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평화주일

오늘 네가 평화의 길을 알았더라면

 이사야 42, 5 - 7 ; 루가복음 19, 37 - 42

 


이 소 영 / 임 한 결 교우

 

 

 

        이 자리에 서니 심장이 유난히 쿵쾅쿵쾅 거립니다. 그리고 이렇게 소심하고 나약한 사람에게 이 자리에 올라와 이야기를 하도록 밀어준 오키나와 평화기행의 동반자 분들에게 오늘따라 더 큰 배신감… 같은 것이 일어나려고 합니다.

        우리교회가 벌써 3년째 평화기행을 지속하고 있는 가운데 오키나와의 아름다움은 이미 사진으로 보셨을 것이고 제가 가서 보니 역시 그곳은 참 아름다운 섬이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섬을 군사기지로 덮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에 마음이 아파왔습니다. 오키나와에서 평화를 이루고자 노력하며 사시는 분들의 모습은 그 동안 여행을 하며 경험했던 추억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여행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 곳 저 곳을 많이 다녔지만 항상 관광객의 태도로 박물관에 소장된 역사적 유물을 보는 것 외엔 별로 마음에 와 닿은 것이 없었는데 오키나와 평화기행은 평화와 기행이라는 두 가지 주제를 잘 담아낸 시간이었습니다.

        고등학생 때였습니다. 보스니아 내전, 민족청소라고 불리는 코소보 사태로 크로아티아는 나라 전체가 전쟁터였고, 단지 다른 민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서로를 죽이는 전쟁을 했습니다. 신문 한 면 전체가 그 전쟁을 담은 기사였는데 그 기사는 저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어딘가로 가고 싶을 때 총알을 피해야 하고, 자매형제와 부모가 죽어도 제대로 시신을 거두지 못한 채 숨어 살아야 하는 사람들. 그들의 비극적인 삶의 현장 그리고 그와는 전혀 다른 현실 속의 내 삶. 지구 안에 이렇게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먹을 것조차 없는 아프리카. 내전이 벌어진 나라들. 우린 다 한 지구에서 사는데 그런 그들의 갇히고 찢겨진 삶과 전혀 다르게 나는 얼마나 평화로운가? 눈물을 흘리며 기사를 다 읽고 나서 ‘언젠가 그곳으로 꼭 한번 가보리라’ 라고 다짐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살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겠다’라고 다짐을 하고 또 했습니다.

        사실 그 기사를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전 평화를 잃고 살았습니다. 고등학생의 생활이란 게 다시 되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처럼, 그땐 경쟁. 성적 이런 게 삶의 전부였으니까요. 그러다 드디어 작년에 크로이티아에 갔습니다. 로비니라는 작은 항구도시에서 플리트비체라는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은 전쟁의 흔적이 군데군데 남아 있었습니다. 탱크도 그냥 내버려두고, 폭격으로 무너진 집, 교회도 그냥 내버려 둔 채 남아 있었습니다. 가이드의 말로는 ‘전쟁의 흔적을 보며 다시는 전쟁의 흉악한 시대로 돌아가지 말자’라는 의미로 그 건물들이며, 탱크도 보존한다고 했습니다. 전쟁의 흔적을 다 씻어내는 방법은 진실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전쟁의 아픔으로 관통한 사람들과 현장의 모습을 지속해서 보고 들으며 평화를 이루는 것이 무엇인지 느끼고 알게 되는 것이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키나와도 전쟁의 유물을 보존하고, 그곳을 찾는 후대의 사람들에게 전쟁의 야만이 어떻게 평화를 파괴했는지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평화를 이루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야고보서 3장 18절 말씀은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은 평화를 심어서 정의의 열매를 거두어들입니다’라고 적혀있습니다.

이에지마에 갔을 때 저는 말씀에 적힌 대로 정의의 열매를 거두는 사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에지마는 오키나와 섬 근처에 있는 아주 작은 외딴 섬이지만, 아하곤 쇼우코우라는, 오키나와의 간디라고 불리는 비폭력 반전평화운동의 거인’을 배출했습니다. 페루 등 남미지역에서 이민생활을 했던 아하곤 선생님은 서른 두 살에 이에지마로 돌아와서 이곳에서 본격적으로 평화운동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는 4만평의 땅을 구입해서 이 땅에 덴마크 식 농민학교를 세우려 했으나 전쟁의 그림자가 이에지마에 드리워졌고 패전색이 짖은 일본군은 오키나와에서 옥쇄하려는 듯 이에지마에 비행장을 건설하고 주민들에게 군사훈련을 시켰습니다. 마침내 오키나와 전쟁이 터진 15일 뒤인 1945년 4월 16일, 80대의 탱크를 앞세운 미군 1천명이 이에지마에 상륙한 뒤 아하곤 선생님 등의 주민들이 미군의 포로가 되어 도까시끼 섬에서 난민생활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아하곤 선생님이 세운 반전평화자료관의 이름은 ‘누치두 타카라’인데 ‘생명이야말로 보물’이라는 오키나와의 옛말입니다. 평화를 일구는 사람이 한사람이라도 더 늘기를 바라는 맘으로 기도하며 세웠다는 글이 써 있습니다. 이 말속의 의미처럼 오키나와는 분명 생명평화를 중시는 사상이 곳곳에 깃들어 있는걸 알 수 있습니다. 아하곤 선생님이 손수 모으신 전쟁유물들 중에 낙하산이 많이 있는데 전 이 낙하산들의 용도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낙하산이 휘릭휘릭 내려오는 전쟁의 한 순간을 잠시 생각해봤습니다. 순간 아찔한 공포감 같은 게 제 몸을 휩쓸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폭탄들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눈을 질끈 감게 만들었습니다.

        아하곤 선생님은 반전을 위해 그 삶을 온전히 바친 분이셨습니다. 하지만 미군이 주둔한 땅에서 반미를 외치며 투쟁을 해도 온전하지 않을 것 같은 그 곳에서 그는 오키나와인이 지닌 평화로운 성격처럼 전쟁을 반대하는 입장에서 미군조차 형제로 보았습니다. 아하곤 선생님은 ‘미군이 이에지마에 온 것은 전쟁 때문인데, 그 전쟁은 일본이 일으킨 것이다. 전쟁이 없었으면 미군이 오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들 일본인에게도 책임이 있으므로 미군에게 욕을 할 권리도 자격도 없다.’라고 했습니다.

        그 곳의 평화운동가들은 제가 반미를 외치는 것과 다른 사고방식과 평화의식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전쟁을 반대하고 군대를 반대하는 그들의 본질적인 평화의식을 보며 내 자신을 성찰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인을 무조건 배척하고 미군을 반드시 몰아내야할 야만적인 적으로 간주하고 양키 고 홈(Yankee Go Home)을 외쳐왔지만 그것이 궁극적으로 평화를 위한 마음이었나 하며 되돌아보니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일해야 정의의 열매가 맺힌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잊은 듯 했습니다. 전쟁으로 고통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평화는 그 자체가 거대한 이상 혹은 막연한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다시 돌아가고 싶은 일상의 한 때 인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팔복 중 여섯 번째에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가 될 것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헤노코 기지에서 8년째 미군기지확대를 반대하는 운동을 펼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과격한 운동권도 아니고 이론서적으로 지식을 꽉 채워진 지식인도 아닙니다. 평화를 이루려는 시민들이 오키나와의 푸른 바다를 지키고자 그곳에 천막을 세우고 쉬지 않고 그 곳을 지키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작은 천막을 세우고 지키는데도 어느 누구 하나 지치고 힘든 모습은 없었습니다. 우리가 방문한 날은 천막을 뒤흔들듯 강하고 세찬 바람이 몰아쳐서 내심 ‘무너지는 건 아니겠지’라는 두려운 생각이 있었지만, 우리에게 설명을 해주시는 분은 여전히 평화로운 미소로 말씀을 잔잔히 이어갔습니다. 헤노코 기지 확대를 저지하려는 그들의 모습은 살기어린 투쟁의 의지에 가득 찬 투쟁가의 모습이 아니라 아주 다정한 옆집 아저씨, 아주머니의 얼굴이었습니다. 평화를 위해 일하는 행복한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우리는 예배를 마칠 때 양손을 잡고 옆에 있는 교우와 평화인사를 나눕니다. 이 때 이 사람이 하나님의 딸이며 아들인 사람,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라는 믿음의 눈빛. 이 빛으로 마주하며 인사를 나눠보는 건 어떨까요? 5박6일의 짧은 오키나와 평화기행 시간 동안 알게 된 여러 선배님. 후배님. 더없이 좋은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여행동안 통역으로 도와주신 임보라 목사님과 임경심 집사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평화를 이루고자 노력하는 삶의 소중한 가치를 알게 해주신 주님께 큰 감사를 드립니다.(이소영 교우)

 


        저는 오키나와에서 강한 인상을 받은 네 가지 사건을 짚으며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첫째는 평화탐방 장소였던 히메유리탑이고, 둘째는 우리를 맞이해준 환영회, 셋째는 오키나와를 덮고 있는 미군기지, 마지막은 오키나와 친구들과의 교류입니다. 그럼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3년 전, 제가 대학에 입학하여 여러 활동을 통해 정한 삶의 목표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데 힘을 싣는 것이었습니다. 오키나와 평화탐방 또한 그러한 제 목표를 이루는 데 좋은 밑바탕이 되는 경험이었지만, 초기에 평화탐방을 신청하고 준비모임 때 나눠준 오키나와 이야기를 담은 소책자를 읽어보기 전까지는 ‘외국의 문화를 느껴 볼 수 있으니 좋은 경험이겠다’라는 생각이 더 컸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다 읽지 않은 그 소책자를 처음에 조금 읽었을 때부터 제 마음은 이미 평화를 갈구하는 붉은 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오키나와에 도착하여 공항을 빠져 나왔을 때, 오키나와의 따스한 햇살과 푸른 바다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저를 반기고 제 맘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첫 탐방 장소였던 히메유리탑이 오키나와 전투 당시 미군에게 포위당하자 오키나와 여학생 약 300명으로 구성된 간호부대가 일본군의 강요에 의해 자결한 곳이란 것을 알게 되고 편안했던 제 마음은 안타까움과 숙연함으로, 그리고 슬픔으로 물들었습니다. 어떻게 같은 나라 사람에게 자결을 강요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국가를 위한 것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국가의 행복을 위해 개인이 불행해 진다면 그것은 바람직한 것일까요?

        이러한 고민을 품에 안고 5박 6일 동안 주로 묵게 될 기노완 센터에 짐을 풀었습니다. 저녁식사 시간이 되자 올해 초에 오키나와에서 오신 분들을 우리가 환영해 주었듯이 환영회를 열어주셨습니다. 제 또래의 친구들은 한국에 왔을 때 얼굴을 좀 익힐 수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처음 뵈었습니다. 그러나 서로를 소개하는 시간에는 오키나와 사람들의 소개를 듣는다는 생각보다는 같은 아픔 아래에서 같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이었고, 오랜 정을 나눈 사람들과 함께하는 자리처럼 편안하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처음 성장하기 시작한 곳이 과천이지만 이리저리 이사를 다녀서 딱히 고향이라고 할 만한 곳이 없다고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환영회 자리에서 제가 느꼈던 감정은 고향에서 느낄 수 있는 편안함이었습니다. 고향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고향은 사람이 태어난 곳이 아니라 내 마음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과 함께하고 있는 바로 그 곳이었습니다. 그날 밤은 고향에 왔기 때문인지 몰라도 단잠을 이룰 수가 있었습니다.

        이튿날 간 가가즈코다이 공원의 전망대에서는 오키나와의 마을 한 가운데를 미군기지가 차지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우리나라의 용산기지와 별 다를 것 없다고 생각하였지만 그것은 큰 착각이었다는 것을 금방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굉음을 내는 비행기가 날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현재 다니고 있는 오산에 위치한 한신대학교의 경우도 세류 비행장에 착륙하기 위해 선회하는 비행기들의 소음으로 수업시간에는 항상 방해가 되고, 친구와 대화할 때는 인상을 찌푸리기 일쑤입니다.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피해를 보고 있는데, 오키나와 사람들은 실생활에 있어서 얼마나 큰 피해를 입을까 생각을 했습니다.

        현재 오키나와 땅의 20%는 미군기지로 덮여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말 충격적인 사실은 일본 전체의 미군기지 중 75%가 오키나와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어찌 희생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어렸을 때부터 예수의 가르침은 사랑과 더불어 희생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예수가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에게 평화를 주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오키나와 사람들의 희생은 제국주의 강요에 의한 희생일 뿐이고 그것을 통해서 어떤 누구에게도 평화를 주지 못할 희생이고 그 누구도 감당하지도 못할 희생입니다.

        일요일에는 4개 조로 나뉘어 각각 다른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저는 니시하라 교회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 교회에서 통역을 도와주신 분에게 현재 오키나와의 미군기지 상황에 대해서 오키나와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여쭤 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지 않고, 청소년들에게도 잘 전달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대답이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오키나와 현 지사의 경우도 미군기지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응은 소수만이 가져가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오키나와의 미군기지가 우리나라와 같은 것이 있다면 미국의 패권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올해에도 작년처럼 자유 시간을 갖게 됨으로써 또래 친구들과 함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언어의 장벽으로 인해 비록 원활한 대화는 하지 못하였지만 간단한 대화에서도 기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단지 외국인과 대화한다는 이유로 그렇게 느껴졌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 자체로부터 나오는 에너지만으로도 충분히 진실함이 묻어나왔기 때문에 오키나와 사람과 이야기 한다는 느낌이 아니라 오래된 친구와 이야기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에지마 섬으로 가는 길에서는 농구부 활동을 하고 있는 여중생 친구들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거리감을 표현하기 보다는 자신들이 아는 한국에 대해서 많이 말하고 싶어 했고, 우리와 소통하려는 관심을 보여주었습니다. 아주 자연스럽고 너무도 편안하게 말입니다.

        어쩌면 일본어 공부를 해서 일본어로 대화가 가능한 남원이형과, 일본어 공부를 안 했지만 한국어를 주입시켜서 한국어로 대화를 하는 예원누나가 없었다면 조금 불편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또래 친구들, 농구부 친구들과의 상황과 연관해서 ‘가족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어쩌면 뜬금없는 비약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저는 작년부터 가족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였습니다. 과연 피로 맺어진 인연만을 가족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이 있었고, 고아원에서 자란 사람들은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가족이라고 여기며 삶을 살아가는데 그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당연히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가족은 단지 결혼이라는 제도 아래에서 만들어지는 것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혼을 하면 다시 남이 되듯이 말입니다. 극단적이었지만 사실 우리가 가족으로 느끼고, 느끼지 않고의 차이는 제도 때문에도, 피로 맺어졌기 때문에도 아니라 사랑의 유무에 의해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이 없으면 피로 맺어졌어도 철천지원수가 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이로써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도 해결이 됐습니다.

        결국 가족은 무엇인가에 대한 제 나름의 결론은 ‘이미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과, 아직 사랑하지 못한 모든 사람들’이라고 내려졌습니다. 결국 ‘모든 사람’이 제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가끔 저를 째려보는 사람에게 나도 째려봐서 제압해버릴까 생각이 들면서도 ‘아, 그래도 내 가족인데’라는 생각으로 참아봅니다. 우스갯소리로 한 말이지만 진심입니다.

        저는 오키나와를 갈 때 큰 기대는 하고 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봐도 오키나와 평화탐방은 저에게 많은 생각의 변화를 주었고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었습니다. 우리에게 가져준 관심 덕분에 환영회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고, 또래 친구들과 교감할 수 있었습니다. 가족임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에 대한 무관심으로 인하여 여고생들은 일본군에게 자살을 강요당했으며 미국은 오늘도 여전히 미군기지를 넓히려고 하고 있습니다. 무관심 속에서 우리는 가족을 잃어 가고 있으며, 무관심 속에서 전쟁을 일삼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향린교회를 23년 째 즐겁게 다니고 있습니다. 정말 즐겁습니다. 지금에서야 향린교회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향린교회는 향기로운 이웃이 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공동체라고 생각합니다. 공동체라는 말을 쓰기에는 서로에 대한 우리들의 믿음이 너무 부족하긴 합니다.

        하지만 향기로운 이웃이 되는 것. 그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가르침일 것입니다. 그 누구에게 국한되어 향기로운 이웃이 되는 것도 아니고, 어느 정도까지 선을 긋고 향기로운 이웃이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누가 지었는지는 정확히는 모르지만 교회 이름 하나는 참 잘 지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을 어떻게 알고 우리 교회 이름에 다 들어가도록 해 놨으니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하늘뜻펴기를 통해 바라는 것을 말씀드리면서 마치려고 합니다. 제가 진심으로 소망하는 것은 우리가 이 이름 향린에 어울리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이렇게 향린을 원하듯, 우리 스스로가 향린이 되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여름에는 부채가 시원한 바람을 선사하고, 겨울이 왔을 때는 장갑이 손을 따뜻하게 덥혀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향린입니까? 그렇다면 무관심 속에서 히메유리탑을 쌓으실 준비를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가족처럼 따뜻한 환영회를 열어주실 준비를 하시겠습니까?(임한결 교우)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