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2일 묵시록 (6)
자유와 해방을 그리는 화가 요한
시편 8, 1-9, 묵시록 19,11-21

오늘 하늘뜻펴기 제목 ‘자유와 해방을 그리는 화가 요한’은 약간은 도발적이기도 하고 실험적이기도 합니다. 첫째 도발적이라고 하는 말은 제가 아는 한 지금까지 어떤 신학자도 성서 안의 인물들, 곧 하느님의 뜻을 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복음을 외쳤던 제자나 사도들을 향해 화가라고 부른 적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림을 남긴 적도 없는 그들을 화가라고 부르는 것은 온당치 못한 일일뿐더러 도발적입니다. 둘째, 실험적이라고 하는 것은 성서의 해석을 화가의 입장에서 접근하는 것은 저도 처음이기 때문입니다.

[유대민족과 미술]

이스라엘의 문화나 역사를 볼 때, 그들은 성서라고 하는 문자로 표현된 문학작품을 남겼고 예배의 악기를 사용한 음악을 남기긴 하였지만, 미술작품을 남기지는 아니했습니다. 세계 인구 1% 미만의 소수민족으로 노벨상의 3분지 일을 차지하고 있는 유대민족이 문학과 음악에 있어서는 많은 유산을 남겼고 지금도 작가와 음악가로서는 세계적인 명성을 떨친 사람이 많지만, 미술에 있어서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물론, 중동의 사막과 광야로 이어지는 지리적 특성이나 끊임없이 이동해야 하는 유목생활이 미술에 대한 관심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라는 추측을 하게 합니다.

그러나 보다 근원적으로 접근하면 유대민족이 미술작품을 남기지 아니했던 것은 종교적인 이유였습니다. 그림이나 조각, 건축물들은 인간의 창조성을 보여주는 예술작품이라고 말하지만, 중세기나 고대에 있어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최상의 작품들은 종교의 영역 안에 있었습니다. 유럽에서 15세기 르네상스 운동이 일어나기 전 모든 미술작품은 거의가 종교적 작품이었고, 이는 신의 세계를 그려내는 작품이었습니다. 야훼를 섬기는 히브리인들이 계속 부딪혀야 했던 문명, 그리스나 이집트의 문명들은 모두 신의 형상들을 인간의 모습으로 그려냈습니다. 그리스문명의 대표적인 대리석 조각들은 모두 인간의 얼굴이나 벗은 몸이 주종을 이룹니다. 이는 단지 남성들의 근육미나 여성들의 관능미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신의 아름다움의 최고 극치를 인간의 벗은 몸에서 찾았기 때문입니다. 곧 그것들은 신의 형상이었습니다.

따라서 미술이나 조각물들은 야훼를 섬기는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하느님의 명령을 어기는 일이었습니다. 십계명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너희 하느님은 나 야훼다. 바로 내가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하느님이다.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을 모시지 못한다. 이것이 첫 번째 계명입니다. ’너희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어떤 것이든지 그 모양을 본떠 새긴 우상을 섬기지 못한다.‘ 이것이 두 번째 계명입니다.

성서에서 하느님 형상에 대한 금지 계명은 단지 유일신 신앙이라는 종교적인 이유에서만은 아닙니다. 여기에는 출애굽이후 평등공동체를 유지하려는 근본적 요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중동의 부족이나 가족들에게는 수호신이 있었고, 그 수호신은 하나의 형상으로 만들어져서 이동할 때 들고 다녔습니다. 처음에는 신을 예배하기 위해서 신의 형상을 만들었지만, 인간의 소유물이 된 신은 인간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인간의 필요나 요구에 응하는 꼴이 되고 만 것입니다. 마치 요즘 사람들이 액운을 막아 준다는 부적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곧 고대사회에서 신의 형상을 누가 소유하고 있느냐에 따라 신의 뜻이 결정되는 것이고 이는 그 사회의 힘과 권력의 출발점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의 형상을 쥐고 있으면 자연히 지배계급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이는 단지 중동의 사회뿐만 아니라 고대의 모든 사회의 정치와 종교의 상관된 현실이었습니다. 사회의 하층민으로서 노예계급으로 출발하여 가나안에서의 평화와 정의의 하느님 나라를 꿈꾸었던 히브리공동체는 바로 이런 것들을 방지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또한 시공을 초월하는 절대적 신을 상대화시키는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성과 감성]

그런데 성서는 신의 형상을 만드는 것을 경계하고 율법의 계명과 예언자들을 통해 하늘의 뜻을 선포하였지만 그렇다고 자연을 통한 인간의 오성을 통한 신의 경험까지 배제한 것은 아닙니다. 시편 8편 3절은 인간의 눈에 보이는 자연의 세계를 하느님의 작품이라고 노래합니다. ‘당신의 작품, 손수 만드신 저 하늘과 달아 놓으신 달과 별들을 우러러 보오니’ 보이는 세계 속에서 하느님의 세계를 경험하는 것 자체를 배제하지는 않았습니다. 잠언 20장 12절에 ‘듣는 귀, 보는 눈 모두 야훼께서 만드신 것이라.’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귀와 눈이 단지 몸의 한 지체를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이런 고백이야 너무나 당연한 고백입니다. 듣는 귀와 보는 눈은 인간이 신을 이해하는 두 가지의 길입니다. 귀는 소리를 통해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이해하는 도구입니다. 눈은 보이는 현상의 세계를 파악하는 도구입니다. 곧 귀는 인간의 사고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판단하는 인간의 이성적 능력을 말하고 눈은 인간의 오감을 통해 사물을 파악하고 세계를 판단하는 오성적 능력입니다. 서양의 칸트철학이 이성과 오성을 통한 실천을 추구했듯이 불교에서는 법(法)과 선(禪)을 통해 그리고 유학에서는 이(理)와 기(氣)로 바른 삶을 추구했습니다. 바로 잠언에서 언급하는 귀와 눈과 같습니다. 보다 쉽게 설명하면 어떤 얘기를 들었다 하더라도 실제 확인하기 까지는 판단하지 말라는 삶의 지혜도 있고 종교적으로는 인간이 신을 이해하고 경험함에 있어 머리와 심장을 함께 사용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감성과 감상은 구분해야 합니다. 그 사람은 感想적이다.라는 말은 感性이 지나쳐서 판단이 흐려지는 경우를 말하지만, 오감에 기초한 감성은 이성과 마찬가지로 신이 주신 성품입니다.

저는 성서에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들은 단지 머리로만 이해해서는 안 되고 심장을 통해서도 함께 이해되어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신앙 활동을 보면 지나치게 머리 중심적입니다. 보통의 교회에서 일반적으로 믿음이 좋다고 하는 판단 기준이 무엇입니까? 성서를 많이 알고 기도를 잘하는 사람입니다. 이는 곧 머리가 똑똑한 사람이 신앙이 좋다라는 결론을 가져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배에 있어 가장 중요한 순서를 설교로 봅니다. 설교는 귀로 듣는 이성적 영역입니다. 물론 찬송과 같은 음악은 오성에 속합니다. 사람은 기질이나 교회의 전통에 따라 이성적이기도 하고 오성적이기도 합니다. 기도도 논리적인 말의 진행에 집중하면 이성적 기도가 되지만, 침묵기도는 오성적입니다.

[이성적 서방교회와 감성적 동방교회]

현재 세계 교회를 크게 나눌 때에 흔히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교회로 보지만, 이성과 오성의 관점에서 볼 때는 서유럽을 중심한 서방의 기독교와 러시아 그리스 이집트를 중심한 동방의 기독교로 나누입니다. 서방의 기독교는 그 신학이나 교회 전통이 이성적 논리를 중시하면서 발전하여 왔고 동방의 교회들은 인간의 오성적 감성을 중시하면서 발전하여 왔습니다. 초대교회 이래 중세교회까지 이 둘은 본래 하나였지만, 1054년 로마제국이 동로마와 서로마로 나누이면서 교회도 지금의 이탈리아의 로마와 터키의 이스탄불 당시의 콘스탄티노플을 중심하여 둘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이 두 교회는 같은 하느님 같은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성령 삼위일체의 하느님을 고백하고 같은 성서를 읽지만, 지난 천년동안 서로의 교류가 없어 아주 다른 종교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서방교회에서의 중심이 말씀과 이에 기초한 설교라면 동방교회에서의 중심은 성화나 성상를 중심한 예전입니다. 동방교회 건물을 들어서면 성전 바닥부터 천장 그리고 벽 전체에 그려져 있는 성화와 성상들입니다. 유럽의 가톨릭교회에는 성화나 성상이 남아 있어 동방교회적이기도 하지만, 그렇더라도 신앙의 체계에 있어서는 여전히 논리와 이성을 중시하는 서방교회의 전통이 강합니다. 서기 730년경 로마 레오황제에 의해 시작된 성상파괴운동은 사실 종교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황제와 세속학문을 방해하는 지나친 수도사들의 운동을 저지하고자 하는 정치적인 이유에서였습니다. 이성적 전통이 강한 서방교회와 오성적 전통이 강한 동방교회를 구별하는 단적인 기준은 성전 안에 있는 의자입니다. 서방교회들은 예배용 의자가 있지만 동방교회는 의자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이성을 중시하는 서방교회는 설교에 중심이 있어 설교단이 있고 그 설교를 듣는 청중들이 앉는 의자가 있습니다. 반면 동방교회는 예전이 중심이기에 움직여야 하고 가만히 앉아서 듣는 설교가 없으니 의자가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우선 신 앞에 나아와 앉는다는 것 자체가 불경스러운 것입니다. 황제 앞에 나아가서도 않지 않는데 어찌 신 앞에 나아와 앉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게다가 어찌 감히 인간들의 냄새나는 엉덩이로 성인들의 얼굴을 깔고 앉을 수는 없습니다. 저는 이점에서 우리의 신앙형태에 대해 비판적 성찰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몸이 불편해서 앉아서 예배드리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예배가 신 앞에 나아오는 종교적 숭배행위이라면 앉는다는 것 자체가 불경일수도 있다는 생각 말입니다. 앉고 서는 것이 무슨 문제냐?라고 말할 수 있지만, 생각하기에 따라 그것은 태도 이전에 근본의 문제일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서방 전통에 있는 교회들은 말씀을 선포해야 하고 말씀에 기초한 설교를 들어야 하니까 의자가 필요하고 하느님의 말씀이 중요하니까 성경책을 펴고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받침대까지 설치합니다. 제가 알기로 의자에 받침대를 달아 예배실을 공부방형태로 바꾼 교회는 남한교회가 유일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성을 너무나도 중시하는 일종의 변형된 신앙입니다. 그러다보니 감성을 추구하는 신앙의 형태 또한 너무나 변형되었습니다. 영성추구에 있어서도 동방교회의 수도원적인 전통 곧 침묵명상을 통한 기도생활보다는 주여!주여!라고 크게 삼창을 하고 일시에 소리치는 통성기도나 산에 올라가 나무뿌리를 하나라도 뽑아야 하느님이 들으신다는 이상한 기도가 만연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린다면 우리의 예배나 신앙형태는 이성과 오성이 적절하게 배합된 균형이 깨어지고 지나치게 이성일변도 혹은 오성일변도로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저는 예배를 드릴 때에 여러분이 이성과 감성을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에도 이성과 오성이 적절하게 설교에도 이성과 오성이 적절하게 배합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제가 부목사 시절에 한 장로님께서 목회기도를 인도하시는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라고 시작하더니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하고 주기도문만 딱 읽고 내려왔습니다. 그래서 기도송을 준비한 성가대는 너무나 짧은 기도에 약간의 혼란이 있었지만, 그 장로님은 그날 언어를 뛰어넘는 매우 감성적인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저는 우리의 믿음이 너무 이성적으로 치우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질 때가 많습니다. 저도 어떤 날은 그냥 침묵설교 혹은 성서말씀만 몇 구절 찾아서 함께 읽고 묵상하는 설교를 하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준비가 덜 된 것이 아니라 준비를 너무 하다 보니 말이라고 하는 한계성을 절감하기 때문입니다.

[묵시록은 듣는 귀와 보는 눈의 합작계시]

요한은 자신의 묵시록을 기록하게 된 동기를 그 처음에 이렇게 말합니다. ‘이 책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하신 일들을 기록한 책입니다. 하느님께서 곧 일어날 일들을 당신의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계시하셨고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천사를 당신의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려주셨습니다. 나 요한은 하느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증언하신 것, 곧 내가 본 모든 것을 그대로 증언합니다’ 여기에 중요한 단어는 계시라는 단어이고 이 계시는 보여지고 들려졌다는 것입니다. 묵시록에 자주자주 등장하는 말은 ‘내가 보니’라는 말입니다. 묵시록은 요한이 본 기록입니다. 묵시록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우리는 어떤 그림을 봅니다. 그런데 설교라는 형태는 말로 해야 하기에 저는 말을 하고 여러분은 듣는 것 밖에 할 수가 없습니다. 사도 요한은 오감에 기초한 오성적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하는데, 우리는 여전히 이성적 논리적 체계로 그 말씀을 이해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3주전에 제가 ‘시인 요한’이라는 제목으로 시인들의 시를 읽어드리는 것도 바로 우리의 감성을 깨우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습니다.

여러분은 보지 못하고 저만 본 그림을 말로 설명하는 것은 사실적인 그림이 아닌 한 거의 불가능합니다. 예를 들면 저 뒤에 예수님 그림 4장이 붙어 있습니다. 광야에서 금식하며 기도하는 그림이나 겟세마네동산에서의 기도하는 모습 등은 말로 하는 설명이 어느 정도 가능합니다. 그리고 형과 친지가 지켜보는 가운데 돌아온 탕자를 품에 안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그린 렘브란트의 그림 또한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왼편에 있는 윤임자권사님의 예수님의 얼굴은 설명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그림이란 본래 인간의 언어를 뛰어넘는 비언어의 영역에 있습니다.

요한의 묵시록을 읽는 우리들의 머리 속에는 끊임없이 천상의 장면들이 떠오릅니다. 만약 요한에게 그림 그리는 일이 허락되었다면 그는 훌륭한 그림 수십 편을 남겼을 것입니다. 심판과 의의 승리, 천국과 지옥의 모습, 구원받은 성도들의 모습, 그리고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인한 마지막 심판을 그림으로 남겼을 것이고 우리는 그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쉽게 이해했을 것입니다. 묵시록을 신학에서는 묵시문학이라고 말하지만, 실상 그것은 글로 된 문학이 아닌 글을 통해 인간의 언어적 사고체계를 뛰어넘으려는 시도입니다. 극한 상황에 처한 신앙인이 말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헤어날 길이 없는 그 한계상황을 뚫고 나가기 위한 처절한 투쟁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숫자와 신적 영역에 속한 상징 언어들입니다.

이제 화면을 통해 몇 편의 묵시적 그림들을 보겠습니다. 단지 객관적으로 그림을 판단하고 이해하려 하지 말고 여러분이 2천년전 그 당시의 세계 속에 살고 있다고 가정하고 그림 속으로 들어가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여러분은 지구가 태양을 돌고 있는 것이 아니라 태양이 지구를 돌고 있다고 ale고, 지구는 둥글지 않고 판판하여 배를 타고 멀리가면 물과 더불어 지구 밖으로 떨어진다는 고대 세계관을 갖고 이 그림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수를 믿기에 로마제국이라는 세상 권력에 의해 죽음에 직면해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림 설명]

1,2 요한이 말씀을 받아 기록하는 모습과 말씀을 받아먹는 모습 3. 네 마리의 말을 타고 오는 승리자 예수의 모습 4. 천상에 앉아 있는 그리스도와 지옥의 모습 5. 지옥에서 울부짖는 모습 6. 심판자 예수 7. 재림 예수 8-11 지옥의 모습

무엇을 느끼셨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신앙의 박해를 받는 입장이라면 이 그림들은 단지 종교적 신비를 보여주는 그림이 아닌 하느님의 신적 능력으로 인한 자유와 해방을 맛보았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묵시록의 말씀을 읽는 것과 70년 전 일제치하에서 읽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를 것입니다. 일제가 교회에서 출애굽기와 묵시록을 읽지 못하도록 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일제 시대 때에 우리의 믿음의 조상들은 묵시록에서 단지 종교적 신비를 경험하고 현실에도 도피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유와 해방이라는 신비적 경험을 통해 민족의 독립을 추구하는 보다 현실적이 되고 보다 저항적으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오늘의 요한이 본 하늘의 묵시들]

이제 저는 성서의 메시지를 오늘의 시대에 전한다는 해석학적 입장에서 이런 질문을 하여 봅니다. 만약 사도 요한이 오늘의 시대에 살았다면, 고대적 세계관이 아닌 오늘의 과학적 세계관을 갖고 그리고 그가 말이 아닌 직접 붓으로 그림을 그린다면 그는 어떤 그림을 그릴까? 따라서 아까 그림에서 보았던 ‘해방과 자유’의 주제를 좇아 몇 명의 유명한 화가들을 선택하였습니다. 우선 저는 미술에 있어서는 극히 일반적인 수준에 있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책을 통해 도움을 받긴 했지만 미술을 전공하신 분들에게 있어서는 흡족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미리 말씀드립니다.(주요 참조서적: 한젬마의 그림 읽어주는 여자)

1.(12-15번) Van Gogh-반 고흐처럼 강열한 정열을 드러낸 화가는 없습니다. 그는 스스로의 정열을 견디지 못해 자신의 오른쪽 귀를 잘라버리고 마침내 37세의 나이에 정신병원에서 권총으로 자살하였습니다. 그의 그림에는 자신에 대해 그리고 세상에 대해 고통하고 절규하고 그리고 춤추는 영혼의 모습이 담뿍 담겨 있습니다. 금방이라도 물감이 묻어날 것 같은 두꺼운 질감과 힘 있는 붓질, 어지러운 하늘은 그가 남긴 말만큼이나 사람들을 미치게 합니다. ‘멀쩡한 세상이 나를 미치게 한다.’

2.(16-20번) Picasso-20세기 미술계의 거장 입체파 화가 피카소를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그림은 가장 대중적인 동시에 가장 난해합니다. 한 방향으로만 바라보던 대상을 앞에서 보고 뒤에서 보고 위에서 보고 아래에서 보고 그리고는 그 모든 것을 화가의 영감으로 평면에 조합합니다. 피카소의 그림은 산산 조각난 형태를 통해 자연이나 대상에서 벗어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 있습니다. 사물을 360도로 관찰하고 이를 하나의 화면에 동시에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피카소나 마티스와 같은 입체파 화가들은 왜 이처럼 여러 각도에서 사물을 관찰하는 것일까? 그가 추구했던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를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보이는 것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이면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자 합니다. 마치 사도 요한이 사탄과 하느님의 천상의 대결을 통해 이 세계가 직면한 선악의 투쟁을 보여주듯이 피카소는 자신의 그림 속에서 인간의 겉과 내면의 투쟁을 보여주고 있고, 고정관념인 세계의 겉을 깨고 그 내면의 깊이를 드러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3.(21-27번) Salvador Dali- 20세기 스페인 초현실파 화가로서 한때 피카소와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에 심취했던 살바도르 달리는 금세기의 가장 특이하며 괴이한 화가입니다. 그의 작품 속에는 현대의 작품들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인간의 회의, 압도하는 무의식의 위력 등이 내재되어 있다. 그의 작품 속에는 통속적 경험과 상식으로써는 전혀 감지키 어려운 기묘한 것들이 어울러져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초현실의 세계를 전개하고 있다. 어떤 비평가들은 그의 그림을 미친 사람 광인의 그림이라고도 한다. 여러분도 동의하십니까? 그러나 그의 작품 속에는 현대인이 지닌 갖가지 고민, 불안, 모순, 공포, 절망 등이 숨김없이 표현되고 있다. 인간의 상상력을 살려내는 자유와 해방에의 길이 바로 초현실주의적인 기법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지요.

4.(28-32번) 검은 피카소로 불리우는 장 미쉘 바스키야는 28세의 나이에 마약 중독으로 생을 마감한 천재화가이다. 그는 본래 회계사 아버지를 둔 중산층 가정에 태어났으나 흑인 빈민가에서 널빤지를 깔고 생활한 사람이다. 그는 읊조린다. ‘내게는 낙서본능이 있다. 전화나 대화 도중 무의식적으로 움직이는 펜은 종이 한 장 가득 낙서로 채워놓고 만다. 의식적으로 하려면 절대로 불가능한 무의식의 영역. 낙서는 내 안의 내가 일상의 내게 보내는 편지가 아닐까.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무언가 끊임없이 내게 말을 거는 것이다. 우주에서의 텔레파시처럼 깊은 무의식의 세계에서 오는 메시지. 그 메시지 안에서 나는 자유를 느낀다.

기자가 바스키야에게 물었다. ‘그림 안에 있는 이 글을 해석해주시겠소?’ ‘해석이요? 그냥 글자에요.’ ‘압니다. 어디서 따온 겁니까?’ ‘모르겠어요. 음악가에게 음표는 어디서 따오는지 물어보세요. 당신은 어디서 말을 따옵니까?’

5.(33-38번) 이중섭- 유럽에 피카소가 있었고 미국에 바스키아가 있었다면 한국에는 이중섭이 있었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40세의 나이에 6.25의 전쟁의 포연 속에서 너무나 가난하게 외롭게 죽어간 사람이다. 오산학교와 일본의 한 미술대학에서 공부하던 중 일본 여인 야마모토 마사코를 만났고 광복 직전 현해탄을 넘어 그에게로 달려온 그녀와 결혼을 하고 그녀의 이름은 이남덕으로 바뀐다. 두 아들과 행복한 시절을 보내던 중 6.25를 만났고 원산과 부산을 거쳐 제주도까지 피난을 다녔지만, 가난의 고통을 벗어나지 못해 아내는 일본으로 두 아들을 데리고 친정에 잠시 피한다고 한 것이 결국 영원한 이별이 되고 만다. 가슴속에 사무치는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은 언제 어디서나 그림을 그리도록 만들었다. 다방 한구석에서 담뱃갑 은종이를 펴서 그린 그림은 새로운 창작영역으로 남아 있습니다. 오랜 지인 구상 선생은 이중섭을 두고 ‘그만큼 그림과 인간이 예술과 진실이 일치한 예술가를 보지 못했다.’ 그는 일제치하에서 소를 주제로 자주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린 소는 우리가 흔히 아는 대로 들판에 평화롭게 풀을 뜯는 모습이 아닌 성을 내며 돌진하는 모습이고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 모습입니다. 자유와 해방의 새로운 세계를 향한 투쟁하는 모습인 것 같아 저는 매우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는 어린아이를 주제로 한 평화의 세계를 그려냈습니다. 수천 년을 함께 살아온 한민족이 그저 생각이 다르다고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리고 그 여파로 아내와 자식과 떨어져 굶주리며 살아가면서 그는 이사야와 같이 사도 요한과 같이 인간들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그렸다.

6.(39, 40번) 김원숙- 한국에서 4대째 활동 중인 미국인 선교사 스티븐 린톤의 부인이면서 남편과 함께 유진벨재단을 통해 북한을 돕는 행동하는 화가이다. 이분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림책을 보다가 강을 건너는 여인의 모습이 너무나 자유로웠고 줄을 타며 강을 건너는 서커스남자 위에 물구나무를 선 여인의 모습은 해방 그 자체로 보였습니다.

7. (41, 42번) 강덕경-95년에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서 생활하는 정신대 할머니들의 현재 일상을 그대로 담은 <낮은 목소리2>라는 영화가 만들어진다. 텃밭에서 채소를 가꾸고 김장을 담그고 닭을 키우고 호박을 캐내는 장면들 속에 영원히 가시지 않을 절절한 아픔이 곳곳에 들어있다. 누군가가 덤덤히 말합니다. “여자들이 매독에 걸려가지고 자궁에서 피가 나고 걸음을 못 걸어 가지고 엉거정 엉거정 걸어 다니는 그게 항상 기억도 나지만 꿈에 보여.” “나는 소원 그거밖에 없어, 그래 배가 불룩하이 아(아기) 하나 낳아 봤으면…, 제일 그기 소원이라.” 그렇지만 아픔을 넘어 세상의 편견과 육체적 고통에 쌓여있던 삶을 딛고 이제 오히려 세상을 이끄는 할머니들은 너무도 당당했다. “나는 죽어 다시 태어난다면 군인이 되고 싶어. 군인 가서 이 나라를 잘 지키고 싶어” “우린 죽을 때까지,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싸울 테니까. 우리 할머니들 그리 쉽게 안 죽고 싶어요. 오래 살 거예요.”

그리고 영화는 그해 2월 세상을 떠난 강덕경 할머님의 마지막 투병장면을 뒤쫓습니다. 병상에 파리하게 누워있는 강덕경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박두리(75) 할머니가 “빨리 낫아가지고 집에 와서 그림 그리야재, 니 그림 최고 잘 그리는데…. 그쟈? 그쟈? 맛있는 거 해 주꾸마” 그 강덕경 할머니 신이 주신 생명의 자궁을 일본 군인들의 노리개로 내어 주어야 했던 그 분이 그렸습니다. 첫 번째 그림은 ‘빼앗긴 순정’이라 이름이 붙어 있고, 뒤의 그림은 그의 빼앗긴 삶의 고통이 담겨 있는 ‘라바울로의 위안소’란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나가는 말]

이천년전 파트모스 섬에 유배되어 고독과 죽음에 직면한 사도 요한이 본 천상세계의 묵시적 환상들은 결코 종교의 신비라는 범주에 가두어두어서는 아니 됩니다. 십자가에 피 흘리며 죽어간 어린 양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권능을 힘입어 다시금 이 땅에 천년왕국의 건설을 위해 오신다는 신앙은 결코 현실도피적이지 않았습니다. 이 메시지를 읽고 천상의 그림을 본 초대교인들은 권력의 힘 앞에서 결코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로마군인들의 칼 앞에서 불구덩 앞에서 그리고 굶주린 사자들 앞에서도 결코 그들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 현대인들은 어떠합니까? 돈의 위력에 쉽게 굴복하고 출세를 위해서라면 그리스도는 물론이고 자신까지도 쉽게 저버리는 것은 아닌가요? 자유와 해방의 본래적 메시지를 회복하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요?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