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역사(2) 야훼께 잡힌 사람들
암 7:14-17; 행 4: 23-31

[6월의 기억]

무더운 여름의 첫 관문을 여는 6월의 첫 주일입니다. 나이든 세대와 젊은 세대 간에 여러 차이가 있지만, 6월을 기억하는 차이도 그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대체로 40대 후반 이후의 나이든 분들은 6월하면 떠오르는 것이 625 한국전쟁입니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철모르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무찌르자 빨갱이 쳐부수자 공산당’의 살인 구호와 함께 자라난 저와 같은 50대 이후의 세대들에게 있어 6월하면 떠오른 것은 625입니다. 그러나 젊은 세대들 특히 386세대 그 이하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6월하면 떠오르는 것은 아마 610 민주항쟁일 것입니다.

1987년 1월의 박종철열사의 중앙정보부에서의 고문살해 사건 폭로와 더불어 본격적인 민주항쟁의 불이 붙기 시작하여 5월 27일 향린교회에서의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결성식이 이루어졌고 그리고 이한열열사의 최류탄에 의한 피살사건과 그 장례식으로 정점을 이룬 6월 민주항쟁은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26년간의 군부독재 세력을 불완전하나마 해체하고 대통령 직접선거라는 형식적 민주주의 제도를 다시금 시작하도록 한 전환점이었습니다.

오늘 오후에는 이러한 역사적인 일이 바로 이 자리에서 있었던 일을 기억하기 위해 동판제막식과 기념예배를 드리게 되는데 오늘 오셔서 설교하실 오충일목사님은 당시 국민운동본부 집행위원장을 역임하셨습니다. 이 국민운동본부에서 발표한 성명서에 이런 글귀가 있습니다. “군부독재를 물리치고 민주정부를 수립합시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의 기본 권리인 신체의 자유,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사상의 자유를 누리고 건강하고 기쁘게 일하고 자녀를 교육하고 문화적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생존권이 보장된 사회를 만듭시다. 함께 누릴 빛나는 새 세상이 목전에 임박했습니다.”

그 이후 6월 민주항쟁이 일어났고 대통령직접선거가 실시되었습니다. 그러나 양김씨의 고집으로 결국 군인인 노태우씨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말아 민주화 투쟁의 색깔이 잠시 바래긴 했지만 이후 양 김씨와 현 노무현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적어도 민주화의 가시적 결과는 계속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과연 군부독재를 물리치고 민주정부는 수립이 되었지만, 그리고 신체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는 얻었지만, 정말 우리가 건강하고 기쁘게 일하는 새 세상이 왔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입니다.

우리 국민 모두가 느꼈던 당시의 역사의 생명력은 어디로 갔는가? 민족의 민주와 통일의 희망의 제단 앞에 뿌려진 수많은 희생의 피의 대가는 이루어지고 있는가? 물론 긍정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역동적인 시민사회의 민주적 제도화를 통한 정치질서는 아시아에서는 가장 앞선다고 하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빈부의 양극화현상으로 인한 상대적인 박탈감은 더욱 심화되어 가고 있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점점 높아만 가고 있습니다. UN 인권위원회가 불법으로 규정한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그 칼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남한 사회의 근본 문제-군사 문화]

저는 오늘 남한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보다 쉽게 공감할 수 있도록 정치적 측면에서가 아니라 문화적 측면에서 접근하고 싶습니다. 한 달 전 삼성의 1년차 회사원이 공개 사직서를 삼성 홈페이지에 띄웠고 그 글이 인터넷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저는 그가 고발하는 대한민국이 세계에 자랑하는 삼성기업의 문제야 말로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내부 문제라고 보고 있습니다.

[저는 1년을 간신히 채우고, 그토록 사랑한다고 외치던 회사를 떠나고자 합니다. 다른 직장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공부를 할 계획도 없지만 저에게는 퇴사가 어쩔 수 없는 선택입니다. 회사에 들어오고 나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참 많았습니다. 술들은 왜들 그렇게 드시는지, 결재는 왜 법인카드로 하시는지, 전부다 가기 싫다는 회식은 누가 좋아서 그렇게 하는 것인지, 정말 최선을 다해서 바쁘게 일을 하고 일과 후에 자기 계발하면 될텐데, 왜 야근을 생각해놓고 천천히 일을 하는지, 실력이 먼저인지 인간관계가 먼저인지 이런 질문조차 이 회사에서는 왜 의미가 없어지는지. 상사라는 회사가 살아남으려면 도대체, 문화는 유연하고 개방적이고 창의와 혁신이 넘치고 수평적이어야 하며, 제도는 실력과 실적만을 평가하는 냉정한 평가 보상 제도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사람들은 뒤쳐질까 나태해질까 두려워 미친 듯이 일을 하고, 공부를 하고, 술은 무슨 술인가 컨디션을 조절하면서 철저하게 자기관리를 하더라도, 도대체 이렇게 해도 5년 뒤에 내 자리가 어떻게 될지 10년 뒤에 이 회사가 어떻게 될지 고민에, 걱정에 잠을 설쳐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도대체 이 회사는 무얼 믿고 이렇게 천천히 변화하고 있는지 어떻게 이 회사가 돈을 벌고 유지가 되고 있는지 저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중략)

개구리를 냄비에 집어넣고 물을 서서히 끓이면 개구리는 적응하고, 변화한답시고, 체온을 서서히 올리며 유영하다가 어느 순간 삶아져서 배를 뒤집고 죽어버리게 됩니다. 냄비를 뛰쳐나가는 변혁이 필요한 시기에 그때그때의 상황을 때우고 넘어가는 변화를 일삼으면서 스스로에게는 자신이 대단한 변혁을 하고 있는 것처럼 위안을 삼는다면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입니다. (중략)

월급쟁이 근성을 버려라, 월급쟁이 근성을 버려라 하시는데. 월급쟁이가 되어야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구조와 제도를 만들어놓고 어떻게 월급쟁이가 아니기를 기대한단 말입니까. 상사인이 되고 싶어 들어왔는데 회사원이 되어갑니다. (중략)

조직에 순응하는 한명의 회사원을 길러내는 삼성의 조직문화에 더 이상 적응하지 못하고 떠나가는 한 젊은이가 외치는 이 절규는 바로 오늘의 젊은이들이 남한 사회를 향한 절규라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제가 보는 이 남한사회는 조직문화의 사회이고 이 조직문화는 어디에서 오는가 하면 군대문화에서 오고 이 군대조직문화는 바로 남북분단체제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젊은이는 아직까지 그런 역사현실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를 괴롭히고 그리고 삼성과 그리고 이 남한을 결국 뒤처지게 만드는 것은 분단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 경제 운운하며 남북분단을 고착하려는 보수정치인들을 보면 생각이 짧아도 너무 짧다고 보는 것입니다.

[남한 교회의 문제-돈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한신대 김종엽교수는 87년 이후 지난 20년의 역사를 간추려 말하기를 우리 사회에는 ‘민주주의의 확장과 심화’와 ‘경제적 자유화’라는 두 갈래 흐름이 병존하며 경합해 왔다고 말합니다.(<창작과 비평. 2007년 여름호) 그러나 2007년 지금에 와서는 이 두 흐름가운데 경제적 자유화(신자유주의)가 확실한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소위 말하는 한미 FTA가 이를 잘 말해주고 있고 차기 대통령은 경제 대통령이어야 한다고 하는 소리가 매우 높은 것을 보아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돈이 많아지면 이를 지켜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보수화되듯이 남한 사회 또한 지금까지의 진보적인 흐름에서 급격하게 보수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기독교계만 해도 교회성장을 지켜내려는 움직임이 많아 전도폭발 혹은 총동원주일 세미나에는 자리가 차고 넘치지만, 민족통일과 민주적 사회라는 진보적 생각을 갖는 모임에 참여하는 목사님들의 숫자는 극히 소수입니다. 향린교회와 제가 몸담고 있는 기장교단만 해도 그러합니다. 20년 전 6월 민주항쟁의 주역이 기독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그중에서도 기장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하는 것은 거의 누구나가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60년대로부터 70, 80년대에 이르기까지 장준하, 김재준, 문익환, 안병무, 서남동, 문동환목사를 비롯한 수많은 기장의 목사와 신도 그리고 청년들이 이러한 반독재 민주화 운동의 최전선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3천 교회 운동을 비롯한 대형교회 성장론이 기장총회나 신학교의 전반적인 흐름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물론 교회의 성장 필요합니다. 그러나 무엇을 위해 성장해야 한다고 하는 분명한 역사인식이 없는 성장은 암일 따름입니다.

최근에 한 개신교 기관에서 조사한 ‘한국사회 현안 및 차기 대통령 선거에 대한 목회자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차기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역할’로 목회자의 절반 이상이 ‘경제’라고 응답했고 3분지 일 이상이 ‘대통령으로 주력해야 할 현안’으로 ‘일자리 창출’이라고 말했다. 이는 성서의 말씀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지 않는 세상 사람의 결과와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먹고사는 문제는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영적 지도자라고 말하는 목사들의 인식조차 이렇다면 굳이 성서를 굳이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믿고 가르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했으니 떡의 문제는 이미 목사가 말하지 않아도 세상 사람이 다 하는 얘기이니까 목사는 좀 더 도덕적 영적인 면을 언급함이 옳지 않은가 하는 것이 저의 주장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갈릴래아의 가난한 자들과 더불어 하느님 나라 운동을 펼치신 이유가 단지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을 향해 일자리 창출을 해달라는 그런 것은 아니었다고 하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얘기가 아닙니까? 그런데 오늘날 대부분의 남한의 교회에서 울려 퍼지는 하느님의 말씀은 다 사사로운 삶의 물질적 풍요로움을 보장하는 말씀으로 둔갑되어 버렸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신을 부정하고 물질을 인간사회의 기본토대로 보는 공산주의적인 사고가 아닙니까? 자기를 따르지 않으면 모두 사탄이 되는 대형종교제국을 세우고 이 제국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예수천당 신유축복 말세구원 보혈의 피만을 외치는 이 종교야 말로 일인 독재의 종교가 아닌가요?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종교 우상을 거부하고 성전의 벽을 허물라고 외쳤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러한 예수가 하나의 우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입으로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외치지만 실상에 있어서는 돈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구호로 변질되어 버렸습니다.

[종교의 생명력]

종교의 생명력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왜 교회를 나오고 왜 성서를 하느님의 살아있는 말씀이라고 고백하고 왜 인간의 몸으로 태어난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로 그리스도로 고백하지요? 그것은 종교만이 갖는 초월적 혁명성에 있습니다. 현실 세계의 세속적 가치를 하느님 나라의 가치로 바꾸어가는 초월적 혁명성과 성령의 창조적인 열정이야 말로 기독교의 특성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약성서에 나오는 예언자들의 외침이고 이는 다른 종교의 경전과 확연히 구별되는 점입니다. 신약성서 사도행전에 나오는 성령의 역사는 다른 종교에서 발견되는 신내림과는 다른 것입니다. 오순절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여명의 예수의 제자들이 경험한 성령 체험은 거리에로 나아가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죄를 깨닫게 만들었고 끝내는 자신들의 재산을 가난한 이들과 함께 나누도록 만들었습니다. 나눔을 통한 사회적 정의의 실현 이것이 예루살렘 초대교회가 이룬 공동체의 모습이었습니다. 바로 여기에 성서의 고유한 외침이 있고 기독교의 생명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남한 교회는 그러한 예언자적 정신을 거의 상실해 버린 상태입니다. 그냥 3만불 소득의 구호에 묻혀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자살율은 OECD 국가 중 최고입니다. 흔히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경제적인 이유라고 생각하고 또 언론들은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가난이 자살의 이유라면 지금보다 더 가난했던 시절 과거 50, 60년대 정말 끼니조차 제대로 이어가기 힘든 때에 자살율은 더 높아야 하고 부자나라보다 가난한 나라일수록 자살율이 더 높아야 합니다. 그러나 실제 자살율은 부자나라일수록 더 높습니다. 그것은 자살이 경제적인 이유가 아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 무슨 이유입니까? 그것은 종교적인 이유입니다. 가난이라는 단 하나의 이류로 인간이 인간으로 취급받지 못하고 사회와 이웃들로부터 소외당해 인간의 자존감을 상실할 때 사람은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권력과 부의 최고를 성공으로 가르치고 넉넉한 소유를 행복으로 가르치면 자살하는 사람은 점점 더 많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웃과 더불어 나눌 줄 아는 사람이야 말로 성공한 사람이요 사회의 어두운 곳에서 섬길 줄 아는 사람이야 말로 진정 행복한 사람이라는 성서의 공동체적인 가치를 회복해야 할 때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보적 신앙인이 갖추어야 할 중요한 신앙의 덕목입니다. 6월 민주항쟁은 5월의 광주항쟁과 마찬가지로 너와 나가 하나라고 하는 공동체적인 정신이 그 저변에 깔려 있었고 내가 곧 역사변혁의 주체자라고 하는 인식이 분명했습니다.

요즘 언론과 대선주자들이 하는 행태와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을 바라보면서 성숙한 민주시민이 되려면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을 갖습니다. 대선후보자들의 정책은 국민 안에서 나와야 하고 그리고 국민들에 의해 판단을 받아야 하는데, 국민들은 모두 저들의 장단에 춤을 추고 있습니다. 여론이라고 하지만 이 여론은 모두 조작당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지 정치뿐만이 아니라 경제도 그러하고 인생이 다 그러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이 사회가 요구하는 1류가 되기 위해 모두가 다 올인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대학생들 너도나도 자기 전공에 상관없이 상당수가 사법시험에만 매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시험만 합격하면 자기 인생은 보장받는다는 것이지요. 아니 이게 무슨 인생입니까? 다 짜여진 길을 따라 사는 것이 무슨 인생입니까? 장기판의 놀음이지. 처음 언급했던 삼성 1년차의 사직의 외침은 자기는 바로 이러한 장기판의 놀음 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주체적 자유인의 외침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자유하게 하시는 하느님]

성서에 등장하는 사람들, 특히 사도행전에서 펼쳐지는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들은 성서의 용어로 말하면 하느님께 붙잡힌 사람들이지만, 세상 용어로 말하면 스스로의 삶을 스스로가 책임지고 나아가는 자유인을 말합니다. 거기에 우리가 믿는 야훼 하느님의 정체성이 있습니다. 모세 앞에 나타나시어 이집트의 노예들을 해방시키라는 명령을 내리시는 그분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야훼 그분은 스스로 존재하시기에 자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 또한 스스로 존재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스스로 존재한다는 자기 스스로 안에 존재 이유를 갖고 있다는 말이고 이는 한자말로 自由입니다. 야훼 하느님은 자유를 빼앗는 어떠한 제도나 권력에 참지 못하는 신입니다. 따라서 야훼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은 자신들의 주체적 사고를 억압하는 어떠한 세상의 권력이나 제도나 사상이나 가치에 대해 거부하고 외쳐야 합니다.

오늘 사도행전 4장 본문에 나오는 베드로와 요한. 그들은 한마디로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겉으로는 성전에 앉아 있는 앉은뱅이 병자를 고쳐준 것이 원인입니다. 나자렛 예수 이름으로 평생 앉은뱅이로 있던 병자가 고침을 받았으면 칭찬을 해줄 일이지 왜 그게 사회적인 문제가 되는 것입니까? 여기서 우리는 성서의 문자주의에서 탈피해야 합니다. 단지 앉은뱅이를 육신적인 장애인으로 보아서는 안됩니다. 여기서 성서 기자가 전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앉은뱅이가 왜 하필이면 성전 문 앞에 앉아 있습니까? 그것도 아름다운 문 앞에 말입니다. 여러분 어떤 앉은뱅이가 어떤 강남의 대형교회 문 앞에서 평생 구걸한다고 하는 일이 가능하다고 보여집니까? 이는 사실이자 동시에 하나의 비유입니다. 당시 율법은 아름다운 하느님의 말씀이요 규례라고 말해지지만 실제는 신도들을 신앙의 앉은뱅이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아무런 힘도 없이 묵묵히 순종만 하는 앉은뱅이 부정의와 억압에도 한마디 말이 없는 생각의 앉은뱅이. 이러한 앉은뱅이들을 나자렛 예수의 복음으로 일어나게 하고 뛰게 하고 그래서 자신들에게 주어진 한판의 인생을 신명나게 살도록 해방시켰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행전 3장의 앉은뱅이를 고친 베드로와 요한의 이야기이고 오늘 본문 4장 1절에서는 바로 이 때문에 이 둘은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본문에서는 권력자들 앞에 불려나가 경고를 받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답변하기를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보다 당신들의 말씀을 듣는 것이 하느님 보시기에 옳은 일이겠는지 한번 판단해 보시오.’ 여러분이 사도행전에 기록된 성령 충만의 사건과 그 사람들이 행한 일들을 아무런 교리적 편견 없이 읽어보면 이는 다름 아닌 민중들의 역사 주체성 회복의 이야기입니다.

[요아킴이 보는 성령의 역사]

기독교회사에서 가장 뚜렷한 ‘역사의 신학’을 제시한 사람은 4세기의 어거스틴과 12세기의 요아킴 플로리스입니다. 어거스틴의 사관은 정통사관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요아킴의 사관은 이단적 사관으로 밀려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예수님을 향한 예루살렘 성전교권주의자들이 행했던 것과 같이 중세의 가톨릭교권이 내린 판단일 뿐이고 사도행전의 얘기를 통해서 본다면 요아킴이 오히려 더 옳은 사관입니다. 요아킴은 이태리의 산 지오바니 대수도원의 원장으로서 예언자와 성자로 존경을 받던 사람입니다. 그는 고행의 정진과 명상을 계속하던 중 어느 날 ‘때의 징조’를 계시 받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그의 시대로부터 유대인들이 율법 아래 노예와 같이 살던 성부의 제 1시대 그리고 미완성된 자유의 영으로서의 성자의 제 2시대가 지나가고 비로소 완전한 자유한 영의 성령의 제 3시대가 열린다고 하는 역사인식입니다.

물론 그의 주장을 지금 문자 그대로 다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 중요한 사상은 성서와 역사의 상관관계를 통한 계시에 대한 매우 역동적인 이해를 한 것입니다. 만일 성서가 세계사의 중추이고 교회가 그 모형이라면 성서야말로 역사이해의 열쇠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성서는 ‘절대적인 교리’가 아니라 역사과정의 구조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전통적인 어거스틴의 구속사관은 성속의 이중 역사관입니다. 세속의 역사는 그의 역사철학에서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관심은 오직 교회사였습니다. 그러나 요아킴의 사관은 성속을 구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세계사의 전개에서 성서에 펼쳐지는 구속사의 흐름을 보았고 더 나아가서 하느님 자신의 존재양식의 전개가 곧 세계사의 발전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의 역사는 교회지상주의 역사로 환원이 되어 더 이상의 변혁이 필요 없게 됨으로 비종말화가 되어버리고 말았지만, 요아킴의 역사는 교회의 시대를 넘어서는 새로운 성령의 천년왕국 시대가 오고 있다는 임박한 종말론을 다시금 주장한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성령이 주체가 되는 사회변혁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사도행전 4장에서 베드로와 요한을 가두고 경고하였듯이 12세기 교권주의자들은 요아킴을 이단으로 정죄한 것입니다.

[오늘의 마가 다락방}

전 요아킴의 종말론적 역사이해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성서 이야기를 단지 지나간 유일회적인 역사 이야기로 혹은 성서의 사건은 세상과는 별도로 단지 교회의 영역 안에서만 일어나는 사건으로 읽지 않고 오늘 우리의 세상 속에서 불완전하지만 언제고 다시금 반복될 수 있는 하느님의 이야기요 하늘의 사건이라고 읽는다면 저는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은 가까운 우리 역사로 제한하여 말한다면 지난 20년 전 1987년 5월 27일아침에 바로 이 자리에서 일어났다고 해석합니다.

당시 국민 대다수는 전두환독재체제에서 노태우독재체제로 넘어가는 정권교체를 단지 장충체육관에 모인 허수아비 몇 천 명이 결정하는 비민주적 절차에 대해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날 사회민주지도자 170여명이 경찰과 정보부원들의 눈을 피해 비밀리 이 자리에 모여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가 결성이 되고 대국민성명서가 발표됩니다. 이때 가장 먼저 도착하신 분이 안병무선생이셨습니다. 이어 이 교회 앞마당 자리는 수백 명의 전경들과 형사들로 둘러싸입니다. 전 이 장면이 마치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 모였던 120명의 예수의 제자들과 이를 둘러싼 로마군병과 예루살렘의 교권지도자와의 대결로 보입니다.

이때로부터 87년 6월의 본격적인 거리투쟁이 시작합니다. 마치 성령에 충만한 120명의 제자들이 예루살렘 거리로 나가 거기에 모인 사람들의 언어로 복음을 전파하여 서로 소통하게 하였듯이, 이 170여명의 사람들 또한 흩어진 서울 시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묻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찌해야 할꼬?’ ‘회개하시오.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시오. 그리고 역사를 새롭게 쓰는 이 하느님 나라 운동에 뛰어드십시오.’ 그래 시민들은 자유와 민주의 세례를 받고 거리로 거리로 쏟아져 나옵니다. 버스를 타고 가던 아낙네도 차장 밖으로 손수건을 흔들어 환호하고 점심을 먹으러 나왔던 넥타이부대 월급쟁이들이 모두 한패가 됩니다. 제 얘기인즉 20년 전 바로 이 자리가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예루살렘의 마가의 다락방이었다는 것입니다. 어째 제 말을 믿지 않는다는 표정이네요. 제 말이 틀렸으면 틀렸다고 얘기 해보세요. 물론 성서의 역사를 교회 안에서만 일어나는 옛날이야기로 보는 사람만 빼놓고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오늘 오후에 여기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하는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6월 민주항쟁기념 기독교위원회 주관으로 동판제막식을 하려고 합니다만, 이는 단지 이곳을 기념물로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매번 이 예배실에 들어설 때마다 그냥 향린교회 3층 예배실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 올라간다. 오늘도 예수성령으로 충만하여져서 세상을 바꿔나가는 사람이 된다는 그런 열망을 품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곳이 바로 마가의 다락방이었다는 이런 깨달음이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제가 미원이 많이 들어간 음식을 먹으면 거의 항상 새벽 2시경에 깨어 한 30분을 뒤치닥거리는데, 바로 오늘 새벽 2시경에 그런 일이 재현되었고 그때 이런 깨달음이 불현듯 제게 임하더군요. 그러나 그게 성령님께서 말씀하신 것인지는 자신이 없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동판제막식을 본래 지난주에 하려고 계획하였지만 기독교위원회에서 오늘로 정해 오늘 하게 됩니다만 사실 지난 주 5월 27일은 2007번째 맞이하는 성령강림주일이자 동시에 20번째 맞이하는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결성식이 있던 날이었습니다. 그건 단지 우연이다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니다 이건 하느님의 간섭이다라고 보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다만 주위에서 일어나는 역사를 우연으로만 치부하지 않고 하느님의 간섭으로 보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기적과 변혁이 일어나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민주화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끝으로 우리의 민주화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권력과 재벌의 유착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회적 민주화가 필요합니다. 오늘의 현실 정치 또한 민주화와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경제의 양극화 현상은 날로 심해 갑니다. 가난한 집안에 태어난 사람이라도 정당하게 경쟁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도록 건강 교육 기초생활을 국가와 사회가 책임지는 경제민주화가 실현되어야 합니다.

언론과 사상의 자유는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강정구교수님도 무죄로 끝나야 하지만, 전쟁을 소재로 평화를 역설해 온 평화사진작가 이시우씨가 지난 4월 19일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되어 있고 오늘로 44일째 단식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시우씨의 책은 '한국을 대표하는 책 100권'에 선정해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 번역, 출품된 이미 다 알려진 일들입니다. 남북의 평화와 화해 분위기에 자기 자리를 위협받는 일부 의 정보부 검찰 경찰의 공안권력계층이 억지로 끼어 맞추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시우씨는 21일째 단식 중이던 날 장문의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낯선 것을 온 가슴으로 포옹하여 한 시대의 '결'을 만들어내는 자로서의 예술가의 본성은 마치 잠수함에 독가스가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넣어지는 토끼의 운명과 비슷합니다. 낯선 것이 위기와 도전과 고난일 때도 있기에 시대의 위험을 감지하고 끌어안는 예술가의 혼으로 인해 한 시대는 위기를 예감하고 준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부디 저의 사건이 이 시대의 위기를 예고하는 사건이 아니길 바랍니다."

엘리 위젤의 책 <이방인은 없다>에 나온 글입니다. “어떤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죄악에 가득 찬 한 도시의 주민들을 죄에서 구원하길 마음먹고 그곳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거리에서, 시장에서 그들의 탐욕과 거짓과 도둑질에 대해 지적했습니다. 처음에는 약간의 반응을 보이는 듯 하더니 차츰 아무도 그의 말을 듣지 않게 되었습니다. 죄악은 계속 일어났습니다. 어느 날 한 젊은이가 그에게 말합니다. ‘여보시오 이방인! 당신이 아무리 외친다 해도 사람들은 듣지 않는다는 걸 모르시오?’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그만두지 않으시오?’ ‘처음에는 저도 그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내가 오늘도 나의 말을 크게 외침으로 그들이 나를 변화시키는 일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향린교회와 같이 사회적 정의에 깊이 관심하고 국가보안법이나 평택미군기지와 같이 매우 민감한 사안에 신앙적으로 대응하는 교회는 매우 적다고 하는 사실을 알고 있고 열심히 해도 사회는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비웃을지 모릅니다. ‘아니 그런다고 세상이 변해?’ ‘지네들이 그런다고 평택미군기지가 없어지나?’ 물론 세상은 변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이 우리를 변화시키는 일을 거부할 따름이고 우리가 분명히 고백하는 것은 하느님의 역사수레바퀴는 더디게 돌지만 끝내 오고야 만다는 것입니다.

6월 항쟁의 주역으로 나섰던 사람들, 본래부터 세상 정치나 사회변혁에 큰 뜻을 갖고 나선 사람들이 아닙니다. 마치 농부 아모스가 돌무화과를 가꾸고 양떼를 몰고 이리저리 다니다가 야훼 하느님의 손에 붙잡혔듯이 박종철의 억울한 죽음의 소식과 이한열의 한 맺힌 죽음을 목도한 보통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주저하던 사람들이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고 이것은 역사의 퇴보요 결국 자신의 죽음이나 마찬가지라고 하는 진리 양심의 소리가 저들을 불러 세워 거리로 역사의 현장으로 내어 몬 것입니다.

이 시간 저는 여러분들이 바로 이 자리에서 역사변혁의 현장으로 여러분 자신을 부르는 하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비둘기 같이, 세찬 바람과 같이 임하는 성령님의 임재를 체험하시기를 바라면서 20년 전 수 만 명의 인파가 모인 연세대학 교정에서 있었던 이한열열사의 장례식장에서 문익환목사님이 조사를 대신해서 26명의 민주열사들을 부르는 그 음성으로 저의 오늘 하늘뜻펴기를 마감하고자 합니다.

이어 침묵하는 기도시간을 갖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