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닿은 공동체 - 느헤미야의 비전(5)
느헤 3,1-2; 33-38; 마르 16,1-8
오늘은 안병무 선생 7주기를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안병무 선생님은 향린교회를 설립하신 분인 중에 한분이시고, 70, 80년대의 한국 민주화운동 그리고 세계적인 한국신학인 민중신학의 기초와 뼈대를 만드신 대 신학자이셨습니다. 오늘 오후 3시에 황성규 목사님께서 위원장으로 봉사하시는 안병무선생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추모기념강연과 논문집 출판기념회를 갖습니다. 향린교회를 생각함에 있어 안병무 선생을 떼놓고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외람된 말씀이긴 하지만, 제 개인에게 있어서도 뗄래야 뗄 수 없는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누군가가 제게 당신의 신학적 사고에 있어 가장 큰 영향력을 준 사람이 누구냐? 라고 물었을 때, 저는 서슴없이 안병무 선생님을 얘기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안병무 선생님을 따르던 분들이 워낙 많기에 제가 안병무 선생의 제자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에게 12제자의 측근그룹이 있었고, 그 밖에 또 70명의 제자그룹이 있었습니다만, 저는 여기에 비유한다면, 70명 안에도 들지 못하는 저 원 밖에서 예수님을 짝사랑하던 군중 가운데 한사람에 불과하였습니다. 물론, 신학대학에서 직접 배우기도 하였지만, 당시는 박정희 유신정권 반대 데모로 말미암아 한학기도 제대로 공부를 한 적이 없습니다. 휴업령 휴교령으로 인해 학교 문이 닫혀 있는 경우가 너무 많았습니다.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 졸업을 하게 되었고, 졸업식장에서 당시 해임을 당하셨던 안 선생님과 사진을 찍으면서 졸업 후에라도 조금 가까이 지내면서 개인적으로 지도를 받고 싶다는 의견을 드렸고, 그리고 그렇게 하자고 허락을 받아 내심 기뻐하던 차에 열흘도 지나지 않아 명동성당 3.1구국선언으로 여러 민주 인사들과 더불어 영어의 몸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곤 저는 몇 개월 후에 군에 입대를 하게 되었고, 군 제대 후에는 바로 이민의 길에 올랐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와 안 선생님의 만남은 일방적인 짝사랑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다가 1990년도인가 미국을 다녀가시게 되었습니다. 그래 제가 시무하던 벨츠빌교회에서 주일설교도 하시고 오후에는 민중신학 강연도 하시었습니다. 그리곤 저녁 늦게 차 한 잔을 위해 저희 집에 들렀습니다. 당시 저는 아파트에서 집으로 이사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인데, 집이 코너집이라 잔디밭이 넓었고 전 주인이 나무를 좋아해서 집 주위는 큰 나무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그날따라 달도 밝았는데, 달빛에 비친 저희 집이 상당히 좋아 보였던지 들어오셔서 소파에 앉으시자말자 하시는 말씀이 ‘이제 조 목사는 한국에는 못 오겠구만.’ 그러시는 겁니다. 아마 한국식으로 생각하셔서 제가 상당한 부자로 오해하셨던 것 같습니다. 미국은 30년 은행 융자로 일정한 직업만 있으면 아주 적은 돈으로 집을 쉽게 살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시 제가 구입한 집은 30년 된 오래된 집에다가 처가에서 돈을 좀 빌려다가 다운페이먼트를 한 것인데, 그런 속사정은 모르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그 늦은 밤에 노 은사님을 앞에 두고 구차스럽게 그런저런 사정 얘기 다 들이기도 뭐해서 그냥 웃고 말았습니다. 사실은, 지난 4개월 전 제가 첫 설교를 할 때, 이 단상에서 하고 싶었던 말이 있습니다. 그건 먼저 안병무 선생님께 귀국 보고를 드리는 일입니다. 지금 하겠습니다. ‘안병무 선생님 제가 한국에 왔습니다. 그것도 안 선생님의 믿음의 현장인 향린교회에 말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앉아 계시는 향린 가족들은 모두 나름대로 안병무 선생님과의 추억이 있는 줄 압니다. 홍창의 장로님과 같이 오랜 세월동안 생사고락을 같이 걸어오셨던 분도 계실 것이고, 직접 공부를 배우셨던 제자들이나 설교를 들으셨던 분이 다 여기에 앉아 계십니다. 그리고 생전에 직접 뵙지는 못했다 할지라도 책을 통해 사상적으로 연결점이 다 있으실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제가 좀 색다른 나눔의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이제 여러분께서 연필을 꺼내셔서 주보 모퉁이에다 안병무 선생님을 생각하면서 떠오르는 단어를 적어보는 것입니다. 명사도 좋고 동사도 좋고 형용사도 좋고, 그저 떠오르는 단어들을 적어보는 겁니다. 7개까지 써보시기 바랍니다. 지금부터 한 3분 동안 명상하시면서 쓰시기 바랍니다. 몇 사람을 뽑아서 그 단어들을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의 어느 평범한 시골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앞에는 조그마한 강이 흐르고 뒤에는 제법 큰 산이 있어 그 안에 수 십여 호의 집들이 모여 앉아 농사를 지으며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자꾸만 곰이 나타나 집안의 가축들을 잡아갑니다. 하루는 동네사람들이 모여 회의를 한 결과 어느 날 저녁들을 먹고 사냥꾼을 대동하고 그리고 모두들 손에 손에 몽둥이를 들고 이 곰을 잡기 위해 나섰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산을 빙 에워싸고는 몽둥이로 땅을 치며 곰에게 겁을 주면서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다람쥐니 토끼니 하는 작은 짐승들이 놀라서 이리저리 뛰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한참을 올라가는데, 어떤 한 사람이 흥분하여 소리를 칩니다. 여기 곰발자국이 있다. 그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보고, 그래 이거 곰발자국 분명히 맞다. 또 뭐 좀 아는 사람들은 암컷이다 수컷이다. 그럽니다. 사람들은 흥분하며 또 올라갑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누군가가 곰의 털을 발견했다고 소리치자 거기에 또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그래 사람들은 분명히 이 산에 곰이 있다고 하는 확신을 갖고 계속 올라갑니다. 날이 어두워지자 저마다 횃불을 밝혔습니다. 또 누군가가 소리를 칩니다. 여기 곰 똥이 있다. 그래 이제나 저제나 곰이 나타나서 공격을 하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을 갖고 주위를 살피며 포위망을 계속 좁혀가며 계속 올라갔습니다. 곰의 집인 것 같은 동굴도 발견됩니다. 사람들은 잔뜩 흥분합니다. 이제는 저쪽 반대편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의 소리도 들립니다. 더욱 긴장하며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조심스럽게 올라갑니다. 이제는 반대편의 불빛도 보입니다. 조금 있다 정상에서 모두 만났습니다. 아니, 꼭대기까지 다 왔는데 곰이 보이지 않습니다. 포위망을 뚫고 나갔을 리는 만무합니다. 작은 동물들은 가능하지만, 덩치 큰 곰이 빠져나갈 틈바구니는 없었습니다. 분명히 있을 것으로 알았던 곰이 발견되지 않자, 동네 사람들은 허탈감에 빠졌습니다. 밤새도록 긴장하면서 산을 올라왔던지라 모두들 지쳐서 넋을 놓고 바위에 걸쳐 않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아예 바닥에 누워버렸습니다. 그러노라니 날은 점점 밝아오고, 조금 있더니 빨간 해가 저쪽 산 너머에서 고개를 빠끔히 내밀면서 올라옵니다. 그때, 한사람이 소리칩니다. ‘와 좋다 야 우리 동네 정말 아름답다.’ 그 소리에 모두들 일어나서 자기들이 살던 동네를 내려다보았습니다. 굽이굽이 흐르는 냇물과 여기저기 흩어진 논밭, 옹기종이 모여 있는 초가집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평생을 살아왔지만, 자기들이 사는 마을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이 예화는 아마 여러분들도 안병무 선생에게서 직접 들으셨을 줄 압니다. 그가 평생을 걸려 찾고자했던 역사적 예수를 곰에 비유한 이야기입니다. 다른 각도에서 이 말씀을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고민하던 신학생 시절 이 설교의 한토막이 제게 던져 주었던 그날의 깨달음을 결코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오후 기념강연시간에는 홍근수 목사님께서 안병무 선생의 통일관에 대해 말씀을 하시겠지만, 저는 이 시간에 안병무 선생의 교회관 내지는 목회관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싶습니다. 물론, 안병무 선생께서는 끝까지 목사 안수를 거부하셨고, 제도권 안에 들어오시기를 거부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저는 향린교회의 목회자로서 제 자리에 서서 만약에 안병무 선생님께서 목사가 되셨더라면 어떤 목회를 하셨을까? 를 한번 감히 추론해보는 것입니다. 만약에 지금 생존해 계신다면 저에게 어떻게 목회를 하여보라고 말씀하실 지를 한번 추측해보는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우리가 자주 얘기하는 평신도교회의 실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답변이 되기도 하겠습니다. 물론, 오늘 이 얘기를 다 할 수는 없습니다. 다음 주일이 종교개혁주일이기에 오늘은 이론적인 측면에서 다음 주는 보다 실천적인 측면에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우선 안병무 선생님은 마가복음에 기초한 오클로스 곧 민중 개념에 근거해서 이보다 더 일찍 Tm여진 사도 바울의 편지에서 자주 등장하는 ecclesia 라고 하는 교회라는 단어가 없는 것을 중요하게 보고 있습니다. 곧, 마가공동체는 당시 존재했던 ecclesia 곧 초대 교회를 몰라서 이 단어를 쓰지 않은 것이 아니라 당시 사도들에 의해 제도화 되어가는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비판이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곧 마가공동체는 당시 예루살렘 교회가 성전을 중심하여 유대교의 하나의 분파로 남아 있으려 했던 것을 비판하며, 대안으로 갈릴리를 중심한 새로운 예수 민중운동을 주창하였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운동의 주제는 하느님의 나라가 임박했다는 종말론적인 선포이고, 이 하느님 나라 선포는 기존의 부조리한 질서를 무너뜨리는 새로운 질서의 도입이다. 그러니 자연히 현재에 만족하는 배부른 사람들은 오지 않고 대신 가난한 사람들, 우는 사람들, 수난당하는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고, 모인 그들에게 너희들이야 말로 바로 하느님 나라의 새 백성이다. 라고 예수님은 선포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논리에 비추어보면 저를 포함해서 이 자리에 참석하신 분들 가운데 몇 명이나 이 범주에 들어갈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냥 내 마음에 안드니까 바꾸자 그런 개혁이 아니라, 어디에서고 마음 붙일 곳도 없고, 자기 얘기 들어주는 사람도 없고, 가면 멸시만 받는 그런 낮은 계층의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예수가 꿈꾸었던 교회라는 것입니다. 금요일 아침에 한진중공업의 김주일 금속노조지회장이 40세의 나이에 129일을 크레인 꼭대기에서 홀로 농성을 벌이다가 자살로 노동자의 극한 현실을 토로했습니다. 고인의 유서의 한대목입니다. ‘이 회사에 들어온 지 만 21년, 그런데 한달 기본급 1백 5만원, 그중 세금들을 공제하고 나면 남은 것은 팔십 몇만 원 근속연수가 많아질수록 더욱 더 쪼들리고 앞날은 막막하다. 그런가하면 1년 당기 순이익의 1.5배, 2.5배를 주주들에게 배상하는 경영진들, 사장은 액수 미상의 거액의 연봉에다 50억원 정도의 배상금까지 챙겨가고 있다.’ 이런 부조리에 노동파업의 책임을 물어 집을 압류하는 등 공권력의 추잡한 압박과 사회적인 무관심을 견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분에게 교회는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을 찾아 나섰는데, 오늘 향린교회는 과연 이런 사람들을 찾아 나서는 교회, 그리고 이런 극한 상황에 몰린 사람들에게 쉼터를 제공하는 곳이 교회가 되고 있는 것인가? 스스로 질문을 해봅니다. 오늘도 지금 남한 인구의 20% 거의 천만에 가까운 사람들이 설교 단상에서 들려지는 소위 하느님의 말씀인 설교라는 것을 듣고 있는데, 그 가운데 몇 명이나 설교를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듣는 사람이 있을까? 머리 속으로는 복잡하게 설교를 분석하고 때로 비판하지만, 과연 말씀을 내 삶에 적용하기 위해 비판하고 분석하는지, 아니면, 그냥 자신의 논리의 잣대에 맞춰보는 분석에 그치고 마는 것인지.

저는 안병무 선생님이 평신도교회를 얘기할 때, 목사가 있느냐? 없느냐? 이것이 관건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안 선생님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공동체입니다. 그것도 삶을 나누는 생활공동체입니다. 평신도 교회라는 말은 곧 생활공동체로서의 교회를 말합니다. 원래의 예수 공동체도 함께 떡을 먹고 나누는 생활공동체였습니다. 12명의 제자와 그 외의 보이지 않는 여러 제자들과 함께 먹고 잤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나타나는 처음 교회도 있는 것을 함께 나누는 생활공동체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점차 예배공동체로 변해간 겁입니다. 그러면서 예전과 제도가 생겨나고 세상의 권력이나 가치관등과 타협하게 되어 급기야는 교회의 탈정치화가 이루어졌습니다. 안병무 선생님에게서 중요한 교회 혹은 목회 이해는 바로 이 생활공동체 혹은 밥상공동체, 혹은 바닥공동체의 재현이었습니다. 그래서 45세에 이르기까지 혼자 사셨습니다. 이 공동체는 단지 가진 재산을 나누는 것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평신도들끼리 모여 성경을 읽고 해석을 함으로 예수에 대한 원 정신을 끄집어내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신학훈련을 받은 목사가 탁상머리로 주도하는 성서 해석이 아니라, 평신도 스스로가 자신의 부닥친 삶의 곤고한 현실 속에서 말씀을 읽어 내려가고 해석하는 교회를 평신도 교회라고 본 것입니다. 평신도들이 모여 있다고 평신도가 아닙니다. 사실 더 정확히 말하면, 안 선생님이 바라던 교회는 오늘의 용어로 말하면 바닦 사람들이 모이는 민중교회입니다. 성서의 이야기는 원래 사건이었는데, 이를 서구교회와 신학이 학문이라는 제도권으로 묶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서를 바로 읽으려면 사건으로 읽어야 하는데, 이 예수 사건은 바로 민중 사건이기 때문에 오늘의 민중들이 읽고 해석하도록 할 때, 사건으로 되살아난다고 본 것입니다.

그러면 안병무 선생이 현재의 교회제도 자체를 거부했느냐? 그건 아닙니다. 안 선생께서는 제도교회와 예수의 민중 공동체 정신이 병행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사실 저에게 목회방향을 설정함에 있어 이 말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의 현재 교회 제도를 어떻게 하면 예수의 민중해방을 지향하는 공동체로 만들어가도록 할 것이냐? 말씀 속에서 사건이 재현되는 현장을 만들어갈 것이냐? 그리고 여러분 스스로가 성서의 이야기를 써가도록 할 것인가? 만약에 우리 스스로가 너무 지식화되고 사회제도권 안에 머물고 있다면, 그래서 우리 안에서는 성서가 증언하는 민중해방의 기쁨을 맛볼 수 없다면, 어떻게 그 현장을 찾아가서 민중 해방의 기쁨과 부활을 증언하는 교회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안 선생님께서는 향린교회를 말씀하시면서 호랑이를 그리려다가 고양이를 그렸다는데, 그 고양이가 호랑이의 혼을 가질 수는 없을까? 고양이도 호랑이의 혼을 품고 한 50년 지내다 보면 정말 호랑이가 되는 것은 아닐까? 여러분 동의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향린교회가 바로 이러한 정신 속에서 우리가 과거에 해왔던 일이라 할지라도 이 정신에 위배가 되면 수정을 하고, 필요하다면 없던 일도 새롭게 창조하여 가려는 보다 열린 정신이 있어야 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저는 어떻든지 우리의 주어진 제도권 교회라는 틀 속에서 거기에 매이지 않고 이것을 넘나들면서 여러분 스스로가 성서 해석의 주인이 되고 그 성서 이야기 속에서 자신을 찾아내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오늘 마가복음서 16장 8절이야말로 마가복음의 끝입니다. 이 뒷부분은 후에 첨가된 것으로 대부분의 학자들이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의 부활 얘기를 하지 않고, 갈릴리에서 만나자는 선언으로 끝나는 이 마가공동체가 오늘 우리에게 전하는 얘기는 무엇인가? 그것은 모세의 출애굽의 해방 전승과 북이스라엘의 평등정신이 뿌리 깊게 내려 있는, 자주와 해방의 혼이 살아있는 갈릴리에서의 해방 공동체의 재현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오늘 느헤미야서 3장은 모든 예루살렘 거민들이 함께 하여 성벽을 세워가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의 이름과 구체적인 직책이 세세하게 나열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얘기를 연결해가는 중요한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 다음 잇닿은 부분은...’ 이 단어가 3장 안에서만 30번이상 등장하고 있습니다. 지금 느헤미야가 하는 일은 눈앞에 보이는 일은 성벽을 세워나가는 일이지만, 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들이 서로 잇닿아져 있다는 것입니다. 성벽 재건은 곧 사람들을 연결하게 하는 도구일 따름입니다. 함께 일하는 공동체 정신을 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도 바로 이러한 목표를 잃지 않으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 ‘잇닿은’이라는 개념을 잃어버리고 내가 하는 일에만 관심할 때입니다. 저는 이렇게 잇닿아진 공동체 목회를 생각하면서 기러기가 보여주는 예화를 마지막으로 제 설교를 마무리 짓고자 합니다.

저는 한국에 와서는 아직까지는 보지 못했습니다만, 기러기는 반드시 떼를 지어 날아가는데 그 대형이 우리가 잘 아는 대로 V자형으로 날아갑니다. 이것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공기 저항을 줄이기 위한 대형입니다. 앞에서 가는 기러기가 일으키는 공기의 파장을 이용하면 뒤에서 가는 기러기들은 70% 적은 힘만으로 날아갈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뒤에 가는 기러기는 더 적은 힘으로 날아갑니다. 당연히 제일 앞서는 가는 기러기는 힘이 많이 듭니다. 그래 기러기들은 이 앞서가는 역할을 번갈아 가며 합니다. 교회 일도 누군가가 혼자서 오래 일하면 다 지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장은 서로 번갈아 가는 것이고, 장로직책에 휴무제를 두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기러기들이 날아가면서 끼역! 끼역! 소리를 내는데 이는 뒤에 가는 기러기들이 앞에 가는 기러기에게 너 잘한다! 힘내라! 하는 칭찬과 격려의 소리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칭찬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는 글이 자주 나타납니다만,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사람은 누구나 칭찬과 격려가 필요합니다.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사이에 칭찬하고 자식과 부모사이에 칭찬하고, 어쩌면 하느님의 나라는 칭찬과 격려에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이 기러기 떼가 이동을 하다가 한 마리가 병이 들어 더 이상 날아갈 수 없을 때에는 그 한 마리가 회복하는 동안 다른 두 마리가 함께 머물러 있다가 다 나으면 그때 같이 날아가서 본대에 합류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노래가사. ‘해떨어져 어두운 길을 서로 일으켜주고 가다 못가면 쉬었다가자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마침내 하나됨을 위하여.’

사실, 오늘 느헤미야의 본문과 마가복음의 본문은 겉으로 본다면 모순입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이라는 성전의 전통을 되살리기 위해 성벽을 쌓았고, 마가 저자는 바로 이 예루살렘을 거부하는 갈릴리 공동체의 회복을 외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컨텍스트 곧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면 이 얘기는 둘 다 같은 민중해방의 회복을 말합니다. 느헤미야 시대에서 예루살렘은 변방이었습니다. 예수 이후의 갈릴리 또한 변방이었습니다. 역사의 힘은 변방 곧 밀려난 민중 안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이 갈릴리에서 만나자는 말씀으로 마침과 같이 오늘 느헤미야서는 본문 그 마지막에 ‘우리 백성들은 기어이 해내고야 말겠다는 마음으로 계속 쌓아 올렸다.’ 기어이 해 내고야 말겠다. 이것이 바로 호랑이의 혼입니다. 주위의 반대와 비난과 야유 속에서도 모든 백성들은 하나가 되었습니다. 향린의 가족 여러분! 우리 모두 서로 자신의 것을 내어 놓아 이를 ‘잇닿아’ 안병무 선생님께서 기초를 놓으셨던 성벽을 다시금 세워갈 수 있기를 확신 속에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