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27()                                                                                   대림절1

새날을 당기는 기다림

(이사야서 2:1~5, 시편 122:6~9, 로마서 13:11~14, 마태오복음 24:36~44)

 

                                                                                        고상균 목사

 

[날이 많이 차가워졌습니다.]

 

저는 향린에 있는 동안 처음인 경우가 참 많습니다. 실질적인 전임활동의 처음, 번째 성찬식과 부활증언예배 집례, 물론 대리입니다만 당회장과 공동의회 의장 역할 등의 처음이 향린입니다. 또 안수와 같이 잊지 못할 기억도 이곳에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오늘은 거기에 한 가지를 더한 날입니다. 처음 세례식을 집례 한 날! 이지요. 나중에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게 될 때가 오겠습니다만, 매사 어설픈 저에게 인내하는 마음으로 여러 기회들을 허락해 주심에 늘 감사해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우물을 흐린다는 속담이 생각나는 요즘입니다. 하다하다 세금으로 비아그라를 대량구매 했다는 소식까지 접하게 되면서는 정말이지 웃음도 나오지 않습니다. 한 사람 때문에 삶의 자리 곳곳에서 신앙의 실천과 기도로 고생이 많으시지요? 지난 목요일과 어제도 많은 교인들이 청운동과 청와대 인근에서 기도제목을 함께 외쳤습니다. 특히 목요촛불기도회에는 80이 넘은 교우 한 분께서 추위 속에서 행진까지 함께하기도 하셨습니다. 그 분은 주중 제게 전화를 주시고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주셨습니다. ‘목사님! 몸이 많이 좋지 않지만, 목숨을 걸고 나갑니다!’ 어제는 많은 분들이 첫 눈을 거리에서 맞기도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아무쪼록 여러 신앙의 선배님들을 포함하여 향린공동체 여러분들, 몸과 마음의 건강 잘 살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대림절의 첫날입니다.]

오늘은 대림절의 첫날입니다. 대림절은 예수그리스도의 탄생 직전 4주간을 말합니다. 대림절을 뜻하는 라틴어 "Adventus"온다라는 뜻을 가집니다. ‘오고 있는 존재 관심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반면 이 절기에 대해 한자권에서는 기다릴 대(), 임할 (), 오는 것을 기다린다라는 의미를 부여합니다. 오고 있음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강조점이 있습니다. 화려하게 강림하는 절대자와 그이를 맞이하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여러분에게 있어 대림절의 의미는 이 두 가지 중 어느 쪽이신가요?

저는 예수탄생 전 4주의 시간에 대해 "Adventus"보다는 대림(待臨)”, 오고 있는 존재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기억하는 이들대한 강조가 더 적확한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아는 한 대림을 지나오시는 그 분은 주목받는 자리에 화려하게 강림하는 절대자가 아니라, 우리의 모습으로 오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림의 첫 날 함께 모시는 하늘말씀 역시 기다림을 말하고 있습니다.

 

[평화를 기다리는 이들: 이사야서]

여러분들께서 잘 알고 계시듯 이사야서는 포로기라는 역사정황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약소국은 그저 강대국의 침략을 당하고만 있어야했던 상황 말입니다. 천신만고 끝에 고국으로 돌아온 귀환 유대인들은 명망 있던 예언자 이사야계보의 글을 정리하였고, 그 글의 서문에 자신들의 염원을 적어 내려갔습니다.

 

그가 민족 간의 분쟁을 심판하시고 나라사이의 분규를 조정하시리니, 나라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민족들은 칼을 들고 서로 싸우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군사훈련도 받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2;4)

힘센 국가 공동체의 염원은 무엇이었을까요? ‘신이시여! 우리가 온 세상을 지배하게 하시고, 모든 정복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소서!’ 정도가 아니겠습니까? 강대국의 무한팽창이 당연하던 상황 속에서 분쟁종식과 군대 없는 세상을 노래하는 이들의 실상은 어떠했겠습니까? 언제 대국의 군대가 침략해 올지 몰라 전전긍긍하다 걸핏하면 약탈과 노략질에 시달렸을 이들에게 전쟁 없는 세상이야말로 온 마음 다해 기도할 일이 아니었겠습니까? 이사야서는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평화를 염원했던 이들의 기다림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새벽을 기다리는 이들: 로마서]

 

두 번째 하늘말씀인 로마서13장 전체에는 통치자에게 복종하라는 내용이 가득합니다. 이런 글은 일단 우리 향린공동체스러운동네에 계신 분들의 기분을 무척 상하게 만드는 반면, 주류 개신교회에서는 그러니까 만백성은 대통령에게 순종해야 한다설교의 근거로 불티나게 사용됩니다. 일단 13장에 여러 번 사용되는 통치자라는 단어는 그리스어 아르케인데, 이는 중앙정부가 파견한 지방 행정관을 지칭합니다. 그러니 13장은 세상 모든 권력자들에게 복종하라는 것이 아니라 특정 지역의 행정관에게 밑 보이지 말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맞겠습니다. 한편 지방 행정관이 자신을 임명한 이에게 해야 할 가장 큰 의무는 세금징수였습니다. 로마라는 거대 제국의 통제와 이웃국가에 대한 정복전쟁은 막대한 비용이 발생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13장은 세금에 대한 내용을 많이 강조합니다.

국세를 바쳐야 할 사람에게는 국세를 바치고 관세를 바쳐야 할 사람에게는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해야 할 사람은 두려워하고 존경해야 할 사람은 존경하십시오. (로마서 13:7)

로마서의 저자인 바울로에게 있어 최대의 사명은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선교사명이 완수되면 주님의 다시 오심을 맞이할 수 있으리라는 종교적 열광이 초기 예수 공동체 구성원들의 보편신앙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지중해 연안 사람들에게 있어 땅 끝은 이베리아 반도, 지금의 스페인, 포르투갈이 있는 땅과 북아프리카 모로코, 그리고 이 둘이 마주보고 있는 지브롤터 해협이었습니다. 소아시아 등 지중해 동부에 거주하던 바울로에게 있어 서편 지역으로 나아가는데 로마 등 이탈리아반도에 위치한 교회들의 지원은 매우 절실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볼 때 로마서 13장은 무슨 대통령에게 순종하라는 말이 아니라, 메시야 대망의 실현을 위해 작은 어려움은 감수하자고 로마교회 구성원을 다독이던 바울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고 있었던 신생종교의 포교자가 가슴 아프게 전하는 요청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쓰린 마음은 희망을 향한 기다림으로 승화되고 있습니다.

밤이 거의 새어 낮이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니 어둠의 행실을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로마서 13;12)

[기다림을 준비하는 이들: 마태오복음]

 

마지막 본문은 공관복음서 모두에 등장하는 예수의 종말 기사이고, 앞서 말씀드렸던 초기 예수공동체의 메시아대망이 또 한 번 분명하게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세 복음서 모두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본문의 역사적 가치와 복음서 공동체 내적권위 모두가 상당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토록 중요한 본문 속에서 예수는 말합니다. ‘그 날은 갑자기 온다.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늘 준비하라!’

만약 신적 카리스마 가득한 절대자가 나타나 단 번에 쓸어버리듯 세상을 변혁시킨다면, 그 상황에서 우리가 마땅히 준비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어차피 오시는 능력자가 알아서 해주실 것이니, 우리는 그저 오심을 바라보고만 있으면 되는 것일 테니 말입니다. 준비란 기다리는 이에게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이의 오심을 통한 변혁은 이 땅에서 기다리는 이들의 준비, 즉 실천과 참여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마태오를 포함해 공관복음서 공동체들은 전해지던 예수이야기 중 이 종말 기사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신앙고백 함으로써, 수동적 종교 활동에서 벗어나 예수 따름의 길에 들어설 것을 강조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의 기다림은 준비 곧 신앙의 실천이었습니다.

 

[새날을 당기는 기다림]

 

존경하고 사랑하는 향린공동체 여러분!

서두에 말씀드렸고 모두가 알고 계시듯 오늘부터 대림절이 시작됩니다. 교회의 전통에서 대림의 첫 주는 교회력 즉 교회의 전례가 시작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쉽게 말해 교회달력에서의 1월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절도 아니고, 죽었던 그가 살아난 부활절도 아닌, 그저 기다리는 절기로부터 처음을 시작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혹시 그 기다림, 우리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이를 기억하고 오실 자리를 만드는 그 일이 우리들 신앙의 1사명이라 여겼던 것을 아니었을까요?

 

주님의 오심을 기억하는 지금, 여러분은 무엇을 기다리고 계십니까? 또 여러분은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무엇을 준비하고 계십니까? 감히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기다림이 약한 이들의 미소를, 진실의 규명을, 불의한 권력의 횡포가 그쳐짐을 위한 것이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다만 그러한 꿈을 바라보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자리 여기저기에서 할 수 있는 기도와 실천을 통해 준비해 나갔으면 합니다. 그렇게 삶의 자리 한구석씩을 밝혀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것을 통해 새날의 힘찬 태양은 오시는 주님과도 같이 우리 앞에 떠오를 것입니다. 우리 그렇게 새날을 당기는 기다림을 준비합시다! 그런 대림절이길 희망합니다. 잠시 침묵하겠습니다.

 

 

 

 

교회의 새 절기가 시작됩니다.

 

지난 시간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잘 하셨습니다.

삶은 살아낸 것만으로도,

그 삶을 통해 짊어진 무게만으로도 여러분은 존경받아 마땅합니다.

 

우리 그렇게 장한 각각의 삶의 자리에서 주님의 오심을 기다립시다!

그 이를 기다리는 마음의 불을 밝혀 시대의 어둠을 몰아냅시다!

이를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는 새날을 당겨 맞이합시다!

불의한 권력의 끝을 이끌어 냅시다!

 

서로를 향한 축복의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주 예수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께서 이루어 주시는 친교가 우리가운데 영원토록 함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