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나 일어나 가자!


출애굽기 4, 10- 12 ; 마르코 14, 32- 42

이 훈 호(청신)/ 김 종 완(희청)

저를 쓰셔서 이 자리에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 예수님은 지금까지 본인이 갖고 있던 모든 것들을 잃어버리고 저주받은 사람으로 불리기 직전에 보이는 공포와 번민 그리고 외로움까지 볼 수 있는 구절입니다. 나에게 또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순간들은 항상 기다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럴 때 우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남을 해치기도 하고 이제까지 본인이 쌓아왔던 모든 것을 뒤집어버리기도 합니다. 오늘 저에게 이 말씀은 다른 관점에서 제가 최근에 갖고 있던 의문의 열쇠가 담긴 이야기입니다.

저는 사회활동과 교회활동을 하시는 어머니의 영향을 받으면서 기장교단에 속한 지방교회를 다녔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신앙의 의미를 발견한 것은 미래에 대한 고민 하던 고등학생 시절입니다. 어떻게 살까? 무엇을 전공하고 무슨 일을 할까? 하고 고민하던 저는 ‘공부해서 남 줘라’ 하시던 청소년부 목사님의 말씀과 빈민선교에 관한 ‘새벽을 깨우리로다’ 같은 옛날 책들을 읽으면서, 또 삶 속에서 조용히 신앙인의 모습을 보이셨던 국어 선생님, 이런 경험 을 통해 신앙과 진로를 연관지어 생각하게 되었고, 으로 가난하기 때문에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의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향린교회를 안 것은 국악 찬양 때문이었습니다. 풍물패 활동을 하면서 우리소리로 하는 찬양에 관심을 가졌고 홈페이지에서 만났습니다. 홈페이지 여기저기를 보면서 사회참여가 활발한 교회의 모습과 안병무 교수님에 대한 내용을 보면서 향린교회를 어렴풋이 알았습니다.
졸업을 하면서 가정의학과를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또 이제까지의 ‘하느님의 역사’나 ‘예수님의 삶’을 나누는 것에 갈증을 느꼈기 때문에 서울로 직장을 정하고 그 직장이 향린교회 옆에 있다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국악 찬양에 감동하면서고 어른들의 열린 모습에 놀라고, 능동적으로 보였던 청년들의 모습에 꿈을 가졌습니다. 분주하고 불규칙한 일상이라는 변명과 결국 사는 것이 그렇고 그렇다는 생각에, 삶의 본보기로 생각했던 예수님의 모습이 실제로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 가고, 점점 그 삶에서 멀어지는 나를 보면서 처음 마음먹었던 꿈과 생활이 흐려졌습니다. 머릿속 깊은 곳에 위대한 예수님과 하나님의 나라의 역사는 집어넣고 헛도는 느낌만 갖은 채 지냈습니다.

올해 초 저에게는 몇 가지 변화가 있었습니다. 불규칙한 일상이 조금 자리를 잡았고 제가 선택한 가정의학과에 대한 좋은 점들이 하나씩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보다 더 큰 변화는 형이 결혼 애기를 꺼내면서 더 이상 교회를 다니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형과 대화를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항상 서로 믿는 그런 관계였었고 서울 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형과 함께 지냈었기 때문에 형의 이야기는 저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형은 저보다 순수해서인지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순수하게 믿음 생활을 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형은 군대를 갔다 온 이후 본인에게 있었던 장남으로서의 중압감, 남들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되어야 된다는 생각들, 이런 생각들에 밑바탕에 깔린 교회의 율법적인 잣대 같은 짐을 벗어 버리려 했었고 그러는 중에 자신에게 이중적인 자아를 강요하는 종교를 버린 것 같습니다. 삶의 과정이 다르고 경험이 달랐고 형의 아픔을 이해하는 부분도 있었고 형이 돌아올 것을 믿었기 때문에 형에게 강요할 수 없었습니다. 형의 얘기를 듣고 ‘예수님이 사람들을 그 수많은 율법들에서 구해내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가게 한 것들에 대해서 그동안 왜 형과 얘기하지 못했던 가를 안타깝게 생각하였습니다. 가장 가깝고 또 평생 함께 생각을 나누며 지내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한 형과도 신앙을 나누지 못하고, 머릿속에 앎으로 멈춰있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저는 겨우 예배만 그것도 늦게 나와서 끝나자마자 가버리는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청년신도회 사람들과 마주쳤습니다. 그때 무슨 속셈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뜸 ‘너 늦잠 자는거지?’ 물었습니다. 저는 그 순간 질문을 던졌던 분이 자주 말하는 것처럼 ‘제 스스로가 벗겨지는 것을 느끼면서’ ‘모닝콜을 해주겠다는 말에’ 어쩌면 늦잠의 문제는 간단한 문제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내 머릿속의 앎이 어떻게 신앙이 되고 삶이 되는가의 문제와 연결지어 볼 때, 현재 내 신앙생활 상태는 단순한 나의 ‘늦잠’의 문제 일 수도 있지만 왜 난 그 시간에 머리는 가야하는 것을 알면서도 ‘늦잠’을 자는가라는 문제와 맞닿아 있었습니다.

이런 고민을 갖고 지내던 중 기독청년의료인회 총회 자리에서 만난 한 목사님의 말씀에서 대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생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던 중에 예수님은 정치적, 경제적, 문화, 사회 여러 분야에 머물러 있지 않고 ‘영적인 수렴’을 하신 분이라는 말씀을 했습니다. 저는 이 말에서 예수님이 그렇게 활동 할 수 있는 것에 근본에는, 예수님이 사람은 사람인데 영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영적인 사람으로서 영성 생활을 하신 분임을 다시, 또 새롭게 알게 됐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도 예수님은 본인의 절대적인 전환의 순간, 호산나 하면 맞던 사람들에게 이제 죄인, 쓰레기, 무능력한자, 외톨이 도저히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는 존재로 변하는 순간에 하나님께 대화하는 기도하는 모습으로 있습니다. 반대로 제자들은 ‘자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피곤해서였을 것입니다. 아니며 전날 늦게까지 중요한 이야기를 해서였을 수 도 있고 오랜만에 예수님과 만찬이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제자들의 모습이 저 같고 우리와 같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이 죽음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도 미래의 자기 자리를 놓고 다툰 내용을 봐서는 아직 영의 사람이 아니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제자들도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능력을 행하면서 마치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까지 저의 모습도 본문속 제자들처럼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에서 위대해 보이고 멋있고 나도 따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고 그러면서도 주변 상황의 변화에 따라서 나의 편함으로 고민이 멈춰버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까지 예수님의 무용담을 읽고 출애굽의 무용담을 읽는 대신 그 속에 있는 무엇인가를 읽기 위해서 노력하고 끊임없이 영적인 수련을 함께 하여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향린을 찾는 청년들은 저마다 서로 다른 고민과 경험을 갖기 때문에 옵니다. 어떻게 보면 이런 고민은 ‘ 어떻게 믿고, 어떻게 살까’하는 고민일 것 같습니다. 이런 고민들에 대한 한 단계 넘겨주는 것은 어른들의 한 말씀에서 목사님의 설교에서도 얻을 수 있지만 이런 고민과 경험 그 자체를 깊게 만들어주는 것은 같은 경험을 하는 사람들과의 나눔일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청신모임에서 또 향린에서 어떻게 믿고 , 어떻게 살까를 나누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한다면 지금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나누면 좋겠습니다. 향린은 세대 간의 대화가 그래도 자유롭고 많다고 생각합니다. 어른들이 젊은이들을 인정해주시는 모습에 항상 놀랍니다. 하지만 우리 안에 고민과 문제들에 대한 나눔이, 그리고 근본적으로 자신의 삶과 경험에 대한 나눔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2년 만에 청신 수련회를 갔습니다. 이제 좀 여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나눔에 궁핍했고, 또 수련회를 다녀온 후에 서로에 대한 앎이 부러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수련회에서 향린 2세대에 대한 얘기를 들으면서 또 각자의 삶의 경험을 들으면서 감동을 받았고 내가 이제까지 다가가지 않았구나 생각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나눔을 할 때 겪게 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서로 같은 말을 하면서 다르다고 하는 경우도 있고 어떤 사람은 얘기만하고 듣지 않고 또 어떤 사람은 듣기는 하지만 얘기해주지 않습니다. 청신 회장님 말대로 각자 스스로를 보이는 분위기가 되어야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스스로를 보이려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향린도 청신도 바다 같은 곳이 되면 좋겠습니다. 물고기가 강을 타고 흘러내려오다 바다에 와서는 풍부한 배움과 채움의 과정을 거쳐서 다시 강을 타고 올라가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바다가 되면 좋겠습니다. 청년의 시기는 유난히도 이동이 많습니다. 정말 잠시, 또 단기간 오는 사람들 모두가 이곳을 거쳐서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갖고 있던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억눌린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생각은 그 내용은 조금씩 달라졌지만 하나님께서는 꾸준히 나에게 그 길을 가르키며 살게 하신 것 같습니다. 본문 말씀처럼 내 생각을 완전히 뒤집을 전환의 때, 극단으로 치달을 수 있는 그 때가 올 수 있음을 두렵게 기다리고 있지만 이제까지 저를 인도하신 모습에 용기를 갖고 있습니다.

솔직히 하늘 뜻 펴기를 준비하면서 본문 말씀의 마지막 부분의 말씀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2번째까지는 일어나서 정신을 차리고 있으라고 하시던 분이 갑자기 그만하면 넉넉하다며 가자고 하십니다. 이 모습을 머릿 속으로 상상해 보면 예수님의 얼굴에는 전환점에 대한 답을 얻고 결연함이 있었는지 ,아니면 제자들의 부족한 모습을 보면서도 평안함이 있었을지 궁금합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에는 따뜻함이 느껴집니다. 예수님은 이제 앞으로 있을 일들을 모르고 자고 있던 저에게도 다 되었으니까 가자고 하십니다.


희년청년회 김종완집사

청년 주일 설교를 맡은 희년 청년회 김종완 집사입니다. 먼저 제 소개를 잠깐 드리겠습니다. 저는 1998년 7월 향린교회에 처음 나왔으니까 올해로 10년이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동네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지만 대학에 가서 맑스주의와 학생운동을 접하면서 사회로부터 유리된, 아니 오히려 반동적이기까지 한 교회의 모습에 대해 회의가 들었습니다. 그리고 군 복무 중에 국가주의와 반공이념에 결합한 기독교의 모습을 보고 신앙을 버렸습니다. 제대 후 교회를 다니지 않던 저는 PC통신 동호회를 통해 인민지 집사를 만났는데요, 밤마다 채팅 창을 열어놓고 얘기를 하던 중 교회 얘기가 나왔고 제가 이런저런 이유로 교회를 나가지 않는다고 하자 인민지 집사는 본인도 그런 비슷한 고민을 한 적이 있다고 하면서 향린교회를 소개해 주면서 같이 다닐 것을 권하였습니다. 향린교회에 대한 별다른 기대는 없었지만 연애를 막 시작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그냥 한번 따라가 봤습니다. 하지만 제가 본 향린교회는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지금 제가 서 있는 강단의 높이가 낮은 것이 일단 맘에 들었고요 - 공사하기 전에는 더 낮았으니까요 - 홍근수 목사님의 설교는 제가 지금까지 생각했던 기독교에 대한 불신을 깨버릴 수 있었습니다. 몇 달 정도 다녀보자고 왔다가 어느덧 향린교회에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집사 직분도 맡으면서 10년째 향린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서울교육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제가 워낙 젊어보여서 제 외모만 보고 제가 대학생이라고 하면 그냥 그런가보다 하시겠지요. 저는 원래 공대를 졸업하고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에서 엔지니어로 4년 근무했습니다. 신제품 개발, 양산 제품 수율 향상을 번갈아 가면서 하루하루 정신없이 살아가던 어느 휴일 아침, 아무런 보람도 없이 돈만 벌기 위해 살아가는 현재의 삶에 대한 회의가 들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직업을 통해 보람을 느끼고 있냐는 제 질문에 아내 인민지 집사는 자신있게 그렇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참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제 직장 동료들 어느 누구도 - 몇몇 잘나가는 임원들 빼고는 - 회사생활에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되기로 결심 하여 회사를 그만두고 수능 시험을 보고 서울교대 05학번으로 입학했습니다. 선생님이 되기 위해 2년간 공부를 마쳤고 2년 더 공부하여 2009년부터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기 위해 준비 중입니다. 제가 직장을 그만두고 다시 공부를 하면서 느낀 것은 직업에 있어서 돈이 전부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일을 통한 보람이고 개인적인 삶과 사회적인 삶이 얼마나 조화를 이룰 수 있느냐이고 앞으로 선생님을 하면서 그런 삶을 만들어 가려고 합니다.

오늘 제가 이 자리에 선 이유는 청년주일이라 희청에서 누군가 평신도 설교를 하긴 해야겠는데 하겠다는 분이 없어서였습니다. 지난 주일에 누가 해야 할지 회의를 하는데 하겠다는 분은 없고 본인이 하는 것은 부담스러워 하고 나 말고 누군가 다른 사람이 했으면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래서 그냥 제가 하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니 평신도 설교를 위해 향린 강단에 한번 올라오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평신도 목회를 지향한다는 향린교회에서 평신도 설교 한번 하는데 이렇게 지원자가 없어서야 어떻게 평신도 목회가 가능할 것인가? 물론 저도 말은 이렇게 하고 있지만 일주일 내내 설교 준비로 스트레스를 받았고 강단에 서 있는 지금도 무척 떨립니다. 하지만 ‘어서 가거라. 네가 입을 열 때 내가 도와 네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가르쳐주리라’는 오늘의 본문 말씀을 믿고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평신도 설교,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선 것은 제가 특별히 성경을 잘 알아서도 아니고 심오한 영성을 지니고 있어서도 아니고 말을 잘 해서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자리에 선 이유는 ‘아 저런 사람이 저런 수준으로 하는 평신도 설교라면 나도 할 수 있겠다’라는 용기와 희망을 여러분에게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하느님의 부름에 온갖 핑계를 대며 안하겠다고 빼는 모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평신도 설교자를 뽑을 때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들이 저를 믿지 않으면 어떻게 합니까? 제가 말주변이 없어서요.. 모세는 끝까지 못하겠다고 안하려고 핑계를 대고 하느님은 그런 그를 끝까지 설득합니다. 현재 평신도 설교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평신도 설교를 하는 입장에서는 평신도 설교를 하는 것에 많은 부담을 느끼기 때문에 하겠다는 지원자가 많지 않다는 문제점입니다. 또 설교를 듣는 입장에서는 평신도 설교가 전문 목회자의 설교에 비해 설교의 내용과 질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저는 이 두 가지 문제가 나타나는 것은 우리의 예배 의식에서 설교가 지나치게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과 같이 예배에서 설교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일까요?’ ‘설교를 잘하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요?’ 물론 좋은 설교자의 좋은 설교는 듣는 이에게 커다란 영적인 감흥을 줍니다. 조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그럴 때가 많이 있습니다. 소위 말해 ‘은혜’받는다고 하지요. 하지만 그 ‘영적 감흥’이, 그 ‘은혜’가 얼마나 가고 있습니까? 평생 기억에 남는 설교가 몇 개나 있을까요? 아니 한주일 내내 고민하게 하고 생각하게 하는 설교는 몇 개나 있을까요? 거의 대부분 예배를 마치면서 목사님의 은혜로운 설교는 성가대의 송영 찬송과 함께 휴지통에 1차 삭제되고 집에 돌아가는 차 속에서 휴지통 비우기를 통해 우리의 기억에서 완전 삭제해버리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저는 예전부터 설교라는 예배 형식에 대해 한가지 의문이 있었습니다. 왜 설교는 목사님 혼자만 떠들고 듣는 사람들의 질문을 받지 않을까? 어디에 가서 강의나 강연을 들어도 중간 중간에 또는 끝나고 나면 궁금한 것들에 대한 질문을 받는데 왜 설교에서는 그런 과정이 없는 것일까? 그렇다고 제가 설교 형식에 질의응답을 추가 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현재의 설교 형식은 지나치게 일방향적인 소통의 형식은 아닌가? 상호 양방향적인 소통의 형식으로서의 설교의 가능성은 없을까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현재의 예배 형식, 설교 방식은 전문적인 목회자에게 최적화되어 있는 일방향적인 선포이기 때문에 우리가 평신도 목회의 한 부분으로 평신도 설교를 한다고 할 때 바로 이런 형식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예배에 있어서 설교가 차지하고 있는 절대적인 권위에서 탈피하고 평신도 설교에 적합한 예배 형식을 발전시킬 때 좀 더 많은 평신도들이 자유롭게 강단에 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조금 더 작은 규모의 모임일 때 전문적인 목회자의 권위는 줄이고 평신도의 참여를 늘릴 수 있으며 일방향적인 소통을 벗어나 양방향적인 소통의 구조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규모가 크면 그 큰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 관료주의가 도입될 수밖에 없고 전문가 중심의, 능력 중심의 시스템 관리가 필요합니다. 우리 사회도 그렇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교회가 대형교회를 지양하고 일정 규모의 교인 수 이상이 되면 분가선교를 하기로 결의한 것은 바로 이런 문제점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교회는 생활공동체교회, 독립교회, 평신도교회, 입체적 선교 교회라는 교회 창립 정신을 실현하기 위해 여러 각도에서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제가 하고 있는 평신도 설교나 올해부터 하려는 소모임 공동체 역시 그 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정부분 성과를 거둔 부분도 있고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현실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분가 선교를 통해 교회의 규모를 작게 나누어 실질적인 생활공동체를 만드는 것을 차분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 바로 지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오늘 희년 청년회와 청년신도회에서 평신도 설교를 맡으면서 각자 성서 본문을 골랐는데 신기하게도 잘 맞아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저는 하느님의 부름 앞에서 주저하는 모세의 모습을 골랐고 이훈호 교우는 이 잔을 나에게서 거두어주소서.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라고 게쎄마니에서 기도드리는 예수님의 모습을 골랐습니다. 제가 고른 모세의 모습이 바로 향린의 현재 모습이라면 이훈호 교우가 고른 예수님의 모습은 우리 향린의 소망과 미래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모세는 끝까지 핑계를 대며 주저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끝내 모세를 세우십니다. 우리도 끝까지 핑계를 대며 주저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향린교회의 평신도 목회자로 세워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어짜피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것이라면 우리도 모세처럼 네거티브하게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포지티브하게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요?

오늘은 1년에 한번 있는 청년 주일입니다. 하지만 향린교회에서 청년주일은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향린교회 모든 교인이 청년이기 때문입니다. 물리적 나이에 관계없이 청년보다 더 청년다운 어르신들이 모여 있는 곳이 바로 우리 향린교회입니다. 그래서 내년 청년주일에는 장로님들 중에서 아니면 장년여신도회나 장년여신도회에서 한분 나오셔서 진짜 청년의 모습을 한번 보여주시는 것은 어떨까 싶습니다. 아마 청년의 진취적인 기상과 열린 생각만큼은 오늘 이 자리에 나온 저나 이훈호 교우보다 훨씬 뛰어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향린 교우들, 아니 청년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향린의 모든 교우들은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라고 깨어 기도하고 실천하셨던 예수님의 삶을 따라 살아가기를 기원합니다. 다 같이 오늘의 말씀을 생각하며 침묵으로 묵상하시겠습니다.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