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2월 26일 (주현절 8, 삼일절 기념주일)

남겨진 몫

시편 78편, 1-8 ; 마태오 9, 35-38


며칠 전 신문 기사를 검색하다가 특이한 제목을 발견하였습니다.
‘이번 삼일절 청계광장에서 태극기를 들고, 꼭지점 댄스를 함께합니다.!’
태극기를 들고 춘다는 춤이 뭔가? 하는 호기심에 다시 검색을 해보니, 최근 인기 검색어 중의 하나인 이 꼭지점 댄스에 대한 검색결과가 무척이나 많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는 ‘따라하기 쉬운 춤을 피라미드 형태로 여러 사람이 함께 추는 춤을 말한다’라고 친절하게 설명까지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우리가 공동체놀이 때 흔히 하는 인간 피라미드 쌓기가 연상이 되면서 ‘도대체 어떻게 춤을 춘다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실은 그것이 아니라 피라미드 모양으로 여러 사람들이 서서 스텝을 밟으면서 하는 춤을 말하더군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일런지 예측하기는 힘들지만, 그리고 이 행사를 주관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바른 역사 인식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10대들에게는 온몸에 태극기를 두르고, 핸드폰에 다운 받은 태극기를 흔들며 벨소리로 애국가를 울리며 하는 삼일절 퍼포먼스가 시쳇말로 ‘먹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여든일곱번째 삼일운동 기념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일본에 맞서 싸웠던 역사적인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서만이 아닙니다. 역사를 되돌아본다는 것은 ‘반성과 참회’가 담겨있습니다. 이 반성과 참회의 과정을 통해 우리 모두가 지니고 있는 죄의 꿰뚫어 봄으로 마음에 새기고 잊지 않게 하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해마다 삼일운동을 신앙적인 눈을 갖고 되새김질 하는 이유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잔인한 칼날 앞에 굴하지 아니하고, 비록 가진 것 하나 없이 몸뚱아리 하나로 당당하게 맞섰던 이들의 핏자국이 선연한 그 흔적 속에서 오늘 읽은 시편말씀처럼, 그 숨은 뜻을 밝히는 가운데 우리에게 남겨진 몫을 찾아내기 위함입니다.

삼일운동 당시 기독교는 이 땅에 들어온지 30년이 좀 넘은 어찌보면 신흥종교인 셈이었음에도, 수많은 기독인들이 중심이 되어 운동이 전개해 나갔습니다. 이 때문에 당시 총독부에서 선교사들에게 그 책임을 물은 일은 널리 알려진 일입니다. 그런데, 삼일운동에 참여한 반수이상(55.3%)이 농민이었습니다. 또한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이 소위 배웠다는 사람의 수보다 배가 더 많았습니다.
일본 동경에서 유학 중인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2.8 독립선언문을, 종교 지도자들을 포함한 각계각층의 지식인들 중심으로 기미 독립선언문을 발표하였지만, 삼일운동의 중심에는 민중들이 서있었습니다. 일제의 지배정책에 의해 토지를 빼앗긴 수많은 농민들, 장시간 노동, 민족적 차별에 의해 일본인 노동자의 절반에 불과한 임금을 받아야 했던 노동자들, 조선인 노동자의 반 밖에 받지 못한 여성 노동자들, 일제 식민지 수탈 경제구조 아래 도시빈민으로, 실업 노동자로 몰락할 수 밖에 없던 이들이 모이고 또 모여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하느님의 정의를 선포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되짚어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삼일운동 후, 일본이 무지막지한 무단정책을 문화정책으로 돌리고 난 이후의 기독인들의 행적입니다. 일제의 기만적인 문화정책 아래, 많은 지식인들이, 많은 종교지도자들이 더 이상 아무런 저항의 힘을 끌어내지 못하고, 우상 숭배적 신사참배와 신도의식을 공인하면서 예배 가운데, ‘국민의례’를 끌어들였습니다. 교회의 전통을 무시하고 일제의 강제 통폐합에 응하고, 교회의 재산을 처분하여 일제의 침략전쟁에 협력하는 등 일제의 교묘하고 끈질긴 탄압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일제의 발악을 꿰뚫어 보지 못하고, 하느님이 부여하신 민족적 사명을 내팽개쳐 버렸습니다. 물론, 3년 후 독립이 될 줄 알았다면,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내 눈에 비록 명확히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믿음의 근본을 잃지 않았다면 그리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비열함은 끝이 없어서 갑자기 맞이하게 된 해방이라는 사건 속에서 이미 해방이 될 줄 알고 있었노라고 떠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을 향해 함석헌 선생은 준엄히 꾸짖었습니다.

[그만두어라. 솔직하자. 너와 내가 다 몰랐느니라. 다 자고 있었느니라. 신사 참배하라면 허리가 부러지게 하고, 성을 고치라면 서로 다투어가며 하고, 시국 강연을 하라면 있는 재주를 다 부려서 하고, 영, 미를 욕하고, 전향하라면 참 ‘앗싸리’ 전향을 하고 곱게만 보일 수 있다면 성경도 고치고, 교회당도 팔아먹고, 신용을 얻을 수 있다면 네 발로 기어도 보이고, 개소리로 짖어도 보여준, 이 나라의 지사, 사상가, 종교가, 교육자, 지식인, 문인에, 또 해외에서 유랑 몇십년 이름은 좋아도 서로서로 박사파, 선생파, 무슨 계, 무슨 단, 하와이나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미국인 심부름꾼 노릇을 하며 세력 다툼을 하고, 중경, 남경에선 중국인 강낭죽을 얻어먹으며 자리싸움을 하던 사람들이 알기는 무엇을 미리 알았단 말인가? 사상은 무슨 사상이고 정치는 무슨 정치 운동을 하였단 말인가? 이 나라가 해방될 줄을 미리 안 사람은 하나도 없다. 또 설혹 미리 알았다 하더라도 그래서 미리 싸웠던 사람은 하나도 없다.]

지난 가을부터 목정평(전국 목회자 정의평화 실천협의회)의 주관으로 ‘한국교회와 과거사 극복’을 위한 죄책고백 심포지움이 진행되고 있습니다만, 지난달에는 1935년 창립된 기독교대한복음교회 총회 명의로 ‘초대감독 최태용 목사 친일행적에 대한 죄책고백문’이 발표된 바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부끄러운 과거가 있습니다. 1935년 암울한 식민지하에서 <조선인 자신의 교회>를 높이 외치며 기독교대한복음교회가 창립되었습니다. 교단적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모진 시절을 꿋꿋이 견디면서 민족교회로서의 사명을 담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강압적인 마수는 1942년에 이르러 초대감독 최태용 목사에게 무거운 죄책의 짐을 지게하고 말았습니다.]

죄책고백문 말미에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우리는 더이상 어떤 내용도 숨길 것이 없습니다. 있다면, 더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고, 더 민족을 사랑하지 못한 죄를 날마다 회개할 따름입니다. 개인의 경건과 내적 만족에 치중하지 않고 하나님의 위엄하신 역사 안에 거하고 발전적인 미래를 선도하는 교회의 사명이 우리에게 있음을 다시금 각오합니다. ]
대부분의 교단이 뜻을 모으지 못하고 침묵하는 가운데 복음교단의 죄책고백은 매우 의미있는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2006년을 살고 있는 우리들이 삼일운동을 되돌아본다고는 하지만, 이제는 일 제국주의가 아닌, 교활하기 이를 때 없는 미 제국주의 아래 살고 있는 우리들의 현재는 결과적으로는 당시와 그리 큰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례로, 1876년에 체결된 조일수호규약 중, [제10관 일본국 인민이 조선국 지정의 각 항구에 체류 중 만약 죄과를 범하여 조인인 인민에게 관계되는 사건은 모두 일본국 관원이 심의할 것이다.] 라는 것과 1967년 발효된 한미협정 [제22조 형사재판권(Criminal Jurisdiction) 1.본 조의 규정에 따를 조건으로, (가) 합중국 군당국은, 합중국 군대의 구성원, 군속 및 그들의 가족에 대하여, 합중국 법령이 부여한 모든 형사재판권 및 징계권을 대한민국 안에서 행사할 권리를 가진다.] 는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참회의 과정을 통해 철저히 변화하지 못한다면, 그 과정은 그저 겉치레로 하는 말장난 즉, 자기기만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자기기만 과정을 통해 계속 썩어갈 뿐입니다.

겸허한 죄책고백을 통해, 우리가 썩은 뿌리를 과감하게 잘라내는 것과 동시에 우리 삶 곳곳에 남아있는 찌꺼기들을 하루빨리 떨쳐내는 것도 중요합니다.
또다시 함석헌 선생님의 말씀을 전합니다만, 1986년 민주실천교육협의회 창립식에서 축사를 맡으신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하지요? ‘국민학교’란 이름을 두고 어떻게 민족, 민주 교육을 하겠느냐? 라고요. 획일적인 교육을 통한 식민지배의 또다른 방법이었던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된 것은 1995년도의 일이니 단어 하나를 바꾸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요. 그러나, 여전히 우리 생활 속에는 많은 잔재들이 남아있습니다. 어쩌면 익숙해져있기 때문에 바꿔야 하는 그 의미조차 상실해 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 제 아이가 꼬박 3년을 다닌 어린이집 졸업식에 참석하여 그 순서지를 보고 무척이나 놀랐습니다. 그 순서지에 적혀있는 단어들도 그렇고, 국민의례라는 순서를 보고 설마 국기에 대한 경례까지 하라는 것은 아닌지 순간 매우 긴장했습니다. 제가 올해로 만 38살이 됩니다만, 30년이라는 세월 속에서 너무 많은 것들이 변한 것 같지만, 의외로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들도 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학교 안에 남아있는 여러 일제의 잔재물들은 교사로 계신 분들이 앞장서서 없애주셔야 할 일입니다.

학교 문화 속에 남아있는 것 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대화에 등장하는 단어들은, 많이 알고 계시기는 하겠지만, 무데뽀(むてっぽう, 無鐵砲), 뗑깡(てんかん)이라는 말도 일본어 잔재라는 것을 알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남아있는 일본말들도 문제이지만, 영어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져 가는 현상은 더 심각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3살만 되어도 영어를 가르치고, 아니 태교도 영어로 한다는 세상입니다. 영어 유치원은 자리가 없어 아예 유치원 들어가기 몇 년 전부터 대기자 명단에 올려놓는다는 소리도 들리는데요. 이 언어의 문제는 단순히 어학능력을 키워주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말은 사람의 사고를 지배하기 때문에, 이제 막 말을 시작하는 아이에게 ‘엄마’라는 말보다 ‘mom`‘mammy`라는 말을 먼저 가르치려 하는 이 어리석은, 잘못된 교육열풍을 멈추게 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땅을 치고 통곡하며 후회하게 되더라도 이미 때는 늦어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그들의 역사를 입에서 입으로, 율법으로 후손들에게 전하면서 ‘반역하고 고집 센 선조들처럼, 절개 없이 하느님께 불충한 그 세대처럼, 그들처럼 되지 말라’고 가르쳐왔고,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하느님이 그들의 바위이심을. 하느님이 지극히 높으신 분이심을, 그들의 구원자이심을’ 고백하였지만, 사실 그들의 마음은 하느님께 충실치 않았으며 세워 주신 계약을 믿지 않았다고 시편기자는 말합니다.

오늘 읽은 하늘말씀인 마태오 복음이 기록된 삶의 자리는 자신을 ‘주’또는 ‘신’으로 부르도록 한 도미띠아누스 왕이 지배하고 있었던 때입니다. 모든 민중들이 황제제의를 요구 당하던 당시, 지도자라 할 수 있는 남아있는 사제들은 친로마주의자로 변절하여 그저 자신의 생존권을 유지하기에 급급해 있었습니다. 새로운 지도층으로 부각되던 바리사이파 역시 로마와 타협하는 노선을 선택하기는 마찬가지 였구요. 그런 상황 가운데 예수께서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몸과 마음이 병들어 있는, 목자없는 양처럼 시달리며 허덕이고 있는 이들을 보시고 불쌍한 마음이 드셨노라고 마태오 저자는 적고 있습니다.
‘시달리다’라는 말은 ‘가죽을 찢겨서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상태’를 말하고, ‘허덕인다’는 말은 ‘아예 시체를 내버리듯이 땅에 내던져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절박한 상황에 내몰려 있는 것이지요. 그들을 보시고 제자들에게 예수께서는 ‘추수할 것은 많은데 추수할 일꾼이 적다, 추수할 일꾼을 보내달라고 추수하는 주인에게 요청을 하라’고 하십니다. 성서에서 추수할 때는 하느님의 심판을 빗대서 하는 말입니다. 정의, 평화, 생명 등 하느님의 뜻이 올바로 서는 때입니다. 지금 땅에 내던져 버림을 받은 이들, 찢길대로 찢겨서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이들이 하느님의 올바른 뜻이 세워지는 새 세상을 기다리고 있는데 정작 일꾼이 없습니다.

일꾼을 부르는 주님의 애타는 목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두 귀, 두 눈 다 막고 꿋꿋하게 버텨내고 있는 우리들.

연초에 [스키너의 심리상자]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유명한 사건들을 심리 실험을 통해 규명하고자 했던 실험 이야기들을 담은 책인데, 기억에 남는 것을 하나 소개하고자 합니다.
1964년 3월13일 금요일, 뉴욕 퀸스 지역에서 키티라 불리는 한 여성이 새벽녘 귀가 도중, 칼에 찔리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살려달라는 소리에 그 지역 동네 사람들 집에 불이 켜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에는 ‘그 여자를 내버려 두시오!’라고 외치는 사람이 있기는 했지만, 정작 밖에 나와 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밖이 잠잠해 지자, 동네 사람들은 집안의 불을 하나둘 끄기 시작했습니다. 불빛이 사라지자, 범인이 다시 나타나 찌르고, 비명 소리에 주민들은 등을 켜고, 또 시간이 좀 흐르면 불이 꺼지고, 불이 꺼지면 범인은 또다시 칼로 난도질을 하는 등 약 35분 동안 세 차례에 걸쳐 키티라는 여성이 난도질당하고 성폭행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지만, 모두가 구경만 했을 뿐 아무도 밖으로 뛰어 나온다던지, 경찰을 부른다던지 하는 구체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건의 목격자가 무려 38명이나 되었지만, 키티는 차디찬 길바닥에서 비참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심리학자인 달리와 라타네는 이 사건을 분석해 보기 위해 사회적 신호와 방관자 효과 실험 즉, 긴급한 상황 속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이를 돕는 이들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실험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 나 말고 도와줄 학생이 네 명이 더 있다고 믿었을 때는 위급한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 위해 도움 요청과 같은 구체적인 행동을 아예 하지 않았지만,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의 수가 반으로 준 두 명밖에 없다고 느꼈을 때는 85퍼센트의 사람이 3분이 채 되지 않는 시간 안에 도움을 주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을 하였습니다.
사건을 목격한 사람이 많을수록 개인이 느끼는 책임감이 적어지는 이유는 군중들 사이에서 책임감이 공평하게 나누어지기 때문인데 이를 ‘책임감 분산’ (difussion of responsibility) 이라고 합니다. 이와 관련되어 또 다른 실험을 했는데, 어디선가 불이 나서 자욱한 연기가 스멀스멀 들어오더라도 함께 있는 사람이 별문제 없다는 듯이 관심을 갖지 않으면 이러한 사회적 신호를 통해 나 역시 별문제 없다고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사회부에서는 오후에 포이동 266번지를 방문할 계획으로 있습니다. 이곳은 부의 상징이라는 타워팰리스와 양채천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철거빈민들의 삶의 터전입니다. 주민 104세대 350여명이 하루하루 생존을 이어가고 있지만, 포이동 266번지로 주민등록이 기재되어 있는 사람들은 정작 아무도 없습니다. 양재천 건너편 집에는 한 개도 아닌 방방마다 있을 법한 화장실 하나 없어 세, 네집이 그것도 재래식 화장실을 함께 사용하는 곳입니다. 때만 되면 거리마다 휘황찬란한 불빛으로 장식하느라 거리의 나무들이 몸살을 앓을 정도로 전기를 펑펑 쓰면서도 정작 이곳은 겨우 8년 전에야 수도와 전기가 들어왔다고 합니다.
이곳에 사는 학생들은 학원의 ‘학’자는 커녕 집에서 왠종일 뒹굴고 있어도 혼낼 부모조차 없는 환경에서 살고 있습니다. 누가 봐도 이는 정의롭지 못한 일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노라고 하는 기독인이 전체 인구 1/4이라고 하는 나라에서는 도무지 있어서는 안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무려 25년 동안이나 우리들의 관심 밖에 있으면서 있으나 마나 한 존재, 아니 없으면 더 편한 존재처럼 취급 받아왔습니다. 이뿐입니까?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모든 불의한 사건들의 이면을 보면 우리들의 무관심과 이기심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누구의 말이었는지 잊었습니다만, ‘삶이 끝나는 때는 침묵하기 시작할 때’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정의가 뿌리 채 뽑히는 현실을 목도하면서도 침묵한다면 우리는 죽은 자와 다름이 없습니다.
역사는 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삼일운동 정신을 이 순간 되살린다고 해도, 결국 오늘 당면한 일을 가지고 다시금 깨어나지 않으면 되살리는 의미가 없습니다.
너무나 영악해져버리고, 유식해져버려서 타협하는 것에 능수능란한 오늘날의 기독인들은 삼일운동 한가운데서 소박하고, 무지렁이 같이 아무 거리낌 없이 목숨을 내어놓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들의 저돌적인 믿음을 되살려야 합니다. 우리를 집어 삼키려 다가오면서도 그 겉모습만으로는 도저히 깨달을 수 없는 위기의 요소들이 곳곳에 널려있습니다.

1926년 이상화 시인이 발표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를 아시지요? 이 시가 발표된 지 80년이 지난 2006년에도 여전히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고민할 수 밖에 없는 이 현실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셈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명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이 시를 노래로 담은 음악을 들으면서 침묵 가운데 기도하겠습니다.



파송사 /
평안히 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예수께서 찾으시던 추수할 일꾼은 추수할 곳이 어딘지를 깨닫고
추수할 곳에 뛰어들 수 있는 사람입니다.
추수할 곳에 마냥 서있기만 해서는 추수에 참여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가슴 속에 타오르는 불덩이를 품고,
추수할 들에 나가 걸려 넘어지고, 구르고 생채기가 나더라도,
또 일어서고 또 일어설 줄 아는 그런 사람.
그러한 사람들만이 남겨진 몫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