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시 세월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뒤집혀지며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배에서 한 소녀가 기도했습니다. “부디 한 명도 빠짐없이 안전하게 다녀올 수 있도록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이렇게 소박하고 애틋한 기도가 드려지던 순간에 배의 선장은 승객을 버리고 탈출하고 있었고, 이 기도가 드려진 후 1시간 동안 해경은 제대로 된 구조활동을 하지 않았고, 이 소녀의 기도를 마지막으로 300여 명의 소중한 생명들이 바닷속에 가라앉은 후 26일이 지나도록 국가는 여전히 무능함과 무책임만을 보여주었습니다.

세월호가 바닷속에 가라앉은 순간 우리의 시간은 멈추었습니다. 우리는 오직 사망자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만을 눈물과 분노 속에 바라보아야만 했습니다. 제주항에 내려 천방지축 뛰놀았을 아이들이 형체도 알아보기 어려운 차가운 시신이 되어 하나 둘씩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엄마, 아빠를 불러냈습니다. 엄마, 아빠들은 자녀의 영정을 들고 청와대 앞까지 걸어가 밤을 지새웠지만 대통령은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그 시간 대통령은 사회불안운운하면서 꼭두각시 방송사 사장을 내세워 다시 한 번 유가족을 기만했습니다.

이에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 향린공동체 교인들은 눈물을 주먹으로 훔쳐내고, 분노로 옥죄인 가슴과 어깨를 서로 맞대며 거리로 나왔습니다. 국가는 여전히 우리에게 가만히 있으라합니다. 하지만 가만히 있으라라는 말은 죽음의 속삭임임을 우리는 압니다. 이러한 죽음의 세력을 이겨내고, 생명이 충만한 세상을 만들어 나가고 계신 하느님의 이끄심에 응답하기 위해 우리는 함께 기도하면서, 다음과 같이 다짐하며 요구합니다.

1.
우리는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온갖 불법과 편법으로 국가권력을 쥐고는 이를 왜곡하고 은폐해온 박근혜의 즉각적인 사퇴를 요구해왔습니다
. 이번 세월호 사건에서 보여준 박근혜의 무능함과 무책임, 그리고 슬픔조차 공감하지 못하는 무감각을 보면서 또 다시 참담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죄 없는 푸른이들의 생명이 스러지는 것을 사악한 독재자의 죽음과 연결시키는 그 후안무치를 용납할 수 없습니다. 우리 사회가 세월호와 같이 침몰하는 것을 우리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박근혜의 즉각적인 사퇴를 요구하며, 이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기도와 행진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2.
세월호 참사는 뒤틀리고 부패한 우리 사회의 모든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주었습니다
. 푸른 생명들을 바닷속에 가라앉히고 그 위로 시커먼 괴물이 알몸을 드러냈습니다. 패거리 집단이 되어버린 국가공권력, 국민의 삶과 안전을 내팽개친 무책임한 관료집단, 끝없는 탐욕으로 눈이 시뻘겋게 충혈된 자본가, 이들에 빌붙어 국민의 눈과 귀를 호도하는 언론 등이 얽히고설켜 기괴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습니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몰고 온 모든 과정과 진상과 책임을 낱낱이 밝힘으로써 생명의 힘을 되찾아야 합니다. 불행이도 이러한 일을 맡아야 할 경찰과 검찰은 정권의 시녀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유가족들이 원하는 특검과 국정조사를 즉각 시행할 것을 요구합니다. 또한, 시간적 제약과 정치적 이해관계에 몰입될 가능성이 있는 이러한 조사 이외에, 양심적인 법조계, 언론계, 학계, 시민사회단체, 종교계 인사들로 구성되는 범국민적인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제안합니다.

3.
세월호가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지 벌써
26일째. 눈물과 한숨과 신음과 분노의 하루하루. 이제 조금은 따듯함과 웃음과 여유를 가진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다시 돌아갈 평온한 삶의 공간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용산 철거민,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병과 가난에 지친 세 모녀, 끝없이 죽음이 이어져 왔지만 우리는 침묵하지 않았는가요? 그 침묵의 대가가 세월호 참사를 통해 바로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 나의 아들과 딸, 나의 이웃, 나의 친구 그리고 바로 나 자신의 죽음으로 다가온 것임을 우리는 고백합니다. 이제 우리 삶에는 늘 시커먼 바닷물이 밀려들어올 것이고, 푸른이들의 마지막 절규가 항상 귓가에 머물러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세월호 이후의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나타나신 십자가 위의 예수님의 모습이며, 예수님의 마지막 절규임을 고백합니다.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한 소녀가 드린 기도는 우리를 부르는 주님의 목소리임을 고백합니다. 우리는 다시 세월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으며 오직 당신의 부르심을 따라 앞으로만 나아갈 것입니다.

2014511,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향린공동체 교인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