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에 성령이 살아 숨쉬는 교회” (행 1:8, 눅 24:48)

향린 교회 노 재 열

여러분, 성령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대개 성령 단어 그 자체만으로도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사람, 성령에 따라 살아 갈려고 애쓰는 사람, 겉모양만 성령에 빠져 사는 사람 등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성령을 논할 때 거룩하고 저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께서 특별한 방법으로 믿음이 좋은 선별된 사람에게 은총으로 내려 주신다고 믿는 분들이 많지 않나 생각합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을 것이며 그 또한 성령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1:8 “너희가 성령을 받으면 땅 끝까지 나의 증인이 되라” 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으며, 눅 24:48 “너희는 모든 일의 증인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증인이란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예수님의 삶의 증인이 되라는 것으로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태오 18:5 “지극히 작은 어린아이와 같은 자를 섬긴 자가 나를 섬긴 자“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마태오 10:42 ”작은 자에게 냉수 한 그릇을 준 자에게는 상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우리의 현실 생활 속에서 지극히 작은 일에서부터 예수님의 삶을 닮아 갈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할 때 그 사람은 성령이 살아 있는 자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항상 성령을 받은 사람, 혹은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방언으로 말하며 보통 신앙 인이 가질 수 없는 어떤 초능력을 가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주님을 신비주의에 묶어두는 것이 아닐런지요? 성령은 교회의 건물 속이나 신앙인 맘속에 정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 행동으로 분출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활 속에 영이 살아 숨쉬는 향린 교회에서 주님의 삶의 산 증인이 되시기 위하여 주님의 삶을 닮아 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럼 예수님의 삶은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의 삶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저는 세 가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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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예수님의 삶은

그 시대의 민중구원과 사회구원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한 생애를 사셨던 시대상을 보면 로마의 지배와 그 시대의 지배층으로부터의 억압에서 민중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사회 변혁을 이루고자 하였으며 사회의 변혁 없이는 민중의 구원이 없다고 생각하셨든 예수님. 그러기에 오늘날 우리는 외세의 지배 및 내정간섭과 기득권자의 탐욕 속에 억압받고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당하고 사는 민중이 도처에 있습니다. 그들의 삶의 구원에 동참하는 것이 주님의 성령이 살아 숨쉬는 교회요, 신앙 인이라고 저는 감히 생각합니다.

두 번째 예수님의 삶은

나눔의 삶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나누어주는 삶이었습니다. 예수님 자신의 육신까지도... 그럼 우리의 삶은 과연 타인을 위하여 얼마나 나누어주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야고보 저자는 2:15-16 “형제의 헐벗음과 굶주림을 보고 형제여 평안히 가라고 하면 그 형제가 평안히 가겠느냐?”고 저희들에게 반문하시고 계십니다. 그 형제의 평안을 위하여 우리는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야고보서 2:17 ”실천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야고보서의 곳곳에는 사회 정의와 가난한 이웃을 위하여 어떻게 실천하며 예수님의 삶을 따를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나눌 때 주님께서 더 하여 주신다는 삶을 체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도 주님 닮은 나눔의 삶을 체험하기 위해 기도와 작은 실천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좀 더 큰 실천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다짐하면서도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작은 실천 속에 새롭고 큰 실천이 이루어질 것으로 믿습니다.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 우리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예수님의 삶은

기도하시는 삶이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암울한 그 시대의 사회 현실 속에서 신음하는 민중의 아픔을 위해 기도하셨다고 성경 많은 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새벽 미명에 기도하셨으며, 최후의 만찬 후 겟세마니에서 홀로 기도하였으며 제자들에게 깨어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다니엘 (6;10) 선지자는 포로 생활 중에서도 하루에 세 번씩 조국을 바라보며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그 기도는 아마도 조국이 없는 개인이 있을 수 없기에 조국의 아픔에 대한 고뇌에 찬 기도였을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 준다고 저는 믿습니다. 기도는 믿음이요, 우리의 구원입니다. 기쁨입니다. 기도는 희망입니다. 사랑입니다. 용기입니다. 용서입니다. 기도는 성령 그 자체입니다. 향린 교회가 성령이 없다고 말하기 전에 기도로 성령을 받아 땅 끝까지 예수님 삶의 증인이 되십시오. 예수님의 삶을 체험하십시오. 예수님의 삶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기도는 또한 욕망의 세계에서 조금씩 버릴 수 있는 힘입니다. 자기 소유를 버릴 수 있다는 것은 곧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우리의 모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가 향린 교회에서 지난 3년 반 동안 몸 담아오면서 향린 교회의 50년 사를 돌이켜 본다는 것은 매우 주제넘은 일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감히 저 나름의 생각을 말씀드리면 향린 교회는 민중구원과 사회구원을 실현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므로서 생활 속에 성령이 살아서 숨쉬는 실천한 교회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모방의 교회가 아닌 우리 것을 귀하게 여기는 교회로, 우리 고유의 것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것, 다른 나라의 것까지도 우리 생활 속에 녹여서 우리 것으로 승화시킨 교회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앞으로 닦아오는 새로운 희년에는 여기에 하나 더 덧붙여서 우리의 가진 것을 나눔으로서 기쁨을 맛보고 사랑이 넘쳐흘러 온 북과 남을 감싸 안아 평화와 통일을 열어 가는 향린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자녀들에게 예수님의 참 증인의 길을 가르치면서 우리 함께 갑시다 이 길을.... 감사합니다.


2003. 7.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