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향린, 우리는 한 가족


- 전교인 수련회 평신도 설교 -

(김창희, 이옥희, 이원준 교우)


시편 147, 1- 11 : 에페소 2, 14- 19


김창희 집사(청남)
아주 가끔씩 자기를 비우기

오늘의 신약 본문은 예수로 말미암아 이방인과 유다인들 사이에 막힌 담이 허물어지고 결국은 하나가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아마 당시 초대 교회에서는 예수의 동생인 야고보를 수장으로 하는 유다인들 중심의 예루살렘 교회와 오늘 본문의 편지를 받은 에베소 교회를 포함해 초대 일곱 교회들 사이에 상당한 갈등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를 해소하고 하나의 공동체를 완성하기 위해 바울은 무던히도 애를 썼는데 그 화해의 전략은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중간매개체로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너는 이걸 잘못했고 너는 저걸 잘못했다는 식으로 따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는 같은 구주를 선물로 받고, 대속과 평화의 보너스까지 받았으니 이제 사소한 갈등은 그만 두면 어떻겠느냐는 얘기로 들리기도 합니다.

저는 이 대목에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뭔가 설명이 더 필요합니다. 에베소서 본문에 제시된 바울 선생의 화해 전략은 하나의 원칙적 천명일 수는 있어도 실천적 방략까지 담고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지금 성경 주석을 하려는 건 아닙니다. 그럴 능력도 없습니다. 바로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바울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노력 또는 그 수단과 관련해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성경의 한 구절을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아마 고등학교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바로 이 에베소서 바로 뒤의 빌립보서를 읽을 때 2장 5절 이하의 구절이 저의 마음에 들어와 앉았습니다. 어떤 논리적 설명을 할 필요가 없이, ‘아 이게 예수구나’, ‘이런 게 기독교구나’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내용은 사실 오늘 본문과 같은 맥락에서 빌립보 교회를 향한 권면의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지니셨던 마음을 여러분의 마음으로 간직하십시오. 그리스도 예수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 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죽기까지, 아니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빌 2:5~8)

바로 그런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빌립보 교회의 당신들도 가지라고 권유하는 내용입니다. 그러할 때 교회가 하나 되고, 요즘 말로 하자면, dynamics를 가질 수 있다는 얘기겠지요. 어떻습니까? 바울 선생의 화해의 전략이 진일보 한 것 같지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이 유다인과 이방인을 묶어준다는 선언을 넘어서서 바로 그런 예수의 마음을 너희도 가지라는 것이지요. 실천의 수준으로 한 단계 더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빌립보 교회 사람들을 향해 간직하라는 예수의 마음 가운데 “그리스도 예수는 당신의 것을 다 내어놓고…”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 공동번역의 표현은 좀 글맛이 나지 않습니다. 과거의 개역 성경에는 이 대목이 아주 유장하게 이렇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정말 근사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어떻습니까?

여기서 저의 눈길을 잡아 끈 것은 에베소서에는 없는, 그리고 빌립보서의 공동번역에도 없는 “자기를 비워”라는 대목입니다. 자기를 비운다! 고등학생 시절의 저에게는 우선 대단히 근사했고 멋이 있었습니다. ‘야, 어찌어찌 하면 사람이 자기를 비우는 일도,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가능하긴 가능한 모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 거지요. 그때의 느낌을 조금 더 구분해서 말하자면, 두 가지가 될 것 같습니다. 아, 자기를 비우면 죽기까지 할 수 있구나! 하는 놀라움과 그런데 나는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의 두 가지였습니다. 이 구절이 놀라움의 대상에 그칠 것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실천적 명령’이라는 점을 깨달은 것은 한참 뒤였습니다.

아무튼 그때부터 이 구절은 늘 저의 뒷골을 당기는 요소가 됐습니다. 성경은 나더러 이 마음을 품으라고 하면서 예수의‘자기를 비움’을 따라 살라고 하는데 과연 그게 가능하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대개 이런 식입니다.‘가진 것을 다 포기한다니 절간으로 출가하기 전에야 그게 될 법이나 한 일인가? 게다가 요즘 스님들은 가진 게 참 많기도 하더구만….’ 혹은 ‘자기를 비우라는데 혹시 세수할 때 화장실 거울에 물 튀기지 말라는 마누라 잔소리 같은 것에도 신경질이나 짜증으로 대꾸하지 말라는 뜻인가? 그거 참 어려운 일인데….’ 아니면, ‘이런 사소한 것에도 짜증이 나는데 언감생심 내가 나를 비워? 혹시 화장실 거울 닦으라는 얘기 두 번 들을 때 꾹 참고 한 번 닦으면 절반은 나를 비우는 걸까? 참 어림도 없는 소리다.’ 뭐 이런 밑도 끝도 없는 생각들이 꼬리를 물기도 합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아직도 저는 저를 비우는 방식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부자 청년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한 부자 청년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방법을 묻습니다. 계명을 지키는 데에서 한발 더 나아가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나를 따르라는 것이 예수의 답입니다. 요컨대 가진 것을 다 포기하라는, 빌립보서에 등장하는 바울의 해법과 완전히 똑같습니다. 이 말을 들은 부자청년은 괴로워합니다. 제가 전혀 부자는 아니지만 꼭 같은 꼴입니다.

그러나 간혹은 이런 생각도 합니다. 정말 드물게 나타나는 일이긴 합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아주 결정적이고 자기 삶에 전기가 되는 순간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예컨대, 내가 이 학교 또는 직장을 더 다녀 말어? 혹은 내가 지금 하는 일이 과연 이 세상을 개미 기어가는 속도로라도 달라지게 하는 데에 보탬이 되는 일일까 아닐까? 인간적으로는 실존적인 고민일 수도 있고, 가족과 주위 사람들에게서는 놀라움과 안타까움을 살 수도 있는 그런 일들 말입니다. 요즘도 형태는 많이 바뀌었지만 자기 자신의 전존재를 던질 것인가 말 것인가 결단해야 하는 순간들은 누구에게나 몇 차례씩 주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있어 그런 순간들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굳이 이 자리에서 일일이 설명하지 않겠습니다만, 분명한 것 한 가지는 그런 순간들이 다가왔을 때 대개는 가슴이 차분해지면서 어떤 이해관계보다는 ‘상황이 나를 필요로 한다면, 그리고 그게 의미 있는 일이라면 까짓 거 하지 뭐. 그 다음은 하느님이 알아서 해주시겠지.’ 하는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어찌 보면 일은 내가 저질러 놓고 하느님더러 뒷수습 해달라는 격이 된 것 같아 조금 쑥스러운 감이 없진 않습니다만, 저로서는 그 순간들에 절실하게 고민했고 ‘나에게 주어지는 쓴 잔을 피하지 말자’, 그리고 또 한 가지, ‘그 쓴 잔을 마신 뒤의 일은 당장은 생각하지 말자. 왜냐하면 하느님께 맡겼으므로’ 라는 생각이었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이렇게 아주 가끔씩이긴 합니다만 ‘나 자신을 비움’을 ‘실천적 명령’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시간이 한참 지나면서 전혀 없지는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요즘은 이런 생각도 합니다. 내가 그렇게 생활과 사람됨에서는 나 자신의 절반도 비우지 못하는 위인이지만 20여 년 동안 해 온 나의 일에는 그 말을 적용할 수 없는 걸까? 하는 겁니다. 저는 작년 이맘 때까지는 20여 년에 걸친 사회생활을 꼭 한 직장에서 해 왔습니다. 지금과는 상황이 많이 다른 1983년에 동아일보에 입사해서 이런저런 부서에서 기자로 일하다가, 너무 한 직장에 오래 있었던 것 같아서 이런저런 생각 끝에 일하는 자리를 옮겼습니다. 지금은 프레시안이라는 인터넷 매체에서 편집 책임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언론에서 혹은 언론인 생활에서 자기를 비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혹시 거기에도 자기를 비우는 일이 원칙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기자가 꼭 이청준이나 성석제와 같은 탁월한 이야기꾼일 필요는 없습니다. 또 백낙청 최장집 선생 같은 논객까지 되지 않아도 관계없습니다. 그런 탁월한 머리보다는 ‘들을 귀’가 기자의 제1조건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이 세상과 우주에서 발신되고 있는 수많은 소리들, 그 중에서 모기소리보다 더 작아 귀를 잘 기울이지 않고서는 들을 수 없는 수많은 소리들, 아직 공론의 장에 초대받지 못한 혹은 한미 FTA 반대 주장 같이 의도적으로 배제된 목소리들, 그리고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아직도 시민권을 누리고 있지 못한 강정구 교수님의 목소리와 같은 것들을, 레코드판의 소리 정보가 앰프를 거치면서 큰 소리로 증폭되듯, 키워서 듣고 그 소리의 부족한 대목까지 채워서 모든 사람이 알아들을 수 언어로 전달할 수는 없을까? 이 모든 것의 출발점은 ‘들을 귀’입니다.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실 때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하셨을 때의 그 ‘들을 귀’와 완전히 일치하는 얘깁니다. 엄마의 잔소리는 아무리 큰 데시벨로 얘기해도 아이의 귀에 안 들어가는 법 아닙니까? 큰 소리라고 꼭 듣는 것도 아니고, 작은 소리라고 꼭 못 듣는 것도 아닙니다. 문제는 ‘들을 귀'입니다. 그건 바로 자기의 고정관념과 선입견에서 벗어나려고 최대한 노력하는 일입니다.

노력하면 됩니다. 안 될 리가 없습니다. 다만,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려면 자기의 의견과 생각에 조금은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비어 있는 곳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여유를 갖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두 가지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선, 세상에 대한 판단이 자로 재듯, 혹은 칼로 금을 긋듯 뚜렷한 사람들을 우리는 간혹 봅니다. 이런 사람은 미안하지만 대화 자체가 어렵습니다. 남의 얘기가 그 사람의 귀에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또 한 가지는, 그 개인이 아니라, 그 개인이 속한 조직(이 경우는 언론사겠지요)이 강제하는 논리적 틀이 강고할 때 그 구성원의 귀는 선택적으로만 열리고 닫힙니다. “나 좀 살려주세요. 제발 내 얘기 좀 들어달라니까요” 하는, 모기가 앵앵대는 것과 같은 소리는 그 귀에 들릴 리가 없고, 그 조직이 개설해놓은 주파수에 맞는 얘기만 들릴 뿐입니다.

다시 제 얘기로 돌아갑니다. 이렇게 ‘들을 귀’를 갖춘다는 것이 가능하긴 하되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다만, 매일매일 ‘나는 열려 있는가’ ‘나는 내가 속한 조직을 그렇게 만드는 쪽으로 이끌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되묻곤 합니다. 한때 내가 속했던 곳이 그렇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뛰쳐나온 마당에 지금 속한 곳이 또 다시‘자기 자신을 비워 세상의 소리를 잘 듣는 조직’이 아니라 귀가 꼭꼭 닫힌 곳으로 만드는, 그런 우를 되풀이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자기를 비우는 얘기를 하다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모든 것이 미완입니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습니다. 잘 비움으로써 잘 듣는, 빌립보서에 나오는 예수 얘기의 흉내라도 좀 내보고 싶은데 그게 여의치 않습니다.

다시 한번 더 원래의 얘기로 돌아갑니다. 저는 잘 비워야지만 잘 들을 뿐만 아니라 화해와 일치로 그 비워진 곳을 채우는 일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인간은 비우는 일까지 하는 것이고 그 다음에 그걸 채우시는 분은 하느님이라는 것이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은 저의 개인적인 경험입니다. 에베소서의 본문이 직설적으로 그렇게 얘기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방인과 유다인의 구별과 갈등을 극복해서 교회 공동체의 일치를 이루고,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세상이 하나됨, 다시 말해 하늘나라를 이루는 길이 바로 자기를 비움에서 출발하는 것 아니겠느냐는 얘기입니다.

다만, 그것조차 쉽지 않기 때문에 요즘 같은 지리한 장마철에 가끔씩만 얼굴을 내미는 해와 같이 아주 가끔씩이라도 예수를 흉내 내서 자기를 비우는 연습을 하는 것이 하늘나라 비밀의 첫 단추라고 하면 그것은 지나친 말이 되겠습니까? 아니면 하늘나라의 비밀을 얘기하기에는 그 정도로는 부족한 말이 되겠습니까? 우리는 그 ‘자기를 비워 하늘나라를 이루는 일’의 도상에서 어느 정도 쯤의 번지수에 와 있는 것이겠습니까? 스스로 자문해 봅니다.


이옥희 교우(청여)

안녕하십니까? 이렇게 경치 좋고 공기 좋은 곳에서 향린 가족 모두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음을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처음 하늘뜻펴기를 나성국 목사님으로부터 제안 받았을 때, 어떻게 제가? 라고 하면서 잠시 망설였지만, 마음 한 켠에서는 어쩌면 이런 것도, 하나의 훈련과정이려니 하면서 거절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감히 존경하는 어르신들과 신앙 선배님들 앞에서 저의 작은 신앙고백을 할까 합니다.
   
제가 처음으로 여기 향린교회를 찾았을 때의 그 느낌은, 지금도 가슴 떨리게 감격스러웠습니다. 첫 느낌은, 가슴 뭉클한 어떤 뜨거움 이었지요. '이렇게 아름다운 교회가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그러면서 향린교회를 다닌 지 한 반년을 넘기면서도 아직 그런 감격은 식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예전에도 교회는 다녔지만 그땐 그저 지극히 개인적인 신앙 이었습니다. 그저 몸만 왔다 갔다 하는 아무런 행함이 없는 열정이 없는 그러한 신앙이었죠. 그러나 지금 저의 모습은 달라졌습니다. 이젠 예수님의 십자가를 나누어 져야한다는 신념이 그저 교회만 왔다 갔다 하게 놓아두지를 않았습니다. 저의 밋밋한 가슴에 뜨거움을 일으키게 하는 것 같습니다. 

주일날 목사님들의 하늘 뜻과 교우님들의 열정이 다른 이옥희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예전엔 세상일을 아주 좁게 내 안에서만 생각하고 행동하고 살았다면, 이젠 향린 공동체가 저를 넓은 세상으로 이끌어 내었고 제 시야를 넓혀 주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향린의 모든 가족들에게도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부끄러운 고백 하나 할까 합니다. 향린에 오기 전에는 사실 다른 사람들에게 "저는 기독교인입니다"  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누가 "교회 다니세요?" 라고 물어 보면 자신있게 그리고 당당하게  "네, 저 교회 다닙니다" 라고요. 참 예수님의 정신을 알게 되었고, 주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이 사십이 넘어서면서, 주변을 돌아보게 하시고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살게 하시고 나눔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것 같습니다.

올 초에 저의 목표를 나눔의 해라고 정했습니다. 마음을 나누고, 미소를 나누고, 사랑을 나누는 해 이기를 작정 하면서 이왕이면 물질까지 나눌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더 좋을 것이라는 소망을 가져 봤습니다. 그리고 조금 씩 조금 씩 실천하고 있습니다. 주변 어르신들께 작은 가슴 이지만 따뜻함을 나누고자 가끔 안아드리기를 해드립니다. 의외로 가족이 아닌 남이 안아드리니까 너무들 좋아 하십니다. 그러면서 오히려 제가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사랑과 미소는 반사 작용을 잘 하는 것 같습니다. 거울과도 같이 바로 되돌아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제 삶에 있어서, 요즘처럼 살아 있음에 기쁨을, 감사함을 느낀 적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전엔 막연히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 라고 자신에게 반문도 했지만,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지? 라는 질문만 있었지,  해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여러분은 외국인도 아니고 나그네도 아닙니다' 라는 에페소 2장 19절의 말씀에서 해답을 얻었습니다. 외국인은 누구이고 나그네는 누구입니까. 그들은 이 땅의 현실이 어떠하던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는 사람들 아닙니까.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 다시 태어난 우리는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으로 그분의 뜻대로 평화를 만들어 가야하는 소명을 받은 것입니다.

평화를 이룩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의 하느님 나라는
나눔 속에서 이룩된다고 믿습니다. 나눔은 욕심을 가지고서는 행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경쟁을 통해 얻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한없는 사랑의 결과가 나눔이라는 행위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젠 사회문제들을 함께 고민 하면서 적극적인 참여로 또 다른 삶에 의미를 찾게 되었습니다. 향린에서 약 8개월 동안 하늘 뜻을 들으면서 제 삶의 방향의 길을 찾을 수 있었고, 향린교회가 저에게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를 명쾌하게 안내를 해 주었습니다.

작년 이맘때쯤에 멀리 있는 친구에게 이런 편지를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소원하던 사랑도 해봤고, 나의 분신인 사랑하들 아이들도 둘이나 있고, 또 하느님의 자녀로서 구원도 받았었고, 해서 내가 내일 죽는다고 해도 아쉬움은 없을 것이라고, 참으로 오만방자한 편지를 보냈었습니다. 그러다 몇 개월 뒤에, 그 편지 건에 대해서 수정할 것들이 있다고 다시 수정하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내가 내일 죽어도 아쉬울 것 없다고 했던 말 취소해야겠다고, 그대로 죽으면 정말 후회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할 일들을 찾아야겠고 그리고 해야 할 일 들이 너무 많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제가 죽어  주님 앞에 서는 날, 주님께서 ‘그래 수고 많이 했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파울로 코엘료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랑은 내가 살아가는 이유다" 라고요. 저 역시 이 말에 동의를 합니다. 단, 그 사랑에는 정의와 평화가 함께하는 그런 사랑을 말입니다.


이원준 교우(청신)

안녕하세요. 이원준입니다. 올해 1월부터 향린교회를 나왔고 한양대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입니다. 고등학교 때 산악반이었는데 평생 히말라야와 같은 곳에서 등반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원정대 의사로 가면 돈도 받으면서 산에 다닐 수 있지 않을까하고 의대를 진학하였습니다만 지금은 예전처럼 열심히 산에 가지 않습니다. 현재는 한양대학교병원에서 병원실습을 하고, 내년 1월에 있는 한국의사국가시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올해 초였습니다. 사순절기간에 대추리의 노인정에서 새벽을 맞이했습니다. 아직 바람은 겨울을 담고 있었습니다. 양손으로 귀를 가리고, 입김을 훅훅 불고, 바람을 피해 성당 벽에 바짝 붙어 섰습니다. 대추리의 넓은 들판을 보면서 문익환 목사님의 뜨거운 마음을 불렀습니다.
 
“뜨거운 마음 바람에 실어 숨막힌 이땅에 보내노라 정의의 깃발을 휘날리며 자유의 천지 이루고 지고.”

저도 새벽 찬바람 속에 뜨거운 마음이 되었습니다.
다음날,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학교에 가고, 친구를 만나고, 밥을 먹고, 레지던트 선생님께 잔소리를 듣고, 잔소리한 사람 씹고, 공부를 하였습니다. 토요일이 되어 대추리에 가고, 새벽에 뜨거운 마음이 되고,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학교가고, 또 대추리 뜨거운 마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식은 마음이 되었습니다.

씨를 뿌리고 수확을 하고 땀을 섞고 세월을 보낸 사람이 그 땅의 주인일 텐데, 전쟁놀이 한다고 우리나라 경찰 군인 앞세워서 주인을 내쫒습니다. 이건 잘못되었다. 막아야한다. 그래서 향린교회를 통해 대추리에 갔습니다. 하지만 그런 고민은 주일에 대추리에서 있을 때  뿐이었고 일상으로 이어지지 못하였습니다. 주일의 원준과 평일의 원준으로 저는 분열되었습니다.

나목사님의 권유로 청년신도 모임에 나갔습니다만 처음에는 좀 껄적지근했습니다. 자기 소개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저처럼 새로 오신 어떤 분이 자기가 향린에 오기까지 긴 여정에 대하여 말하고 예전 교회에서의 고민을 말하였습니다. 어떤 교우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 문제는 여기에도 있습니다. 문제의 답은 알아서 찾으십시오.”
저에게는 그 말이 ‘니가 알아서 해라.’로 들렸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이후로 그 새로 오신 분을 뵈지 못하였습니다. 이런 역경 속에도 그 당시 제가 향린교회에 나온 것은, 향린에서 찾고자하는 것이 친목이 아니라 이념적이고 사회적인 어떤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저에게 향린교회를 다니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이념적이고 사회적인 것 때문만은 아니라고 답합니다. 그리고 제 삶 속에 주말과 평일의 분열도 화해하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일 까요?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기 때문에 의견이 비슷해서, 팔짱끼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뿐만 아니라, 제 심장을 쥐고 강하게 끌어당겨 무거운 엉덩이를 일으키는 것이 무엇일까요?

오늘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시편 147편 말씀입니다.

“힘센 말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힘 좋은 장정의 다리도 반기지 않으신다. 당신 두려운 줄 아는 사람, 당신 사랑 믿는 사람, 그들만을 반기신다.”

구약의 시대는 농경사회였습니다. 더 많은 생산을 내기 위해 필요한 요소가 힘센 말과 힘 좋은 장정의 다리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두려운 줄을 알고 사랑을 믿는 사람을 반기신다고 합니다. 힘센 말, 힘 좋은 장정의 다리는 지금의 자본, 그 자본을 잘 굴리는 영특한 두뇌 등 각 시대의 권력이 요구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하느님이 반기시는 두려운 줄 아는 사람은 시대의 양심을 지키고 정의를 따르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랑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요? 시편에 나온 ‘이념’으로써 사랑은, 신약에서 예수님의 삶으로 실천으로 보여줍니다. 사랑은 자본주의의 용어를 사용하면 밑지는 장사입니다. 나의 시간, 나의 노력, 나의 능력, 나의 노동을 나만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사용할 때 ‘사랑했다.’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도 모자라 자신의 삶을 통째로 내던지셨습니다.
 
에페소 2장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몸을 바쳐서 유다인과 이방인이 서로 원수가 되어 갈리게 했던 담을 헐어버리시고 그들을 화해시켜 하나로 만드시고,......, 또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하느님과 화해시키고 원수 되었던 모든 요소를 없이 하셨습니다.......이제 여러분들은 외국인도 아니고 나그네도 아닙니다. 성도들과 같은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

백사장의 모래를 한 움큼을 쥐면, 우수수 손가락 사이로 떨어집니다. 하지만 벽돌을 들 때는 구성하고 있는 모래가 우수수 떨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모래 알갱이 들이 단단한 벽돌이 되는 까닭은 천도가 넘는 고열과 압력이 있기 때문이고, 그런 벽돌로 집을 만들 수 있는 까닭은 시멘트가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인간의 고귀한 노동이 단단히 한몫합니다.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 인간들이 모래알이고, 하느님께서 그 모래알을 주물럭거리고 열을 가하여 벽돌을 만들고, 그 벽돌에 시멘트를 발라서 집으로 한 덩이로 만드시는 겁니다. 우리를 향린의 지붕아래 하나 되게 하는 매개체도 뜨거운 사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시편과 에페소의 말씀을 보면서 ‘사랑’에 두 가지 의미를 발견합니다. 예수님의 삶이 보여준 실천적인 사랑과, 이질적인 것들을 하나로 만드는 평화로써의 사랑입니다.

향린을 만나기 전에, 대학의 작은 독서모임을 통해서 책을 읽고 토론하고 집회를 참석하였습니다. 하지만 동아리 모임에서 저희가 매일 같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실천의 문제에서는 회의적이었습니다. 매년 연례행사처럼 5.18에 광주가고, 6.15. 8.15.때 광화문, 시청가고, 사회 문제가 되는 사건에 분개 하고 집회에 참석하였습니다만 뭔가 부족했습니다. 입으로 ‘뜨거운 마음’을 불렀던 대추리에서 조차도 뭔가 빠진 느낌이었습니다. 머리로는 이해하고 겉으로는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여도 저의 일상은 그런 고민이 없는 친구들과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이념적이고 사회적인 고민들을 일상 속에 녹여내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고 동아리를 이끌고 있다는 일종의 의무감에 사건이 있을 때면 평상시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돌변하였습니다. 그리고 일상에 와서는 ‘이정도 하면 됐지 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되겠어.’, ‘다른 친구들을 봐. 저네들 보다는 낫잖아?’하며 위로를 해보지만 어떤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졸업한 이후에 의사가 되었을 때에도 이렇게 자기 합리화만 하며 살다가, 20대에는 그랬었지 하면서‘자주’,‘민주’,‘통일’이 추억꺼리로 술안주로 전락할 것 같았습니다. 그 불안감이 장속도 교우님, 김미애 교우님 등 여러 교우님을 만나면서 또 목사님들을 뵈면서, 예수님을 알게 되면서, 그런 불안감은 점차 엷어지고 오히려 확신이 생깁니다. 다시 대추리의 새벽으로 돌아가 보면, 거기에도 답은 있었습니다. 뜨거운 마음 2절입니다.

“뜨거운 마음 눈물에 실어 메마른 이 땅에 보내노라 사랑의 샘줄기 터뜨려서 따뜻한 인정 피우고지고.”

예수님이 지고 간 십자가의 길은 쉬운 길이 아닙니다. 그리고 저는 개인은 나약하기 그지  없습니다. 향린의 공동체 안에서, 청년신도회 안에서 사랑을 배우고, 사랑을 훈련하고, 서로 사랑해서, 용광로와 같은 뜨거운 사랑이 넘쳐나면 십자가의 길이 오로지 고통만이 있는 참고 견뎌야하는 고행의 길이 아니라 희망과 웃음이 충만한 행복의 길이 될 수 있습니다.

수요예배가 끝나고 청남선배님들과 뜻 깊은 만남을 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핸드폰 문자가 왔습니다. 김영광 교우님이었습니다.

“ 쭌 싸랑해^^향린에서 작은 예수로 살아가자^^”

그래서 답장을 보냈습니다.

“그려 십자가도 같이 지고가면 가벼울 것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