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329 하늘뜻펴기 / 사순절 5 / 임보라 목사


레위기 10: 6-7 ; 에페소 5 : 8-11 / 애도와 치유



[영화 굿’바이]


굿' 바이라는 일본 영화가 있습니다. 작년에 조기 종영되었던 영화가 입소문으로 이어지면서, 근래 재 상영을 시작했습니다. 원 제목은 오쿠리비토(おくりびと), 보내는 사람입니다.


남자 주인공, 고바야시는 첼리스트입니다. 속해있던 오케스트라가 갑자기 해산하면서, 고바야시는 고향에 내려가 살기로 결심을 합니다. 고향에서 일거리를 찾다가, 우연한 기회로 시체 염을 하는 납관사가 됩니다. 시체를 닦을 뿐 아니라, 옷을 입히고, 화장을 해주고 입관을 해주는 그야말로 고인의 마지막 길을 준비해주는 일입니다. 돈벌이를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워낙 궂은일이라, 부인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일을 하지요.


남편이 염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부인은 그만두지 않으면 별거하겠다는 선언을 합니다. 고향친구로부터 괄시도 받지만, 고바야시는 시간이 갈수록 자신의 일에 대한 애착을 갖게 되고, 그 의미를 느끼게 됩니다.


어르신들 가운데는 손수 염을 해보신 분들이 계시리라고 생각됩니다만, 저는 사실 염하는 것을 여러 번 지켜보기는 했어도, 직접 해본 경험은 없습니다.
영화를 보면 고인에 대해 최고의 예를 갖추며, 가족들에게도 몸이 드러나지 않도록 고인을 최대한 배려하면서, 그야말로 예술 같은 손동작으로 염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영화 속에는, 다양한 상황에서 염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중, 인상 깊었던 장면은 할머니를 보내는 한 가족의 모습입니다. 온 가족이 둘러 앉아 할머니가 입관되기까지의 과정을 지켜보는데, 손녀들은 평소 할머니가 신고 싶어 하신 것이라면서, 아대 양말을 신겨드리고, 입술에는 빨간 루즈를 발라드립니다. 쿡쿡 웃어가면서 아주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화사해진 할머니의 모습을 기쁘게 바라봅니다.


아직 제게 그런 부탁을 해 오신 분은 안계시지만, 종종 ‘내 장례만큼은 당신이 꼭 집례 해주오’라는 어르신의 부탁을 받았다는 선배 목사님들 얘기를 종종 듣게 됩니다. 주례 부탁을 받을 때의 떨림과 긴장감은 경험을 해봤습니다만, 장례에 대한 부탁을 받게 되면, 순간 숙연해지면서도 마음이 찡~한 느낌이 전해져 올 것 같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나면서 죽게 마련인데, 나의 마지막이자 나의 새로운 여정을 위한 예식에 대한 위임은 절로 숙연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영화에서 보면, 정성스런 염의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는 동안 미처 몰랐던 고인에 대한 소중함을 새롭게 깨닫고, 그 깨달음 속에서, 얽혀있었던 관계를 회복하면서, 서로가 갖고 있었던 마음의 상처들을 치유해 갑니다.


장례를 모티브로 하는 영화가 많이 있지요. 가족 누군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가족들이 재회하여 가족애를 확인한다거나, 이제껏 몰랐던 고인에 대한 새로운 모습들을 확인하면서, 갈등을 겪는 등 삶과 죽음이 교차되는 그 장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은 무궁무진합니다.


몇 달 전, 한문덕 목사의 할머님이 소천 하셨는데, 그 장례절차 얘기를 들으니, 수십 차례 제사를 지냈다고 하더군요. 관을 들고 나올 때, 상여에 태울 때, 평소 다시시던 마을길을 지나갈 때도 친하게 지냈던 할머님들이 이렇게 보낼 수 없다 해서 또 한번 등등, 발인할 때만해도 계속 제사를 지냈다는 거지요.
이렇듯 고인에 대한 예를 갖추는 행위가 수십 차례 반복되는 것은, 비단 고인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보내는 우리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맺힌 것들을 풀어내고, 그 안에서 새로운 소망을 보도록 하는 지혜가 담긴 행위가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의식과 절차만이 남은 무의미한 의식이 아닌 한에 말입니다.


[우리가 대면한 사회적 죽음]


우리가 아는 사람이던, 알지 못하는 사람이던, 그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일상에서 다반사로 접하게 됩니다. 일간지에는 매일 부음-비록 주로 이름있는 사람들과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한정이 되기는 하지만-이 실리고, 사회면에는 죽음과 관련된 사건에 대한 기사가 거의 매일 실립니다.

최근에는, 연일 신문, 방송을 통해, 시시각각 수사의 내용이 발표되고 있는 한 여성 연예인의 죽음을 비롯하여, 어느새 남한 국민들의 표어가 된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남기신, 김수환 추기경의 죽음, 연쇄살인범에 의해 살해된 여성들의 죽음, 김수환 추기경에 대한 특집기사와 연쇄살인범 기사에 가려져, 이제는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서 먼먼 옛일처럼 여겨지고 있는 용산 참사로 인해 숨진 6분의 죽음 등등.


돈, 권력, 그리고 성(性)이 먹이사슬처럼 얽혀 있는 연예계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사건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그 리스트에 올라 있는 사람들이 정확히 누구인지,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진탕하게 놀았는지 등등에 관심을 기울이지요. ‘뭐 여자 연예인들란 다 그렇고 그렇지 뭐.’ ‘얼굴값 하네’ 등등 저마다 툭툭 한마디씩 내던지면서, 나는 그렇지 않음을, 나는 그런 삶과 무관하다는 것을 내세우고 싶어 하지요. 물론 관심을 그런 쪽으로 몰고가는 선정적인 보도의 탓도 많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도록 질질 끌려 다닐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택하게 된 죽음이 얼마나 처절 했을지, 똑같은 경험을 안고 있지만, 도저히 말할 수 없어 가슴에 묻어두고 쌓아두면서, 살아있지만 죽은 것과 진배없는 이들의 비명 소리는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연쇄 살인범에 의해 살해당한 여성들의 죽음을 대하면서도, ‘낯선 남자가 태워주는 차를 덥석 타는 여자들이란, 그렇고 그런거 아니겠어?’ 하면서, 표 딱지를 붙여놓고, 손가락질을 합니다.


“그 차디찬 냉동고에 들어가 계시면서도 그곳에서도 죄인이라는 얘길 듣습니다. 아무리 손이 시렵다고 장갑을 낄 수도 없고 아무리 춥워도 신발을 신을 수도 없습니다. 그런 분들을 어떻게 이렇게 왜곡하십니까?


이분들이 앞장서서 불을 냈겠습니까? 지금 차디찬 냉장고 안에 들어갔는데, 누가 죄인이라고 합니까. 저희는 진실을 원합니다. 그 진실을 위해서 한번만 다시 저희의 입장이 되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진실을 위해서 저희의 목소리를 제발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용산 참사로 인해 숨진 고 이상림 님의 딸인 이현선 님의 이야기입니다. 지난 금요일에도 예수살기 총회에 증언을 위해 참석해서, 딸에게는 다정다감하고, 매일 새벽기도회에 참석하셨던 아버지를 회상하며 함께 기도해달라는 부탁을 하였지요.


‘법치국가인 나라에서 검찰을 못 믿겠습니다. 저희는 보상과 장례는 필요 없습니다.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라는 유가족들의 진실규명에 대한 호소에도 눈감고 귀 막은 이 정부는 요지부동입니다.


기장 총회 시국기도회 때 김경재 목사님께서, ‘진실하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권고 합니다. 가급적 빠른 시간 안에 순천향병원 영안실을 찾아가셔서, 용산참사 희생자 가족들에게 모든 것이 내 책임이었다는, 사죄하는 유감을 표시하고 그들의 찢어진 맘을 위로하시오.’라고 절절하게 외치셨지만, ‘죽은 자에 대한 예의’ 조차 없는, 먹통 대통령은 감감무소식입니다.

이 먹통 대통령도 사순절을 맞아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할 터인데, 고인의 이야기를 할라 치면, 하염없이 눈물 흘리는 그 유가족의 눈물을 사순절 동안 깊이 묵상하면서 그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이로 거듭날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아닌가요? 제 기대치가 너무 높습니까? 그렇다면 적어도, 우리의 무관심에 대한 회개와 함께, 제발 대통령이 변화되게 해달라고 우리의 기도 목록에 올려놓아야 하지 않을까요?


자신들의 삶터와 일터가 되어준 그 용산에서 처참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에 대해서도 그들은 ‘순수한 시민이 아닌 고의적 방화범’이라느니, ‘폭력시위자’, ‘테러리스트’라니 하는 보수언론의 매도성 기사를 위안삼아, ‘철거하려면 어쩔 수 없이 겪는 일 아니겠어?’ ‘’정당한 법 집행 이었다 잖아’ 하며 외면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건수 하나 잡아 촛불 켜는구만’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진압한 사람들이 분명히 있는데, 어떻게 당사자들은 면죄부를 얻고, 죽은 이들과 유가족이 오히려 범죄자가 되어버렸는지, 상식도 없고, 인권에 대한 감수성은 손톱만큼도 없는 이 정부의 실체가 여실히 드러납니다.


국민에 대한 보호를 위해 그들에게 맡긴 공권력이라는 것이 오히려 국민의 머리 위에 올라앉아있는 현실 속에서, 폭력의 도구를 손에 쥐고 경찰에 위협했으니, 경찰의 진압은 정당한 것이요, 그로 인해 죽음을 맞게 된 것은 당연히 그들 자신들의 책임이니, 우리는 책임이 없다는 말은 어불성설입니다.
누가 그들이고, 또한 그들은 누구입니까? 제 나라 땅에서 제 나라 경찰과 정부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원혼들의 한은 누구의 몫으로 남겠습니까?


3주 전부터 잊혀져가는 이 사건에 대해 다시금 시민들에게 알리고 호소하고자 거리서명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청남, 청신에 이어 오늘은 청여가 담당한다고 들었습니다만, 부디, 우리의 작은 몸짓들을 통해 진실이 제대로 밝혀져, 유가족들의 피멍든 가슴의 응어리가 풀어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각 신도회가 주관하지만, 시간되시는 분들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비록 사순절 특강 일정과 겹쳐 있기는 합니다만, 잠시라도 들려보시면 적어도 고난주간 하느님 뵐 낯이 없어 고개 푹 숙이지 않아도 될까 싶습니다.


[억압된 애도]


비단 오늘의 용산 뿐 아니라, 국가권력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고도 말 못한 채 가슴에 묻어 두어야 하는 수많은 사연들이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 사회는 가진 것이 있고 없고, 지위가 높고 낮고 등등으로 사람을 갈라놓는 것 뿐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맞아야 하는 죽음에 대해서조차, 슬퍼해도 되는 죽음과 그렇지 않은 죽음으로 갈라놓고 있습니다. 이를 ‘상실의 불평등’이라고 합니다.


남한의 현대사는 망각의 열정이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일본 그리고 미국으로 이어지는 제국주의의 지배와 분단, 그리고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을 거치면서, 지나간 역사는 지우고 싶은 하나의 흔적으로 여겨졌다고나 할까요? 사실, 민족이 겪어온 치욕의 경험은 망각의 최면을 낳았습니다. 인간이 갖는 욕망 중의 하나입니다만, 통치자들은 이런 것을 잘 이용하지요. 잊고자 하는 욕망. 그 욕망이 민족의 이름으로 진행된 근대화 과정 속에서 과거에 대한 망각, 무지에로의 열정으로 자리 잡으면서 ‘과거’는 신경증적으로 ‘억압’되거나 아니면 더욱 심하게는 정신병적으로 ‘상실’되어 왔습니다.


비단 국가 권력에 의한 것 뿐 아닌, 종교적인 이유로 자행된 ‘억압’과 ‘상실’의 역사도 많이 있습니다.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율법에 의해서라는 이유로, 교회의 위계질서를 흔든다는 이유로,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 야훼의 이름을 빌어 자행된 피비린내 나는 살육의 역사는 교회사에도 남아있고, 이 성서에도 담겨있습니다.


안티 기독인들은 야훼의 명령으로 살해된 90만 5천 154명의 기록을 들이대면서, 정녕 하느님이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 하느님은 살인귀가 아니냐며 기독인들을 향해 묻습니다.


- 아이 성을 점령 시키고 1만 2천명을 살해 - 여호수아 8 : 24


- 가나안족과 브리스족 1만명 살육 - 판관기 1 : 4


- 베냐민군 2만5천100명 살해 - 판관기 20 : 35


- 형제든, 친구든, 이웃이든 우상숭배자들은 모조리 찔러 죽이라는 모세의 명령에 의해 3천명이 살해됨 - 출애굽기 32 : 27-28


- 다윗의 인구 조사로 인하여 전염병으로 7만명이 죽음 - 사무엘하 24: 15


등등, 이 일들은 야훼의 이름을 빌렸을 뿐 인간의 욕망으로 인해 생긴 일이었습니다.


오늘 읽은 레위기 10장의 이야기는 제사를 드리다가 일어난 돌발적인 사건에 대한 기록입니다. 이 사건에서도 두 사람이 죽습니다. 사제들에게 내려지는 여러 제사 규정들에 대한 지침이 있고, 그 와중에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는 불을 야훼 앞에 바치다가 야훼가 지시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 때문에 불에 살라 죽임을 당합니다. 나답과 아비후의 이야기는 하느님의 방식이 아닌 자기 방식대로 드린 제사에 대한 죄 값이라는 이유로, 그 죽음은 당연한 것으로 이해되어져 왔습니다.


그러나, 성서에 잘 드러나 있지 않기 때문이지,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을 단순히 제사 방법에 대한 오류 때문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사제단 사이의 내부 갈등을 짐작하게 합니다.


출애굽하면 모세의 지도력을 먼저 생각해내지만, 아론이나, 미리암 역시 그 전승이 희미하게 남아있어서 그렇지 모세 못지않은 존경을 받아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전승이 힘을 얻으면서 다른 두 사람, 특히 미리암 같은 경우는 더욱 그 흔적이 많이 사라져 있습니다.


나답과 아비후 역시도 출애굽기를 보면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뵌 대표단원들 중의 하나였습니다. 나름의 중요한 역할들을 했었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에 대한 이야기 역시도 전승되어가는 과정 가운데서 희미해져 버려 몇 구절 남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읽은 본문 이후로는 그 흔적이 완전히 사라지고 맙니다.
이 야훼의 불이라는 것은 죄에 대한 심판이라기보다는, 사제단 내의 권력 관계에서 배제되고, 밀려났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의미하는 것이지요. 분향하는 방법이 합법적이었냐, 아니었냐를 가를 때, 이것은 결국 반대자들에 의해 부적절한 것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오늘 이 본문을 함께 읽은 목적은, 나답과 아비후에게 죄가 있었냐 없었냐, 세력을 확립하는 가운데 밀려난 것이냐, 아니면 정말 야훼께서 죽이실 만해서 죽였느냐 하는 것에 있기 보다는, 오늘 하늘말씀 구절에 나오는 모세의 말과 그에 대한 남겨진 가족들의 모습 때문입니다.


아론과 함께 살아남은 두 아들은 모세의 지시를 받습니다. 아들이 죽고, 형들이 죽었지만, 그에 대한 슬픔을 나타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머리를 풀어헤치거나 머리를 깎는 것, 옷을 찢는 것, 곡을 하는 것 등은 전통적으로 합법적인 애도의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단 그들은 사제였기 때문에, 죽음, 그것도 하나의 ‘죄’로 치부된 부정과 관련된 사건이었기 때문에 야훼가 기름 부어 성별해 주신 사람들이니 문간 밖으로도 나가지 말라는, 그것을 어기면 죽는다는 엄명을 받게 되고, 그들은 모세가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입니다.


당시 종교적인 의미 뿐 아니라, 체제를 유지하는 중요한 수단 중의 하나였던, 성결법의 정/부정 체제에 의해, 그리고 사제라는 이유로 졸지에 두 아들을 잃어버린 아론은 그 슬픔을 어디에 토로할 길도 없이 가슴에 새겨야만 했습니다. 애도를 표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성서에는 남아있지 않지만, 아론이 가졌던 찢어지는 심정을 우리는 행간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애도’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을 말합니다. 단순히 감정적인 발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애도를 제대로 할 수 있어야, 상실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또 그렇게 해야, 아픔과 상처의 찌꺼기가 남지 않고 잘 치유될 수 있습니다.


애도의 과정 속에서 하나로 묶여 있던 공동체에 생채기가 나고, 그 생채기로 인해, 공동체원들이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감추어져야 하는 것으로 남아 있게 되면, 그 공동체는 실상 나아가지 못하고, 퇴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용산 참사 유가족인 이현선 씨가 고백하기를, ‘그날부터 모든 것이 정지 상태’랍니다. 우리들은 3월29일을 맞이했지만, 유가족들은 참사가 벌어진 지난 1월20일 새벽, 그 때에 머물러 있습니다. 우리들에게는 봄이 왔지만, 그분들께는 여전히 차디찬 겨울바람 휘몰아치는 한 겨울입니다.


‘애도가 삶의 충동이라면 우울은 죽음충동이다.’이라는 말이 있듯이, 애도가 억압된 사회는 결국 죽음충동이 만연한 우울만이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지난 2월부터 현재까지, 우리 교회에서만도 4건의 장례가 있었습니다.
부활 증언예배에 참석해보신 분들은 경험하셨겠지만, 추모예배를 드리게 되면, 고인을 추모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더불어, 얼마 전 돌아가신 내 주변 사람들을 기억하게 되고, 혹은 돌아가신지 10년, 20년이 지난 부모님을 떠올리고는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가슴에 맺힌 것들이 풀어지지 않은 경우는 통곡을 하게 될 때도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해결될 것 같지만, 제대로 애도의 과정을 지나지 않으면, 우울만이 가득한 채, 우리의 내적인 시간은 그때 거기에 머물러 있게 됩니다.


[애도를 통한 치유]


진실한 종교. 참된 신앙은 우리를 인간적으로 성숙하게 합니다. 불안감이나 공포감을 느끼는 것에 대한 안전장치를 아예 포기 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복음, 기쁜 소식은 새로운 인간성을 포용하라는 초청입니다. 새로운 의식을 붙잡으라는 초청입니다. 새로운 존재 질서로 들어가라는 초청입니다.


그 과정 속에서 치유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제2 성서 속에 등장하는 치유의 개념은 1세기의 것이고,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의 개념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당시에는 질병이 주로 인간의 죄에 대한 하느님의 징벌이라고 이해되어졌습니다. 물론 오늘날도 여전히 그러한 경향이 남아있기는 합니다만, 예수의 치유는 ‘죄인이다’라는 표 딱지를 떼고, 삶의 본질을 돌려주는 행위였습니다.


예수의 치유는 당시 종교적으로, 또 로마 제국주의로 인해 파괴된 것들을 치유하면서 공동체를 새롭게 갱신하고자 했었던 행위입니다. 종교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억압당하는 상황 속에서 해체되어 가는 공동체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 일으키고자 함이었습니다.


사회적으로 마비되어 있는 것들을 치유하면서, 전혀 희망이 없어 보이는 그 자리에 오히려 희망이 스며들게끔 했습니다.


‘기독교가 우리에게 제시한 하느님은 그의 아들의 죽음, 불신자에 대한 저주, 여성의 종속, 십자군의 처참한 대량학살, 심판에 대한 공포, 동성애자들에 대한 분노, 그리고 노예제도의 정당화 등의 원인제공자라는 것입니다. 교회 신조에 표현된 아버지 하느님은 세상의 어떤 사람들은 선택하는 반면에 또한 어떤 사람들은 배척하는 신입니다. 그는 분노의 아버지, 남성에게 서품을 주고 여성을 억압하는 아버지, 현실적, 정신적 노예제도의 아버지인 채 나락으로 떨어지기만 할 것 입니다.’


기독교가 치유의 기능을 온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상실해 간다면, 지
금 읽어드린 하버드 신학대학원생이 체험한 전통적인 기독교에 대한 고백과 같이, 희망이 아닌 나락으로 계속 추락하게 될 것입니다.


사순절 특강으로 이웃 종교의 죽음이해에 대해 들어보는 시간을 갖고 있고, 오늘부터는 실제적인 삶에서 만나게 되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들을 듣게 될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이해하는 죽음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고대 이스라엘 신앙이나, 히브리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그 생명의 입김은 창조주 하느님께로 가고, 사람은 그가 본래 지음을 받은 땅과 먼지로 돌아간다고 보았지요. 그래서 히브리 사람들은 수명이 다하여 자연스레 죽는 것을 축복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다가 주전 6세기부터 AD. 1 세기까지 주변 강대 제국들의 지배 아래에서, 혹은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면서, 지울 수 없는 고난과 시련을 겪게 되면서, 동방 페르시아로부터 받아들이게 된, 정의롭고 진실되게 살다가 억울하게 죽거나 순교당한 의인들을 의로우신 하느님이 버려두지 않는다는 부활 신앙을 접하게 됩니다. 진실과 정의는 결국 승리할 것이고, 악함과 불의는 결국 망하기 마련이라는 것이지요. 거기에 헬라 철학이 덧입혀지면서, 종국에는 유한한 인간생명은 죽음으로서 끝나고 하나님의 은총을 ‘부활’의 때까지 기다린다는 그러니까,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은 천국으로 가서 땅 위에서 뿌리고 심은대로 거두게 된다는 ‘영생신앙’으로 확립되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부활에 대한 소망은 완전한 죽음, 정의와 진실을 일구어내기 위한 참 죽음이 있지 아니하고서는 바래서는 안 되는 보물과도 같은 것입니다. 이 땅에서 호의호식하다가 하늘에 가서도 누리고자 하는 욕심으로 영생을 바란다면, 우리의 신앙 어딘가 병들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 역사 속에서 억압된 애도, 제주 4.3 항쟁]


근대화라는 속도에 휩쓸린 채 사라져, 제대로 애도되지 못한 우리의 과거들 중에는, 공식적인 역사에서 삭제되어야만 했던 과거들이 있습니다.

근대화 과정 속에서 민족주의가 개발독재와 결탁되면서 빚어졌던 여러 억압들, 그리고 그 억압으로 인해 생겨난 상흔들이 있습니다. 그 상흔은 소수자의 기억 속에 상처로 남아있을 뿐입니다. 있지만 없었던 일처럼 치부되고 있습니다. 제대로 슬퍼하는 것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입을 막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역사적인 사실을 왜곡하고, 미화하는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작년에 발행된 한국 근현대사 대안 교과서, 일명 뉴라이트 교과서를 들어보신 적이 있지요.
일본의 역사왜곡 교과서 뺨치는 문젯거리인데요.


- 일제의 한국 지배 :
그 시기는 억압과 투쟁의 역사만은 아니었다. 근대 문명을 학습하고 실천함으로써 근대국민국가를 세울 수 있는 '사회적 능력'이 두텁게 축적되는 시기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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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후 독립한 수많은 후진국의 정치적 지도자 가운데 이승만처럼 철저한 자유민주주의 신봉자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 박정희 :
그의 권위주의적 통치는 한국 사회에 역사적으로 축적되어 온 성장의 잠재력을 최대로 동원하는 역설적 결과를 낳았다. 그의 집권기에 경제는 고도 성장의 이륙을 달성했으며, 사회는 혁명에 가까운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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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공화국의 전두환 대통령은 단임의 약속을 지켜 한국 헌정사에서 처음으로 후임자에게 자리를 물려준 대통령이 되었다. 제5공화국에서 제6공화국으로의 평화로운 이행은 그때까지 전망이 불투명하던 한국의 민주주의 정치제도가 순조롭게 정착하는 큰 계기가 되었다.


왠 소설입니까.... ‘뉴라이트, 위험한 교과서 바로읽기’(서해문집, 2009)라는 책도 나와 있으니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오후 제주에서는 개신교 최초로 '제주 4.3 추모예배' 가 열리게 됩니다.


제주4·3은, 반공이데올로기 공세 속에서 ‘공산주의 폭동론’을 제외한 논의 자체가 금기시되었기 때문에 1980년대의 민주화 투쟁과 더불어 비로소 학문적 접근이 시작된 사건입니다.


1948년 4월 3일의 봉기로 시작된 제주4·3항쟁은 19
57년 4월 2일 마지막 빨치산인 오원권이 생포될 때까지 만 9년에 걸쳐 전개되었습니다만 1948년 11월부터 1949년 봄까지 전투, 항쟁, 그리고 학살이 집중되었습니다.


‘아버지를 죽이면서 그 자식들을 불러 모아 그 앞에서 만세를 부르게 하거나, 군중들 앞에서 시아버지와 며느리를 발가벗겨 놓고 말도 안 되는 짓을 강요하는 등 군경 토벌대는 이미 인간이기를 포기한 채 학살 이상의 범죄를 저질렀다’(이영권, <제주역사기행>중에서) 라는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생존하기 위해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빨갱이 사냥의 공포 속에서 침묵을 강요당했습니다.


국가권력이나 그것을 떠받치고 있던 사회 집단에 의해 억압되고 지원진 사건의 진상을 명확히 규명하고 민중적 경험을 복원하는 것을 ‘기억투쟁’이라고 합니다.


강요된 침묵, 억압된 애도 속에서 그래도 ‘기억투쟁’을 벌려온 결과, 지난 2000년 제주 4.3 특별법이 제정되었습니다. 2003년에는 대통령의 사과도 있었습니다.


물론, 뉴라이트 교과서에는 ‘대규모 좌익세력의 무장폭동 진압 과정 속에 주동세력의 선동에 속은 양민들도 다수 희생된 사건'으로 씌여 있습니다.


해마다 4월이 오면, 4.3유족회는 물론 시민단체들과 수많은 양심 제주인들이 이 일을 추모하며 위로하고 평화를 기원하는 행사를 개최하고, 카톨릭과 불교에서도 역사의 상처를 다독이는 미사와 법회를 열고 있지만, 개신교만큼은 전혀, 한번도 예배로 모인 적이 없다고 합니다.


몇 주 전, 공동관심사를 나누면서 전하기는 했습니다만, 기장 제주노회의 교회와 사회위원회가 이 일을 위해 앞장서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에는 늘 재정이 부족하지요. 해서, 맘이 움직이신다면, 여러분들께서 역사의 상흔을 다독이는 애도의 과정에 참여하는 의미로, 액수에 상관없이, 후원에 참여해주셨으면 합니다.


예배가 끝난 후, 예배실 밖에 모금함을 두겠습니다. 십시일반 참여해주세요. 오늘 모금된 것은 바로 제주노회로 송금하도록 하겠습니다.


제주와 닮은 점이 참 많은 오키나와에 올해로 세 번째 평화기행이 계획되어 있습니다만, 조만간 향린과 오키나와 교구가 함께 제주 평화기행을 기획해서, 서로의 아픈 역사를 보듬고, 입 밖에 내지 못해 가슴에 응어리가 맺혀있는 생존자들과 함께 진실된 애도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래 봅니다.


[치유하는 공동체]


함께 있으나 함께 있는 것이 아닌 것, 얼굴은 매일, 매주 대하지만, 서로 다른 세계에 살면서 서로의 아픔이나 기쁨에 절절하게 반응하지 않는 것, 자신을 알리는 일에는 열심이지만, 상대를 알기 위해 진정으로 마음 기울이지 못하는 것, 불리한 상황에서는 배신하기, 예상치 못한 고난의 현실을 마주하게 되면 피하기....
공동체라면 이러한 것을 넘어서야 합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임박해있다고 확신하는 가운데 그 공동체를 새롭게 갱신하기 위해서는 아주 기초적인 원리들을 점검하고, 그에 대한 새로운 헌신을 해야 한다는 것을 예수는 일깨워 주었습니다. 폭압적인 정치로 인해, 무기력해지고, 초토화 된 상황에서 오히려 강력하게 새로운 헌신을 결단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부터 우리의 믿음대로 공동체를 새롭게 세우고, 서로를 치유하는 가운데 나아가야 합니다.


에페소 5장은 빛의 자녀로 살라고 우리를 독려합니다.
열매 맺지 못하는 어둠의 행위에 가담하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폭로해야 한다고 선언합니다. 정의롭고 진실되게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그 죽음은 패배가 아닌 승리의 시작입니다.


슬픔을 억압해서는 안 되겠지요.

잊혀져서 안 되는 것이 있다면,

우리가 기억해야할 진실이 있다면,

계속 말해져야 합니다.

오늘날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억압된 애도,

그러나 기억투쟁으로 이를 넘어섭시다.

온전한 치유에 이르는 길을 위해 함께 나갈 것을 다짐합시다.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침묵 가운데 들으실 노래는 ‘잠들지 않는 남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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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9 파송사 /

편안히 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말 못할 슬픔에 잠겨있는 자매가 있습니까?

따스한 품으로 안고 함께 울어주십시오.

형제의 아픔을 구경꾼처럼 바라보고 있습니까?

아픔을 드러낼 수 있도록 손을 잡아주십시오.

새롭게 시작되는 이 한 주간,

주님을 기쁘시게 하여 드리는 일이 무엇인지를 가려내며

빛의 자녀로 사십시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는 바로 이 순간부터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