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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6 오후 2:00~6:00

1부 60주년을 준비하는 첫걸음(2:00-4:00) 진행 - 김종완 집사(제직회 서기)

        - 국악찬송 배우기 정진희 교우

        - 특강 60년을 맞이하는 향린의 자리매김과 제직의 역할 김경호 목사(들꽃향린교회)

        - 분임별 토의

 

 휴식과 간식(4:00-4:15)

 

2부 친교 나누기(4:15-6:00)

        - 국악찬송 배우기 정진희 교우

        - 퀴즈 한마당 이규성 집사

        - 공동체 놀이 (분임별 토의발표를 겸해서) 한문덕 목사

 

마무리

제직을 위한 기도

 

교회의 주인이신 하느님,

제게 특별한 의무와 그에 따른 특별한 장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교회에서 제가 맡은 일을 어떤 명예를 위한 일로 생각 말게 하시고

봉사의 기회로 생각하게 하소서.

그리고 이것을 아무런 책임감도 없이 특권이라고 생각하거나,

다른 사람을 지배하기 위한 일로 생각하지 말고

오직 남들을 위해 봉사하는 의무라고만 생각하게 하소서.

그래서 이 직분으로 인해 교만해 할 것이 아니라

겸손하고 겸허해지게 하소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서 오히려 언제나 평화를 창조하게 하시고,

진실을 말하되 그것을 사랑으로 말할 수 있게 하소서.

법에 얽매이거나 내 자신의 권익과 위치를 위해 노력하지 않게 하시며,

지도자는 반드시 봉사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게 하여 주소서.

제가 맡은 사람들에 대한 직분을 충실히 수행하게 하시고,

목회자들을 동정과 기도로 모시게 도와주소서.

교회를 떠나 있을 때나 여흥의 시간을 가질 때에는

저의 명예스러운 교회를 널리 알릴 수 있게 해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윌리엄 바클레이, 교회 제직자의 기도)









?2011 향린교회 제직수련회?


60년을 맞이하는 향린의 자리매김과

제직의 역할


김경호 (들꽃향린교회 목사)


1. 오늘 한국사회, 한국교회

        그리고 향린 공동체, 향린교회

▷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통해 민주적 제도를 확립했다. 그러나 IMF 체제아래서 대규모 정리해고, 비정규직화등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로 인해 민생문제가 발생했고 결국 이에 대한 민심의 이반이 다시 보수정권의 집권을 가져왔으며 불평등한 한미동맹 체제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시도는 좌절되었고 결국 미국 중심의 대외의존적 정책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대추리 사건이나 한미 FTA 추진 등은 민주정부가 가진 한계를 노출했다.

▷ 기독교의 진보 역할을 하던 주류들이 참여정부에 대거 합류하면서 기독교 진보 세력의 분화가 생겼다. 정부에 참여한 5가 중심의 진보 기독교는 정부의 입장을 벗어나는 데는 침묵을 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대추리 사건, 한미 동맹에 대한 바로잡기, 한미 FTA등에서 기독교의 역할은 사라졌고 외롭게 기독교 안에서는 향린 공동체, 사회적으로는 평통사가 주축이 되어 민족의 양심의 자리를 지켜 나갔다.

▷ 이에 문제의식을 가진 기독인들을 규합하여 참여정부 말기에 “예수살기”가 창립되었고, 수도권 지역에서 예수살기, 향린공동체, 복음주의권을 중심으로 “촛불을 켜는 그리스도인들”이 창립되어 2년간에 걸쳐 매주 목회일 84회의 용산을 비롯한 현장에서의 예배를 드려오고 있다.

▷ 오늘의 한국교회에서 역사를 지켜오는 역할을 감당하는 공동체는 누구인가? 향린 공동체가 가지는 중요성은 더욱 두드러지는 역사의 국면에 직면해 있다.


2.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는데 보이는 건물이 교회인가? 모이는 숫자와 예산의 크기인가? 세련된 구성원들인가? 그 구성원들이 모여서 무엇을 하고 있고 무엇을 이루어 나가려고 하는가? 그들이 집단으로 이루어 내는 것은 어떤 삶인가?


3.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모습일까?

단지 경제, 정치, 법률적인 제도가 확립되는 그 이상의 세상이다. 그 나라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성숙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완벽한 인격, 그분의 사랑, 그분의 영성에 도달해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드리는 찬미, 찬하를 단지 그리스도에게만 한다면 이것은 그리스도 우상화이고 그분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다. 우리들 서로에게 최고의 찬미와 찬하로 서로를 인정하고 세워주고 서로가 가진 최고의 잠재력을 발전시켜 그리스도의 삶에 이르는 실천으로 발전 시켜 나가야 한다. 하나님 나라는 인간과 하나님,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서로 완벽한 마음과 성품으로 대하고 완벽한 관계를 맺는 곳이어야 한다.


4. 교회는 어떤 곳인가?

안병무에게 바람직한 교회관이란 개인이 이룰 수 없는 것을 교회가 이루어 가는 것이다. 개인이 좋은 뜻을 가져도 그가 가진 조건이 허락지 않고, 개인의 상황이나 의지, 능력으로 접을 수밖에 없는 일들을 교회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교회는 거룩한 무리들의 집단이고, 집단의 인격을 갖는 공동체이기 때문에 개인으로서는 엄두도 내기 어려운 역사의 몫을 집단의 인격, 집단의 의지, 집단의 실행으로 할 수 있다.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는 개인들이 자기 삶에서 이루지 못한 콤플렉스를 동기로 삼아 새로운 교회의 선교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교회에 대한 적극적인 역할을 제시한다(안병무, ?현실과 이상 사이의 교회상? (향린청년, 1986 여름)

교회는 하나님나라의 도래라는 종말에 이를 때까지 중간시대를 살아가는 전략으로 선택된 곳이다. 그래서 교회는 그 나라가 완성될 때까지 경과적 조직이고, 과정 속에 있는 조직일 뿐이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 교회가 하나님나라를 대신하여 교회 자체를 궁극적 목적으로 삼아서도 안 되며, 자기 완결적 구조에 머물러도 안 된다. 교회는 스스로를 위해 있지 않고 세계를 위해 존재한다. 교회가 스스로를 위해 존재하며, 자기 조직이나 소유, 자기 울타리 안에 있는 청중의 숫자를 목표로 삼거나, 그것을 힘의 근원으로 삼기 위해 존재할 때, 교회는 교회로서의 가치를 상실한다. 교회 스스로 자기 완결적인 목표로 삼을 때 그 교회는 이미 예수와 상관없게 된다. 교회가 그 모인 울타리 안의 청중만을 위해 존재하고 자신만을 위해 봉사한다면, 아무리 복음화와 전도를 외쳐도 그 교회는 소멸될 수밖에 없다.


5. 복음은 무엇인가?

교회는 복음을 증언한다. 복음을 Good News라고 하는 것은 ‘사건’이라는 것이다. 사건이 되지 않으면 소식이 되지 못한다. “예수는 그리스도시다”라는 고백을 신조로 만들어 반복하는 것은 새로운 뉴우스가 될 수 없다.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는 불변의 신조는 복음서가 쓰여진 당시에 예수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뉴우스가 될지 몰라도 오늘 우리들에게는 더 이상 뉴우스가 아니다. “김 아무개가 착한 사람이다”라는 명제는 김 아무개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뉴우스가 되지만 그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말이다. 그러나 그가 무슨 일을 했고 그 일이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면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의미 있는 증언이 된다.

교회는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기보다는 예수사건이 일어나는 곳이어야 한다. 이제까지의 교회론이 예수를 인격으로 보고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고백” 위에 세워진 것이라면, 새로운 시대의 교회론은 예수를 사건으로 보고 “예수 사건이 일어나는 실천” 위에 세워져야 한다.


6.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예수는 세례요한이 제자들을 보내 “오실 그분이 당신이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하고 물어 보았다. 이에 대해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가서,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려라. 눈먼 사람이 보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걷고, 나병 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먹은 사람이 듣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이 복음을 듣는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누가 7:22-23)

그가 누구냐는 인격을 묻는 질문에 대해 예수는 자신이 하신 일, 사건으로 답한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밝힐 때 사건으로 말한다(참조, 누가 4:18).


7. 결과보다 이루어가는 과정이 삶이다.

현대인들은 필요한 모든 것을 시장에서 구입한다. 돈이라는 절대 권력을 휘두르고 싶어 한다. 돈이면 얼마든지 세련되고 완성된 제품을 손쉽게 구할 수 있어 그런 구매욕으로 삶의 기쁨을 대신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삶은 기쁨이 없다. 현대인들은 그 과정의 기쁨을 상실해 버렸다. 즉, 삶을 잃어버린 것이다.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함께 만들고, 함께 이루어 가는 과정이며 그것을 함께 누려가는 사람들과의 만남과 사귐이다. 그런데 시장경제 속에서는 그 과정은 없어지고 모든 결과물만을 화폐를 통해 사들인다. 이것은 삶이 아니다. 삶이 없다. 오직 돈을 모으는 것 하나 만이 유일한 삶의 목표가 되어 버렸다. 삶의 기쁨마저도 화폐로 사들이니 사람들은 쉽게 돈의 노예가 된다. 욕심만큼 수입이 따르지 못할 때 견디지 못하게 되고, 더러 재물을 얻는데 남다른 재주가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해서 얻는 기쁨은 일시적일 뿐이다.

과정 속에 기쁨이 있다. 명절이 되어 온 가족이 마주 앉아 만두를 빚고, 송편을 만들며 서로 웃고 떠들며 만들어 먹는 음식은 맛이 있을 수밖에 없다. 바로 그 과정이 삶이며 그 과정 속에 너와 내가 만나고 이해하고, 사귀고, 나누는 것이 삶이다. 그 과정을 거룩하게 만들어 가는 것이 성령의 사귐이다. 우리의 일상 밖에 존재하는 초월한 영과 나누는 특별한 교감만을 강조하게 되면 그것을 찾은 만큼 우리의 삶과는 멀어지는 종교를 세우게 되며 그것은 결국 허구이다.


8. 성령께서 하나 되게 하시는 기쁨

성경은 ‘성령께서 우리를 평화의 매는 줄로 하나 되게 하신다.’(엡 4:3)고 한다. 과정이 소중한 이유는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 되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너와 내가 만나고, 알고,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나누며 서로 충만하게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는 그런 곳이며, 너와 내가 닫힌 가슴을 열고 서로를 만나고 하나 되어 가는 기쁨,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기쁨이 있는 곳이다.

우리절기에 따른 떡 만들기, 장 담그기, 옷 만들기, 부모가 만들어주는 성탄선물, 면 생리대 만들기, 나물 캐기, 눈썰매타기 등 여러 가지 우리 삶에 관련된 행사들을 한다. 시장에서 상품으로 구입하던 것들을 직접 만드는 방법을 배우면서 우리 전통의 삶을 보존하는 한편 오직 화폐에 의존하여 결과물을 구입하는 시장경제의 삶의 과정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을 찾는 시간을 갖는다. 이 시간은 어른이건 어린이건, 남자건 여자건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시간이다. 이런 프로그램들을 통해서 상품에 중독된 자신을 깨닫게 되고 자연스럽게 삶의 과정과 그 과정을 통해서 서로를 만나가는 새로운 기쁨을 찾아가게 된다.

흔히 교회에서 갖는 프로그램은 성경공부, 토론, 영성나누기 등 대부분이 지적, 영적 활동인데 이것은 몸의 활동과는 다르기 때문에 머리가 뛰어나든가 언어능력이 두드러지는 사람들이 부각되기 쉽다. 그러나 이런 일상의 생활을 교회의 프로그램으로 가져오면 그동안 교회에서 소외되었던 평범한 생활인들이 신바람 나서 주인으로 설 수 있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다양한 경험을 가진 교우들 모두가 어느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주인으로 함께 나설 수 있게 된다.

떡 만들기를 한다고 떡이 목표가 아니다. 선물을 만든다고 선물 자체가 목표가 아니다. 면 생리대 하나 있고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그것을 만드는 과정에서 함께 어울리고 마음을 나누며 서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는 것,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며 과정에서 드러나는 좋은 습관이나 성품, 재주에 대해 서로를 깨닫고 자신을 열고 성령께서 주시는 새로운 관계로 초대받는 것이 목표이다. 이런 과정들이 서로를 받아들이고 서로의 소중함을 체험하기 위해 진행되기에 프로그램들을 통해서 나와 너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새로운 관계가 열릴 수 있다. 오히려 자꾸 분별하고 쪼개는 분석력을 토대로 한 지적 활동 보다는 생활을 나누는 삶의 활동은 몸의 활동이기에 서로가 하나 됨을 체험하기에 적합하다. 뿐만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담을 수 있는 결과물이 기념물로 남아 좋은 기억을 오래 추억할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9. 일꾼의 역할? 섬김

예수께서 마지막 만찬 후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서로 섬겨야 할 것을 말씀하셨다.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에게 주셨습니다.”(엡 2:6-9)

만약 내일 무슨 일이 생겨 모이는 사람들이 다 흩어져 버린다면 교회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 어떤 공동체가 수십년간을 존재하고 하나의 집단 인격체를 구성하였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 공동체를 위하여 많은 섬김의 역할들이 존재해 왔다는 것이다. 그것은 다양한 섬김의 모양으로 나타난다(최봉삼 장로님, 홍창의 장로님).


10. 세상(민중)과 하나 되는 기쁨

세상에는 가진 자, 힘 있는 자들이 약자를 등치고 가난한자를 더욱 어렵게 만들며 자신의 이해만을 추구하는 사냥꾼의 기쁨이 넘쳐난다. 그러나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은 타인들 위에 군림하고 그들 위에 우뚝 서는 기쁨이 아니고 그들과 하나 되는 기쁨이다. 관계가 기쁨을 만들어 낸다.

하나 되는 기쁨이 우리끼리의 기쁨이라면 공허하다. 그것은 세상과 하나 되는 기쁨이고, 특별히 아픔을 겪고 있는 민중의 기쁨과 하나 되는 기쁨이어야 한다. 세상의 아픔과 눈감고 자기들끼리 자족하는 기쁨, 자기들만의 잔치 속에 하나 됨은 아무리 고상하고 아름다운 말을 내 뿜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진정한 하나 됨이 아니다. 경쟁적 세상이 빚어낸 희생자들, 누구보다도 깨어지기 쉬운 아픔을 가진 사람들과 하나 되는 기쁨이야말로 진정 성령의 역사에 참여하는 기쁨이다.

성령을 받는다는 것이 이상한 말을 하고 별다른 능력을 갖는 것이 아니고 내가 보지 못하던 놀라운 은총을 바로 우리의 이웃의 얼굴 속에서 찾아내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큰 은사이다. 지극히 적은 사람, 내가 차마 그 가치를 느끼지 못한 사람 안에서 참다운 가치를 찾아내고 감격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은혜를 입은 것이다. 나를 주장하고 드러내고 관철시키고 도드라지게 보이는 사람이 위대한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게 숨어 봉사하므로 타인에게 소리 없는 기쁨을 주어 우리 자신의 행복이 모든 사람의 행복과 떨어져 존재하지 않는 그런 사회에 기초한 새로운 삶과 체계가 요구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자 할 때 그것은 자신을 변화시키는 힘이 된다.

“매주 촛불교회를 지키는 신도가 많지는 않지만 이 추운 겨울에도 꼬박 우리를 현장으로 불러내는 것은 무언가 보이지 않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혹 연합행사가 되어 봉헌 순서를 갖지 못하게 되면 참석자 중에는 섭섭함을 표시하는 분들이 있다. 춥거나 덥거나 고난 현장에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촛불 값이라도 봉헌할 수 있다는 것이 이젠 삶의 유일한 보람과 기쁨이 되었다고 그들은 고백한다. 매주 촛불하나 밝히는 것으로 얼마나 세상이 바뀔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참석하는 우리들에게는 확실한 변화가 생긴다는 것을 증언할 수 있다. 행동이나 실천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것은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주체들인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는 확실한 힘이다.” -한 촛불 교인의 고백


[함께 토의할 주제]


1. 개인적으로 나에게 삶의 여유가 생긴다면 하고자 했던, 하고 싶었던 꿈은 무엇인가?


2. 내가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된다면 이것만은 꼭 해결하겠다는 것 2가지를 써주십시오.


3. 창립 60주년을 맞이하여 교회가 했으면 하는 일은 무엇인가? 실현 가능성 때문에 제한을 두지 말고 무한한 가능성과 상상력으로 접근하자.


4. 향린교회의 교인으로서 내가 교회에서 꼭 하고 싶은 일을 2가지 써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