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으로 사는 길

시편 8편, 요한복음 12, 20 - 26

조 헌 정 목사
(김태준/이현우 집사 증언)


[한 해를 돌아보며]

작년 송년주일에는 특별예배나 교회행사 혹은 직분이나 봉사의 사항들을 언급하면서 수고하신 분들이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하여 가장 많은 햇수를 일어나신 분들을 축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얼마 전에 누군가가 올해도 그렇게 할 것인지 물어서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주 새 교우들의 마지막 모임 시간을 가졌는데, 이영재교우가 지정한 강수돌씨의 ‘나부터 교육혁명’이란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신자유주의적인 경쟁과 성장일변도 성과위주의 교육이 얼마나 잘못되어있는가를 알게 되었고, 자연히 목회자로서 혹시 나는 그런 경쟁이나 성과 문화에 젖어 있는 생활이나 목회를 하고 있지 않나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래 깨달은 것이 오늘 본래 하고자 했던 예배참여나 봉사에 대한 평가도 이러한 경쟁과 성과 문화의 일부임을 깨달았고 이런 일로 마음의 상처를 받는 분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교회 예배에 한 번도 빠지지 않는 사람과 반쯤 나온 사람을 비교하면 우리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나온 사람이 당연히 신앙이 좋은 사람이라고 자연스럽게 결론을 짓습니다. 그러나 이는 결과만 중요시여기는 것이지 이 분들의 서로 다른 삶의 모습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만약에 반밖에 나오지 못한 교우가 실제는 교회에 나오고 싶은 마음은 더 큰데 사정상 나오지 못했다고 한다면 결과만 놓고 보는 평가는 잘못된 것일 수 있습니다. 또 가족이 함께 나오시는 분들과 혼자 나오시는 분들이 예배 참석이라는 겉의 모습은 같지만, 실제는 가족을 놔두고 혼자 나오시는 분의 정성이 훨씬 더 큰 것입니다. 몸이 불편한 나이 드신 교우님과 2,30대의 젊은 교우를 몸으로 뛰는 봉사에 기초해서 상대 평가를 한다는 것은 너무나 잘못된 일이지요. 마음은 가고 싶지만 시간이나 건강이 허락하지 않아 대추리에 한 번도 가지 못한 분이 대추리에 갔다 온 사람보다 신앙이 부족하다. 그렇게 평가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신다는 말씀과 같이 신앙생활에 대한 바람직한 평가는 서로를 비교하는 평가가 아닌 과거의 나와 오늘의 나를 두고 하는 평가 그리고 교회 전체에 대한 평가를 하는 내면적 질문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교회에 대한 전체적 평가도 예배 참석 숫자라든가 혹은 헌금액수라는 업적에 기초하지 않고 우리가 한 공동체로서 얼마나 복음에 대한 뜨거운 생명력을 키워 냈는가? 성령 안에서 얼마나 깊은 일치감을 이루었는가? 예배에 활력은 있었는가? 이름은 모르지만 축복의 기도를 드릴 때에 옆에 선 교우의 손을 얼마나 뜨겁게 잡았는가? 여러 해 알고 지내는 사이이지만 신앙의 깊은 대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였는가? 4층 식당에서 밥을 들고 앉을 자리를 찾을 때에 친한 교우의 옆자리와 잘 모르는 교우의 옆자리가 비었을 때, 얼마나 자주 잘 모르는 교우의 옆자리를 선택하였는가? 주님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하나라고 했고 이 사회의 고통 받는 자가 나의 이웃이라고 했는데, 기도나 삶 속에서 나는 그들을 얼마나 자주 찾아갔는가? 하느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도록 나는 얼마나 뜨겁게 기도하고 실천했는가? 올 한 해 동안 나와 교회의 신앙을 바르게 평가하는 기준은 이런 기준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올해에는 이런 기준에 의해 작년과 같이 여러분을 일어서도록 하는 질문을 묻고자 합니다. 어린아이의 마음을 품어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했으니까 모두가 어린이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제 질문에 그렇다고 생각하면 솔직히 일어서시기 바랍니다. ‘내가 올 한 해의 신앙을 돌아보았을 때, 아직까지 부족하긴 하지만 작년에 비해 분명히 신앙의 성장이 있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일어서시기를 바랍니다. 다른 사람에 비교하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를 비교하는 것이니까 다른 사람 볼 필요가 없습니다. 예배에 더 열심히 참석했다든지. 기도를 좀 더 하게 되었다든지. 전혀 보지 않던 성서를 한 장이라도 읽었다든지. 가정예배를 드린 햇수가 더 많았다든지. 부부간에 손을 잡고 기도한 적이 더 있었다든지. 새 교우나 어려움을 당하는 교우에게 더 자주 전화를 드렸던 경우가 포함됩니다. 그럼 이번에는 나는 작년보다 못하다. 신앙이 후퇴했다고 생각되시는 분 일어서시기 바랍니다. 앉으시기 바랍니다. 지난해나 올해나 변함없이 똑같다. 하는 분 일어서시기 바랍니다. 아직도 일어서지 않는 분들은 어떤 분들이지요?

상대평가가 아니지만 지난 한 해 동안 맡은 직분으로 인해 분명히 신앙의 성장이 있었던 봉사자들이 있습니다. 새로 부장으로 봉사하신 분. 신도회장으로 수고하신 분. 처음 신도회 임원으로 수고하신 분. 올해 처음 부서활동에 참여하신 분. 새로 발족한 목회운영위원들이 있습니다. 성가대나 예향에서 올해 처음 봉사를 시작하신 분. 올해 처음 교회 나오신 분. 올해 처음 주님을 영접하고 세례를 받으신 분. 또 올해 처음 성서배움마당 공부를 시작하신 분들, 그리고 올해 처음으로 봉사를 시작하신 분들. 등등. - 이 분들 중에 다음의 세분을 좀 더 기리고 본으로 삼고 싶습니다. 지난 1년 동안 4층 식당에서 봉사하신 두 분. 방승환집사와 전찬진집사 그리고 향우실에서 차 봉사를 꾸준히 하신 최창기교우님. 이 세분은 잠시 나오시기 바랍니다. (앞치마를 선물로 준비했습니다.)

[성도추모]

한 해를 보내면서 우리 모두는 오늘의 형편이 어떠하든지 우리를 지켜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계실 것입니다. 오늘 읽은 시편의 노래와 같이 ‘야훼 우리의 주여 주의 이름 온 세상에 어찌 이리 크십니까! 주의 영광 기리는 노래 하늘 높이 퍼집니다. 당신의 작품, 손수 만드신 저 하늘과 달아 놓으신 달과 별들을 우러러보면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보살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보살펴 주십니까?’ 감사의 노래가 절로 나오리라 믿습니다. 이 시간에는 올 한 해 동안 우리의 곁을 떠난 사랑하는 이들을 기억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여기 여러분의 요청에 의해 여섯 분의 초가 켜있지만, 이분들 외에 여러분이 기억하는 분들 또한 함께 마음의 촛불을 켜시고 추모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김우현성도님 이 분은 지난 12월 14일에 83세로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곽상진집사님의 시아버님이시지만 아들의 죽음을 보상하듯 집사님과 경민이와 회준이를 애틋한 사랑으로 보살펴주셨습니다. 윤상혁교우님의 아버님 윤경상성도님 지난 10월 27일에 76세로 병의 고통에서 벗어나 평안한 나라로 가셨습니다. 유애란권사님의 아버님 유애준성도님 작년에 부르심을 받았지만, 권사님께서 다하지 못한 마음이 있어 오늘 촛불을 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이 교회에서 믿음 생활을 하였던 신찬균성도와 이양노교우가 계십니다. 두 분은 모두 40대 전후 향린교회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셨던 분들이며 사회적으로 각기 독특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었던 분들입니다.

신찬균교우는 세계일보 주필 겸 편집국장, 연합통신 편집부국장·논설위원, 국민일보 편집국장, 신문방송인 클럽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특히 문화예술분야에서 폭 넓은 활동으로 우리나라의 언론과 문화예술 발전에 공헌해 대한민국문화예술상(문화부문)과 한국 신문방송인클럽 언론대상 등을 수상하셨습니다. 그리고 투병 전까지 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과 문화관광부 문화재위원, 동국대 겸임교수로 활동했던 분이시고, 올 여름까지만 해도 예배 참석을 꼬박꼬박 하시면서 항상 미소를 머금고 저를 격려하셨던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양노교우는 한국의 대표적인 서양화가로서 특히 초상화에 독특한 자기 세계를 형성했던 분이셨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국립미술관을 비롯하여 여러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고 여러분이 인터넷 검색을 하면 이분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저희 교회 40년사 표지를 그리셨던 분이십니다. 교우 몇 분과 마지막 병상의 자리를 찾았을 때 우리를 향해 평화롭게 미소 짓던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김태준집사님의 어머님이신 고 강화옥성도님이 여기 한분의 촛불로서 켜져 있습니다. 4년 전에 돌아가셨지만 오늘에야 촛불을 밝히는 것은 김태준집사님 마저 어머님의 소천 소식을 이제야 들으셨기 때문입니다. 이 촛불에는 우리 민족의 분단의 아픔이 담겨 있습니다. 제가 김태준집사님께 이 시간에 어머님 얘기를 해주실 것을 부탁을 드렸는데, 울음이 나올까봐 하시지 않겠다고 하시기래, 집사님의 울음은 개인의 울음이 아닌 우리 민족의 한이 담긴 울음이니까 울겠거들랑 함께 울어 이 한을 풀자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김태준 집사의 증언]

강희옥 어머님을 추모함

어머님 姜(강)씨 花(화)자 玉(옥)자 어른은 1916년 6월 12일 황해도 장연군에서 나으시고, 讚(찬)자 元(원)자 아버님과 결혼하여 35살의 젊은 나이로 남편과 이 불효자식과 생이별을 하여, 반백년의 세월을 고통 속에 사시다가, 2002년 12월 25일에 86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이다. 남북 분단으로 이산의 고단한 삶 속에서 대대로 살아온 고향마저 쫓겨난 낯선 땅 황해남도 삼천군 작은 아들 집에서 여섯 명 자식을 기르시며, 가난은 어떻게 이기시고, 마음고통은 또 오죽하셨을까?

지난 1월에는 어머님의 품을 떠난 뒤 실로 55년 만에 어머니의 환갑 때 찍으셨다는 가족사진 한 장과 함께 어머님이 돌아가신 소식에 접하고, 지난 10월 말에는 중국 땅으로, 두만강 가 용정으로 가서 북에서 온 막내 여동생 춘실이를 만나 어머님 생전의 모습을 소식으로 접했다. 분단과 가족 이산 뒤에 처음으로 만난 가족으로 막내 여동생 춘실이는 4살 때 헤어져서 서로 얼굴도 목소리도 기억할 수 없는 동기였는데, 나는 여동생에게 하느님을 아느냐고 묻자 동생은 물론 모른다고 대답해서 눈물이 쏟아졌다. 그러나 잠시 뒤에 동생이 어렸을 때에 내 어머님이 밥상을 받으실 때마다 내 누님과 함께 한참 눈을 감고 계셨다는 말을 해서 어머님이 식사기도로 겨우 신앙을 지키셨던 일을 확인하고 어머님을 뵙는 듯 감격을 금할 수 없었다. 남몰래 기도하시던 일로 어머님은 큰 딸 춘복 누님과 그 옛날 아버님과 아들처럼 또 얼마나 고통을 당하시고 갈등하셨을까? 어머님은 어느 시점부터 밥 때에 눈감는 일조차 못하시게 되셨을 터이다.

우리 고향은 백령도 맞은편의 장산곶에서 멀지 않은 장연 땅이고, 우리나라에서 개신교의 첫 번째 교회인 솔내교회는 집에서 8킬로 떨어진 곳이어서 4대조 조수재 할머니는 이 교회의 초대교인이셨다. 그리고 우리 마을 에도 이어서 교회가 세워졌고, 가정이 개신교의 여명으로부터 예수를 믿어온 내력과 함께, “하느님”의 이름을 여동생에게 확인시키게 된 것은 감격스러운 체험이었다, 어머님은 시아버님인 제 할아버지가 교장으로 세우신 사립학교와 덕동교회의 안살림을 도맡았던 큰 집의 며느리요, 주부로 덕동(德洞)교회의 어머니이셨다는 사실도 동생에게 처음 알려준 것이 보람이었다.

조국 분단 55년 만에 사진으로 처음 뵙는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과 함께 전해진 사실의 절망감을 이겨내기 위하여 이 불효자식이 겨우 찾아낸 해답이 부활의 소망이었다. 부활은 있어야 한다. 부활에 대한 믿음이 아니고는 이 처참한 인간의 절망을 이겨낼 수가 없다. 어머님과 아들이 다시 만나는 믿음, 어머님도 또 아버님도 우리 후손들을 통해서, 이 세상에서 생명을 이어가고, 우리 속에 살아 계시다는 부활의 믿음이다.

나는 돌아가신 어머님의 사진 한 장과 함께 내 바로 동생이 최근에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은 더 큰 절망이었다. 그것은 내 동생이 굶어서 돌아갔다는 사실이며, 이런 북녘 땅의 가족과 동포의 처참한 현실을 외면하고, 내가 배불리 먹고 행복해 한다는 것은 바로 그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북한 동포들을 생각하며, 주일날 조반 한 끼를 걸러 북녘 동포의 고통에 동참해온 것으로는 안 된다고 생각하여 용정에서 돌아오면서부터 하루 두 끼니만 먹기로 작정을 했지만, 이것은 굶어서 처참하게 죽어가고 있는 북녘 가족과 동포들에게 무슨 도움이 될 것인가?

지난 크리스마스날 저녁에 우리 가족은 처음으로 어머니 추모예배를 드렸다. 이어서 오늘 향린교회에서 열리는 성도추모주일예배에 어머님의 촛불을 켜서, 여러 교우들과 함께 드리는 추모예배에는 내 어머님과 함께, 어머님의 같은 탯줄에서 나서 잠간 만났다 오래 헤어지고, 얼굴도 못보고, 굶어서 처참하게 죽었다는 내 동생 태호와 그리고 그 아들이 양식을 훔치다가 총에 맞아 죽은 일로 아들을 가슴에 묻고, 비통하게 죽어간 내 누님을 위해서도 함께 촛불을 밝히고자 한다.


[죽음 경험하기]

만약 인간이 육체적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면 죽음은 모든 것의 끝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정신적 존재이고 육체는 그 정신적인 존재의 일시적인 집이라고 한다면 죽음은 단지 하나의 작은 변화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에게 유언장을 쓰도록 하는 것은 단지 여러분의 장례식 때에 어떤 찬송을 부르고 어떤 얘기를 할 것인가? 장례집행자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 부탁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죽음을 정리함으로 여러분의 삶이 진정 자유롭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극복함으로 여러분의 손에 움켜지고 있던 것을 다 놓아버림으로 진정한 삶의 행복과 기쁨을 얻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저는 장례식에 참여할 때마다 가족들로부터 그런 얘기를 듣습니다. ‘아버님이 참으로 평온한 모습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님께서 너무나 평화로운 모습으로 마치 웃는 모습으로 돌아가셨어요.’ 죽음이야 말로 진정 평화와 자유의 최정상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죽음은 사멸이 아니라 또 다른 출생의 시작인 것이지요. 그러면 왜 우리가 이런 모습을 보면서도 그렇게 살지 못하는가?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 에 매여 있는 어리석음 때문입니다. 깨달음이 강요로는 결코 얻을 수 없기 때문에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셨던 주님의 은혜가 이 시간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자유는 자유를 찾는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진리를 추구함으로 얻어진다는 진리를 깨닫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전 여기서 바로 2주전까지만 해도 죽음이라는 단어를 떨쳐버릴 수 없었던 이현우집사의 얘기를 잠깐 듣고자 합니다. 여러분 아시는대로 48세의 나이에 대학교수로 베스트셀러 작가로 인기강연자로 전국을 바쁘게 돌아다니셨던 분입니다. 앞으로 한 10년은 아주 활동적으로 뛰어다닐 나이이고 그렇게 준비하고 계획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두 달 전 갑작스레 위암진단을 받고 위 전체를 절단하고 36일이라는 긴 시간을 물 한 방울 입에 대지 못하고 죽음의 그림자와 더불어 투병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지금도 그 그림자는 완전히 가시지 않았습니다. 좀 더 몸이 회복되면 이현우집사와 그 부인 정귀용집사를 동시에 부부 평신도설교자로 초청하여 신앙의 얘기를 함께 듣고자 합니다만, 이 시간에는 맛배기로 짤막하게 얘기를 들었으면 합니다.


[이현우 집사의 증언]

목사님께서 오늘 제가 증언을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고 하셨는데, 집사님의 말씀이 길어지셔서, 증언을 안 하겠구나 했는데, 시키시는군요.

저는 지금까지 평탄한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사주를 잘 보는 제 친구가 그러더라구요. 인생을 평탄히 살거라고, 정말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전에는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 제게 일어났습니다. 여러분들께서 아시다시피 제가 위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했습니다. 처음 진단을 받으면서, 36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40일 금식하셨는데 평신도가 36일 했으면 길게 한 거죠. 하고 싶어서 한건 아니지마는 어쨌든 그렇게 하고 상상하지도 못했던 그런 경험을 두 달 동안 하고 왔는데요, 생각했던 것보다 죽음이 멀리 있는 것은 아니더라고요. 저한테 이런 일이 닥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었는데, 갑작스럽게 죽음 앞에 직면하다보니까, 아까 목사님이 유언장 말씀도 하셨습니다마는 가상적으로 하면 유언장은 안 써져요. 정말 내가 죽을지도 모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면 진실한 마음으로 유언장이 써지더라구요. 그래서 유언장도 한번 써보게 됐고 또 여러 가지 경험을 했습니다마는 짤막하게 말씀드리면, 죽음 앞에 처해보니깐 제가 크리스천이라는 게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다행히 하느님의 은혜로 암이 일찍 발견되어서 위암으로 진단받고 수술 받고 문제가 없다는 걸로 결과가 나와서 회복만 하면 된다는 좋은 소식을 받고 나왔습니다마는 병원에 있으면서 또한 해보지 못한 생활을 하면서 제가 정말 제대로 된 크리스천의 훈련을 받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죽음 앞에 서니까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제가 맛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 평안이 어디서 오느냐하면 내 삶이 내 것이라고 생각할 때는 평안이 오지 않더라구요. 내가 어떻게든 잘해보고 살아보겠다고 할 때에는 뭔가 잃을 것 같은 두려움, 내 목숨을 잃을까하는 두려움, 혹은 사랑하는 가족과 이별할 것 같은 그런 두려움, 내가 가진 것들, 내가 지금까지 쌓아올려 왔던 것들, 사회적인 지위 그 모든 것을 다 잃을 것 같은 그런 소유의 집착에서 벗어나니까 모든 걸 하나님께 맡기니까 하느님이 주시는 진정한 평안을 느끼게 됐습니다. 모든 걸 다 맡기니까, 어차피 삶이라는 것도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고 목숨을 주신 분이 목숨을 가져가시는데 제가 어떻게 거기에 대해 불평할 수 있겠습니까. 모든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게 되니까 그때부터는 마음이 편안해지고 걱정이 없어지는 거예요. 그냥 편안하게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대로 허락하시는 만큼 살 때 그 사는 동안만큼은 정말 주님의 자녀로서 살아야 되겠다, 그런 마음을 하게 되니깐 참 놀랍게도 죽음 앞에 서니까 기도하게 되고, 또 죽음 앞에 서니까 기쁨을 느끼게 되고 또 감사하게 되고 지금까지 주신 은혜를 감사하고 앞으로 얻을 것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이미 주신 것에 대한 감사 또한 삶에 대한, 이 아름다운 세계에 대한 기쁨, 또 감사에 대한 뜻을 같이 나누는 기도, 정말 아이러니하게 죽음 앞에 서니깐 기도할 수 있고 감사할 수 있고 기뻐할 수 있고 정말 행복할 수 있는, 첨엔 암 때문에 고민도 많이 하고 고통도 많이 받았습니다마는 지금 생각하니까, 그게 주님이 주신 은총이고 큰 축복이라는 것을 주님께서 암을 통해서 저에게 주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제가 병원에 있는 동안에 병원에 찾아오셔서 위로해주시고 또 문자 보내주시고 또 전화해 주시고 기도로 함께해 주신 향린교회 모든 교우님들의 위로와 사랑에 대해서 정말 감사말씀 드립니다. 그분들의 사랑과 위로와 기도 덕분에 이렇게 빨리 회복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죽음으로 사는 길]

교회는 부활의 공동체입니다.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하셨다는 주님의 부활을 믿는 공동체라는 말이고, 더 나아가서 우리 또한 죽으면 예수님과 같이 부활할 것이라는 것을 믿는다는 말이고 더 나아가서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땅의 현실에서 이 부활을 체험하고 증언하면서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어느 미국교회에서 주일 저녁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성도들의 폭소와 감동의 눈물을 자아내게 한 담임 목사의 설교가 끝나자 박수 소리가 온 성전을 가득 메웠다. 청중을 조용히 시킨 목사는 맨 앞자리에 앉아서 가만히 설교를 듣고 있던 노인 한 분을 강대상 위로 모셔 왔다. 천천히 그리고 힘겹게 입을 연 노인의 이야기는 상상을 초월하는 충격적인 것이었다. 오래 전 노인은 아들과 그의 친구와 함께 작은 보트를 타고 바다낚시를 하러 나갔다. 낚시를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풍랑을 만나게 되었다. 별 일 없으리라 생각한 풍랑은 멕시코 만 특유의 성난 파도를 일으키고 성난 파도는 작은 보트를 사정없이 흔들어 댔다. 파도가 뱃전을 강하게 때리자 아들과 친구가 바닷물 속으로 튕겨 나갔다. 보트 안에는 오직 한 개의 구명대밖에 없었다.

순간 노인은 생각했다. 아들은 이미 예수를 믿고 구원의 확신을 가졌고, 아들의 친구는 아직 예수를 모르는 아이였다. 노인은 아들을 향해 소리쳤다. "I Love You, Son." 그리고는 구명튜브를 먼저 아들의 친구에게 던졌다. 아들의 친구를 간신히 보트 위로 끌어 올리는 동안 아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간신히 여기까지 말을 마친 노인은 옆에 서 있는 담임 목사를 가리키며 "지금 여러분 앞에 서 있는 여러분의 담임 목사가 바로 그 아들의 친구입니다." 노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울먹이던 교인들은 일제히 일어나 우레와 같은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이는 미국 텍사스 주 휴스톤에서 일어난 실화입니다.

전 여기서 이 노인이 자신의 아들을 포기하고 아들의 친구를 선택한 그 이유가 너무 종교적이고 보수적이다 여기고 자기 아들을 먼저 구하는 것이 보다 순수한 인간성의 발로라고 주장하실 분이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똑같은 상황을 당했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물론 나는 구원의 확신에 대한 해석을 이 노인이 가졌던 것보다는 더 넓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단지 교회에 나와 세례를 받고 나는 죽어 천국에 갈 구원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다. 라고 공개적으로 고백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느님의 구원은 하느님의 뜻에 의해 임할 것이다.라는 확신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당연히 내 아들에게 구명대를 던져 아들은 살려내고 그의 친구는 죽도록 하는 것이 나의 유일한 선택인가? 그렇다면 신앙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이 노인의 선택은 한 광신자의 어쩌다 생겨난 선택으로 여기고 말 것인가? 만약 이 노인이 자신의 아들을 살려냈다고 한다면 양심의 가책은 남았을 것이지만, 살아난 그 아들은 자신의 생명에 대해 당연하게 여겼을 것이고 그는 자신의 바라는 보통의 인생을 살았을 것입니다. 어떻게 말하면 그는 세계 60억 인구에 하나쯤 더 있는 생명으로 그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내가 어떤 이유이든지 내 아들 대신에 친구의 생명을 구해냈을 때, 그 친구는 자신의 생명을 결코 소홀히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은 이미 내 아들과 함께 그때 죽었고 자신은 새롭게 태어났다고 하는 깨달음을 얻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보다 큰 뜻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칠 수 있을 것입니다. 곧 그는 이 땅에서 똑같은 80년 90년의 삶을 살지만, 그의 삶은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삶, 영원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한 알의 밀알 되어]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묻혀서 그 몸을 움츠리고 나는 더 이상 줄 것이 없어. 나는 내 것을 지켜야 해 하고 잔뜩 몸을 움츠리고 있으면 겉에서 보기에는 그대로 있는 것 같지만 속은 썩어 들어갑니다. 그러나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묻혀 이 몸은 니그거야. 너를 위한 거야. 다 가져 가라구. 그리고 온 몸을 활짝 풀어 제치고, 껍질을 깨고 나올 때, 이는 순간 자신을 해체하는 죽음으로 보이지만, 실은 또 다른 생명을 맺어가는 생명의 길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구원의 길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 예수님의 사랑으로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어쩌면 하느님께서 자기 아들에게 던져야 할 구명대를 대신 우리에게 던진 것이라는 사실을 진정 깨닫는다면 오늘 이후의 우리의 삶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이 될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이라는 말을 저는 그냥 천국 가서 영원히 산다. 그렇게 단순하게 이해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는 이 영원성을 기억이라는 단어와 연계하고 싶습니다. 하느님이 오랫동안 기억해주고 사람들이 오랫동안 기억해주는 사람. 그 사람은 영원히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누구를 오랫동안 기억합니까? 사랑을 베푼 자를 기억합니다. 부모님을 기억하는 것은 단지 우리를 낳아주셨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우리에게 한없는 사랑을 베풀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사랑을 베푼 자를 기억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을 베푼 자를 기억합니다. 우리는 모두 부모님의 사랑에 빚진 자들이고 하느님의 사랑에 빚진 자들입니다. 여러분이 사랑을 베풀면 그것은 빚을 갚아가는 길이 될 뿐더러 영원한 생명을 사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