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의 묵시록(2)
하늘의 신비를 엮어내는 시인
시편 89, 5-14; 묵시록 4,6-11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고백으로 박해를 받아 파트모스 섬에 유배된 종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와 사탄과의 최후의 묵시적 대결을 통해 이 땅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종말론적인 삶과 신앙을 계시하여 주셨습니다. 이 요한은 한마디로 ‘하느님의 구원역사를 통째로 꿰어볼 줄 아는 신학자였고 하늘의 신비함을 글로 엮어낼 줄 아는 시인이었고 사회변혁의 안목을 가진 목회자였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동안 요한의 묵시록에 대한 많은 오해와 잘못이 그간 그의 글을 신학자들의 손에만 맡겨 놓아 너무 문자적인 해석에 의존한 사실에 있다는 것도 말씀드렸습니다.

요한의 묵시록에 대한 잘못된 해석은 일차적으로 그를 시인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신학자들의 분위기 때문입니다. 본 훼퍼와 같이 위대한 신학자들 가운데 시인도 있어 저는 시와 신학은 함께 갈수 없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말하면 논리적이고 객관적이고자 하는 신학자들과 비/탈/논리적이고 주관적인 시인들과는 메꿀수 없는 간격이 존재합니다. 특별히 논리에 입각하여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을 만큼의 정확하고 분명한 해석을 하려는 서구 신학자들은 일반적으로 논리적이지 않는 시인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고 역으로 시인들은 신학자들이나 법학자들의 논리를 생리적으로 싫어합니다. 신학서적을 읽은 독자는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거의 이론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신학자들의 글은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근거를 제시하면서 반론을 하나하나 반박하며 하나의 결론을 끄집어내기 때문입니다.

[시인: 언어의 창조자들]

그러나 시는 같은 시를 읽은 독자들이라 하더라도 각기 다른 결론에 도달합니다. 아니 같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가 살아온 인생의 세월만큼 다르게 읽습니다. 왜냐하면 시인들은 상상의 언어를 통해 읽는 이로 하여금 더 많은 상상과 체험을 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시의 생명력이자 창조성입니다. 저는 이점에서 요한의 묵시록은 묵시문학이라는 틀 안에 가둬서 이해하고자 하는 신학적 노력에 앞서서 먼저 하늘의 신비를 글로 엮어내고 그리고 독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하느님의 세계에로 이끌어 낸다는 점에서 시인의 관점에서 읽어내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인들이 논리를 뛰어넘은 언어의 창조자들이라면 요한도 마찬가지로 논리를 넘은 언어의 창조자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이 시간에는 그의 시가 가진 시대적 의미를 찾아보고 오늘 우리 시대에 있어 이 시는 어떻게 재해석되어야 할 것인지를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지난 주에도 언급하였지만, 이 요한의 묵시록에 대한 하늘뜻펴기는 올해 초 교인설문조사에 한분이 이를 요청하였기에 이에 대한 응답의 형식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를 요청한 분은 다름 아닌 송태영씨입니다. 송태영씨는 올해 2월에도 평택미군기지 확장에 관련된 ‘트랙터 순례자들의 노래’란 제목의 민중시를 예배 시간에 발표한 적도 있지만, 최근에는 전태일문학상 시부문에서 우수상을 수상하신 시인입니다.

송태영교우는 교회를 자주자주 나오시지는 못하지만 예배를 마치고 나갈 때에 ‘잘 있습니까?’라는 인사에 대답 대신 온 얼굴이 활짝 열리는 그분 특유의 넉넉한 웃음만 치고 지나가기에 그것으로 서로 마음의 교감을 했지 말을 나눠본 적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해하기로 분명 송태영교우는 요한의 묵시록을 신비로운 종교적 환상이나 종말과 심판이라는 교리적 틀로 이해하기 보다는 하늘과 땅이 함께 어울려지는 하나의 웅장한 우주적 서사시로 보았던 것이라고. 하느님의 종 요한이 1장 3절에서 ‘듣고 본 것을 글로 남기었다.’고 고백하듯이 그도 그가 듣고 본 것을 쓰면서 제가 전하는 해석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아니면 같은지를 확인해 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환갑을 훌쩍 넘기신 어떤 목사님께서 ‘이제는 나이가 드니까 시가 절로 나온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 저도 그 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지만, 시인은 어떤 사람인가? 하는 질문을 던져봅니다. 저는 시인은 사물을 가장 원천적으로 그리고 가장 순수한 모습으로 바라보는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시집에 보니까 ‘시인은 언어를 통하여 자유를 읊고 또 자유를 산다.’([자유인 그 이름] 이윤호 최홍순 편역 문화교연 1986. 91쪽) 물론 자유를 읊고 자유를 사는 사람이 시인만은 아닙니다. 이는 모든 인간의 실존적 바램이며 향린인의 삶과 신앙의 화두이기도 합니다. 요한 또한 시를 통해, 상상의 언어를 통해 감옥을 넘어 파트모스 섬의 파도를 넘어 자유를 찾아 나선 것은 아니었을까?

그는 1장 처음 자신이 누구인지 왜 이런 글을 쓰게 되었는지를 말한 다음 바로 이어서 7절에서 시의 형식을 빌려 얘기를 전합니다.

“그분은 구름을 타고 오십니다.
모든 눈이 그를 볼 것이며
그분을 찌른 자들도 볼 것입니다.
땅위에서는 모든 민족이
그분 때문에
가슴을 칠 것입니다.
꼭 그렇게 될 것입니다. 아멘.“

거의 매장마다 시가 등장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묵시록 4장에는 두 편의 시가 나오고 이어 5장에는 3편의 시가 나옵니다. 물론 이 시는 모두 하늘 옥좌에 앉으신 하느님을 찬양하는 시입니다. 하느님을 다른 방법으로 설명할 도리가 없어 하느님의 옥좌를 둘러싸고 있는 천사들의 모습과 그 주위에 엎드린 의인들의 찬양을 그려내고 있는 것입니다.

옥좌 한가운데와 그 둘레에는 앞뒤에 눈이 가득 박힌 생물이 네 마리 도사리고 있고 그들이 온통 눈으로 덮여있다고 말하는 것은 곧 모든 만물을 꿰뚫어 보고 계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에 대한 시적 표현입니다. 여기 동서남북 사방을 지키는 네 생물 곧 옥좌를 지키는 천사의 모습은 각각의 동물의 얼굴을 갖고 있습니다. 이는 이미 6백여년전 에제키엘 선지자가 바빌론 그발강가에서 본 환상과 일치합니다. 사자는 용맹을 송아지는 힘을 사람은 지혜를 독수리는 빠름을 각각 상징합니다. 그리고 날개가 여섯이라는 이 모습 또한 이사야 선지자가 성전에서 기도하는 가운데 보았던 하느님을 모시는 천신 가운데의 하나인 스랍들의 모습입니다. ‘날개가 여섯씩 달린 스랍들이 그를 모시고 있었는데, 날개 둘로는 얼굴을 가리고 둘로는 발을 가리고 나머지 둘로 훨훨 날아다녔다.’ 얼굴을 가리움은 하느님을 직접 보아서는 안된다는 두려움의 표현이고 발을 가리움은 인간의 수치를 가리웠다는 경외의 표현입니다.

이 네 생물이 밤낮을 쉬지 않고 이렇게 찬양합니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고 장차 오실 분이시로다.’

곧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지배하시는 절대자 하느님에 대한 신앙고백입니다. 그리고 이런 찬양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이 옥좌에 둘러앉아 있던 스물네 원로들은 자기들의 금관을 벗고는 이 옥좌 앞에서 엎드리면 이렇게 찬양합니다.

‘주님이신 우리 하느님
하느님은 영광과 영예와 권능을 누리실 만한 분이십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만물이 주님의 뜻에 의해서 생겨났고 또 존재합니다.’

[Sitz im Leben: 삶의 정황]

사실 이 시적 고백과 찬양은 지금 우리에게 있어 뭐 그리 신기하거나 새로운 것도 아닙니다. 구약성서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고백이고 찬양이며 지금도 남한 땅 어디에나 교회 건물을 들어서면 찬송과 기도와 설교를 통해 쉽게 들을 수 있는 고백입니다. 우리는 향린의 고백문을 따로 고백하지만, 일반적으로 모든 교회들은 사도신조라는 것을 암송하는데, 그것의 핵심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남한교회에서 매주일 드리는 고백문과 종 요한의 고백문과 문자적으로 같다고 해서 똑같은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고백하는 삶의 자리 신학적 용어로 Sitz im Leben이 틀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금 ‘주님이신 우리 하느님 주님은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만물이 주님의 뜻에 의해 생겨났고 또 존재합니다.’라고 이를 고백하면 괜히 기분이 좋습니다. 마치 우리 아버지가 사장이면 그 회사의 모든 것을 마음대로 가질 수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하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같은 고백을 하는 종 요한에게는 이런 막연한 기쁨과는 반대로 고난 가운데 있습니다. 바로 이 고백 때문에 그는 자신의 목회지인 교회로부터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격리되어 로마의 공권력에 의해 외딴 섬 동굴 속에 갇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그런 고백을 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면 그 사람 또한 그와 똑같은 운명에 처해집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만물이 주님의 뜻에 의해서 생겨났고 또 존재합니다.’라는 말을 공개적으로 하는 순간 그는 로마 군병에 끌려 나가 매를 맞다가 죽을 수도 있고, 원형경기장에 끌려 나가 군중들의 함성 속에 사자의 밥이 될 수도 있고, 외딴 감옥에 갇힐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이 감옥 속에서 다시금 같은 고백을 반복하고 이를 서신으로 소아시아의 흩어진 교회에 보낸다면 이는 개인으로는 죽음을 각오한 믿음의 결단이지만 로마정부의 입장에서 볼 때 이는 로마의 멸망을 기원하는 다른 말로 하면 로마를 뒤집겠다는 혁명의 문서와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십시오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라는 초대교회의 외침은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일이 바로 자신에게 죽음을 가져다주는 절대절명의 상황에서 나온 외침이지 요즘같이 그런 소리를 외치면 ‘별 이상한 사람 한명 있구나.’하고 스쳐 지나가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서기 33년 팔레스틴 예루살렘 성내에서 예수라는 이름은 신성모독죄로 하늘로부터 저주받은 자의 이름이었고 땅의 영광인 로마로부터도 위험한 인물로 낙인되어 십자가에 처형당한 사형수의 이름이었다는 말입니다. 갈릴리의 예수는 저주의 상징이었습니다. 따라서 ‘주 예수를 믿으시오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라는 고백이 정말 2천년전과 같은 고백이 되려면 이 말은 다른 말로 외쳐져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들으면 이건 신성모독이다.라고 돌을 들 때, 그리고 세상 권력자들이 ‘이놈은 위험한 놈이다 잡아가둬라!’ 할 때 바로 그 고백은 2천년의 시간을 뛰어넘는 等價의 가치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럼 그 고백은 구체적으로 무엇이 될까? 지난 주 저는 묵시문학이란 바로 어두운 시대의 현실을 뚫고 나왔기에 그 안에는 자유와 혁명의 정신이 담겨 있고 바로 그런 점에서 요한의 묵시록의 글들은 자유와 해방을 갈구하는 ‘민중의 시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우리가 가깝게 기억하는 자유와 해방을 꿈꾸며 억압의 세월을 살았던 몇 명의 시인들을 생각함으로 시인 요한의 시들을 오늘에 재해석하여 보고자 합니다.

[오늘의 시인 요한들]

이름 석 자만 들어도 우리의 가슴 한쪽이 소리 없이 아픔으로 저며 오는 시인이 있습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로 너무나도 잘 알려진 윤동주입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갈구한 순수함 그 자체였던 윤동주. 그는 연희전문을 졸업하고 일제의 징집을 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일본유학을 도모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창씨개명을 해야 했습니다. 당시의 심정을 ‘懺悔錄’이란 시에서 이렇게 읊조립니다.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골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이십사년 일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는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는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일제가 강요하는 창씨개명이란 절차에 굴복한 그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서 그는 일제에 의해 망한 ’대한제국‘이란 왕조의 후예로서, 바로 자신의 ’얼골‘이 그 ’왕조의 유물‘임을 절감하면서 ’이다지도 욕됨‘을 참회한 것이다. 그리고 그가 가진 혁명적 상상력은 십자가란 제목에서 자신의 죽음을 예단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답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저렇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든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길에/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어두워 가는 길에 피를 조용히 흘리겠다는 그의 소망처럼 그는 1945년 2월 후꾸오까 형무소 그 차가운 바닥에서 27년 1개월의 한 많은 삶을 마감하고 하늘의 새로운 길을 열었습니다.

윤동주의 얼을 이어 받은 60년대 이후 박정희 군사독재에 항거하며 자유와 해방을 추구했던 많은 시인들이 있습니다만, 대표적인 시인으로 김수영과 신동엽을 생각하고자 합니다. 시인 김수영은 독재정권 아래에서의 삭막함을 단 한마디로 이렇게 정리합니다. ‘역사 안에 산다는 건 어렵다.’ 그리곤 4.19 혁명이 실패로 돌아가자 ‘혁명은 안 되고 방만 바꾸어버렸다’고 읊조리며 이렇게 그의 마음을 담았습니다.

푸른 하늘을 制壓하는/ 노고지리가 自由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修正되어야 한다.

自由를 위해서/ 飛翔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自由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革命은 / 왜 고독한 것인가를

革命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시인은 시와 자유와 혁명을 노래한다.

같은 고민을 안고 살았던 신동엽시인 또한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에서

닦아라 사람들아 네 마음 속 구름/ 찢어라 사람들아 네 머리 덮은 쇠 항아리를’ 이라고 외쳤습니다. 우리가 보는 하늘은 실은 제 마음을 덮고 있는 구름이며 우리가 말하는 자유는 자기 머리 위에 쇠 항아리를 두르고 사는 제한된 자유임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제 마음을 덮고 있는 구름은 무엇을 말하고 자기 머리를 덮고 있는 쇠 항아리는 무엇을 말할까요? 하느님이 준 참 마음, 하느님의 형상을 닮은 하늘의 마음을 덮고 있는 자기 안의 구름이란 다름 아닌 세상이 가져다 준 물질과 명예 권력에 대한 욕심과 집착이겠지요. 자기 머리를 덮고 있는 항아리는 소리를 쳐도 결국 자기 메아리에 그치게 하는 억압을 말하고 질 항아리라면 그냥 깨버리겠지만, 쇠항아리라면 깨어지지 않는 정치적 억압을 말합니다. 쇠항아리는 신동엽시인에게 있어서는 인간의 자유로운 사고와 사회적 의사소통을 막은 노예의 상태를 표현한 말입니다. 곧 이는 유신 독재 권력을 비꽈서 하는 말이었습니다. 이런 묵시적 표현방법은 곧 요한이 묵시록에서 로마의 폭력을 666으로 말하는 것과 같은 표현법입니다.

그에게 있어 시는 사랑이고 혁명이었습니다. 그래서 ‘내 일생을 시로 장식해 봤으면, 내 일생을 사랑으로 채워 봤으면, 내 일생을 혁명으로 불질러 봤으면’하고 독백합니다. 그리곤 동학혁명을 노래한 ‘금강’이란 서사시에서 불안해하는 자신을 향해서인지 아니면 당시 어둠의 독재정권을 두고 하는 말인지 ‘껍데기는 가라’고 외칩니다.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아니 이 껍데기는 한반도를 뒤덮고 있는 모든 군사무기까지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당시 지성계를 대표하던 월간지 사상계에 五賊이란 시를 발표하여 이의 폐간을 불러 온 김지하시인은 [1974년 1월]이란 시를 씁니다. 70년대를 치열하게 살아왔던 사람들은 이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다 알고 있습니다.(인혁당 허위 관련자들을 사형언도 하루만에 사형시킨 비극의 역사.)

1974년 1월을 죽음이라고 부르자
오후의 거리 방송을 듣고 사라지던
네 눈 속의 빛을 죽음이라고 부르자
좁고 추운 네 가슴에 얼어붙은 피가 터져
따스하게 이제 막 흐르기 시작하던 그 시간
다시 쳐 온 눈보라를 죽음이라 부르자
모두들 끌려가고 서투른 너 홀로 뒤로 남긴 채 먼 바다로 나만이 몸을 숨긴 날
낯선 술집 벽 흐린 거울 조각 속에서
어두운 시대의 예리한 비수를
등에 꽂은 초라한 한 사내의 겁먹은 얼굴
그 지친 주름살을 죽음이라 부르자
......
‘’‘’‘’

요즘은 활자화 시대에 인터넷 시대라 1974년 이후에 태어난 세대들도 이날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찾아내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2천년 전 그때 일어난 사건은 찾아볼 기록들이 거의 없습니다. 동시대인들에게는 매우 분명한 표현들이 지금 우리에게는 청동거울을 보듯 희미합니다. 사도 요한이 본 그분은 왜 오른 손에 일곱별과 일곱 등경을 들고 있는 분으로 묘사하는지, 그리고 왜 그분의 증인 두 사람은 일천이백육십일동안 예언을 하게 되는지 말입니다.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윤동주시인의 어릴 적 친구이기도 했던 통일꾼 시인 문익환목사님은 어떠합니까? 서울역에 가서 평양행 기차표를 달라고 하는 상상력도 놀라웁지만, 여기저기 지뢰가 깔려 있고 철조망으로 덮여 있어 접근할 수도 없는 [비무장지대]를 노래한 그의 시적 상상력 또한 놀라웁기 한이 없습니다.

비무장지대는 무기를 가지고 못 들어가는 곳
우리는 총을 버리고/ 군복을 벗어버리고 들어간다.
막걸리통들만 메고
너희도 따발총 버리고/ 계급장들 떼고 들어오너라
팔을 걷어부치고 팔씨름이나 해보자/ 누가 더 세나
모래벌을 만나면/ 씨름판이라도 벌려보자
멧돼지를 잡아라/ 황소대신에 멧돼지를 잡아라
멧돼지 고기를 뜯으며/ 바가지로 막걸리를 돌려라
여군들은 치마저고리를 입고 나오너라
40년 묵은 나뭇가지에(오늘의 언어로는 60년 묵은 나뭇가지에)
그네를 매줄테니 힘을 견주어라
날씬한 허리의 탄력으로 누가 더 높이 하늘을 밀어올리나 보자
아-- 비무장지대
너희는 백두산까지 밀어부쳐라
우리는 한라산까지 밀고 내려가리라
비무장지대 만세 만세 만세

비무장지대가 총을 가지고 못 들어가는 곳은 사실이지만, 이는 전쟁과 무력충돌의 상징이지 결코 평화의 상징이 아닌 것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시적 상상력은 상식을 뒤집어 아예 이를 평화의 마을로 바꿔 버립니다. 요한의 눈에 비친 세상은 온통 로마의 권력이 지배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 세상을 하느님이 지배하는 세상이라고 노래합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만물이 주님의 뜻에 의해서 생겨났고 또 존재합니다.’

문익환목사님의 이 비무장지대의 평화선언에 이어 우리의 향린시인 송태영교우님은 대추리대두리 농민들이 평화의 깃발을 앞세우고 전국 순례길을 떠난 2006년 2월의 그날 ‘트랙터 순례자들의 노래’에서 이렇게 생명선언을 시작합니다.

들이 운다/ 햇살이/ 바람이/ 눈비가 운다

흙이 갈라진다/ 흙이 꿈틀거린다.
흙이 일어선다./ 흙사람이 일어선다
겨울잠 거부하며 지렁이, 개구리, 땅강아지
흙을 뚫고 나와 울부짖는다.

눈이 채 녹지 않은 을씨년스런 평택 들녁에 미군 군사기지 확장과 더불어 오는 전쟁의 소리를 들으며 그는 들이 울고 햇살이 울고 바람이 울고 눈비가 운다고 말합니다. 그리곤 입춘의 봄기운에 동장군이 물러나는 소리를 들은 그는 ‘흙이 꿈틀거리고 흙이 일어서고 흙사람이 일어선다고 말합니다. 일어선다는 말은 라틴어로 말하면 surrect 입니다. 그 앞에 in을 붙이면 insurrection 이 되어 영어단어 ’혁명 혹은 폭동‘이 되고 re를 붙이면 resurrection이 되어 ’부활‘이 됩니다. 송태영시인은 지렁이 개구리 땅강아지까지 흙을 뚫고나와 울부짖는다고 했는데, 그는 정말 이 미물들의 부활의 모습을 보았던 것일까요? 아니면 단지 그는 과연 환상을 보고 있는 것일까요? 전쟁기지확장은 하느님 나라의 평화를 깨치는 일이며 평생 자연과 벗하며 살아온 농부를 몰아내는 일은 하느님 나라의 정의를 파괴하는 일이기에 ’농부들은 말할 것도 없고, 땅 속에 감추어진 지렁이와 개구리와 땅강아지까지‘ 모두 일어서서 외치는 이 함성은 정말 시인이 아니고서는 들을 수 없는 함성이고 볼 수 없는 장면입니다. 이 지렁이, 땅강아지까지 일어서는 시적 표현과 요한이 오늘 본문에서 들은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만물이 주님의 뜻에 의해서 생겨났고 또 존재합니다.‘라고 하는 24 원로의 찬양 사이에 특별한 차이를 저는 발견하지 못합니다.

[말씀을 말씀되게 하라]

성서의 말씀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살아 움직이지 못하고 단지 인간 축복의 도구로 전락한 이유는 말씀이 글로 쓰이는 순간 음성이 지닌 생동감을 잃어버리고 그저 눈으로 보고 연구하고 머리로 해석하고 비판하는 대상으로 전락하여 버렸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오늘 들은 성가대의 찬양이 준 그 감격과 그 은총을 집에 돌아가서 그대로 전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유입니다. 본래 하느님은 우리의 귀에 들을 수 있게 음성으로 전해졌지만, 글로 씌어지는 순간 하느님은 탈 인(신)격화 되어 물적 대상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입니다. 신학자 말틴 부버의 표현을 빌리자면 I-Thou의 관계가 I-It의 관계로 전락하고 말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물질이 우리의 삶을 주도하는 이 경쟁사회에서 브랜드와 힘이 최고다.라고 외치는 찰나의 인생에서 요한의 눈과 귀를 통해 하늘의 영원의 소리를 읽어낼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세상의 번잡함과 오늘의 분주함을 뚫고 빈 마음 그리고 순수한 마음으로 세상의 시작과 끝을 바라보는 힘을 키워 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이웃이 경쟁자가 아닌 서로가 기댈 수 있는 희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시인 요한은 우리가 인생의 고난 속에서 어떻게 이를 극복할 것인가? 하는 승리의 비결을 전하지 않고 이미 하느님의 승리가 임했다는 종말론적인 승리의 선언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인 요한에게 천국과 지옥 그 자체가 중요한 관심사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목사로서 교인들을 겁주는 지옥불이나 껍질에 불과한 해묵은 축복선언에는 어떠한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가 말하는 모든 언어와 숫자와 환상은 그가 목사로 섬기던 일곱 교회의 교인들에게는 즉시즉시 피부에 와 닿는 실재 그 이상의 힘이요 능력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요한의 글을 들은 사람들은 지렁이와 땅강아지가 함께 일어서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묵시록이 종말 곧 세상의 마지막 일들을 다루고 있다는 대해서는 이견이 없습니다, 그러나 종말은 그냥 살아가는 과정에서 우연히 만나는 크로노스의 역사가 아닌 내가 지금 결단하고 여기서 이루어가는 카이로스의 역사에서 이해될 때,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현실이 하느님의 나라로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아니 조금씩 조금씩 이루어지는 점진이 아닌 도둑처럼/벼락처럼 임하는 완결임을 깨닫게 됩니다. 시인 요한은 자신이 지금 하루 중 정오나 오후가 아니라 새로운 하루가 동터오는 순간 곧 어둠의 마지막 끝자락과 밝아오는 새벽의 첫 자락 그 사이에 서 있는 것을 보았고 이 현실과 진실을 자신을 기억하는 소아시아 교회의 모든 교인들이 함께 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 현실과 진실을 시대시대마다 오늘 우리 모든 향린인들이 시인되어 자신의 현실과 진실로 만들어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