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를 청 나이 년

 

청년

 

세상은 우리에게 한창 푸르른 나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차가운 현실에 상처받아 마음속에 푸르른 멍이 짙게 들고 있는 나이가 아닐까... 우리가 스스로 우울한 파란색 안경을 쓴 것인지, 아니면 세상이 우울한 색으로 물든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대학문제, 취업문제, 결혼문제, 대출문제, 자녀양육문제... 문제가 풀리는 속도보다 한 살 두 살 나이 먹는 속도가 더 빨라서 불안하기만 합니다.

 

하나님, 사실 우리는 감사를 잊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감사의 기도를 드려야하는 이 시간이 무겁게 느껴졌었습니다. 무엇에 대해 감사를 해야하는 것일까... 고민 끝에 지금의 우리에게 오빠형동생뻘이었던 청년 예수가 떠올랐습니다. 가난한 촌동네 출신에 고향에서도 배척 받고 세상에서 버림 받은 자들과 이리저리 떠돌다 결국은 처참하게 죽임을 당했던 예수. 그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당신은 어떤 희망으로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고 했던 것일까...

 

그저 바라는 것은 서른 즈음의 청년 예수가 그러했듯, 청년인 우리 역시 들에 핀 백합화나 공중에 나는 새를 보고서도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갖기를 원합니다. 예수처럼 자신을 온전히 비워내고 사랑으로 가득채울 수 있기를 원합니다. 비록 나는 푸르지 못한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세상을 푸르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을 하나님께서 주셨음을 믿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청년으로 불리는 이유이며, 그 사실만으로도 감사함을 느끼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이 기도의 끝자락에서야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가 청년이라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 청년들이 학업과 생업, 직장생활과 육아에 지쳐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천년전 어느 청년이 서른 셋의 나이에 자신의 살과 피로 세운 교회를 기억하며 이곳에 함께 모이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또한 그 청년예수의 삶을 본 받고자 여기 향린에 모여 믿음의 가족들이 되게 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드려지는 이 헌금이 바로 그 청년 예수의 뜻을 위해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천년이 두 번 지나도 예수가 여전히 청년인 것 처럼, 우리가 나이를 먹는다 할지라도 늘 청년의 마음으로 살 것을 다짐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