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가 6, 6-8 ; 마태오 11, 16-19 / 너 사람아, 주께서 이미 말씀하셨다.


오랜만에 하늘 뜻 펴기를 위해 강단에 섰습니다. 지난 6월11일 주일, 평택에서의 예배에 참여하지 못하시는 분들을 위해 드렸던 1부 예배 때 이후, 5개월여 만입니다.

원래 지난 8월 저에 대한 재신임 투표가 무사히(?) 통과된 후, 하늘 뜻 펴기를 해야 한다고 조 목사님께서 말씀 하셨는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미뤄졌습니다.

지난 주 한 교우분께서 제게 ‘둔기로 맞으신 것 괜찮아지셨어요?’라고 물으셨습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제대로 못 알아들었습니다. 그 말은 바로, 제가 지난 주, 목회자 코너에 평화기행 후기 말미에 ‘3박 4일 내내 머리를 아주 큰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 계속 되었습니다.’라고 적은 것에 대한 말씀이셨습니다.

과연 둔기로 맞은 듯, 제 머리를 내도록 얼얼하게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먼저, 오키나와에서 뵌 두분 목사님의 이야기를 여러분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의 일터를 따라 일본 동경에서 초등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때가 1978년도였구요. 그 이후에도 4차례 정도 일본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지만, 주로, 동경, 오사카, 나라, 교또 등으로, 오키나와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오키나와에서 만난 니시오 목사님]
오키나와는 지난 주일 들으셨다시피, 독립된 나라였습니다. 말 역시도, 우리가 아는 일본어와는 완전히 다른데, 그 이유는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오키나와를 오키나와말로 ‘우치나’라고 부릅니다. 오키나와 사람은 ‘우찌난추’라고 부르고, 외부에서 온 사람은 ‘야마돈추’라고 합니다.

저희 일행이 오키나와의 나하 공항에 도착하니, 마중을 나오신 분들 중에, 니시오 이찌로 목사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오키나와 말로 하면, 야마돈츄(외지인)였던 니시오 목사님은 키도 크고, 눈도 아주 맑은 분이셨는데, 그 차림새는 정말 허름함 그 자체였습니다. 첫날, 그리고 셋째날, 마지막 날에 일행과 더불어 가이드 역할을 하신데다가, 제가 속해 있던 모둠은 니시오 목사님 교회에서 수요예배를 드렸기 때문에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많이 나눌 수 있었습니다.
니시오 목사님은 19세 때 세례를 받으셨는데, 19세였던 1967년 그 해 일본은, 야스쿠니 신사에 A급 전범들을 안치하는 문제를 놓고 대학생들의 투쟁이 가열 찼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일본이 저지른 전쟁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면서, 사회에 대한 교회의 책임은 피할 수 없는 신앙적 과제라 여기고 목회자의 길을 가기로 결심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고민에 대한 실천을 목회적 과제로 풀 수 있는 곳으로 미군기지가 전체 면적의 75%를 차지하고 있는 오키나와에, 야마돈츄 니시오 목사님은 정착하셨습니다.

니시오 목사님은 13년 전, 아키히또 왕(천황이라는 말은 하느님께만 붙일 수 있는 말이라고 했습니다.)이 즉위하고 처음으로 오키나와에 방문할 때, 그에 대한 반대운동을 전개하다가 17년 넘게 목회한 교회에서 쫓겨나셨습니다. 야스쿠니 신사 문제를 비롯한 사회적 문제를 더 이상 거론하지 말던지, 아니면 교회를 사임하던지 하라는 양자택일의 요구 속에서 니시오 목사님은 사임을 선택하였고, 현재는, 사회에 대한 교회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비록 8명이라는 수적으로 보면, 적은 인원이지만, 이들과 더불어 오키나와의 평화 운동의 핵심에 서계십니다.

욥기 12장을 중심으로 나누었던 수요 기도회를 마치고, 참석한 이들이 자기 소개를 겸한 신앙여정을 나누었습니다. 제가 속해 있던 모둠 중에는, 광주항쟁에서 고문과 옥고를 치루었던 한 목사님이 계셨는데, 광주항쟁을 계기로 바뀐 삶의 여정, 빈민과 함께 하는 목회 여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이야기 끝에, 현재는 광주로 인해 국가유공자가 되어 있다며 웃으셨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던 한 여성 교우가 목사님 옆구리를 쿡 찌르며 이렇게 말합니다. `ほら、にしおさん、がんばってね!` `거봐요~ 목사님. 힘내세요~네?` `지금은 힘들어도, 좋은 때가 꼭 올 거예요’라고 말입니다. 소수이기는해도, 평화를 일구는 실천을 동반한 삶이야 말로, 복음을 들은 사람이 사는 길이라는 것을 우직하게 실천하고 계신 목사님은 참 행복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함께 했던 시간들 속에서, 그가 30년 넘게 복음의 실천으로 여기고, 한길을 걸어온 그 열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키나와에서 만난 타이라 목사님]
또 다른 한분은, TV를 통해 얼굴을 뵌 분이었습니다. 몇 달 전, 일본에서의 미군기지 반대투쟁과 관련된 내용을 KBS 열린채널에서 방영했는데, 그 프로에서 열심히 설명하시던 분을 현지에서 만나게 되니 왠지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반가웠습니다. 영화배우로 착각할 만큼 잘생긴 목사님이셨는데, 타이라 나쯔메 목사님이었습니다.

이분을 강사로, 저희 일행은, 헤노코 액션이라고 부르는 헤노코 기지 건설반대 투쟁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헤노코 해변에 앉았습니다. 해변 한 쪽에는 대추리와 도두리를 겹겹이 싸고 있는 것과 같은 철조망이 쳐있었고, 그 철조망 위에는 우리가 평택 철조망에 노란 리본을 남긴 것 처럼, 전국 각지, 세계 각지에서 온 평화 운동가들이 걸어 놓은 색색의 리본이 묶여 있었습니다.
우리가 모래사장 위에 앉자마자, 타이라 목사님은, 이렇게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여러분들은 교회에서 평화와 관련하여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십니까? 그 이야기를 먼저 듣고 싶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함께 간 대부분의 목사님들이 갑자기 고개를 푹~숙였습니다. 물론, 대부분이 다양한 목회 현장에서 활동하고 계신 분들이셨지만, 예상치 못했던 질문에 한순간 침묵이 흘렀습니다. 결국 조 목사님께서 여러 교회들과 우리교회가 함께 해온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와 관련된 활동에 대해 듣고나서야 타이라 목사님은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타이라 목사님이 목회하는 교회의 교인은 12명입니다. 그런데, 자신을 비롯하여, 수영을 못하던 교우들이 이제는 해상투쟁의 과정 속에서 수영은 물론이요, 다이빙, 구조를 위한 잠수 등과 관련된 자격증을 대부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헤노코 기지 건설 반대 운동에 관련된 영상을 이미 접하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바다 위에서 저지 활동을 해야하기 때문에 주로 카누나 보트를 타야합니다. 기지 이전 반대 투쟁 시작하던 단계에서는 수영도 못하는 사람들이, 카누나 보트를 타고 바다에 나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기가 다반사여서, 구조물을 세우러 온 사람들이나, 경찰들이 물에 빠진 사람들을 건져내느라 일을 진행시키지 못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타이라 목사님이 전해주는 평화의 이야기는 ‘비폭력’이 키워드였습니다. 아무리 선하더라도, 목적을 이루기 위해 폭력을 행사한다면 자신들이 반대하는 군대, 제국주의, 군국주의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에 투쟁의 원칙이 ‘비폭력’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물러가라!’ ‘중지하라!’등의 말 대신, ‘물러가세요. ’ ‘그만두십시오’ 등의 말을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듣고 있던 우리 일행은 웃음을 터뜨렸지만, 나이브한 것 같기는 해도, 시사해 주는 바가 있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적용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더 약올라할 것 같기는 합니다만.....
아닌게 아니라, 때론 해상에서의 충돌로 인해 동료가 피를 흘리며 바다에 빠지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를 쳐다보며 낄낄거리는 국방부 관련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살의를 느끼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맘 속에 도사리고 있는 폭력성을 억누르기 위해 자신과 계속 싸우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계속되는 이 투쟁 속에서 10년만에 처음으로 체포되어 51시간 동안 유치장 안에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와는 사뭇다른 풍경이지요. 그들에게는 51시간의 체포가 굉장히 큰 일이었던 모양이지만, 김지태 위원장이 2년의 실형선고를 받은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아주 부끄러워 했습니다. 이어, 전쟁을 멈추어내는 것이 진정한 기독인이 해야할 책임이라고 강조하면서, 제일 위험한 곳에 있는 사람이 순교자 이며, 예배 안에 갖혀있는 기독인이 아니라, 밖을 향해, 그리고, 바라는 것에 그치지 않고, 바라는 것을 만들어가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고 강조 했습니다.

오키나와에서 만났던 여러 목사님들은, 자신의 고향인 오키나와로, 혹은 고향은 아니지만, 이곳에 뼈를 묻을 각오로, 평화를 일구어내야 할 곳이라 여기고, 평화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일이 바로 복음대로 사는 일이라는 굳은 믿음 하나로 수십년을 걸어가고 있는 그 삶이 마음에 짠~하게 와닿았습니다. 일행 중 한 목사님께 ‘우리나라에도 고생하시는 목사님들 참 많은데....’했더니,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로, 허름하게, 가난하게 사는 분들은 거의 없을 것 같은데...’라고 하시더군요.

이렇듯, 우직함으로, 굳은 믿음대로 실천해 가시는 분, 또 보탬하나 없이 액면 그대로 타협하지 않으며 살고 계신 목회자들의 삶이, 둔기로 맞은 듯, 제 머리를 내도록 얼얼하게 했고, 평화를 위해서라는 너무도 빤한 거짓말을 하면서, 평화를 깨는 일에 제일 앞장 서고 있는 실체의 그 계획적이고, 치밀함을, 조금더 깊이, 조금더 가까이에서 보니, 그 충격에 또한 머리가 얼얼해져 왔습니다.

사실 3박4일이라는 너무도 짧은 시간 동안 제가 오키나와를 알게 되었다면 얼마나 알겠으며, 우찌난츄 혹은 야마돈츄의 한이 담긴 그 긴세월의 한숨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한국 내에 있는 미군기지 현황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제가 할 말이 있어야 얼마나 많이 있겠습니까?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 안에, 평택을 비롯하여 의정부, 김해, 군산, 광주, 영월, 수원, 대구, 원주, 동두천, 양산, 성남, 부산, 인천, 천안, 심지어 제주도 까지 도시 안에 공군기지가 있고, 공군폭격장이 있고, 무기고가 여전히 자리잡고 있는데 말입니다.
실은, 오키나와 면적에 75%를 미군기지가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면서도, 우리나라에 이렇듯 많은 미군기지가 자리잡고 있는 것을 데이타 상으로 나마 확인하고 나니, 스스로 창피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결혼을 26살 때 했는데, 결혼하기 직전까지, 용산미군기지가 보이는 곳에서 살았습니다. 이제는 용산 가족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습니다만, 원래 넓디넓은 골프장이 자리잡고 있었고, 바로 근처에는 헬리콥터 장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러나, 왜 그러한 시설이 도시 한복판에 그것도, 미군들을 위한 골프장으로 버젓히 자리잡고 있었는지, 알아 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누가 얘기해주는 사람도 없었구요. 그저, , 아~ 저 안으로는 미군 외에, 선택된 한국 사람들만 들어간다더라. 하는 정도의 인식을 갖고, 있었던 어린 시절도 있었습니다.

여하튼, 한국이나, 오키나와나, 사람들이 버젓이 사는 곳을 밀고 들어와 있는 저 오만함. 절대로, 자기 나라에서는 생각할 수도 없고, 있을 수도 없는, 주거지 근처의 군시설을 그것도 ‘평화’‘안보’라는 미명 하에, ‘나 아니면 지켜줄 사람없어!’라고 강요하는 저 뻔뻔함, 실은 이가 다 빠진 사자이면서도, 막바지 발악을 하는 듯 한 저 모습 앞에 결코 굴해서는 안된다라는 뜨거움이 밀려오면서, 예수의 행적과 더불어, 왜 나는 기독인인지, 또, 기독인의 공동체는 그 정체성을 어떻게 명확히 드러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더 구체적인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너 사람아, 이미 말하였다.]
오늘 함께 읽은 하늘말씀들은 둔기로 얻어맞은 듯한 얼얼함에 대한 하느님의 처방약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오늘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미가의 말씀이나, 마태오의 말씀이나 많은 교우들이 익히 들어왔던 말씀입니다.

미가의 말씀은,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이 뻔히 있는데도, 아니, 뻔히 알고 있는 것임에도, 딴청 부리듯, 헛다리를 짚고 있는 이스라엘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공동번역에는 송아지라고만 되어 있습니다만, 개역성서에는 1년된 송아지라고 표현합니다. 이 1년된 송아지는 ‘아주 좋은 예물’을 상징하는 것이요, 수양 몇천마리는 ‘아주 많은 분량의 재물’을 말합니다. 또한 이스라엘에서는 아이를 바치는 것(child sacrifice, 유아희생)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음에도, 맏아들을 드릴까요?라고 떠보는 것은, 하느님이 받으시지 않겠지만이라는 전제 하에, 그렇게라도 하면 화를 푸시겠어요?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거기에 대해 단연코 하느님은 ‘아니!’라고 답하십니다.

‘내가 언제 그런 걸 원한다고 했니? 왜 자꾸 딴소리만 하는거니?’ 하시면서, ‘너 사람아! 이미 말했잖니? 내가 너에게 요구하는 것은 이 세가지 아니니...’ 하면서, ‘공의를 행하는 것’, ‘한결같은 사랑을 행하는 것’, 그리고 ‘하느님과 함께 걷는 것’, 내가 원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이 원하신다는 이것들은 무엇입니까? 처음듣는 말이 아닙니다. 그리고 히브리인들의 사고방식은 결코 추상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단어의 의미에는 행동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공의’인 ‘미슈파트’에는 정의, 공의를 실현하기 위해 행동하고, 힘쓰고, 노력한다는 역동성이 담긴 개념으로 미가 역시, 실천하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은덕, 혹은 한결같은 사랑을 뜻하는 ‘헤세드’도 단순히 감정의 차원이 아니라, 행동이 담겨있는 말입니다. 이 말에는 하느님과 이스라엘을 이어주는 끈과 같은 것으로, 하느님을 사랑한다면, 그의 뜻대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말하면서, 행동은 전혀 딴판이라면 사랑하지 않는 것 아니겠습니까? 마지막의 함께 살아간다는 ‘할라크’도 ‘걷는다’는 뜻입니다. 하느님과 살기 위해서는 발걸음을 맞춰, 함께 걸어가야 하지요. 그러나 우리는 이 말씀을 자주 보면서도 여전히, 머리로만 알고 있습니다.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