(청년신도회)

안녕하세요. 저는 청년신도회 전소영입니다. 평일에는 배달의 민족이라는 IT서비스 회사에서 기획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향린에는 지난 해 5월 결혼 이후 남편과 함께 오게 되었고요. 중학교 때부터 시작된 신앙생활은 올해로 약 13년 정도가 됩니다. 저는 경상도 보수교단에서 신앙의 첫 걸음을 내딛었고, 대형교회와 선교단체가 가르치는 하느님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향린에 오기 전 부터 알고 지냈던 신앙인 친구들은 요즘의 저를 군사분계선을 넘어간 사람 취급하며, 종종 그리스도인이 너무 사회에 관심이 많다거나, 위험하다는 식의 조언(?)을 해 주고는 합니다. 20대 초반까지 제가 아는 하느님이 원하는 삶이란 이런 것이었습니다.

매일 골방에서 기도와 말씀을 묵상하고,

술이나 담배를 하지 않고,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세워가는 것

그래서 저는 수련회, 성서공부 모임과 같은 신앙훈련프로그램에 집중한 반면, 술과 담배에 대한 선입견 속에서 그 재미있다는 대학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나 엠티는 한 번도 참여해 본적이 없습니다. 유혹은 멀리하고, 하느님이 더 원하시는 삶을 살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각종사회문제에 대해서는 개인과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세우는 일을 모두 다 마치고 힘이 남으면 하는 것 또는 하느님께 맡겨야 되지 직접 거리에 나서는 것은 믿음이 없는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이런 저의 삶이 송두리째 바뀌게 된 것은 24살의 여름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서울역 부근에 있는교회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 곳에서 목사의 성추행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하느님은 공의의 주님이심을 믿었던 저는 당연히 교회가 뒤늦게나마 잘못을 인정하고, 진실을 밝힐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저의 바람과 다르게 일을 처리해 나갔습니다.

먼저, 장로와 목사들은 진실을 덮고자 노력했습니다. 아마도 교인감소를 우려한

결과인 것 같았습니다.

그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대부분의 교우들이 진실을 알고 싶어 하지도, 관련기사

자체를 믿지도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뒤늦게나마 100명 남짓 교우들에 의해 진실규명위원회가만들어지긴 했습니다만, 이후 몇 달이 흐르는 동안, 교회 내부에서는 불쌍한 목사님을 믿고, 이 위기를 기도로 헤쳐 나가야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진실이 궁금했던 저는 해당 기사를 작성하신 기자 분을 만나기도 했고, 교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 보았지만, 끝내 교회를 떠나는 것 이외의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4년 넘게 열심히 다녔던 교회에 대한 깊은 실망감과 상실감은 몸과 마음의 무기력으로 이어졌습니다. 결국 중국 조선족 교회 선교를 명분으로 맡고 있던 리더 직을 사임했고, 정들었던 교회를 떠났습니다. 그 시간은 저에게 많은 아픔을 주기도 했지만, 신앙생활에 있어 새 출발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선교를 준비하는 동안 책을 통해 알게 된 함석헌 선생, 문익환 목사 등의 삶과 사상, 즉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신앙과 신학, 그리고 늘 약자의 곁에 함께하는 그분들의 삶을 통해 제가 따르고자 했던 예수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중국에 있는 동안 이제 나도 행동하는, 그리고 정의를 위해 싸우는 신앙인이 되어야지 라고 굳게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그해 겨울 삼성물산 앞에서 진행됐던 강정마을 게릴라 시위가 그 다짐을 실현하는 첫 무대가 되었습니다. 100명도 안 되는 인원에, 미신고 집회.......태연한척 웃고 있었지만, 마음은 사시나무 떨 듯 떨고 있었습니다. 가장 무서웠던 것은 확성기에서 알리는 3회 후 연행 경고방송이었습니다. 1, 2....... 경고가 더해갈 수록 심장이 터질 것 같았고, 도망가고 싶은 마음 뿐 이었습니다. 그 날은 제게 참 힘들었던 기억입니다. 이유는, 집회자체가 힘들었다기보다 너무 적나라하게 마주했던 제 자신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얼마나 비겁한가?

그 동안 얼마나 나의 안전함만이 중요했던가?

내가 훌륭한 그리스도인으로 감당하겠다던 포기와 헌신이 얼마나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이었는가?

그 날 이후 스스로가 얼마나 부끄럽고, 위선적으로 느껴졌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다시 결심했습니다. 더 아파하는 곳, 더 낮은 자리에 앞서 계신 예수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이 어떤 것인지 고민하고, 할 수 있는 한 그 곳에 저를 밀어 넣기로 말입니다. 이후 제가 아는 한, 신앙의 실천에 누구보다 열심이라는 교회공동체를 찾아갔으나, 교회 내적친교와 사귐이 언제나 우선인 모습에 실망감을 느끼던 중, 앞서 말씀 드렸듯, 결혼 후 남편을 따라 향린에 오게 되었습니다. 향린에 오기 전까지는 그래도 사회, 혹은 환경문제 등에 관심이 있다고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매주 교회를 통해 접하기 힘든 사회 곳곳의 소식을 듣고, 또 그 자리에 함께 하시는 교우여러분들을 보며 목에 힘 줄 틈 없이 겸손하게 해 주심에 늘 감사해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최근의 경험과 하늘뜻펴기를 준비하며 들었던 마음을 나누고자 합니다. 회사에서 제 별명은 프로시위러입니다. 그 뜻은 시위를 자주 나가는 사람이라는 뜻인데요,(젊은 사람들은 요즘 명사에 사람을 가르키는 영어 ‘~er’을 붙여 ‘~한 사람이란 뜻을 표현하곤 합니다. 예를 들면 거절을 잘 하는 사람을 프로거절러 라고 합니다.) 회사 사람들은 이번사건이 있기까지는 제가 사회에 관심이 많구나 하는 정도로 생각을 한 모양입니다. 지난 1029일 회사동료가 연락이 왔습니다. “시위 준비물이 있니? 이번 시위는 안가면 마음이 너무 찝찝할 것 같아라고요. 사실 하늘뜻펴기도 준비해야하고 3주 동안 독감에 시달린지라 집회는 좀 쉬려고 했는데, 처음시위를 나오는 사람을 두고 집에 있기가 불편한 마음이 들어 거리에 나서게 되었고, 어느덧 저는 세종대왕 동상 앞에 서 있었습니다. 이후 핫팩을 나눠주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질문을 하는 사람, 1112일 시위를 마치고 같이 밥을 먹자는 사람 등, 과장을 조금 보태어 회사에서 업무관련 문의만큼 시위관련 문의를 받고 있는 요즘입니다. 어제는 집회 후, 함께 했던 회사동료들과 맛있는 저녁을 먹기도 했습니다.

 

오늘 읽었던 데살로니카 본문 속 교회는 사회적 불평등으로 야기된 계급화가 교회 내에도 동일하게 자리 잡음으로 인해 발생한 불평등의 문제로 교회 공동체가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바울로의 권위를 통해 제시하고 있는 해법은 모두 일하라’, 즉 노동을 통한 평등이었으며, 이를 위해 힘쓰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돈 많고 계급 높은 자들을 똑같이 일하게 하는 것은 교회 안에서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이들에게 데살로니카 후서는 낙심하지 말고 선한 일을 계속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향린에 오기 전 신앙생활을 함께했던 사람들의 SNS에는기도를 해도 변하지 않고, 뭘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라는 글을 자주 발견합니다. 저도 이전에는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향린에 있었던 1년 반 동안 한광호 열사의 분향소와 백남기 어르신의 빈소를 지키는 향린교우들을 통해 낙심하지 말고 선한 일을 꾸준히 하라는 성서의 말씀이 어떤 것인지 눈으로 보았고,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도 알게 되었습니다.(어제 저녁을 먹을 때도 교우 분들을 뵈었습니다. 얼마나 반가웠던지.......)

4년 전 굳은 결심은 했지만 여전히 나약한 몸과 마음은 주말이 되면 늦잠을 자거나, 나의 재미를 찾는 것이 먼저일 때가 많습니다. 시위에 나갈 때 면 여전히 경찰들의 위협에 위축되는 저를 마주하고, 변하지 않는 것 같은 현실에 낙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다시 여러분과 함께 한번 마음을 다지고자 합니다.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목소리 높여 외치며, 두 다리를 일으켜 한 번 더 가고, 약자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연대와 행동의 걸음으로 선한 일을 행함에 게으르지 않기를 기도하며, 부족한 하늘뜻펴기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소박한 새 하늘 새 땅]

 

                                                                                  고상균 목사

 

귀한 하늘의 음성을 들려주신 전소영 교우님께 감사드립니다. 거룩한 하늘뜻펴기 시간에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야구를 좋아합니다. 아니 야구라기보다는 LG트윈스를 좋아합니다. 물론 프로야구가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 우민화 정책이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7살이었던 1981, 일본과의 경기에서 몸을 날려 친 번트의 주인공, 한국화장품 소속 김재박 선수에게 매료되었던 저는 그의 첫 번째 프로야구단이었던 서울 MBC청용을 사랑하게 되었고, 청용을 인수하여 창단한 LG트윈스를 또 덮어놓고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팀이 참 애물단지입니다. 창단 초기에는 제법 성적이 좋더니만, 그 뒤론 쭉 하위권을 맴돌았습니다. 경기를 보다보면 정말이지 가슴에서 천불이 이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오죽했으면 저와 동갑인 우리교회 한 집사는 ‘LG트윈스를 응원한다는 것은 천형, 즉 하늘이 내린 형벌인 것 같다라고 말하기도 하더군요. 올해도 여름을 지날 때 쯤 순위는 10 9까지 추락했었습니다. 그런데 진성LG팬들은 묘한 구석이 있습니다. 바닥을 쓸고 있는 상황에서도 매해 열성적인 응원을 멈추지 않습니다. 또 오늘보다 내일은, 올해보다 내년 시즌은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놓지 않습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경기를 지켜보다 간혹 이기게 되는 날은 정말이지 시즌 우승을 한 것 같이 즐거워집니다.

 

보아라, 나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한다. 지난 일은 기억에서 사라져 생각나지도 아니하리라. (이사야 65;17)

 

오늘 함께 모신 이사야서 본문에는 새 세상의 대망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새 하늘 새 땅은 내세에 대한 교리가 확립되지 않았던 옛날 유대교에 있어 가히 신앙적 극상의 공간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상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완벽한 이상향이라는 것이 겨우 울음소리가 나지 않고, 그저 제 명대로 사는 곳이라니요. 그 뿐만이 아닙니다. 고작 자기 집에서 살 수 있고, 손수 재배한 포도를 맛볼 수 있는 정도가 그토록 염원하는 새 하늘 새 땅이란 말입니까?

이는 생명을 이어갈 수 없는 상황을 경험한 이들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고백입니다. 정성들여 가꾸었던 집과 소출을 빼앗긴 사람들....... 역사적으로는 유다의 비극적 멸망과 예루살렘 파괴, 그리고 이어진 식민통치의 경험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비극적 상황에서 이사야 공동체는 역설적으로 희망을 선언합니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고난 앞에서 그들은 절망하지 않았고, 작을지언정 무척 귀중한 소망을 새로운 세상의 대망에 담아 노래했던 것입니다. 작은이들, 조그만 나라에 사는 사람들에게 있어 평화란 구호나 담론이 아닙니다. 그것은 생존의 문제인 것입니다. 새 하늘 새 땅의 최종상태에서 늑대, 사자, 뱀이 살생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각각의 맹수들로 상징되던 바빌로니아, 앗시리아, 이집트가 전쟁을 멈추고 약소국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더 이상 억울하게 죽는 일도, 애통하는 일도, 또 소출과 터전을 잃어버리는 일도 없을 테니 말입니다.

여름까지 밑바닥을 휩쓸던 LG트윈스는 정말 드라마처럼 기사회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연승을 이어가더니만 4위로 시즌을 마감했습니다. 5위까지 참여할 수 있는 가을야구에 진출한 LG3위 팀까지 꺾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무척 아쉽게도 한국시리즈 진출이 좌절되기는 했지만, 저를 포함한 LG팬들은 올 한해 보여준 모습만으로도 충분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내년에는 더욱 큰 기쁨을 안겨 줄 것이라는 희망도 함께 말입니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노래했던 이들에게 새 하늘 새 땅이 펼쳐졌을 가능성은 많지 않습니다. 그 후로도 유다는 페르시아와 그리스 제국, 로마 등 끝없이 이어지는 식민통치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함께 모신 하늘말씀인 루가복음에서 성전파괴, 전쟁과 반란의 소문, 천재지변, 무고한 탄압 등의 이미지가 강조되고 있는 것은 모두 이와 같은 역사적 상황의 영향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 질곡의 시기마다 새 하늘 새 땅의 희망은 민중들에게 있어 다음을 향한 삶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고, 특히 예수 공동체에 있어서는 내외의 압제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다음을 향할 수 있게 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요한묵시록에 나타나는 새 예루살렘은 그와 같은 희망의 표현이라 하겠습니다.

 

[사람의 길을 갑시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향린공동체 여러분!

오늘은 전태일 열사의 삶과 정신을 기리는 주일입니다. 그는 도무지 희망이 보이지 않았던 노동자들의 현실 속에서 스스로 희망이 되는 길을 택한 분이십니다. 그가 꿈꿨던 삶은 무어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이어린 여공들이 점심을 굶지 않고, 안전한 작업장에서 일 할 수 있으며, 근로기준법이 이행되는 세상 정도이지요. 그러나 그의 꿈은 대부분 지금도 여전히 이뤄야 할 꿈이고, 이를 위해 수많은 전태일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백만이 모여도 꿈쩍하지 않는 권력 앞에서 우리는 무모한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요? 저는 감히 그렇지 않다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권력이 우리를 개, 돼지라 말할 때 그에 저항하는 것은 사람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패악한 권력이 악마성을 드러낼 때 그 행위를 막아서는 일은 하느님이 창조하신 사람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201611월의 대한민국을 사는 신앙인들이 정권의 퇴진을 기도하는 것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역사의 한중간으로 당기려는 사람이 마땅히 가야 할 길을 가는 것입니다. 길은 탄탄대로가 아닐 것이고, 군데군데 가로등도 없어 깜깜하겠습니다. 그러나 절망의 한 중간에서 희망의 세상을 노래했던 이들을 기억합시다. 하늘의 소망을 간직한 여러분 모두는 이 시대의 희망입니다. 그 희망을 간직하고 우리 다같이 사람의 길을 갑시다!

 

침묵기도 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전체교회에 제안한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공동기도 드리겠습니다.

 

 

여러 삶의 자리가 참 어둡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삶의 무게를 이겨내고 계신

여러분을 통해 희망을 느낍니다.

 

인파로 뒤덮인 광화문 네거리와 함께 하는 벗들을 바라보며

어두움 속의 등불을 발견합니다.

우리 사람의 길을 갑시다!

우리를 정의롭게 지으신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사십시다.

 

이를 통해 우리 마음속 새 하늘 새 땅이

마침내 역사의 한 중간으로 다가설 수 있도록 우리 함께 갑시다!

 

서로를 향한 축복의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주 예수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께서 이루어 주시는 친교가 우리가운데 영원토록 함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