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1운동과 생명 살리기
창세기 1장 11-13절, 로마서 8장 18-25

세 향린교회가 공동체로 모여 삼일절의 자유와 해방 그리고 민족 자주와 독립의 정신을 되살리는 이 산상예배는 여러 가지 점에서 의의가 매우 크다고 하겠습니다.

특히 오늘 우리는 삼일절의 기본 정신 가운데 하나인 우주 만물의 생명회복이라는 해방정신을 생각하면서 계양산에 모였습니다. 이 자연보호의 정신은 단지 골프장 반대라는 차원을 넘어서서 우주 생태계의 보존이라는 기독교의 창조신앙과 그 뿌리에서부터 맞물려 있습니다.

흔히 기미년 독립만세 사건으로 불려지는 31운동은 우리 민족의 독립과 해방을 위한 운동이었지만, 그 선언문 사이사이에는 인류 평화와 우주 만물에 대한 생명 살리기 정신이 짙게 깃들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을 무오독립선언서에서 이 정신을 이렇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대동평화를 알리고 사해인류를 제도함으로 국제적인 불의를 감독하고 우주의 진선미를 체현코자 함이니...’ 우주의 진선미를 체현하다는 말은 자유와 해방과 독립이 단지 인간 개체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흔히 사도바울은 역사적 예수를 너무 신앙의 그리스도로 영해하였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역사적 예수로부터 출발하지 않고 다메섹에서의 부활의 그리스도로 출발한 사도바울에게는 어쩔 수 없는 한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의 글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역사적이고 현실적인 고난을 드러내는 숨겨진 메시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오늘 우리가 읽은 로마서의 말씀입니다. 그도 민족을 위해서라면 자기가 구원을 받지 못해도 좋겠다고 할 만큼 민족에 대한 사랑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미 로마의 거대한 군사세력에 의해 갖가지 박해와 고난을 받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오늘날까지 다 함께 신음하며 진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로마에 있는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이 신음과 진통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보다 근원적인 해방을 말합니다. ‘피조물에게도 멸망의 사슬에서 풀려나서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스러운 자유에 참여할 날이 올 것입니다.’ 저는 이 사도바울의 선언이 바로 바로 오늘의 독립선언문에 나타난 ‘우주적 진선미의 체현’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합니다.

구약성서 또한 이러한 우주적 진선미의 찬양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의 창조의 이야기를 단지 진화론의 반대개념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성서에 대한 편협한 이해입니다. 창세기 1장은 온 우주 만물이 야훼 하느님으로부터 지음 받았다는 신앙고백문이요 인간실천선언문입니다. 창조 기사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어느 날 뭐가 만들어졌는가? 하는 창조의 순서가 아니라 창조가 있을 때 마다 매번 반복되는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는 노랫말입니다. 일곱번이나 계속 반복하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때는 좋았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는 자책의 고백입니다. 이 자책의 고백 속에서 우리 인간은 하느님의 형상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이 하느님의 형상을 받았다는 말은 곧 하느님의 파트너라는 말이고 이 말 속에는 이 파괴된 세상을 ‘보기에 좋았다는’ 그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려야 할 책임이 있는 존재임을 밝히는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 첫 인간 아담에게 명한 ‘다스리라’는 말은 지배하라는 군사적 용어가 아닙니다. 인간의 필요와 욕망에 따라 마음대로 하라는 전권위임이 아닙니다. 이는 주어진 그대로를 지키나가라는 청지기의 용어이며 꺼내 쓸 때는 주인의 허락을 받고 쓰라는 제한된 위임명령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인간이 신의 자리에 올라서려고 합니다.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먹고는 눈이 밝아져 이제는 모든 것을 알았다고 큰소리칩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인간이 개발해낸 핵무기는 이 지구를 수십번 쪼개고도 남을 파괴력을 갖고 있습니다. 곡물생산량은 온 세계 국민이 나눠먹고도 남을 양을 생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 3분지 1일이 먹을 것이 없어 배를 곪고 있습니다. 인공위성을 통해 적국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들여다보고 자동차의 번호판까지 인식하는 정밀카메라이지만, 그런데 이 카메라는 배고파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 이상한 카메라입니다.

[지구촌 시각]

영어 표현에 Think globally, act locally라는 구호가 있다. 생각은 지구적으로 실천은 지역적으로. 하자는 구호입니다.

지구를 한 촌락으로 보는 Global Village란 말은 이미 오래된 용어입니다만, 세계 인구 66억을 한 촌락에 살고 있는 백 명으로 축소시켜 본다면 이런 결과가 나옵니다. 인종별로 본다면 57명의 아시아인과 21명의 유럽사람 14명의 북미와 남미사람 8명의 아프리카사람이 있고, 성별로 본다면 51명의 여성과 49명의 남성이 있고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70명의 비기독교인과 30명의 기독교인이 살고 있고, 경제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 마을 의 절반의 부는 단 6명이 소유하고 있는데, 이 6명은 모두 북미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20명은 집이 없이 살고 있고, 70명의 마을 사람들은 글을 읽을 줄 모르고 50명은 영양실조에 걸려 있고 대학졸업장은 오직 1명만이 갖고 있습니다.

저는 이 결과를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해 본다면 현재의 남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하는 결론은 매우 쉽게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마을에서 살아가는 이웃 50명이 제대로 먹지 못해 영양실조에 걸려 얼굴이 노랗게 변해 있고, 배를 움켜지고 먹을 것을 찾기 위해 마을 주변을 헤매고 있다면 나머지 50명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합니다. 음식이 맛이 없다는 얘기를 할 수가 없고, 살을 뺀다고 헬스클럽을 다니는 것은 정당한 행동이 될 수가 없습니다. 마을 사람 70명이 글을 읽지 못하고 있다면 나머지 30명이 해야 할 일은 학교를 세우고 교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 그 마을에 유일하게 대학졸업증을 소유한 한 사람이 있다면 그가 나아갈 길은 너무나도 분명합니다. 그 사람은 그 학교의 교장이 될 것이고 마을의 운명을 결정할 지도자의 위치를 감당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 남한 사람들이 이러한 지구가족 생각을 회복하고 자신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면 각자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의 주어진 생애를 다 소진한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행동이고 어리석은 삶인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제가 아는 한 세계 어느 나라에도 남한처럼 도시마다 술집과 모텔 음식점으로 가득 찬 나라는 없습니다. 지금 우리 남한이 세계에서 1,2위를 다투는 좋지 못한 것들이 무엇입니까? 부동산 가격의 급상승율, 이혼율, 자살률, 교통사고율, 대학과 고등학교 입학규정 변경율, 음주소비량, 자동차휘발유소비량, 거리의 간판과 즐비한 현수막 등등.

우리는 인도네시아에서 일어난 쓰나미 사건을 기억하고 있고, 지구온난화로 인한 재해를 계속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올해 아카데미상을 받은 불편한 진실이란 영화가 있다. 앨 고아 전부통령이 주연하여 지구 환경문제를 다룬 영화이다. 전 일전에 작년 가을 미국 방문시에 이 영화가 당시 미국 안에 히트하는 영화였기에 난 남한서도 당연히 영화관에서 상영이 되리라 생각하고 이제나저제나 기다렸는데, 나중에 물어보니 잠깐 나왔다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남한에서는 흥행이 전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 우리는 돈 만드는 일에만 정신이 팔려 이 자연재해의 위기를 귀담아 듣지 않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원숭이를 잡을 때 쓰는 방법이 손만 겨우 들어가는 바구니 안에 바나나를 넣어 놓습니다. 그러면 원숭이가 이 바나나를 꺼내기 위해 손을 집어넣습니다. 그러나 뭔가를 잡고 있어 주먹을 쥐고 있는 손은 그 구멍을 빠져나오지를 못합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잡기 위해 접근합니다. 움켜잡은 물건을 놓고 손을 펴면 금방 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원숭이는 그 주먹을 펴지 못해 잡히고 맙니다. 인간들은 원숭이의 어리석음을 비웃습니다. 그런데 지금 자연의 재해라는 올가미가 인류 전체의 목숨을 노리며 한발한발 접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편리와 이익이라는 물건을 손에 움켜쥐고 있고 놓을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 올가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겨울이 점점 짧아지고 있고, 벛꽃이 피는 시기가 점점 앞당겨져 가고 있고, 대나무가 점점 북상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 언론은 초등학생 어린이들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 받을 정도로 수은에 노출되어 있다는 국립환경과학원의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독일 어린의 3.6배, 일본의 두 배. 특히 이 수은 중독은 뇌와 신경계에 손상을 주어 어린이에게 치명적이라고 하는 얘기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오염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말하지 않고 있고, 단지 어패류에 고농도로 농축되어 있다는 얘기만 하고 있다. 왜 이전에는 없었던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그리고 어패류는 무엇을 먹고 사는가? 라고 판단했을 때, 우리는 크게 도시문명화와 아파트건설이란 이름으로 마구 파헤쳐지고 사용되는 시멘트로 인한 수은 배출과 농약과 화학비료로 인한 수질오염이 결국은 육지에서 흘러나오는 영양분을 먹고 사는 어패류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쉽게 추출해낼 수 있다. 이 가운데는 이렇게 아름다운 나무들을 베어내고 산을 깎고 골프장을 만들고 잔디를 심고 잔디 관리를 위해 뿌리는 농약과 화학비료가 있다.

나무가 많은 산은 보기에 아름다워 인간의 감정을 순화시킬 뿐만 아니라, 나무들이 품어내는 공기와 물의 정화작용은 돈으로 환산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 산을 허물어 하루 불과 3백명을 위한 즐거움의 장소로 사용하겠다는 일은 너무나도 분명한 어리석은 원숭이의 짓거리입니다.

[들에 피는 백합화를 보라]

우리 주님은 이렇게 산에 모인 청중들을 바라보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도 들꽃 한송이 만큼 차려입지 못하였다.’ 솔로몬의 영광이란 무엇입니까? 인간의 힘으로 만들어진 성전의 웅대함이요 갖가지 보석들로 장식된 궁정의 찬란함을 말합니다. 예수께서는 그러한 인위적인 아름다움보다 자연 속에 이름 없이 피는 들꽃이 더 아름답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들꽃향린교인들 맞지요?

이제 21세기에 이르러 우리의 생명력을 짓누르는 힘은 일본제국주의가 아닌, 소득증대와 경제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초국적 자본 세력입니다. 이를 이길 수 있는 힘은 민중들의 연대의 힘 밖에는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공 시위라는 외로운 자리를 56일 동안 지켜온 인천녹색연합의 환경운동가 신정은씨와 두 달 넘어 이 자리를 지켜오고 있는 윤인중목사님 그리고 이분들과 함께 연대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기도와 힘을 기억해야 합니다.

동시에 오늘 삼일절 계양산 산상예배에 참여한 우리들은 또 다른 계양산에서 또 다른 윤인중목사가 되기를 다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를 방치하면 결국은 우리의 자녀들이 모두 희생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한반도를 지배하는 죽음의 힘]

왜 이렇게 반생명적인 죽음의 문화들이 사회 안에 팽배하게 되었을까? 물론 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한반도의 남과 북의 갈림과 대립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쉽게 생각하면 됩니다. 한반도는 지난 수천년동안 하나의 생명단위였습니다. 남쪽에는 농산물이 풍부하고 북쪽은 광산물이 풍부합니다. 땅의 소산물뿐만이 아니라 사람에게도 남과 북의 특징이 있어 남남북녀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한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한 부부라는 생명체를 이룸에 있어서도 남과 북은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하나의 생명단위였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게 일제의 강제지배 이후 미소 강대국의 외세의 힘으로 허리가 잘렸습니다. 한반도는 하나의 생명체입니다. 한 인간의 허리를 동여매어 피가 통하지 않게 되면 이 인간은 결국 발버둥을 치다가 죽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이 산을 허물어 골프장을 만들겠다는 재벌들의 머리는 허리가 잘린 신체 이상자 정신이상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삼일만세정신은 남과 북이 하나 되는 평화정신이요 모든 만물이 하느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원래의 모습을 회복하는 생명운동입니다. 우리의 남은 삶을 통해 이 평화와 생명정신을 보듬어가는 향린인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