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광야 시험과 우리
시편 1 ; 마태오 4, 1- 11

윤홍민(청년신도회)

예수는 서른 살이 되자 공생애 사역을 시작합니다. 하느님 나라 운동을 시작한 것이죠. 예수는 그 운동을 벌이다 십자가에 달립니다. 예수가 목숨까지 버리며 전개한 하느님 나라는 과연 무엇일까요?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청년신도회 장속도 형제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렇게 얘기합니다. “늑대와 어린 양이 함께 풀을 뜯고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는 세상, 이사야 선지자가 꿈꿨던 서로 해치고 죽이는 일이 없는 세상” 바로 이러한 세상을 하느님의 나라라고 속도 형제는 고백합니다.

역사학자 강만길 선생은 역사가 가야 할 길을 이렇게 얘기합니다. 정치적으론 권력의 억압에서 해방되는 인간이 많아지게 하는 길, 경제적으론 생산력이 높아지고 재부가 증가하면서도 그것이 고루 분배되게 하는 길, 사회적으론 권력과 재력 앞에서도 만민평등이 되게 하는 길, 문화적으론 생각하고 말하는 자유가 계속 확대되게 하는 길. 이 모든 것이 역사의 길이며 그 길을 최고도로 발전시키는 것이 인류사회의 이상이라고 강만길 선생은 얘기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역사의 흐름이 이 곳 한반도와 세계 곳곳에서 온전히 실현되는 세상이 하느님의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곧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자유가 들꽃처럼 만발하며 사랑의 햇빛이 따사롭게 내리쬐는, 통일의 꿈이 무지개처럼 피어오르는 그러한 세상 말이지요.

말은 좋습니다. 그럴 듯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하느님의 나라를 어떻게 이 땅 위에 현실화 시킬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체적인 삶에서 실현되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서른살 청년 예수도 억압과 착취의 땅 갈릴리에서 우리와 동일한 하나님 나라의 꿈을 꿉니다. 그러나 예수는 꿈꾸는데서 멈춘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합니다. 광야 40일 단식을 마친 후 악마에게 받은 첫 번째 유혹. 그 유혹을 물리친 과정을 자세히 보면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 이루기 위한 예수의 근본적인 대안, 현실적인 방략을 알 수 있습니다.

40일 단식으로 몹시 시장한 예수에게 악마는 이렇게 유혹합니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하여 보시오.” 네, 사흘 굶어 도둑질 안 하는 사람 없다고 몸과 정신이 극도로 약해 있을 때 찾아오는 이 유혹은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절박한 문제임을 여실히 보여 줍니다. 여기에서 밥을 부정하고 말씀만을 고집하는 금욕의 예수를 본다면 잘못 보아도 한참을 잘 못 본 것입니다. 예수는 죄인들과 먹고 마시는 교제를 즐겨했다고 성서는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럼 도대체 이것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걸까요?

예수는 당시 가난한 민중에게 밥의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굶주리는 민중에게 밥의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하는 그의 고민은 그 근본 해결책을 하나님이 출애굽한 민중에게 주셨던 말씀 곧 계약의 근본이었던 ‘평등 공동체’에서 찾았다는 것이죠. “성서에 ‘사람이 밥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리라’고 하지 않았느냐?” 신명기 8장 3절 말씀을 인용하며 예수는 악마의 유혹을 물리칩니다.

저는 첫 번째 유혹이 개인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갈등 투쟁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하느님 나라를 구체적으로 현실에서 이루기 위한 예수의 근본적인 대안을 이 속에서 발견합니다. 종살이에서 해방시킨 하나님만을 섬기며 이웃과 더불어 잘 사는 길을 찾았던 ‘야훼 평등 공동체’를 회복하자! 예수는 구약 성서를 인용하며 근원적인 변혁을 주장합니다.

토요일 오후 ‘사랑의 리퀘스트’라는 KBS에서 하는 TV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희귀병, 난치병으로 고통당하는 이들의 가슴 아픈 사연을 소개하며 이들을 돕는 모금을 하는 프로그램이죠. 우리 사회에 정말 필요한 생수 같은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일회적인 방법은 한계가 있습니다. 고통당하는 이들을 근원적으로 도와줄 수는 없는 것이죠.

매주일 저녁 수원역에 가보면 어느 교회에서 노숙자분들에게 대규모로 저녁을 제공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정말 훌륭한 교회입니다. 아름다운 교회입니다. 한 끼 식사가 절박한 이들에겐 정말 고마운 일이지요. 그러나 우리는 이런 일을 포함하면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합니다. 더 이상 길바닥에서 자며 굶주리는 이들이 나오지 않는 사회, 모두가 땀 흘린 만큼 제 몫을 온전히 받는 정의로운 사회, 이러한 경제체제를 만드는 것이 예수가 추구했던 더 근본적인 대안 ‘야훼 평등 공동체’의 모습이 아닐까요?

예수는 당시 억압과 착취의 땅 갈릴리에서 하느님 나라를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대안을 ‘야훼 평등 공동체’의 회복으로 제시합니다. 그러면 죄 없는 생명체들을 대량 학살하는 제국주의-사탄의 세력이 횡행하는, 신자유주의라는 새로운 괴물로 인해 신음하며 죽어가는 이 땅 한반도의 현실에서 하느님 나라의 구체적인 대안은 무엇이겠습니까?

저의 알량한 지식과 일천한 경험으론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방도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더 치열하게 공부하고 몸으로 부딪히며 경험을 쌓아야 하겠지요. 끝으로 첫 번째 유혹을 물리친 예수의 방법이 오늘날 대안을 세우는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며 마무리를 할 까 합니다.

예수는 첫 번째 유혹을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리라’고 하지 않았느냐 하며 성서 말씀으로 물리칩니다. 두 번째, 세 번째 유혹도 마찬가지이죠.

폭력이라는 사탄의 세력이 횡행하는, 전쟁이라는 어둠의 세력이 활개치는, 신자유주의라는 새로운 레비아탄이 지배하는 참담한 현실을, 예수가 변혁을 가져오는 하나님의 파워 곧 말씀으로 사탄을 물리쳤듯 우리 청년들도 하나님의 힘을 힘입어 이 세상을 바꿔보지 않으시렵니까?

변혁을 가져오는 하나님의 파워 곧 말씀을 바탕으로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치열하게 세상 모순과 싸우는 우리 청년들의 뜨거운 삶 속에서 하느님 나라와 양립 불가능한 제국주의와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대안 체제가 끊임없이 나올 줄 믿습니다.


전아름(새날청년회)

안녕하세요. 저는 새날 청년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전아름이라고 합니다. 지금 대학교 2학년에 재학 중 이고요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향린에 온지는 6개월 정도 되었는데요 하늘 뜻 펴기에 참여하게 되어 매우 영광입니다.

저는 집안의 막내라서 그런지 뭐든지 잘하고 싶은 마음이 먼저 들곤 합니다. 원래 막내들이 언니나 오빠들을 보면서 자라기 때문에 그 위에 사람보다 더 잘해서 부모님이나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고, 애를 쓰잖아요! 제 성격에서도 그런 부분이 강하기 때문에 사실 하늘 뜻 펴기를 맡게 되었을 때도 잘해야 된다는 부담감에 무척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마음을 좀 비우고 그냥 ‘최선을 다하자’ 라는 생각으로 임하기로 했습니다. 성도님들께서도 지금 20살 초반에 있는 한 청년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어떤 고민을 하며 살아가고 오늘 말씀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들어 봐주시고 함께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보면 첫 번째 시험이 끝나고 악마는 이어서 또 두 번째 시험을 합니다. 악마는 예수님을 거룩한 도시로 데리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말합니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뛰어내려 보시오."
그리고 성서에 기록된 말씀을 증빙서류로 제시하곤 말하기를,
" `하느님이 천사들을 시켜 너를 시중들게 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너의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리라.` 하지 않았소?"
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뛰어내리지 않으시면 예수님이 성경을 믿지 않는 것이 되고 예수님께서 뛰어 내렸는데도 천사가 보호하지 않으면 성경이 틀린 것이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단 한마디로 대답을 하셨습니다.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떠보지 말라.`는 말씀도 성서에 있다." 하고 말입니다.

악마의 두 번째 유혹은 스타의식과 개인주의적 영웅주의를 불러일으켜 혼자서 멋지게 해보라고 합니다. 예루살렘성과 예루살렘성전은 당시 정치, 종교, 사회, 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그 성전꼭대기에서 뛰어내릴 때에 하나님의 천사들이 예수님을 받아주게 되면 그 즉시 예수님은 수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그야말로 슈퍼스타, 인기스타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단이 예수님을 능력자로 만들어 구속자의 신분 즉, 주님의 사명을 잊게 하려 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받았던 두 번째 유혹은 그에게 뭔가 굉장한 환호를 안겨줄 그런 일을 해보라는 것이었으나 그분은 자신이 누구인지 증명해 보이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못하신 것이 아니라 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저는 중학교 2학년 때 만난 선교사님을 통해 비전에 대한 확신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로 저의 기도 제목은 딱 한가지였습니다. 바로 ‘주님을 닮은’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도 저의 목표는 대학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공부를 소홀히 한 것은 아닙니다. 주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학생의 신분으로서 공부에 최선을 다해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침, 저녁으로 말씀을 읽으면서 공부와 신앙을 함께 쌓아나갔습니다. 그리고 제 꿈을 이루기 위한 발판으로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하지만 자유로운 대학생활에서의 저의 비전과 신앙생활은 어느덧 현실과 타협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 꿈은 주님을 닮은 디자이너였는데 이제는 단지 유명한,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되기만을 바라고 있는 제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명이 아닌 능력 자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대학에서는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게 아니라 잘해야만 인정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다시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기대에 맞게 뭐든 잘하고 싶은 사람이 되려고 했고 관심조차 없었던 분야도 왠지 잘 알고 있어야 할 것 같고 배워야만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남들이 ‘쟤는 뭐든지 잘해~’ 뭐 이런 소리하는 걸 듣길 바랬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열등감도 쌓여가고 있었습니다.

열등감은 사실 외적인 부분에서도 생기고 있었습니다. 대학에 오니 그야말로 공부도 잘하는 데다가 예쁘기 까지 한, 부러움의 대상이 많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여학생들은 얼굴성형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보았을 것입니다. 실제로 새 학기가 시작되고 친구들을 만나면 두세 명쯤 얼굴이 변해서 나타나곤 합니다. 예전엔 저도 성형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성형을 한 친구들이 자신감을 갖는 것을 보면 가끔은 부럽기도 하고 성형에 대해 지지하는 입장이 되기도 합니다.

세상은 점점 저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완벽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유혹하고, 어떻게서든 자신의 능력을 아니, 그 능력 이상을 드러내게끔 유혹하고 또 유혹합니다. 주님께서는 굉장한 분이셨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시려고 했건만 저는 보 잘 것 없는 것도 드러내려고 애썼고 만들어 내려고 애쓰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악마의 시험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말씀하지 않으시고 성서에 기록된 말씀 한마디로 악마를 물리치셨습니다. 만약 악마가 제게 ‘성전에서 뛰어내어 보아라~ ‘하면 저는
"내가 미쳤냐~!! 내가 무슨 태권브이냐, 마징가제트냐~ "
라고 제 의견을 말했거나 논쟁을 펼쳤을 수도 있습니다. 악마와 논쟁하는 시간이 길면 길어질수록 우리는 그 꼬임에 더욱 빠지게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자신의 생각, 자신의 힘을 믿으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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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도 이런 경험이 한 번쯤 있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지나가다가 길을 물어보는데 대답을 해주면 그 다음에 다시 "어머~ 인상이 참 좋으시네요~ 얘기 좀 잠깐 하실 수 있으세요?" 이렇게 묻곤 합니다. 그러면 ‘시간 없어요~’ 이렇게 말하고 가거나 무시하면 되는데 주춤거리다가 어느새 붙잡혀서 꼬임에 넘어가곤 합니다.
저도 지난 번에 집 앞에서 어떤 사람이 설문조사를 도와달라고 하길래 해주었더니 개신교가 태양신의 영향을 받았다면서 설교를 시작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일요일이 영어로 Sunday고 sun은 태양을 의미하기 때문에 우리가 지키는 주일은 태양신 숭배와 관련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안식일을 제대로 알고 지켜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여러 가지를 설명하는데, 그 사람의 물음에 대답하다가 어느새 저도 모르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습니다.
악마의 유혹에는 우리가 아예 상대를 하지 말아야 하는데 우리도 모르게 주춤거리고 있거나 논쟁을 하려고 하는 마음 자세에서 벌써 그 꼬임에 빠져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하셨던 것처럼 해결책은 바로 성경말씀인데 생각나는 말씀구절이 없어서거나, 자신만의 생각으로 판단하려고 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대학에 들어오고 나서 더 열심히 신앙생활 하겠다는 저의 다짐도 어느새 느슨해져 고등학생 때 보다 더 기도도 못하고 성경도 많이 읽지 않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제 자신도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제 목표는 대학이 아니라 디자이너라고 외쳤던 것도 거짓말인 냥 저도 목표가 단지 대학인 다른 대학생들처럼 현재 삶만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런 저의 모습을 알고 있는 것 또한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알고 있기 때문에 변화시킬 수 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제가 해왔던 신앙의 방식이 ‘나’만을 위한 신앙이었다면 이제 ‘우리’를 위한 신앙의 자세로 바꾸고 공동체 안에서 저를 찾아가는 신앙생활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서울에 처음 올라와서 교회를 찾아 이곳 저곳 다녀보았지만 향린 교회에 정착하게 된 것도 사실 ‘우리’라는 소속감과 공동체 의식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 신앙이 이 곳에서는 치료 될 수 있고 더 발전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저처럼 대학생활을 하고 있는 학생들에게는 수많은 유혹과 고민들이 저희들 앞을 가로 막고 있고 이를 혼자서 고민하느라 좌절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학생으로서 가진 고민들은 공통된 부분이 많습니다. 혼자 생각하고 혼자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우리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 본다면 더 나은 결과와 해결책을 발견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새날 청년회에 이러한 고민들을 함께 얘기하고 의논해 보자고 제안 할 것입니다. 그래서 토요일 마다 있는 새청 정기모임을 통해 말씀을 읽고 성서를 공부함은 물론 각자의 삶의 이야기하고 나누면서 우리가 조금씩 변화되는 것을 체험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 자신 또한 생활목회자로서, 배운 말씀을 삶에서 실천하고 실행하여 승리하는 주님의 증인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여기 계신 성도님들께서도 성서 배움 강좌에 함께 참여하여 말씀으로 세상의 유혹을 이겨내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향린의 새로운 주역인 우리 청년들이 패기와 열정으로 주님의 사명을 잘 감당하며 승리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노진선(희년청년회)

안녕하세요? 희년청년회에서 회장을 맡고 있는 노진선입니다. 향린교회에 다닌지는 어느덧 10년이 넘은 것 같습니다. 지금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일하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이번 평신도 설교를 준비하면서 제 자신의 신앙을 성찰해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습니다. 저의 첫 교회나 마찬가지이고 또한 10년 이상을 향린교회를 다녔지만 주일만을 지키는 신앙의 깊이가 얕게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해 왔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앞으로 성경 공부 등을 통해 저의 신앙을 한단계 성숙시키는 계기를 가지게 된 것이 이번 평신도 설교의 가장 큰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교우 여러분께서도 이런 좋은 기회가 오면 도전하는 한 해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오늘 저는 예수님에 대한 사탄의 세 번째 유혹에 대해 교우님들과 함께 말씀을 나눠볼까 합니다. 첫 번째, 두 번째 유혹에 이어 마귀는 예수님을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며 말합니다. "당신이 내 앞에 절하면 이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
여기서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화려한 모습은 이 세상의 통치자가 가지고 있는 권세를 의미합니다. 한마디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가장 빠지기 쉬운 이 땅의 영광에 대한 유혹입니다. 여기에는 세상의 권력과 명예, 금전적 보상 등이 포함될 것입니다. 특히 현재와 같은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무엇보다도 경제적인 부에 대한 유혹일 것입니다. 만일 내게 엎드려 물신, 즉 맘몬에게 절하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주겠다. 이처럼 달콤한 유혹이 어디 있을까요? 이러한 상황이 처해진다면 저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까짓 거 눈 한번 딱 감고 그냥 경배하고 세상의 모든 것을 갖자. 너무나 달콤한 유혹입니다. 하느님을 부인하고 직장에서 승진하여 부와 권세를 얻자. 교회 한 번 빠지고 편안하게 자면서 건강을 챙기자. 하느님을 부인하고 맘몬을 섬겨 막대한 부를 얻어 한번뿐인 인생 편안하게 잘 살아보자. 보통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고 실천에 옮길 것입니다.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달콤한 유혹입니다.
저도 이런 생각을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돈 많이 벌어 좋은 집에서, 넓고 고급스런 아파트와 고급차를 가지고 편안하게 살고, 직장에서도 승진하여 많은 직원들을 거느리고, 조직에서 수장이 되어 권력과 명예를 얻어야겠다. 이런 생각들이 가끔씩 머리에 스쳐갑니다. 무한경쟁 속에서 하루하루를 정신없이 살다보면 어느새 저도 모르게 맘몬이 제 마음 속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현대인에겐 너무도 빠지기 쉬운 유혹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단의 세 번째 유혹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사탄아 물러가라, 성서에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고 하시지 않았느냐?”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150여만명의 국민기초생활수급권자와 420여만명의 저소득층이 존재합니다. 4인가족 기준으로 볼 때 1,0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저소득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한 540만명이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하루하루를 연명하며 힘들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안타까운 사연 하나를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이 가정에 아버지는 안 계시고 어머니는 난치병으로 거동을 할 수 없습니다. 어린 형과 동생이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데 이제는 중학생이 된 형이 어머니의 대소변과 수발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경제적 수입이라곤 국가에서 지원해 주고 있는 약간의 생계비 정도입니다. 그래도 중학생 남자 아이는 어머니가 곁에서 살아만 계시라고..그것이 자기에게는 가장 큰 행복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어린 아이들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요? 이보다 더 가슴 아픈 사연을 가진 우리의 이웃들이 바로 우리의 곁에서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차가운 겨울을 난방이 되지 않는 비닐하우스에서 길거리에서, 쪽방에서, 판자집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이웃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사탄의 편하게 살라는 달콤한 유혹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사탄아 물러가라, 성서에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고 하시지 않았느냐?"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를 섬기라 하는 것은 다 아시다시피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 사순절을 맞아 목사님께서 정해주신 성서 읽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마르코 복음 4장에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가 있습니다.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은 길바닥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쪼아 먹고, 어떤 것은 돌밭에 떨어져 햇볕에 말라 버렸고, 어떤 것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져 열매를 맺지 못하였지만, 어떤 것은 좋은 땅에 떨어져 싹이 나고 잘 자라 열매를 맺었는데 열매가 삼십배, 육십배, 백 배가 된 것도 있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씨는 하늘나라에 관한 말씀으로 길바닥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사탄에게 그것을 빼앗겨 버리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또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다는 것은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과 그 밖의 여러 가지 욕심이 들어와서 그 말씀을 가로막아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씨가 좋은 땅에 떨어졌다는 것은 그 말씀을 듣고 잘 받아들여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이번 사순절 기간 동안 하느님의 나라를 앞당기는, 어려운 이웃을 위해 할 수 있는 조그마한 것 한 가지라도 실천해 보는 뜻 깊은 시간들을 갖고 또한 나눌 수 있는 우리 향린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예수님이 왜 고난을 당하셨는지, 오늘의 예수는 쪽방에서, 비닐하우스에서, 길거리 한 모퉁이에서 살고 있지는 않는지, 우리는 무심코 이런 예수들을 지나치면서 화려한 불빛만을 쫓아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지, 다함께 고민해보고 결단하는 사순절이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