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일 이 땅을 살다간 예수들(3)-함석헌

씨알의 살림(예레미야 5장 3-6절; 요한복음 5장 19-26절)


   이미 말씀드린 대로 올해의 하늘뜻펴기는 한국기독교 역사에서 예수를 따라 살았던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찾아나가고 있습니다. 교회 절기나 다른 이유로 인물중심의 하늘뜻펴기를 하지 못할 경우도 있을 것이고, 제가 안식월로 교회를 떠나 있는 다음주부터 4월까지는 쉴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작년의 예언자 하늘뜻펴기의 연속선상에서 이 땅을 살다간 예언자들을 찾아 나서는 하늘뜻펴기 토착화 작업이면서 동시에 오늘의 한국기독교의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데 그 의도가 있습니다. 인물 선택에 있어서는 저의 주관에 따를 수밖에 없고, 예배 강단에서 하늘뜻펴기를 통해 선포되기에 설교나 성서연구 형태의 글을 남기신 분들에 한정해야 하는 잘못도 있습니다. 혹 교우들께서 추천하고 싶으신 분들이 있다면 추천하여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물중심의 하늘뜻펴기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오늘을 사는 청년들에게 보다 큰 꿈을 심어주기 위한 목적도 있습니다. 지난 주 20대 초중반의 새날청년회원 십 여 명을 저희 집에 초대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만, 예전에 비하면 청년들의 꿈이 많이 약해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실 그 나이에 이미 안병무, 이영환, 홍창의선생 등은 민족구원의 꿈을 안고 이 향린교회를 시작하신 것 아닙니까? 그에 비한다면 오늘의 청년들은 취업이라는 작은 것에 매여 신앙이 너무 나약해져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들에게 자극을 주고 싶은 것입니다. 물론 이 점에서 나이가 드신 어르신들로부터 우리도 교인이지 않느냐? 하는 항의성의 질문을 들을 수도 있겠지만, 한 편의 하늘뜻펴기가 미치는 영향력은 어르신들과 젊은이들에게는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설교가라 하더라도 수 십 년 동안 수많은 하늘뜻펴기를 들어오신 분들의 삶의 가치관을 바꾸거나 세계관을 바꾸기는 매우 힘듭니다. 그러나 지금 자라나는 젊은이들은 한 두 편의 감동 있는 하늘뜻펴기를 통해서도 삶의 방향이 바뀔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매주 향린 교회를 방문하는 미래의 향린교인들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했는데, 그분들이 예배에 참여하고 나서 ‘아니 진보적인 향린교회라고 찾아왔더니 그 나물에 그 반찬이네.’ 하는 실망감을 안겨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 교우님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면서도 이에 일일이 부응하지 못하는 목회자의 고민이 있습니다.


        1월 달에는 이 땅을 살다간 예수를 찾아 문익환목사님과 김재준목사님을 중심한 하늘뜻을 펼쳤습니다. 그것은 이 두 분의 추모일을 맞춰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오늘 대상자로 함석헌선생을 정하게 된 것 또한 이번 주 수요일이 추모 20주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함석헌선생님에 대해서는 저보다도 훨씬 더 많은 얘기를 하실 수 있는 분들이 이 자리에  여러 분이 계시고, 또 그분의 사상과 철학, 그리고 신앙적 실천이 워낙이 넓고 깊기에 이를 30분 동안의 한편의 하늘뜻펴기로 엮어낸다는 것은 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한국의 간디]


   간단히 그의 일생을 정리하면 함선생님은 한국의 간디라 불리듯이 깊은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유신독재에 저항하며 이 땅에 자유와 평화를 심고자 했던 사람입니다. 한국사회와 민족 그리고 교회를 향하여 매우 따가운 비판의 소리를 낸 시대의 예언자였고 민주화운동의 정신적 지주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노벨평화상 후보로 두 번 추천을 받았고 그가 엮어냈던 월간지 <씨알의 사상>은 암울했던 시대에 장준하선생의 <사상계>에 이어 지식인들의 유일한 젖줄이었습니다. 그의 남긴 글은 무려 30권에 이릅니다. 작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 철학대회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사상가로 두 분이 다루어졌는데, 유영모와 함석헌입니다. 그리고 이 두 분은 사제지간이기도 합니다. 유영모선생의 사상은 너무 깊고 심오하여 저로서는 역부족이지만, 반드시 거쳐 가야 할 이 땅의 예수입니다.


   20년 전 워싱톤에서 목회를 할 때, 워싱톤목요기도회와 여러 민주운동단체들 그리고 함선생님을 기억하는 여러 어르신들이 함께 주최한 함석헌선생님 추모기념예배에 제가 설교를 한 적이 있습니다. 15년 전에 펴낸 설교집에 이 글이 실려 있어 다시 한 번 읽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다시 이런 기회를 갖는다 하더라도 이 글보다 더 잘 쓸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 오늘은 20년 전의 하늘뜻펴기를 다시 한 번 전해보고자 합니다. 따지고 보면 오늘이 제 3개월 안식년 시작인데, 오늘 하늘뜻펴기는 덤으로 하는 것이니까 교우 여러분들께서도 이해해 주시리라 생각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오후에 한 번 더 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살아 계신다면...]  


   어제 여러 교우님들과 함께 청계천에서 모인 용산 철거민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집회에 참여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 함 선생님이 지금 살아 계신다면 분명 이 자리에 오셔서 저들을 위로하고 현 정권을 향해 사자후를 토하셨을 것이라고. 그래 저는 유가족 한 분의 애절한 외침으로 하늘뜻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죽어야만 하는 것이 이 나라입니까? 자기 집 없고 건물 없는 사람은 나가라면 엄동설한에도 집에서 쫓겨나고 수 십 년 동안 장사한 가게도 고스란히 내어 놓고 조용히 물러가야 하는 것이 이 나라입니까? 어떤 사람이 좋아서 농성을 하고 좋아서 옥상에 올라가겠습니까? 왜 세상은 늘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더 힘들고 가혹한지 모르겠습니다.  .... 우리는 집 주인한테 무시당하고 정부한테 버림받았습니다. 우리도 장사하면서 세금내고 장사했습니다.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도 아니란 말입니까? 우리 유가족들은 경찰이고 정부사람이고 누구한테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정부에 부탁드리겠습니다. 돈 많은 사람들만 행복하게 사는 나라를 만드시지 마세요. 돈 없고 빽 없는 우리 철거민들 같은 사람들도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주세요. 다시는 우리처럼 불행한 사람들이 나와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왜 이렇게 죽어갔는지 온 세상이 진실을 알아야 합니다. 언제 우리가 쫓겨난다고 신문에서 써준 적이 있습니까? 언제 우리가 통곡한다고 텔레비전에 비춰 준 적이 있습니까? 우리가 살게만 해달라고 호소할 때 기자님들이 관심을 가져주었더라면 오늘 같은 말이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 아저씨가 돌아가시고 나니까 국회의원, 정치인들도 찾아오곤 합니다. 우리가 어려울 때, 우리가 필요할 때 우리를 한번만 돌아봐 주었으면 우리 아저씨는 안 죽어도 되었을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부탁드립니다. 힘을 보태주세요. 가난한 우리들 힘만으로는 못합니다. 여러분들이 도와주셔야 합니다.1)


   <난장이가 쏘아 올린 공>이라는 소설을 통해 70년대 달동네 판자촌 사람들의 현실을 폭로했던 조세희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30년 한 세대가 지나간 일이거든, 어저께 봐. 반복이지. 크게 보면 똑같은 일인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방법은 더 나빠졌고 더 잔인해졌고 더 미개해졌고 더 야만적인 상태로 갔지... 여섯 명이 죽었어. 내 난장이에 보면 폭력은 경찰의 곤봉이나 군대의 총만이 폭력이 아니라고 그랬어. 우리 시대의 어느 아이 하나가 배고 고파서 밤에 울면, 그 아이의 울음소리 그치게 하지 않고 그걸 놔두는 것도 폭력이라고 그랬다고. 어제 어마어마한 폭력이 가해졌는데도 우리가 그냥, 그냥 지나간다면 우리가 죄를 짓는 거야.”


   이제 20년의 세월을 거슬러 1989년 2월 4일로 올라가겠습니다.


[씨알의 살림]


   대체로 추모예배의 설교를 담당하는 사람은, 돌아가신 분과 생전에 사상적 동지의 유대 관계에 있었거나 실천적 행동의 영역에서 만나 함께 고락을 같이한 사람이 담당하는 것이 보이지 않는 원칙이고 이것은 매우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반 상식을 벗어나 부족한 저에게 생전의 함 선생님 하고는 단둘이 앉아 깊은 대화도 전혀 나눈 적이 없는 본인에게, 그분을 추모하는 예배의 설교를 부탁받았을 때 나 개인 조헌정이라는 사람이 함석헌 선생님을 추모하는 것이 아니라, 사제의 직분을 맡은 한 명의 목사가, 만물의 생명체 중의 하나, 그중에서 한 인간의 생명이 하느님께로 돌아간다는 의미로 오늘 밤의 제 역할을 축소한 후에야 마음의 결정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저는 설교를 준비하면서 생전의 함 선생님과 개인적인 접촉이 전혀 없었을 뿐 아니라, 사상에 있어서나 실천에 있어서 하나도 접촉점을 찾지 못하여 할 수 없이 어리석게도 그 눈길을 밖으로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발가락이 닮았다”는 어느 아버지의 애절한 외침처럼, 저도 발가락 하나쯤은 함 선생님을 닮았다는 조그마한 발견에서, 그리고 그 기쁨 속에서 설교의 초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함석헌 선생님의 함자 마지막 글자인 헌자와 제 가운데 이름 헌자가 같은 법헌(憲)이라는 새끼발가락의 발톱의 색깔이 같다는 억지의 소리가 첫째이고, 두 번째는 비록 길이와 색깔은 달라도 수염을 기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목사로서 본의 아닌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수염이어서 그간 저는 수염 얘기를 한 적이 거의 없습니다만, 오늘 저녁만은 떳떳한 마음을 가지고 수염 얘기로부터 설교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함석헌 선생님을 제가 알기 시작한 것은 한국신학대학을 들어가면서 1학년 필독서적의 하나였던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읽고 나서부터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해에 개설된 함석헌 선생님이 담당하시는 “동양철학 특강”을 수강하면서 더 깊이 매료되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이 시간을 가르치기 위하여 신학대학 길목을 올라오시는 함 선생님의 모습이 너무나도 눈에 선합니다. 수업 중 2층 교실 창문을 통하여 내려다보이는 그 모습, 책 몇 권을 싸신 보자기를 한 손에 드시고, 하얀 고무신을 신고, 하얀 두루마기와 하얀 수염을 바람에 흩뜨리며 걸어올라 오시는 그 모습은 그것 하나만으로도 한 가르침이요, 사상이요, 깨달음이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수염을 왜 기르느냐고 물으면, “산이 거기 있어 오른다는 산꾼의 대답처럼, 수염이 거기 나니까 놔두는 것이지 누가 기르느냐?”고 답변을 하곤 하였습니다만, 아마도 그때 보았던 함 선생님의 하얀 수염 모습이 제 뇌리 속에 강하게 남아 있지 않았나 생각하여 봅니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잠재의식의 발로니, 연상작용의 반사(projection)니 하는 복잡한 용어로 설명하겠지요. 함 선생님 자신은 수염을 어떻게 여기셨는지 수염에 관한 글을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만, 당신께서도 신체의 한 부분으로, 얼굴의 코나 눈과 같이 애지중지 하셨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이렇게 애지중지하시던 신체의 일부분을 잘라 내버렸던 모습, 고대와 한국신학대학의 휴교령에 항거하여 그 하얀 머리와 수염을 삭발하셨던 그 모습, 또한 눈에 선합니다.


[무교회주의의 진정성]


   오늘 우리는 고 함석헌 선생님의 영전의 자리에 옷깃을 여미고 앉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모인 것은 그분의 죽음을 슬퍼하기 위한 것은 아니며, 우리의 비겁 때문에 같이 참여하지 못했던 그분의 생전의 삶에 경의를 표하고자 모인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당신께서 이 일 때문에 우리가 모여서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면, 아마 다시금 흙무덤을 박차고 나와 우리에게 호통을 치실지도 모릅니다. 그분의 생전의 말씀 그대로 씨?은 죽지 않았습니다. 아니 씨?은 이미 죽음과 생명을 넘어서 제 갈 길을 가고 있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이 땅에서의 삶을 어떻게 이야기하여야 할 지 무척 곤혹감을 느낍니다. 제가 교회의 어떤 모임에 오늘 저녁 설교 때문에 참석할 수 없다고 하자, “그분 무교회주의자가 아니었나?”하는 자문자답의 얘기를 들었습니다. 물론 함석헌 선생님은 무교회주의자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 선생님 같은 분에게 무슨 무슨주의자였다고 규정하는 일은 매우 잘못된 일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들이 편의상 무교회주의자라고 표현합니다만, 사실 당신은 무슨 무슨주의를 깨뜨리기 위해서 평생을 사신 분입니다. 함 선생님이 무교회를 제창하신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그분만큼 교회 단상에서 말씀을 증언하신 분도 드물고, 그분만큼 성서와 기독교사상에 철저하신 분도 드문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분의 무교회주의적인 생각은 예수께서 그 당시 유대종교지도자들을 향하여 하신 말씀 “성전 벽을 허물라”는 외침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 유대 율법주의자들이 가졌던 예루살렘 성전이 세계와 우주의 중심이 된다는 자기중심 사상은 아무런 잘못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온 우주를 대상으로 움직이시는 야훼 하느님을 억지로 싸잡아 성전 귀퉁이 안쪽 구석에 가두어 놓고 그 앞에다 절하지 않으면 구원이 없다는 개인주의적이요, 제사 중심적이요, 공로우선주의로 나아가는 폐쇄적인 유대민족종교는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사회개혁적이고 예언자적인 신앙을 제사장적인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탈바꿈하여, 인간의 불평등 구조 존속을 위해 하느님을 믿도록 했던 율법 중심의 예루살렘 성전 지배 체제를 향하여 “성전 벽을 허물라!”는 예수님의 질타와 같은 의미로 함 선생님의 무교회의 주창을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가장 첫 책이자 가장 널리 알려진 “뜻으로 본 한국역사”는 그 원제목이 “성서적 입장에서 본 한국역사”였습니다. 이 또한 함 선생님의 무교회 주창은 전통과 제도로 굳은 교회를 사랑과 의로 넘치는 원래의 교회에로 복귀시키고자 하였던 깊은 의미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당신께서는 너무나도 성서에 충실했기 때문에 모든 종교는 서로 통한다는 말씀을 통해 종교의 절대성, 배타성을 질타하셨던 것입니다.


   저 또한 한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로써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만, 오늘날의 모든 교회들은 성서의 말씀을 빙자하여 교회 지상주의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교회가 모든 것의 중심이 되어버렸습니다. 교인들이 모두 교회 이름 앞에 죽어지내야 합니다. 심지어, 하느님도 교회라는 이름 앞에 죽어지내야 합니다.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그것도 자기 교파, 자기 교회 외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성전 벽을 허물라’는 예수님의 외침과는 정반대로 교회는 온통 자기 성전 짓기에 골몰하고 있습니다. 강남의 어느 교회는 유럽 중세기풍의 성당을 본 딴 대 석조교회를 짓고, 동양 유일의 건축을 자랑하는 기독교 사대주의에 흠뻑 젖어있는 것을 볼 때 함 선생께서는 아마도 고이 눈을 감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병원신세를 지시면서도 왜 그렇게 쉽게 눈을 감지 못하고 삶을 연장하셨을까? 찢어진 조국의 강토, 그것도 모자라 그 안에서 갈가리 찢어져 나간 민족의 현실, 정치, 경제인들의 타락상, 가장 본이 되어야 할 교회의 만연된 부패상, 당신께서는 너무나도 마음이 안타까워, 당신께서는 너무나도 가슴이 아파, 그냥 그대로 떠나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 오늘 우리는 그렇게 어렵게 떠나간 함 선생님을 향해 ‘뒷일은 우리가 책임지겠습니다. 선생님께서 헤쳐나간 가시밭길, 저희가 고이 닦겠습니다.’라는 외침을 위해 모인 것입니다.


[씨알의 부활]


   오늘 우리는 씨?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서 모인 것이 아니라, 씨알의 부활을 노래하기 위하여 모인 것입니다. 대학 1학년 때 읽었던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이런 글이 있습니다. “그렇다! 모든 것은 뜻이 있다. 모든 것이 뜻이 있어서 되었다. 죽은 것은 나기 위해서요, 실패한 것은 이기기 위해서이다.” 이 시간 그분의 죽음의 뜻을 생각해 봅시다. 그분이 우리의 삶에 남기고 간, 한국 현대사에 남기고 간 굵직한 획을 생각해 봅시다. 1980년 8월 17일 서울 어느 교회에서 행한 당신의 설교가 ‘씨?의 소리’ 복간호에 실려 있습니다. 거기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가령 우리가 어떤 인물의 전기를 쓴다면 어드렇겠어요? 전기를 쓰는데 그 사람 어디서 나고 뭘 하다가 어디서 죽고, 뭘 어쨌구, 어디서 이런 일했고, 저런 일했고, 그것만 죽 늘어놓은 것은, 그거는 잘 쓴 전기가 못됩니다. 잘 쓴 전기란, 한 일도 많고 여러 가지 공부한 것도 많고, 가지가지지만 그걸 처음 날 때부터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일관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흐르는 무슨, 그 뭣을 잡은거야요.  직업으로 하면야, 농사했던 일도 있고, 장사했던 일도 있고, 대학에 교수했던 일도 있고, 무슨 여기 왔다 저기 왔다 별 일이 다 많겠지만, 그 모든 걸 통해서 이 사람은 이걸 했다, 그 무슨 일관하는거 그런게 뭐 있어야 하지 않아요? 사람이란 그런거 있자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함 선생님께서는 그 무엇 하나를 위해 평생을 일하시고 전력을 다하여 싸우셨습니다. 사도 바울로의 말대로 한 번도 무엇을 잡았다고 그곳에 안주하신 적도 없으시고, 그 무엇을 이루시고도 그 곳에 한 번도 머무시는 일없이 앞만을 향해 하나의 푯대만을 향해 정진하셨습니다.


   그것은 평화였습니다. 그것은 정의였습니다. 그것은 사랑이었습니다. 그것은 타는 듯 한 민족애와 다함이 없는 인류애였습니다. 그것은 하느님 나라였습니다. 그분은 금세기가 낳은 세계적인 사상가였습니다. 그분의 생각은 문자 그대로 무진장 끝이 없었고, 그 폭은 너무나도 높고 넓어 사람의 말로, 글로 다 담을 수가 없습니다.


   한국의 어느 생각하는 사람치고, 그분의 사상적 영향을 받지 않은 분은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분은 탁상에 머무르는 사상가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행동가요, 실천가였습니다. 한번 뜻을 세우면 어떠한 유혹도, 어떠한 고난도 그의 뜻을 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분의 첫 사상의 모음 “성서적 입장에서 본 한국역사”는 대부분의 민족주의자들이 뜻을 굽혀 일제로 전향하고 모든 교회는 신사참배에 참여하고, 국내외의 항일 투쟁운동은 그 방향 감각을 잃고, 뿔뿔이 흩어지는 일제 말기에 씌어졌다는 사실은 그분의 실천역량의 무한의 깊이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이후 소용돌이치는 남한의 역사 현실 속에서, 몇 날 몇 달을 두고 울어도 울어도 속이 시원치 않을, 그 고난의 역사 속에서 당신의 표현대로, “한국의 역사 바퀴가 아주 된 돌 몫”을 도는 아픔 속에서 그분의 예언의 소리는 굽힐 줄을 모르고, 누르고 누르면, 그 눌리는 만큼 더 높고 더 크게, 그 외침은 들려졌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저는 이 저녁, 추모예배 설교 시간에 나 자신 비굴하게, 죽어간 영혼 앞에서 그분의 예언의 높은 소리를 빌어 소리치고 싶지는 않습니다. 생전에 높임받기 싫어하시고, 존경받기 싫어하시는 그분이 죽었다고 높임받기 원하시겠습니까?


   이제 민족사의 산 증인, 함석헌 선생님은 우리와는 유명을 달리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하나도 슬픈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은, 그분의 못 다한 유업들이 이미 우리 속에 자리 잡고 않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뜻이 아니 그분의 뜻에 우리가 합류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신다고 고백하는 사도바울로처럼, 그리스도에 합일된 당신의 뜻은 우리 안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고 김성식교수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하나의 위대한 역사적 사실이란, 그것이 단지 존재해 있었다고 해서, 가치가 있었다고 해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다음 세대에 의해서 이어 가느냐? 아니냐에 따라 가치가 부여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가치는 그를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이 예수의 삶을 따라갈 때, 그 죽음의 모양을 따라갈 때 살아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이 시간, 함석헌 선생님의 삶과 죽음을 찬양해도 그분의 뜻이, 씨알들에 의하여 이어가지 못한다면 그것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흙에 묻혀 썩어야 많은 열매가 맺히듯이 씨알은 죽어야 합니다. 그래야 씨?은 살아납니다. 그리고 씨알은 이미 살아났습니다. 아니, 애당초 씨알에는 삶도 죽음도 없습니다.


한번 이기고, 두 번 이기고 뭐 그런거 아니고, 이겼다가 졌다가 그런 거 아니고, 싸워가지고 이기는 거 아니다. 처음부터 이기고 들어가는 싸움이다. 왜? 우리는 싸워서 그 결과를 먹자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의 명령을 받아서 세상에서 불의와 싸워가는 것, 그것이 우리의 일이니까, 맨 마지막까지 싸우는 것, 그것이 우리의 일입니다. 저는 그렇게 고백해요. 그러기 때문에 싸워서 얻은 결과를 보고 좋다 언짢다가 아니라, 죽는 순간까지 내가 하느님의 명령하시는 대로 능히 평안한 마음을 가지고 싸울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이기는 거고, 육신이야 그대로 살아있거나 죽어있거나 간에 나는 죽더라도 이일로 이기는 거다 하는 확신으로 가는 겁니다.


   함선생님은 이미 이러한 확신 속에서 죽으셨고 다시금 씨알로 사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당신의 표현 그대로 “세계사의 하수구요, 강대국에 찢기고 핥긴 늙은 갈보의 아들과 딸로 태어난 여러분에게” 그분의 음성을 대신하여 추모 설교를 마치고자 합니다.


그러나 장차 올 날을 누가 아느냐?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신문기자와 같이 무책임한 말을 하는 것으로 그 직업을 삼는 자 아니고는 아무도 세계의 내일을 단언할 자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이상을 더 말할 자격이 없고, 다만 피스카의 봉 끝에서 멀리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면 눈을 들어 바라보라. 거칠고 쓸쓸한 들판이 끝나는 곳에 한줄기 요단강이 가로누웠고, 거리를 건너면 새 가나안이 기다리고 있다.


   거기서 싸울 때는 칼이 소용없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었다. 거기서 이 수난의 비렁뱅이는 영원히 문전에서 나사로같이 과거의 모든 고통과 업신여김에서 벗어나 위로와 존경을 받을 것이다. 거기서 지난날 큰 길가에 앉던 갈보는 그 받은 고난으로 정화되어 여왕이 될 것이다.

   

    그러면 젊은 혼들아! 일어나라!


    이 고난의 짐을 지자. 위대한 사명을 믿으면서 거룩한 사랑에 불타면서 죄악에 더럽힌 이 지구를 메고 순교자의 걸음으로 고난의 연옥을 걷자. 그 불길에 이 살이다 타고 이 뼈가 녹아서 다하는 날.


   생명은 새로운 성장을 할 것이다.


   진리는 새로운 광명을 더 할 것이다.


   역사는 새로운 단계에 오를 것이다.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파송의 글]


시대를 낳으려는 세계의 산통 소리가 점점 높아간다.

불안의 공기가 세계를 뒤덮었다.

그러나 그것은 불길이 서기 전에 설 엉키는 연기와 같이,

장차 오려는 위대한 시대의 예고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용사들아, 옷을 팔아 칼을 사라.

세대는 보통이 아니다.

낡은 관념의 옷, 제도의 옷, 의식의 옷을 팔아

좌우에 날 선 진리의 검을 사라.

낡은 종교, 낡은 세계관, 낡은 역사철학, 낡은 인간의식, 지상의 도덕, 지상의 사상을 모두 팔아라. 팔아서 영원의 풀무 간에서 거룩한 대장장이가 다듬어낸 정금보다 더 순수한 진리의 검을 사라. 이제부터 소용 있는 것은 그것뿐이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 역사가 지시하는 우리의 사명 중에서-




1) 1월 23일 서울역에서 열린 1차 범국민추모대회에서 고 이성수열사의 부인 권명숙씨가 낭독하신 호수문의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