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과 빈 마음

창세기 2, 1 - 3 : 마태오 5, 1 - 3

김 영 목사

여러분 안녕하세요. 정말 반갑고 정말 고맙습니다.
제가 2년 전에 이 자리에서서 작별인사를 드리고 갔었는데, 이렇게 여러분이 큰잔치를 열어주셔서 이렇게 다시 오게 되었습니다. 제가 향린을 떠났는지 안 떠났는지 헷갈릴 정도로 갔다가 또 오고 갔다가 또 오고합니다. 지난 2년 동안 가서 코네디컷 주에 있는 다니엘슨이란 타운에서 목회를 열심히 하고 왔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을 만나면서“가신지 얼마나 됐죠?”
더러는 “어떻게 벌써 안식년을 받죠?’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제가 지난 2년 동안 하느님의 은총으로 목회를 열심히 하면서, 제가 갈 때는 여러분들과 인사를 나누며 몇 년 동안 쭉 목회를 신나게 하고 은퇴를 하리라 마음먹고 갔었는데, 다시 한번 하느님께서는 저의 계획을 무시하시고 하느님의 계획대로 일을 바꾸셨습니다. 제가 뜻하지도 않았던 안식년을 선물로 주셔서 여러분을 찾아뵐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지난 여름 연합감리교회 연합회를 하면서 선물을 받은 것은 미국연합감리교회의 50주년 여성 안수역사를 기념하면서 제가 한국여성으로는 미국 연합감리교회에서 최초로 안수를 받았고 백인교회 목회를 처음으로 시작한 사람이라고, 역사적인 디딤돌을 놓았다고 축하를 많이 해주고 그와 함께 저희는 안식년을 할 때 교회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전 교단에서 목사님들의 투표로 결정을 하게 되는데 제가 뜻밖의 안식년 1년을 받게 되었습니다. 안식년에는 해야 할 일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는데, 첫째 목사가 하지 않아야 할일은 설교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조 목사님은 이길 수가 없어서 여기 섰는데 (안식년 법에 위배 되는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한참 괴로워했지만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안식법을 깨뜨리셨기 때문에 제자로서 ‘괜찮겠다.’하고 빚진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제가 안식년을 처음 받으면서 제 마음 속에 다가오는 이미지가 있었습니다. 제가 신학교를 다니는 동안에 교수님 한분이 제가 고달프게 사는 모습을 보고 ‘신학교 다닐라, 목사 부인 할라, 애들 3명 키울라, 다른 직업 할라’ 이렇게 대여섯 가지를 하는 것을 보고 딱한지 "영! stop! 꽃 냄새 좀 맡아” 하는 이야기를 25년 전쯤에 들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안식년을 시작할 때 그 기억이 제일 먼저 다가왔습니다, 내가 안식년 동안에 무엇을 할까. 안식년을 신청할 때는 이런 저런 공부 계획을 쭉 세워야 하고 여기저기 근사한 여행 계획을 세워야 그게 안식년을 잘 보내는 방법인데, 저는 여기저기 다 가보았고 공부도 많이 해봤다고 생각하기에 저는 그냥 아무것도 안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래도 무엇을 해야 할까 생각하던 도중 제일 먼저 ‘멈춰서 꽃의 냄새를 맡아라.’ 이 말이 저한테 다가왔습니다. 바쁘게 살다보면 예쁜 꽃이 있어도 가서 냄새 맡을 시간이 없습니다. 제가 구기동 사택에 살 때도 밖에 장미가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그 말이 생각 날 때마다 멈춰서 집에 오갈 때 마다 장미 향기를 맡고 했던 적이 있는데, 너무 쉽고 간단한 일인데 그게 어려운 일이 됩니다. 시간이 없다는 것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안식년에 숨쉬는 방법을 배우고 꽃 냄새를 잘 맡는 이 두 가지를 잘하면 제가 안식년을 잘 보냈다고 생각이 들 것 같습니다.

먼저 숨쉬기 이야기를 하자면 저희가 숨쉬는 방법을 많이 잊어버려서 아기일 때는 숨을 잘 쉬고 복식호흡도 잘하고 머리 호흡도 잘하고 여러 방법들을 다 할 줄 알았는데 커가면서 다 잊어 버려서 지금 많은 현대 인 들이 센터에 가서 돈을 내고 앉아서 배우게 되었습니다. 긴 큰 숨을 3번만 쉬면 모든 것이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심호흡 세 번을 하고 삼위일체와 함께 하는 것이지요. 홍 목사님은 “왜 돈을 주고 가서 숨쉬기 운동을 배우느냐?” 하는데 제가 깊은 숨을 쉬어보니 어떤 경험을 하게 됩니다. 많은 숨을 쉬었다가 끝까지 모든 숨을 내쉬어 보면 내안에 아무것도 없이 다 내어보게 되면 우주가 내 것이구나. 하는 느낌이 듭니다. 왜냐하면 내가 남김없이 다 주고 나서, 마음이 싹 비워지니깐 우주가 내 것이 됩니다. 이 말은 당신이 내 것이네. 라는 말도 됩니다. 하느님이 왜 “너희는 내 백성이다 내 자녀다.” 하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이 모든 것을 다 주셨으니 “너희는 내 것이다.”라고 말하신 것입니다. 다 주기 전까지 내 것이라 말할 자격이 없는 것 같습니다. 교회에서도 저희들이 모든 것을 다 바친 다음에 이것은 “나의 교회이다.” 라고 할 수 있는 것이고, 자녀들에게도 다준 다음에 “너희들은 나의 자녀다.” 이 말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 이기적으로 자기를 위해 살면서 너희들은 나의 것 이다,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안식년 동안 숨쉬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또 제가 하고 싶은 것은 제가 참 복잡한 사람인데(단순한 사람하고 살려고 하니깐 힘들었습니다.)굉장히 복잡하고 생각을 너무 많이 하고 계획도 자세히 하고 너무 복잡하게 살다보니 단순하게 사는 방법을 이제라도 배웠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단순하게 산다는 것에는 여러 가지가 포함이 되어있습니다. 먼저 복잡한 생각도 없어져야 하겠고 여러 자질구레한 짐들도 정리를 해야 하겠습니다. 이사를 자주 하다 보니 지저분한 짐들 속에서 저를 보면서 왜 이렇게 복잡하게 사는지, 내가 회심을 하지 않고는 복잡한 인생을 버리고 새로운 인생을 살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며 단순한 사람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한 가지가 필요하다고 하시며 마리아, 마르다 에게 하신 말씀을 떠올려 봅니다. “마리아야! 너는 왜 이렇게 여러 가지에 신경을 쓰느냐” 하는 말씀을 되새겨 봅니다. 단순하게 산다는 것은 물론 보이는 짐들을 정리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보이지 않지만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많은 짐들, 과거에서부터 쌓아온 정리하지 못한 것들 그것도 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보이는 상자 안에 들어있는 짐보다 더 무거울 수 가 있습니다. 그러한 것들을 정리해야 합니다. 제가 못한 것을 여러분들께 하자고 하는 것이 우스울 수도 있지만 같이 하자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이 모든 것을 버리고 단순하게 사신 삶이 아닌가 생각하면서 제 삶을 고민해봅니다. 예수님 설교를 보면 우리들 같이 복잡하게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설교를 잘해서 사람을 감동시키려고 하는데 예수님은 “들에 핀 백합화를 보아라, 공중에 나는 새를 보아라. 뭐 먹을까 뭐 입을까 걱정하느냐.”라고 단순하게 설교 하십니다. 우리들이 서재에 들어앉아 컴퓨터를 부여잡고 수많은 책을 뒤지고 하는 것과 달리 쉽고 간단하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같이 설교 한다면 제가 “여기 최영숙 장로님께서 꽂아놓은 이 꽃을 보십시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이렇게 하면 됩니다. 예수님의 설교를 귀담아 듣고 삶에서 그런 것을 보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설교하기 전에도 내가 설교를 해야 하는지 고민을 했습니다. 가끔 설교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설교를 준비해서 해야 한다는 것은 별도이고 과연 내가 ‘설교할 자격이 있나’ 이런 고민이 있습니다. 제가 목사안수를 받은 것이 22년이고 전도사 때부터는 40년 동안 제법 설교를 많이 했는데도 불구하고 설교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과연 내가 자격이 있겠는가.’ 특히 향린교회 와서 보면 여러분의 삶이 저에게는 설교인데 내가 서서 설교를 해야 한다는 것이 잘 생각해 보면 맞지 않는 것이라 여겨지고 어색합니다.

단순하게 살아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마음을 비워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매일 듣던 이야기지만 제가 다시한번 상기해드리는 의미에서 마음을 비우지 않으면 쉼이 없습니다. 생각과 마음이 가득 차 있으면 쉬지를 못하고 피곤합니다. 내일 생각, 모레생각, 내년, 10년 후 생각 그리고 뒤를 돌아서 작년, 재작년 생각. 이렇게 앞으로 뒤로 복잡하면 마음을 비우지 못하면 인생이 무겁고 과거를 떨쳐버리지 못하면 쉼이 없습니다. 하느님이 앞으로 알아서 해주시겠지 내가 아무리 계획을 해도 역시 하느님의 뜻대로 알아서 되겠지 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하느님이 창세기 말씀에 일주일에 육일동안 일을 마치시고 일곱째 날 나도 쉬어야겠다고 하시며 만드신 모든 것들을 축복해 주시고 그날을 거룩하게 하셨다고 하신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거룩하게 하셨다 이게 무슨 뜻이겠습니까? 거룩하다는 것은 하느님이 거기 재림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날을 거룩하게 하셨다는 것은 성별하셔서 이날만은 우리가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 모든 하던 일을 내려놓고 일주일 내내 교제하지 못했던 하느님과 교제하는 날입니다. 그날 하루 안식일에는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 잃었던 것, 하느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는데 일주일 내내 일하느라 다 파괴하고 인간관계가 깨져서 상처받고 했던 것을 그날은 다 내려놓고 하느님과 함께 원점으로 돌아가서 항상 다시 새로 시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안식일은 새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주게 됩니다. 단지 그냥 쉰다. 그냥 아무생각 없이 그냥 앉아 쉰다는 것이 아니고, 굉장히 엄청난 것입니다. 거룩한 날에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 잃었던 것을 회복하는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깨버렸던 이유는 다른 사람들은 안식일을 법적으로, 제도적으로만 지켰기 때문입니다. 머리카락도 세지 않고 빗지도 않고, 불도 켜지 않고. 그래서 금요일 오후가 되면 예루살렘에는 4시에 버스가 다 끈깁니다. 안식일에 먹을 것을 다 준비해서 손가락도 까닥하지 않고 먹을 수 있는 것들로 준비하고 심지어는 냉장고 문을 열어 불이 켜지는 것도 죄로 여깁니다. 이렇게 문자적으로 안식일 제도아래 사람들이 살아갑니다. 사실 안식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수많은 국경일 종교적 공휴일 중에 안식일만 십계명에 들어있고 심지어 안식일을 범하면 죽여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것 때문에 예수님이 안식일에 사람을 고쳤을 때 유대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심 한 것입니다. “안식일에서 사람을 고치다니...”, 그것 때문에 예수님께서 “안식일이 너희를 위해 있느냐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느냐.” 질문을 하십니다. 예수님은 마음을 비우면서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시길 원하셨습니다. 창세기를 다시 읽고 생각할 때 우리는 우리의 사명을 이야기 하면서 나는 목사, 의사, 교사 등의 소명을 받았다고 소명감을 가지고 일을 합니다. 물론 그러한 소명을 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런데 소명 중에 우리가 기억을 못하는 것은 쉬는 것도 소명이라는 것입니다. 일주일에 육일을 일하라고 각자의 소명을 부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하루는 거룩하게 꼭 지켜라. 하루는 안식을 해라. 이것도 소명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데 일만하는 소명만을 생각하고 일만 죽어라고 하니 스트레스를 받고 병에 걸리게 되는 것입니다. 쉬지 않고 일만하던 사람은 쉬면 병이 납니다.(그런 사람이 우리 집에 있습니다) 일하는 것만이 소명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고 쉬는 것이 더 거룩한 소명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쉰다는 것은 아무것도 안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회복하는 시간입니다.

노자의 도덕경에 ‘무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그 사람들 에게는 중요한 철학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그 상태가 게으른 상태가 아니라 우리 기독교인들 안식과 맞먹는 것입니다. 요즘 미국과 같이 서양 문화권에서 중국 문학과 중국 철학에 관심을 갖고 영어로 번역을 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서양 사람들이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많이 말하기 때문입니다. 중국 문학 속에서 ‘무위’와 같은 개념은 미국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너는 못 먹고 사회보장제도 안에서 겨우 살아가게 된다고 인식을 합니다. ‘무위’라는 것을 서양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아무것도 안하는 것이 어떻게 덕인가 라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국 철학 서적, 도덕경등을 번역하는데 이런 단어들을 번역할 재간들이 없어 힘들어합니다. 최근에 가장 괜찮은 번역은 ‘무위’를 영어로 ‘active quiet’ 조용히 아무것도 안하지마 게으르게 있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조용한’으로 번역 합니다. 이것도 조금 이상하기는 하지만 그나마 이 번역이 제일 낫다 평입니다. ‘무위’는 기독교에서 안식과 같은 것입니다. 여러 종교들이 이것의 가치를 인정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만히 있는 이 시간에 삶이 변하는 것입니다. 막 일할 때 변하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있는 무위, 안식, 쉴 때 삶이 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안식을 통해서 우리가 계속 변하는 것입니다. 바로 회심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새로워진다는 것입니다. 안식은 우리 자신을 회복하고 쉬면서 마음을 다 놓는 것입니다. 마음을 놓고 긴장도 풀고, 운동을 하며 아무리 훈련을 열심히 잘해도 쉬는 시간이 없으면 그건 다 헛것이 됩니다. 막 뛰고 땀 흘리고 그렇게 한 다음에 탁! 놓고 심호흡을 하지 않으면 다 소용없게 됩니다. 이 말은 우리가 일주일 내내 굉장히 열심히 하고 우리가 안식하는 날이 없으면 말짱 헛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하는 소명감을 가지셨으면 안식의 소명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어떤 유대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세상의 모든 사람이 두 번만 연이어서 안식일을 한다면 세계의 평화는 그냥 올 것이라고, 전쟁 따위는 없을 것이라고” 두 번을 모든 사람이 쉬었으니깐 싸울 일이 없게 됩니다. 쉬지 못해서 오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안식년을 주신 것을 은총으로 생각하며 쉬면서 꽃 냄새 맡으면서 지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꽃 냄새 뿐만 아니라 사람 냄새를 맡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람 냄새를 맡는 것을 어디서 배울 수 있습니까? 바로 성찬식에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받아먹고 마실 때 거기서 예수님의 냄새를 맡게 됩니다. 살과 피를 먹고 마실 때 그 냄새를 기억하고 그 냄새의 기억을 가지고 인간들의 냄새를 맡으면 이웃사랑이 따로 없는 겁니다. 우리가 냄새를 맡으려면 우리가 가까이 다가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도 안식년동안 가족냄새, 남편냄새를 맡는 것이 중요한 과제입니다. 제가 안식년 계획서에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공부도 많이 안할 것이고 여행도 실컷 해서 안할 것이고 가족한테 가서 가족 냄새 맡을 거라고 적었습니다. 제가 여기 있는 십여 년 동안 애들을 다 버려두고 왔는데 내가 미국에 까지 와서 애들과 멀리서 목회하면 안 되겠구나 가까이서 애들 냄새도 맡고 손자, 손녀들 냄새도 맡고 가까이서 남편 냄새도 맡고 해야겠구나 하고 마음먹게 된 것입니다.

인간냄새를 맡는 것을 꺼리면 큰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착하 사마리아 사람이야기 아시지요. 다 바쁘니깐 그냥 지나갔습니다. 꽃 냄새도 못 맡는 세상에 피 냄새를 맡게 습니까? 그냥 다 지나 갔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 혼자만 가까이 가서 피 냄새를 맡고 신음 소리를 듣고 행동을 취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인간의 냄새를 맡는 것은 무슨 소리가 나는 지를 듣는 것입니다. 신음소리인가, 웃음소리인가, 울음소리인가를 듣는 것 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말로 사랑한다면 가까이 가서 냄새를 많이 맡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 중에 좋은 표현이 있습니다. “냄새를 맡았나봐” 하는 말이 입니다. 뭔가 알아챘다는 말입니다. 뭔가를 알아채려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채려면 지구 저쪽에 있는 것까지 냄새를 맡아야 합니다. 그리고 냄새를 맡을 때마다 성찬의 냄새를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의 냄새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자꾸 먹는 것입니다. 잊어버릴까봐. 성찬을 먹을 때 냄새를 맡으세요. 그리고 맛을 보시고 그 맛이 어떠한가? 인생의 맛이 어떠한가? 생각하며 저쪽에 사는 저 사람은 인생의 맛이 어떤 가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성찬을 주신 것 입니다. 그냥 주신 것이 아닙니다.

제가 지난 주간에 빈 마음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봤습니다. 설교라는 그릇 안에 빈 마음의 이미지들을 가득 꽂아 드릴 테니 하나씩 뽑아가세요. 그래서 자기한테 맞는 방법이면 비우는 삶을 살아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빈 마음이라는 시를 전합니다.


빈 마음


빈 마음은 거룩한 마음,
예수의 마음, 부처의 마음,
새로 시작 하는 마음,
빈 마음은 겸손한 마음,
가난한 마음,
복 받은 마음,
빈 마음은 아무 것도 갖지 못 했으나 천국을 가진 마음,

빈 마음은,
어린이 같은 마음,
빈 마음은 `나의 것`이 없는 마음,
빈 마음은 미련 없이 모두를 놓아 버리는 마음,

빈 마음은,
가을 나무들이 자기 잎들을 날려 버리듯
가장 아름다울 때 다 털어 버릴 수 있는 마음,
가장 값이 높을 때 계산 없이 주는 마음,

빈 마음은,
항상 변화를 추구하는 마음,
한 조각 구름 같은 마음,
한 편의 시로 승화 되어가는 마음,

빈 마음은,
한 없이 주기에 끝 없이 자기를 비우는 마음,
빈 마음은 별을 보고도 따지 않는 마음,
달빛 아래서 용서를 비는 마음,
배고픔을 감사 하는 마음,

빈 마음은,
찌르는 가시를 은총으로 받아드리는 마음,
빈 마음은 하느님의 음성을 담고 싶은 마음,

빈 마음은,
아픔과 배고픔이 있는 곳으로 쏠리는 마음,
슬픈 얼굴들을 외면하지 못하는 마음,

빈 마음은,
우주의 숨결을 같이 느끼는 마음,
지구의 고통이 자기 고통이 되어 아파하는 마음,

빈 마음은,
이 모두를 담을 수 있으나 항상 비우기를 일삼는 마음,

빈 마음은 `내 것`들에 묶여 있지 않고,
아무 것에도 집착 하지 않는 마음,
빈 마음은 포기 하는 것이 얻는 것임을 아는 마음,
죽음이 삶의 길임을 터득한 마음,

빈 마음은,
남의 말을 경청 할 수 있는 마음,
자기를 벗어 날 수 있는 마음,
남과 진정으로 함께 있을 수 있는 마음,

빈 마음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말 할까 염려 하지 않는 마음,
빈 마음은 하늘을 나는 새와
들에 핀 백합화에게서 삶의 예술을 배우는 마음,

빈 마음은 낯선 사람이나 가족을,
영접하는 마음, 존경하는 마음, 이해하는 마음

빈 마음은 고요한 호수 같은 마음,
구지 바다가 되지 않아도
달과 별을 깊이 품어 줄 수 있는 마음,

그리고 빈 마음은,
설교로 사람을 감동시키려 하지 않는 마음
빈 마음은 쉬는 마음, 평화의 마음
그래서 안식을 누리는 마음
그 안식 속에서
하느님의 쉼과 연합하여
완성의 신비를 체험하는 마음

빈 마음은,
오솔길 같은 마음
하이웨이를 질주 하지 않아도
그 곳에 이르는 길

빈 마음은,
멈출 수 있는 마음,
멈춰 서서 꽃과 낙엽의 아름다움에
머리 숙이고
그 향기 깊이 들어 마시고
감사를 내 쉬는 마음,

빈 마음은,
흘러가는 마음
과거를 보내 주고
미래로부터 자유한 마음
이순간을 거룩하게 여기는 마음

빈 마음은,
하늘의 뜻을 이 땅에서
펼쳐가는 마음
지금 여기에 충실하게 사는 마음
지금 여기에
있는 마음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