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증언은 곧 승리의 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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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23일동안 저는 예수살기 영성수련회에 참석을 했습니다. 이번 수련회는 외딴 장소에 가서 기도하는 수련회가 아닌 오늘날 우리 사회의 정치 권력의 불의함의 상징인 세월호를 기억하는 수련회였습니다. 아픔의 현장에 함께 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 세월호의 유족들을 만나고 희생당한 자들의 넋이 담겨 있는 안산 지역의 흩어진 여러 장소를 찾아다니는 수련회였습니다. 물론 2주 전 많은 향린교우들은 세월호가 올라온 팽목항과 목포항을 직접 찾아갔었습니다.

 

[세월호의 아픔을 따라]

 

고통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고통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고통은 나누면 반으로 줄어들기에 나누라고 하지만, 기쁨은 쉽게 내놓을 수 있는 반면 고통은 쉽게 내놓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고통은 자기만이 경험하는 내면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통은 비교 대상이 될 수가 없습니다. 250명의 단원고 희생자 중 4분지 1 가량이 외아들 혹은 외딸이라고 합니다. 남은 자녀가 있는 가정이 외딸 외아들의 가정보다 고통이 덜할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열 자식이 있어도 부모의 마음에는 언제나 먼저 간 자식이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목요일 밤 정부청사 앞에서 진행되는 목요촛불거리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해 광화문 세월호 광장을 지나가는데, 미수습자 어머니가 이렇게 울부짖었습니다. “난 박근혜 탄핵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난 내 자식이 돌아오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듣기에 따라 이견이 있을 수 있는 발언입니다만, 다른 어머니들은 자식들이 돌아와 장례 예식을 치루었지만, 3년이 지나도록 장례예식조차 치룰 수 없어 계속 가슴에 품고 살아가야 하는 가족이 겪는 고통의 깊이가 얼마나 큰지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바라기는 9명의 미수습자들이 가족의 품으로 속히 돌아오기를 기도합니다.

 

수련회 첫날 참가자 30여명은 광화문광장에서 기도회를 갖고 진실을 밝혀낼 때 생명은 부활합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커다란 노란색 천을 몸에 두르고 국회의사당까지 걸어갔습니다. 가는 도중 용산 남일당 참사 현장을 들러 경찰 폭력으로 숨진 영혼들을 위로하였습니다. 이후 안산으로 가서 기도 모임을 계속했습니다.

 

[기억의 아픔]

 

오늘도 예배 후 안산으로 가서 세월호를 기억하는 부활절연합예배를 드립니다만, 지금 안산에는 합동분향소, 추모공원 뿐만 아니라 3년 전 단원고 2학년의 교실을 그대로 복원한 기억교실이 있고 부모님들이 자신들의 아픔을 예술 작품으로 표현한 여러 전시 장소들이 있습니다. 의외로 곳곳에 세월호의 아픔을 기억하는 곳이 많았습니다. 안산 교육청에 임시로 마련한 기억교실은 특별한 감정을 갖게 하였는데, 희생당한 학생들의 책상 앞에 놓인 꽃다발과 저들이 쓰던 물품들 그리고 가족과 친구들과 참배객들이 남겨 놓은 글을 읽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힘든 것은 각 교실 문에는 조그마한 안내판이 붙어 있는데, 거기에는 희생자가 몇 명 생존자가 몇 명이 표시되어 있었는데, 10개 반 가운데, 두 반에 살아남은 학생이 각각 한명씩이었습니다. 반원 전체를 잃어버리고 혼자 살아남은 그가 갖고 있는 아픔이 진하게 저에게 전해졌습니다. 두 명이 살아남은 그 아픔을 나누기라도 하겠지만, 한명 남은 친구는 그 아픔을 어쩔 것인가? 혹 잘못하면 자기만 살아남았다고 하는 죄의식 속에서 평생을 몸부림치며 살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장 감수성이 강한 17세의 나이에 그가 겪어야 할 삶의 고통을 생각하니 가슴 한편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래 저는 오히려 살아남은 그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죽어간 친구들을 대신해서 더욱 멋지고 값지게 살아가기를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유족 중 기독교인 어머니 몇 명과 함께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이 어머니들은 이전에는 교회를 다녔지만, 한분을 빼놓고는 모두 교회를 다니지 않고 있었고, 다니는 한분마저 계속 교회를 다녀야 할지를 놓고 우리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으셨습니다. 그건 담임목사를 비롯해 대부분의 교인들이 이제는 모든 걸 잊고, 신앙에 충실하자.”고 하는 위로 아닌 위로 때문이었습니다.

 

[참사가 아닌 학살]

 

지금 유족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도대체 어떻게 해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진실 규명이었습니다. 증거가 불확실하니 내놓고 얘기는 못하지만, 이건 분명히 정권의 검은 권력이 개입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그건 나도 확신합니다. 여러 차례 여러분에게 말씀드렸지만, 세월호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전원구조라는 방송을 두 시간 이상 내보냈는데, 이건 도대체가 말이 안 되는 일입니다. 오분 십분 오보는 있을 수 있는 얘기이겠지만, 두 시간 이상 그것도 정정 항의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이를 무시하고 계속 오보를 강행했다는 것은 언론을 장악할 수 있는 권력기관 곧 청와대와 국정원이 개입하지 아니하고서는 도대체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당일의 구조 현장 사진이 아닌 등록된 한 장의 사진을 4개의 모든 공영방송이 동일하게 2시간 이상을 방영했다는 건 방송조작이었음을 충분히 증명하고 남습니다.

 

침몰 소식을 들은 지나가던 외국 유조선의 구조의 손길을 거부한 일이나, 현장구조지휘본부장을 맡았던 황기철 해군참모총장이 통영함 출동을 두 번이나 명령하였는데, 이 명령을 잠재울 수 있는 권력은 청와대 혹은 국정원 밖에는 없습니다. 나중에 황기철 참모총장을 납품비리사건으로 몰아 옷을 벗겼는데, 무죄로 판결이 났습니다. 구조 당시의 화면을 보면 출동한 해경이 제대로 구조를 하지 않자, 주위에 있던 어선들의 선장이 외칩니다. 해경 길을 가로막지 말고 저리 비켜라 우리가 구하겠다. 그런데 비키지를 않고 구조를 막습니다. 이는 분명히 계획된 학살 사건입니다. 그래서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 걸린 현수막에는 청와대의 사라진 7국정원을 조사하라는 요구가 붙어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흔히 국가폭력이라고 말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는 국가 폭력이 아니라 정권 폭력입니다. 우리 헌법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 되어 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의 주인은 민 곧 국민이라는 말입니다. 주인인 국민이 자기 스스로에게 테러를 가할 수는 없습니다. 일정한 기간 동안 선거를 통해 국정을 책임지는 정권이 저지르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세월호의 진실을 덮고 갈수는 없습니다. 수천 명의 민주인사와 학생들을 옥에 가두고 수백 명을 암암리에 죽인 박정희정권이 저지른 추악한 범죄는 30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진실이 밝혀졌습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대형 간첩단 사건들은 거의 대부분이 고문으로 인한 조작이었음이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이 범죄에 가담한 자들은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지금 히틀러 정권 하에서 난 위로부터 받은 명령을 행했을 따름이다라는 변명은 독일 법정에서 통하지 않고 있지만, 남한사회에서는 이 논리가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러기에 경찰과 검찰 그리고 국정원과 군수사대의 허위진술을 강요하는 폭력적 만행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적폐청산. 위로부터 내려온 명령이라 하더라도 상식과 자신의 양심에 반하는 불의한 짓을 한 모든 관료들을 분명히 처벌할 때만이 잘못된 역사가 반복되지 않는 것입니다.

 

[세월호와 오늘의 교회]

 

세월호 유족들이 왜 열심히 다니던 교회를 포기하는 것일까요? 억울한 이들 편에 서서 정의를 외쳐야 할 교회가 나서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의혹이 가득한 세월호의 진실을 규명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불의한 정권의 편에 서서 이를 덮으려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유족들은 분노와 절망 속에서 거의 대부분이 이미 교회를 떠났습니다. 안산의 교회 가운데 세월호 유족들이 다니던 교회는 모두 37개 교회가 있었는데, 그중 두 교회만이 현재 유족들과 함께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 수많은 서울에 있는 교회들이 안산을 찾아가 부활절 연합예배를 드리는데, 실제 안산에 있는 교회들, 특히 유족들이 교인으로 있던 교회들이 이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성서에서 가장 많은 부피를 차지하고 있는 말씀은 불의한 정치권력을 비판한 예언서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또한 분류하면 가난한 자와 약자들의 편에 서서 당시의 종교정치 지배자들을 비판한 말씀이 주를 이룹니다. 그런데 오늘날 남한의 대형교회들은 성서의 근본을 벗어나 자기들만의 동굴 속에 머물러 있습니다.

 

오늘은 교회의 최대 절기인 부활절입니다. 오늘 모든 교회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노래하고 찬양하고 기억합니다. 그런데 세상은 무덤덤합니다. 예수 부활? 그래서 그게 어쨌다고?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교회는 세상 밖에 존재하지 않고 세상 안에 존재합니다. 예수께서는 세상 밖에서 세상 안으로 들어오셨고, 그것도 가장 낮은 자리 말밥통 안으로 오셨습니다. 신앙의 주된 관심과 그 목표는 이 세상입니다. 나의 구원도 이 세상과 유리된 구원이 아닙니다. 나의 구원과 세상 구원은 동떨어진 주제가 아닙니다. 이는 하나입니다.

 

[미국의 불장난]

 

지금 미국의 전쟁 불장난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북한의 핵실험을 방지하기 위한 방식이라고 하지만, 지금 미국은 여차하면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여기에 일부 보수적인 친미 기독교인들이 찬성하고 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모두가 죽어도 자기들은 살아난다는 착각 속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는 크나 큰 착각이자 오산입니다. 지금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났다 하면 이 전쟁의 참화를 피해갈 사람은 한명도 없습니다. 한반도 전체가 불바다가 되고 세계로 번져갑니다.

 

독 안에 든 쥐는 고양이를 공격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북을 오갈 데 없는 구석으로 몰면 항복할 것이라고 트럼프를 비롯한 강경론자들이 생각하고 있는데, 이는 서구인들의 기본 사고 곧 이익이 되면 하고 손실이 나면 포기하는 실용주의에서 나온 판단이지, 북과 같이 하나는 전체를 그리고 전체는 하나를이라는 주체사회주의 국가에는 전연 통하지 않는 논리입니다. ‘해볼테면 해보자고 목숨을 내놓고 덤비는 사람에게는 장사가 소용이 없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미핵항공모함이 동해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란 듯이 미사일 발사를 했는데, 우리 정부는 실패한듯하다고 발표했지만, 그게 의도한 것인지 실패한 것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리고 북은 이미 핵으로 무장한 국가입니다. 물론 핵이 없다 하더라도 남쪽 23기의 핵발전소 가운데 몇 개만 미사일로 폭파가 된다면 한반도는 앞으로 백년동안 어떠한 생명도 살아갈 수 없는 불모지로 변할 것입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전쟁불사론을 펴는 전쟁광들이 있고 특히 기독교인들 가운데 많은 것은 참으로 비극입니다. 예수 신앙이 아닌 사탄 이념입니다.

 

[부활의 은 육체성이 아닌 현재성]

 

오늘 교회는 예수 부활을 말하면서 몸의 부활을 강조하여 말합니다. 그러면 하나 물어보겠습니다. 지금 세월호 희생자들이 부활하는 것을 믿는다면 그 아이들은 3년 전 17세 나이의 몸으로 부활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20세 나이의 몸으로 부활하는 것일까요? 여러 부모님들이 그런 얘기를 하시더군요. 죽은 아이들이 꿈에 나타나는데, 제주도로 수학여행 간다고 짐 들고 나가던 고등학생이 아닌 어릴 때의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몸의 부활이라는 말에서 몸이 갖는 의미는 단순한 육체성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육체성이 아닌 현재성을 말하는 단어입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말은 공중 어딘가에 예수의 창자국과 못자국이 남아 있는 실체적인 몸이 떠다닌다는 말이 아니라, 예수께서 이 지상에서 말씀하셨던 그 말씀이 지금 우리 몸을 통해 현재화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이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라는 단어로 자주 설명합니다. 사실 오늘 골로새서의 말씀, “이제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천상의 것들을 추구하십시오. 지상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지 말고 천상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십시오.”라고 말을 하는데, 지상의 것은 무엇이고 천상의 것은 무엇인가요? 죽은 후에 천국에 갈 것만을 준비하라는 뜻일까요? 우리가 천국에 갈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하루 종일 성서를 읽거나 매일같이 교회에 와서 기도하는 일일까요?

 

지상의 것을 추구하지 말고 천상에 있는 것들을 추구하라는 말은 쉬이 사라질 지상의 가치 곧 부와 권력과 세상 명예를 추구하지 말고 천상의 가치 곧 생명과 평화와 정의와 평등의 가치를 추구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본래 2천년 전 로마제국의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말은 곧 로마제국의 십자가 처형에 대한 무효성과 불법성을 천명하는 단어입니다. 너희들이 죽였지만, 그건 소용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분은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이다. 칼과 창으로 이루어진 세상 권력 그건 새벽 안개와 같이 허망한 것들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묻습니다. 그럼 그걸 어떻게 증명할거냐? 왜냐하면 이미 예수는 제자들 곁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으니 말입니다. 그때 할 수 있는 얘기는 우릴 보라. 우리의 삶의 변화를 보라.’ ‘스승 예수께서 처형당할 때에 자기 죽음이 두려워서 도망을 갔던 우리들이 이제는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우리들의 변화, 이것이 바로 예수 부활의 증거다.’

 

[야훼의 오른손]

 

오늘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예수 부활을 우리의 삶을 통해 어떻게 세상 안에서 증명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전 것은 사라졌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라고 말할 때의 이 를 말이 아닌 행실 속에서 어떻게 보여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과거의 아집과 편견을 어떻게 해체하고 나를 뛰어넘어 하늘의 공동체적인 우리의 가치를 추구할 때, 예수 부활은 저절로 증명이 되는 것입니다. 의로운 사람들의 집집에서 터져 나오는 저 승리의 함성. 예나 지금이나 의인들은 권력에 희생자들입니다. 그런데 저들 집집에서 승리의 함성이 터져 나오고 있다는 말은 새로운 세상이 등장했다는 말입니다. 이산 저산에 포도를 심은 농부가 그 포도 열매를 따먹게 된다는 말은 제국들의 침략이 그쳤다는 말입니다.

 

2주후 우리는 성주로 현장예배를 떠납니다. 사드는 단순한 미사일방어무기가 아니라 오늘 한반도가 전쟁으로 나아갈 것인가 평화로 나아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시금석이 되는 무기입니다. 왜냐하면 이는 대북용이 아닌 대 중국용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미국과 중국간의 패권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남북간의 대결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전쟁이란 승리를 보장하고 시작하는 것인데, 북은 중국의 협력없이 승리를 보장하기 어렵고 남은 전시작전통제권이 없으니 자체로 전쟁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드는 중미간의 전쟁을 부추기는 새로운 무기체제입니다. 전쟁으로 나아가는 씨앗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 부활을 노래합니다. 예수의 제자들에게 있어 예수 부활은 세계 패권을 쥐고 있는 로마 제국의 멸망을 예고하는 함성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들에게 있어 예수 부활은 미국을 비롯한 세계 패권 국가들의 폭력성을 고발하고 이것들이 결국 하느님의 정의 앞에서 무너지고 말 것이라고 하는 확신에 찬 평화의 함성인 것입니다.

 

야훼는 나의 힘, 나의 노래, 나의 구원이시다. 의로운 사람들의 집집에서 터져 나오는 저 승리의 함성, 야훼의 오른손이 번쩍 들렸다. 야훼의 오른손이 힘을 떨치셨다. 나는 죽지 않고 살아서 야훼께서 하신 일을 널리 선포하리라.

 

다 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