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달라 마리아 코드

- 치유를 여는 비밀 번호 -


현 경 교수(미국, 유니온 신학대학원)



안녕하십니까? 향린교회 교우 여러분!

저의 대학시절, 이곳에서 민중 신학 강좌와 민주 집회 등을 통해 예언자적 그리스도교 전통을 배웠습니다. 그 후에도 한국적인 예배, 통일신학의 문을 열려고 노력하시는 여러분들 앞에서 설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을 영광으로 여기며 마음깊이 감사드립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막달라 마리아 코드에 대해 묵상해 보고 싶습니다. 이 설교 제목은 요사이 문제가 되고 있는 다빈치 코드에 대한 신학적 답변을 위해 제가 생각해 본 코드 입니다. 신문을 보니 다빈치 코드의 한국 번역본이 이미 삼백만 부가 팔렸다고 하고 세계적으로 이 책은 삼억 부가 팔렸다고 합니다. 저도 이 책을 읽었고 영화도 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 작품이 그렇게 문학적으로 훌륭한 책도, 영상 적으로 완성도가 있는 영화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왜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에 이토록 예민한 반응을 보이며 관심을 표하는 것일까요? 무엇이 문제가 되는 것일까요?

표면적으로 보면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았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고 합니다. 수많은 세상 사람들이 거의 다하는 여자와 남자가 사랑해서, sex하고, 결혼하여 아이를 낳은 게 왜 그렇게 문제가 되는 걸까요? 저는 미국과 한국의 보수 기독교인들이 다빈치 코드를 판매 금지시키려는 움직임들을 관찰하면서, 진짜 문제는 전통 기독교의 성에 대한 이해와 여성의 리더 쉽에 대한 불편함에 근거한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여성신학자의 눈으로 보면 막달라 마리아는 기독교의 많은 역사적인 병을 치유할 수 있는 비밀번호(Pin Number)를 가지신 분입니다. 여러분이 주일학교에서, 교회에서 배운 막달라 마리아는 어떤 여자 입니까? 가장 대중적인 버전은 회개한 창녀 입니다. 그녀는 행실이 나쁜 여자인데 예수님께 와서 울며 그의 발에 입을 맞추었고 비싼 향유가 들어 있는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신의 긴 머리로 그분의 발을 닦아준 죄 많은 여인 입니다. “죄가 많은 곳에 용서와 사랑이 넘친다.”는 기독교의 가르침을 체화한 상징이 바로 막달라 마리아 입니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정말 창녀였을까요? 성경본문과 성경에서 제외된 외경에서 나오는 막달라 마리아의 모습은 여러 모습입니다. “막달라 마리아=창녀”라는 증거는 성경의 어디에도 없습니다. 마태, 마가, 요한복음은 향유를 부은 여자가 “나쁜 여자”라는 말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직 루가복음에만 “행실이 나쁜 여자”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리고 예수의 몸에 향유를 부은 부위도 마태 마가에서는 예수의 머리이고 루가, 요한에서는 예수의 발입니다. 루가, 요한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루가에서는 여자의 눈물이 예수의 발을 적시니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그것을 닦고 발에 입을 맞춘 후 향유를 부었고 요한에서는 향유를 예수의 발에 뿌리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기름을 닦습니다. 성경이 쓰여 진 연대가 뒤로 갈수록 이 본문이 에로틱사이즈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리아 복음서와 도마복음서에는 다른 막달라 마리아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녀는 예수가 입맞춤으로 인사하는 유일한 제자였고, 아무도 모르는 숨겨진 하늘의 비밀을 예수가 직접 전수한 가장 사랑받는 제자였고 끊임없이 베드로가 질투하는 여자사도였습니다. 마리아 복음서와 도마 복음서는 성경이 정경화되는 과정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에 일반 기독교인들은 가장 중요한 제자였던 막달라 마리아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회개한 창녀, 막달라 마리아는 6세기 로마의 교황 그레고리1세에 의해서 조합된 가톨릭교회의 오피셜(official) 버전입니다. 흑사병이 돌고 있던 유럽에서 하느님의 죄인에 대한 크신 사랑과 은총을 강조하기 위해 독신 이었던 교황 그레고리1세는 성경의 모든 이야기들을 조합해 회개한 창녀라는 막달라 마리아를 구성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몸-성-악-죄-병-여성’ 이라는 이미지와 ‘영-금욕-선-용서-치유-남성 성직자’라는 이미지를 대칭 시키며 흑사병에 의해 신앙을 잃어가는 유럽인들 사이에 강력한 가톨릭교회를 세워 나가려 했던 것입니다. 이 6세기 교황에 의해 조합된 막달라 마리아의 이미지는 지난 14세기 동안 기독교인들의 의식, 무의식을 지배 했고 이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강력한 운동이 20세기에 여성신학 이란 이름으로 대두 되었습니다.

여성신학자들은 가장 중요한 사도였던 막달라 마리아를 다시 살려내려 합니다. 그녀는 창녀가 아니었고 예수의 장례를 준비했던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녀는 모든 남자 제자들이 다 도망갔을 때, 끝까지 남아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증언한 첫 사도였습니다. 그녀는 예수가 부활하였을 때 처음으로 ‘마리아’하고 이름 부른 예수의 가장 가까운 동역자 였습니다. 성스러운 제사장을 창녀로 만들고 강력한 지도자 여성을 음란한 죄인으로 만든 것이 가부장적 기독교 교회와 신학의 역사였습니다. “부티가 나면 영티가 빠진다.”고 기독교가 4세기부터 로마제국의 종교가 되면서 이 세상의 권력과 결탁했습니다. 가부장제와 제국의 결탁은 건강한 몸, 성, 여성을 죄, 유혹, 창녀로 만들었습니다. 그 후 막달라 마리아의 이야기는 억압되고 무시된 성, 몸, 여성들에게 온갖 악과 죄를 투사하는 성스러운 포르노그래피(Holy pornography)의 온상이 되었습니다.

다빈치 코드는 21세기에 다시 터져 나온 교회의 성과 여성 억압에 대한 보통사람들의 반항적 함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 인간도 진리를 말하지 않을 때 돌들이 소리치듯이 교회가, 신학이 진실을 말하지 않을 때 소설이, 영화가 소리를 지르는 것입니다. 여성신학의 가장 큰 공헌은 몸, 성, 감성 그리고 모든 그림자적인 어두움을 빛으로 몰아내려 했던 가부장적 기독교 전통에서 몸, 성, 감성, 그림자의 거룩함을 제시 하면서 분열되고 억압된 기독교를 치유하려 한다는데 있습니다. 여성신학은 여성과 남성성이, 물질과 영성이 성(sex)과 성(Holiness)이 정치경제적 매일의 현실과 종교적인 영성이 분리되지 않는 종교, 신학, 영성, 문화를 만들려는 노력입니다. 제사장이었다가 타락한 창녀로 모함이 된 막달라 마리아를 다시 위대한 사도로 살려내는 것 여기에서 우리는 부활을 경험합니다. 여기에 거짓된 기독교로부터 참기독교로 돌아가는 하나의 비밀 코드, Pin Number가 들어 있습니다.

건강한 상상력이, 건강한 사람이 건강한 기독교를 만듭니다. 그리고 건강한 기독교가 건강한 사람과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막달라 마리아 사도를 통해, 그녀가 보여주시는 비밀 코드를 통해 저는 여러분 모두가 그리고 이지구가 예수님이 약속하신 그 풍성한 삶을 누리시길 기도 합니다.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