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 4, 1 - 11 : 에페소 3, 1 - 7


조  헌 정 목사



향린의 개혁과 영성의 길이란 제목으로 지난 두주간의 연속 설교를 드렸고, 오늘 세 번째 같은 제목으로 연속하여 하늘 뜻을 펼치고 있습니다.



[뜨거운 반응]



그런데 요즘처럼 하늘뜻펴기에 대해 뜨거운 반응을 본 적이 없습니다.‘이건 개혁이 아니라 혁명이다.’ 라고 말씀하신 권사님도 계시지만, 많은 얘기를 나눈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적극적인 동의파가 있는가 하면, 이게 무슨 소리냐? 우리보고 다 나가라는 얘기냐? 하는 반대파도 있고, 이게 어찌 진행될 것인가? 하는 관망파도 있습니다.




본래 변화나 개혁이라고 하는 것이 항상 그렇듯이 나이가 많으신 오래된 교우들은 대체로 반대파에 있고, 새로 온 젊은 교우들은 대체로 동의하고 있습니다. 잘못하면 신구간의 갈등을 유발하게 할 수도 있겠다고 하는 우려도 있지만, 제가 제기하는 것이 좌우의 이념논쟁도 아닐뿐더러 워낙 향린교우들이 뛰어난 분들이기에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리하여 지난 주일에 모인 일산구역에서는 공식적으로 저에게 건의서를 보내오셨습니다. 이 내용을 곧 공개하겠습니다만, 그런데 감성적 반응은 이렇게 뜨거우면서도 행동을 동반한 실제 반응은 또 여전히 미약합니다.




왜냐하면 지난 주 하늘뜻펴기 말미에서 제 의견에 동의하시는 분들에게 손을 들게 하였고, 20분은 족히 넘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분들에게 지난 주 수요기도회 후에 한번 모임을 갖자고 초청을 했는데, 한 분만 참석하셨습니다. 물론 제가 일방적으로 시간을 정했기에 그럴 수는 있습니다만, 그래도 댓 명은 참석할 것으로 기대했던 저로서는 실망이 되었습니다.




아마 이 얘기를 듣는 순간 어르신 교우분들께서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그러면 그렇지 53년의 역사를 가진 이 향린교회에 무슨 일이 생기겠어. 지난 17,8년 전 홍근수목사님 때도 외부에서는 군사독재 국가권력이 교회를 깨려 하고 내부의 갈등 또한 심화되어 시무장로님 11명 중 9명이 나가고 교인 반이 나갔어도 교회는 건재했었지. 향린교회의 저력을 모르는 조목사 괜히 혼자 설쳐된거야.”  그렇습니다. 아마 어쩌면 저 혼자 설쳐대다가 사그라질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향린교회뿐만이 아니라 남한교회로서도 매우 불행한 일이 될 것입니다.




우선 일산구역이 제게 보낸 이메일의 내용을 한번 보겠습니다.



[건의 사항]



1. 목사님께서 두 주일에 걸쳐서 하신 설교 내용의 진의를 보다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현재 목사님의 설교 내용의 이해가 교인들 마다 각각 다른 관계로)



2. 향린교회의 선교활동의 다양화를 위하여 선교 담당자를 두고, 교인 특성에 맞는 선교정책의 다양화를 추구하여 자발적으로 참여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설명이 많이 필요함)



3. 교회 형식을 바꾸는 중대한 일은 당회 목회위원회에서 합의된 의견을 가지고 교인들에게 제시되어야 할 것 같다.



4. 재정적인 문제나 선교정책과 같은 문제 등, 여러 가지 중요한 현안들을 내부에서 잘 정리하여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5. 교회 재정을 담당하는 분들께서는 재정적인 지침을 교인들에게 제시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6. 교인 모두가 교회를 만들 사람들이 아니므로 교회관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상.




오늘 저의 하늘뜻펴기는 여기에 대한 답변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오늘 질문은 선교나 재정에까지 폭넓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우선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이렇게 저에게 공식적으로 건의사항을 보내주신 일산구역원 여러분께 뜨거운 감사를 드립니다.




[다양한 이해와 교회의 본질]



우선 두 주간의 저의 얘기에 대해 듣는 사람마다 제각기 이해가 다른 것은 사실입니다. 하긴 부부 두 사람이 나눈 대화도 했느니 안했느니 논쟁을 하는 판인데, 30분을 넘겨 여러 가지 얘기를 다룬 하늘뜻펴기에 대해 의견이 다른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말이라고 하는 것은 본인이 이해할 수 있는 만큼 들리는 것이고, 또 이해가 된다 하더라도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골라서 기억하기 마련이고 그것도 자기 머리 구조에 맞춰 포맷을 바꿔 기억하기에 같은 얘기를 들어도 다 다르게 이해합니다.



어떻게 다른가? 어떤 분은 아까 이야기를 했듯이‘모두 나가서 교회를 개척하라는 말로 알아들으신 분’이 계신가 하면 어떤 청년은 말하기를 ‘저는 목사님의 말씀을 내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느님 앞에서 하듯이 깨어있는 영적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손을 들었습니다.’ 하는 분도 계십니다. 교회를 개척하는 시기에 대해서도 어떤 분은 한 3개월쯤으로 짧게 보는 분도 계시고, 3년이나 5년 넉넉하게 잡고 있는 분도 계십니다. 좀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집사 장로도 없는 평신도 교회를 주장하는 분도 계실 것이고 그래도 목사는 있어야 한다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얘기를 보다 쉽게 풀어가기 위해 일산구역에서 저에게 던진 마지막 질문 곧 교회가 무엇이냐?는 교회 정체성로부터 얘기를 시작하고 싶습니다. 교회를 다른 말로 설명할 때 가장 가까운 단어들이 무엇일까요? 다음과 같은 단어들이 나왔다. -그리스도의 몸, 공동체, 선교, 예배, 친교, 사회개혁의 주체, 하느님 나라, 진리 등-




여러분의 투표에 따르면 교회 본질을 설명하는 단어는 그리스도의 몸 혹은 공동체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향린교회가 과연 그리스도의 몸,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이 얼마나 확고한지에 대해 자신이 없습니다. 단적인 예가 새 교우들의 신앙상태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새교우 등록 현황]



부목사님과 함께 제가 부임하면서부터 등록한 교인들의 현황을 파악하여 보았습니다. 2003년도에 42명 2004년도에 36명 2005년도에 48명 2006년 전반기에 38명입니다. 예배참석 신도회 부서 구역의 참여와 헌금 등을 기준으로 ABCD 로 구분하였습니다. A그룹은 교회에 정착한 사람들을 말하고 B는 예배는 참여하지만 다른 활동에는 참여가 없으므로 장기적으로 볼 때 교회에서 떨어져나갈 가능성이 농후한 사람들이고 C는 이전에는 예배에 열심히 참여하였지만 최근 몇 달 동안 예배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이니까 D는 이미 나오지 않는 사람입니다.





 연도


 등록숫자


 남자:여자


 연령비(30대전후)


 탈락 비율(C,D)


 실정착율(A)


 2003


   42명


  24: 18


 28:14  (2:1)


   49%


   23%


 2004


   36명


  20: 16


 26:10  (2.6:1)


   48%


   33%


 2005


   48명


  20: 28


 36:12  (3:1)


   38%


   38%


06(전)


   38명


  18: 20


 29:9   (3.2:1)


   21%


   42%


 전체


  164명


  82: 82


 


 


   34%(평균)




이상과 같이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는 빼고 지난 3년간의 등록교인들의 실제 정착율은 평균 34% 였습니다. 이를 만약 5년 혹은 10년으로 햇수를 높인다면 그 비율은 20%로 10%로 떨어질 것입니다. 향린교회는 지역교회가 아니기에 지나다가 들리는 철새교인들은 한 명도 없습니다. 그리고 향린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모르고 등록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향린교회가 지향하고 있는 민족통일, 사회참여, 신앙의 진보성과 정관을 통한 민주적인 목회방향에 대해 분명히 알고 등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착율이 이렇게 낮은 것은 무슨 이유인가?



물론 이런 질문에 대해 공개적으로는 아니라 하더라도 이렇게 답변하시는 분도 많습니다. 교회라는 게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는게고 그중에서 의지가 있으면 남아 있는 게지. 그리고 언제 우리가 오라고 했나. 제 발로 왔다가 제 발로 가는 거야 당연한 일이지. 오는 사람 붙잡을 필요도 없고 가는 사람 말릴 필요도 없는 것이 향린교회의 보이지 않는 원칙이야.




개인의 자유라는 측면에서는 옳은 얘기이지만, 공동체라는 관점에서는 잘못된 일이기도 합니다. 이웃사랑을 말하면서 실제 자기 곁에 함께 신앙생활 하겠다고 하는 사람에게조차 관심과 배려를 보이지 않는다면 이게 말이 되는 것인가? 성서에도 있듯이 눈에 보이는 형제사랑도 못하면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가식적이지 않는가?




또 가족개념으로 보았을 때, 새 교우는 갓 태어난 아기입니다. 어떤 어머니라도 자식이 한 인격체라고 해서 네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내버려두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가 독립된 존재로 서기까지는 그를 사랑과 희생으로 양육하는 것이 부모로서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향린교회가 교회의 본질성 곧 공동체성 확보에 대해 그리 큰 자신이 없습니다. 물론 교회가 커지면 이건 어쩔 수 없는 면입니다. 교회라는 게 일주일에 한번 목사님의 좋은 말씀 한번 듣는 장소로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만, 그러나 여전히 그렇게 생활하는 사람이 상당수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요 공동체라면 서로를 새가족으로 보고 인정하는 부분에서 상당히 미흡합니다.




[20대와 30대 새교우에 대한 미래적 전망]



현재 등록 현황을 보면 등록숫자도 증가하고 있지만, 30대 이하와 40대 이상의 비율이 3년 전의 2:1에서 올해 3.2:1로 점점 젊어지고 있습니다. 이미 20대와 30대의 등록이 80%에 육박하고 있다. 저는 여러분에게 이러한 변화에 대해 향린 교회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를 묻고 싶습니다.




만약에 교회가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이고 내가 사장이라면 난 당연히 20대와 30대의 고객을 이해하고 그들이 원하는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회사 중역과 경영진에 2,30대 사람들을 최소한 반 정도는 참여시켰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 회사의 미래가 보장되니까요. 지난 주 중학교 때부터 함께 신앙을 나눠온 미국에 사는 감리교목사를 만났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말하기를 한국의 젊은이들을 이해하기 위해 ‘웃찾사’라는 프로그램을 두 번 보았는데 도대체가 왜 웃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너희들은 이해하느냐? 고 묻더군요. 제 친구들 가운데 한사람도 이해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친구 목사가 말하기를 내용이 천박한 것이 아닌가 하고 비판적으로 말하자 한 친구가 말하기를 ‘그게 바로 네가 늙은 증거’라고 단박에 반박을 하더군요. 저도 젊은이들을 이해하기 위해 한두 번 보았습니다만, 오래전에 포기했습니다. 물론 어느 시대에나 50대가 십대를 이해한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자라서 향린교회의 한 일원이 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2,30대와 4,50대는 단순한 시간의 차이가 아니라 실제 사고형태에 있어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블로그를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이를 통해 세상과 대화하는 세대와 신문과 전화에 의존하는 세대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일일연속극’을 보는 세대와 ‘웃찾사’를 보고 즐기는 세대는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이질적 세대입니다. 같은 쌀밥을 먹고 같은 언어를 사용하며 같은 땅에 살고 있지만, 완전히 다른 종족입니다. 기업가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 고객을 향해서는 두개의 서로 다른 회사를 운영해야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교회는 이렇게 할 수는 없을 뿐더러 공동체로서 함께 가야하는 신앙적 부름이 있습니다. 이 두 서로 다른 종족이 공존하려면 이해를 전제로 서로의 양보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양보를 말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교회를 오래 다닌 사람들은 교회 구조가 바뀌면 불편할 따름이지 그것 때문에 교회를 떠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교회라는 주인의식이 있고 그 나이에 다른 교회에 가서 새로 적응한다고 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사람들은 자신들과 맞지 않으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자기 교회라는 주인의식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 교회라는 신뢰와 확신이 들 때까지는 계속 관망할 것이다. 이 신뢰와 확신은 리더쉽이 함께 공유될 때에야 생기고 누군가 자기를 위해 희생한다고 하는 것을 느낄 때에 생깁니다.



 가장 앞서간다는 향린교회의 현재 구조를 보십시오. 30대가 당회 안에는 한 명도 없고, 목회운영위원회는 25명 중 불과 3명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내는 것을 별로 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노는 물이 달라 별로 할 얘기가 없습니다. 그리고 의견을 낸들 다수가 50대 이상인 그 자리에서 자신들의 의견이 채택되지 않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렇다면 고의라도 50대가 그들의 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해야 하지만 그런 노력을 별로 보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