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3일 수련회 예배
제목 : 진정한 예배
본문 로마서 12 : 1-2

향린 희년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 땅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교회, 이 땅에 빛과 소금이 되는 교회,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교회로 자리매김해 왔습니다. 그 동안 믿음의 선배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씨가 되어 민족의 십자가를 잘 감당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새 시대를 향한 행진을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예수님께서 활동을 하시기 전에 광야에서 준비하셨듯이 출애굽한 민중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새 땅, 가나안 땅을 들어가기 위해 광야의 준비가 있었듯이 우리 향린도 미래를 향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미래는 현재의 연속입니다. 현재는 과거의 연속입니다. 우리의 과거를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의 장점은 계속 발전시켜 나가야 하고, 우리의 부족한 점은 보충해서 더욱더 향기 나는 교회로 만들어 가야 하겠습니다.
제가 생각하고 느끼는 몇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것은 우리 교회만이 아니라 한국 교회 모두의 문제요, 교회의 본질적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첫째, 공동체 성의 회복입니다.
교회를 예수의 공동체, 사랑의 공동체, 예배의 공동체, 믿음의 공동체 등 여러 가지로 말합니다.
향린 공동체, 향린 식구라고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우리 교회가 탄생하게 된 배경 가운데 하나가 공동체성이었습니다. 옛날은 제가 잘 알 수 없지만 세월이 흐르고 삶이 바빠지고 교인들도 늘어서인지 점점 개인화 되어 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서로에 대한 관심이 부족해지고 있습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모이는 사람만 모입니다.
새로 온 교인들을 따뜻한 사랑과 관심으로 대하지 못해 그들이 주변인으로 머물다가 돌아갈 때가 많습니다.
향린이라는 사회적 명성에 걸맞게 교회 안에서도 따뜻한 성도의 교제가 더욱 깊어져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진정한 믿음의 공동체, 사랑의 공동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덧붙이고 싶은 것은 양떼를 먹이고 돌보라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목회적 돌봄이 더욱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사회 선교, 통일 선교, 인권 선교, 의료 선교 등은 정말 우리 교회의 자랑이고 긍지입니다.
맞벌이 부부가 직장 생활에 충실하기 위해 가정과 자녀의 돌봄을 등한히 할 수 없듯이, 사회 선교를 위해 교회 안의 상처받은 영혼에 대한 치유와 돌봄을 등한히 해서는 안 됩니다. 두 가지가 반드시 병행되어야만 합니다.
우리 교회 안에도 사랑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따뜻한 마음과 위로와 물질이 필요한 사람이 있습니다. 향린을 떠나는 식구들에 대한 관심과 목회적 성찰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 교회 교육의 심화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 후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갈릴래아 산에서 만났습니다. 그때의 마지막 분부가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따르는 제자라면 부지런히 배우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모르고서야 어떻게 선생을 따르는 제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한국의 부모들의 교육열은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그 교육열이 학습 효과와 비례하지는 않습니다만 소 팔아서 논 팔아서 집 팔아서 서울로 서울로 보냅니다. 열심인지 사회 병리 현상인지 모르지만 아무튼 자식들 출세시키려고 열심입니다. 우리 교회도 이런 교육열에 불탔으면 좋겠습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그 분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를 분간하도록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위해서 교회 학교가 있습니다.
열심히 교회 학교가 운영되고 있습니다만, 좀더 성숙한 교회 학교가 되기 위해서 인적, 물적 지원과 투자가 더 있어야 합니다.
선생님들은 주의 자녀를 말씀으로 양육하는 성직자입니다. 훌륭한 선생님에게서 좋은 제자가 나올 수 있습니다. 교사 교육에 투자해야 합니다. 선생님들에게 더욱더 관심과 감사를 보내야 합니다.
우리 교회 안에는 인재가 많이 있습니다. 교사 대학 같은 것을 만들어서 선생님들을 키워야 합니다. 향린의 미래는 선생님과 학생들에게 있습니다. 그들에게 시간과 물질과 정성을 투자하십시오. 성령의 검을 쥐어 주십시오.

셋째, 삶의 신앙화입니다.
한국 교회는 세계가 놀랄 만큼 양적 성장을 했습니다. 모이기에 힘쓰고, 또 모였다 하면 예배를 드립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이기를 힘쓰는 것도, 열심히 예배를 드리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무슨 예배, 무슨 모임, 참 많기도 합니다. 이렇다 보니 예배가 타성에 젖어서 껍데기만 예배인 경향이 없지 않습니다.
요한 선생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고 하셨고, 바울 선생은 본문에서 "여러분 자신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실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라. 이것이 진정한 예배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몸을 희생 제사로 바치라는 것입니까?
우리 몸을 이삭처럼 바치라는 것입니까?
우리의 몸과 마음과 생각, 총체적 삶, 모든 생활을 바치라는 것으로 이해하고 싶습니다.
우리 삶의 신앙화, 이것이 진정한 예배입니다.
엿새와 주일의 합, 이것이 진정한 예배입니다.
엿새가 빠진 주일은 진정한 예배가 아닙니다.
주일이 빠진 엿새는 진정한 예배가 아닙니다.
6+1=7. 완전한 삶, 완전한 예배입니다.
우리는 엿새 동안 가정과 직장과 학교와 현장에서 산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까? 엿새 동안 맘몬에게 목매어 다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은 이 세상을 본받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루만의 천사가 아니라 7일 모두 천사가 되어 봅시다. 우리의 모든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시다.

저 자신 반성을 해보면서,
우리 향린 교회가, 한국 교회가 공동체를 회복하고 진리의 말씀을 배우고 가르치며 삶의 현장에서 진정한 예배를 드리기를 다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