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규 명리학 <242>
남자란 존재에 대해

2006-08-11 오후 4:10:05





남자는 여자를 전제로 하는 말이다. 남자는 양(陽)의 성질을 지닌 존재인 바, 오늘은 그 남자란 것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돈이란 남녀 공히 좋아하는 것이다. 포탈의 뉴스를 보니 미국에서는 `백만장자와 연결되는 법`에 관한 책들이 여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하고, 국내에서는 모 방송국의 인기 아나운서가 재벌가에 시집을 간다고 해서 화제다. 그만큼 돈이란 좋은 것이다.

그런데 남자가 돈을 좋아하는 것과 여자가 돈을 좋아함에는 제법 큰 차이가 있다.

사실 이 세상의 모든 돈은 거의 여자들이 쓴다.

여자들은 바지만 해도 수 십 가지 종류를 갖춰 입는다. 9부 바지, 7부 바지, 반바지, 미니바지, 숏바지, 핫팬티, 나팔바지, 쫄바지, 맘보바지, 골반바지, 찢어진 청바지, 때 묻은 청바지 등등 그 종류를 셀 수 없을 정도이다. 바지만 해도 이러니 여자들이 필요로 하는 옷가지들이 얼마나 많은가.

여자들이 며칠 여행이라도 갈 것 같으면 마음 같아서는 필요한 물건들을 실은 컨테이너 한 대는 뒤를 따라가야 할 것이다.

이는 여자들의 돈을 통해 즐기는 소비행위가 실로 다양하고 즐겁다는 것을 말해준다.

필자는 강남역에서 15분 거리의 사무실에서 일한다. 가끔 지하철을 타기 위해 강남역 쪽으로 가보면 그곳에 있는 모든 상점은 여자들을 위한 상점이다. 오락실과 담배 가게를 제외하고는 모두 그렇다. 음식점 역시 남자 전용의 식당은 존재하지 않지만 여자들이 주로 오는 음식점은 정말 많다. 그곳에 남자들이 있는 것은 여자 친구와 데이트를 위한 것일 뿐이다.

그래서 장사를 하려는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지식이 여자에 대한 이해와 감각이다.

반면 남자들은 이상하게도 소비행위에서 그리 큰 만족과 쾌감을 얻지 못한다. 그래서 남자들은 옷가지도 몇 벌 없고, 구두도 한 켤레를 헐 때까지 신고 다닌다. 남자들은 이처럼 소비를 통한 즐거움에 있어 여자에 비해 게임이 안 된다.

물론 남자들도 많은 돈을 쓴다. 하지만 돈을 쓸 때 얻는 만족이란 것이 알고 보면 자신의 권력을 보여주는 것 또는 과시하는 것에 불과하다.

남자가 돈쓰는 장면을 곁에서 지켜보라.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식욕이나 성욕을 포함한 본능적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지출과 권력을 과시하기 위한 지출이 전부이다. 물론 다른 목적을 위한 행위들도 있지만 여자에 비하면 너무도 미미해서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싼 술집에서 파는 비싼 술과 편의점에서 파는 술이나 그 효용에 있어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남자들은 다 알고 있다. 단지 비싼 술집에서 술을 먹을 때 느끼는 자신의 힘에 대한 확인과 타인에 대한 과시가 만족을 주는 것이다. 또 접대하는 아가씨나 마담에게 거액의 수표를 내밀 때 들을 수 있는 `오빠 멋져!`라는 말이 흐뭇한 것이니 권력을 느낄 때 얻는 만족일 뿐이다.

아내에게는 충분한 생활비, 아내가 사치를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정도의 생활비를 주었을 때의 흐뭇함, 자녀들에게 충분한 용돈을 줄 수 있다는 것 등이 남자를 행복하게 만든다. 이 모두 권력과 힘의 과시이고 그럴 수 있을 때 남자는 존재의 이유를 확인하는 것이다.

남자의 이 같은 행동을 옛말로는 `거느림`, 즉 솔(率)이라 했다. 처자를 거느리고 첩들을 거느리며 나아가서 많은 비속들을 거느렸을 때 남자는 최고의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유교적 최고 덕목도 결국 같은 말이다. 먼저 입성부터 그리 쳐지지 않게 단정하게 입어야 하고, 어디 가서 밥 사먹을 돈은 있어야 한다. 이것이 수신(修身)이다. 다음으로 일가를 이루면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하니 이것이 제가(齊家)이다.

그리고 나서도 여력이 있으면 나라의 어린 백성들을 살찌우니 바로 치국(治國)이고, 그러고도 더 역량이 있어 천하의 모든 것들이 먹기 위해 벌이는 아우성과 드잡이질을 다스리게 되니 바로 평천하(平天下)인 것이다.

그런데 자기의 존속과 비속을 현실에서 제대로 폼 나게 거느리려면 필연적으로 타인과의 투쟁이 필요하고 불가피해진다. 남자는 그래서 투쟁적이다. 단지 들고 싸우는 무기가 맨 주먹이냐 또는 말이나 글이냐 지식이냐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남자는 투쟁할 힘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남자의 수컷성이고 음양으로 나누면 양(陽)인 것이다. 어떤 남자가 이런 양기가 너무 강하거나 세련되지 못했을 때, 최근에는 마쵸(macho)라 해서 페미니즘적 사람들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필자는 남자는 근본에 있어 모두 마쵸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마쵸는 스페인 말이고 그 뜻은 영어의 `much`와 같으니 `위대한` 또는 `강대한`이 그 의미인데 남자치고 위대함에 대한 충동을 지니지 않은 자 아마 없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남자는 실로 바보이기도 하고 어리석음으로 빚어진 존재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의 아버지들은 점심에 5000원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식사를 하고 입는 옷도 정장 몇 벌이 달랑이고 나머지는 그냥 허접한 간편복만 있으면 만족하고 산다. 반면에 아내와 자식들에게는 엄청나게 헌신적이다. 심지어 바람을 피우는 와중에서도 아내와 자식들에게는 헌신적인 것이다. 좀 바보스럽지 않은가?

그 바보스런 아버지의 극단적인 형태로서 우리 사회에는 기러기 아빠라는 특이한 존재가 있다. 주로 대학에서 가르치는 일을 하는 사람들 중에 기러기들이 많은데 안타깝고 한심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다보니 나중에는 가족과 함께 사는 필수적인 행복마저도 포기해버린 아버지가 바로 기러기다. 아내로부터 따뜻한 음식을 제공받지도 못 하고, 성욕을 해소하기 위해 전전긍긍해야 하고 보고픈 `내 새끼`들을 멀리 두고 그리면서 눈물짓는 아버지들이 바로 기러기 아빠들이니 말이다.

그로부터 생기는 갖은 문제점들을 모두 감수하겠다는 그 자세야말로 헌신의 절정이겠지만 묻고 싶은 건 왜 그렇게까지 살아야 하는가이다.

돌아와서 얘기하면 인간 사회에서 돈을 버는 것은 남자이지만 결국 그 돈을 쓰는 것은 여자이다. 교육비가 많이 든다는 얘기도 있지만 그 교육비마저도 나중에는 결국 학원 원장이나 강사님들의 아내와 애인들이 쓴다.

바보 같은 수컷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을 벌려고 눈이 벌겋다. 돈을 번다는 것은 투쟁과 동의어인데, 그렇게 열심히 싸워가며 번 돈을 자신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거느릴 수 있는 수컷임을 확인받기 위해 그런 것이니 정말 바보 아닌가.

그래야 멋진 오빠가 되고 멋진 아빠가 되며 멋진 형님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멋지다는 말, 위대하다는 말, 그런 얄량한 립 서비스를 듣기 위해 오늘도 남자들은 싸우고 있다.

그렇기에 페미니스트들이 미워하는 남자들의 마쵸적 속성이란 그 최대의 피해자가 남자 스스로이고 그 최대의 수혜자가 여자와 아이들인 것이다. 다시 말해 남자는 권력을 위해 살고 여자는 돈을 위해 산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양(陽)의 존재인 남자는 여자들이 지니지 못한 또 다른 엉뚱한 구석이 있다.

바로 진리와 진실이란 것을 추구하는 정신적 자세와 태도이다.

우주의 끝은 어디인가? 우주는 어떻게 생겨먹었을까? 올바른 사회적 가치는 무엇인가? 평등과 자유 중에 어느 것이 좀 더 중요한 가? 사물이 움직이는 원리는 무엇인가? 참된 인생의 진리는 무엇인가? 누구와 누구가 싸웠을 때 어느 쪽이 이길까?

이런 식으로 남자의 호기심은 끝이 없다. 여자들이 보기에 서푼 어치의 가치도 없는 이상한 궁금증에 일생을 바치는 남자들이 많은 것이다.

더러 지적 호기심이라고 고상하게 표현하기도 하는 이런 몸 밖의 사물에 대한 궁금증은 본질적으로 남자는 살아가면서 투쟁을 기본으로 하기에 그렇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모른다는 것은 두려운 것이고, 두려운 것은 상대하거나 싸워서 이기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그런 당장의 일이 아닌 것, 추상적인 것, 만지거나 느껴지지 않는 것, 씹을 수 없는 것에 대한 호기심이 남자에 비해 훨씬 떨어진다. 아니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를 두고 여자의 지적 능력이 떨어져서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바보천치이다.

여자의 머리는 눈앞의 것, 현세적인 것, 물질적 기쁨에 과한 것, 기꺼이 향유(享有)할 수 있는 것에 관한 한 남자보다 월등히 뛰어나다.

그렇기에 돈은 남녀 공히 좋아하지만 여자야말로 돈이란 것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소비행위에서 남자보다 탁월한 감각적 만족을 얻는 것이다. 그 수많은 옷가지들이 있는 것은 여자의 눈에는 모두가 달리 느껴지고 다른 쾌감을 주기에 그런 것이다.

남자에게 백화점 쇼핑은 지옥이지만 여자에게는 오감만족의 공간인 것이다.

흔히 여자는 도를 깨치기 어려운 존재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라 본다. 그러나 이 말이 여자를 비하하는 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원래 도라든가 진리, 이런 추상적인 가치들은 여자의 특성이 아닌 것, 여자들에게는 근원적으로 별 가치가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필자를 찾아와 운명을 물어보고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 모든 남자들의 고민이란 것이 사실 멋진 수컷이 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픔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여자들이여, 그런 남자들에게 정말 멋지다고 박수라도 한 번 흔쾌히 쳐주는 것이 같이 살아가는 곁의 존재들에 대한 매너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