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가 부족하다고?"
<제언> `한국의 자주국방과 한미동맹의 미래`

2006-08-14 오전 9:43:47 -->





다음은 한국의 자주국방에 관한 제언을 담은 함택영 교수(북한대학원대학교)의 `한국의 자주국방과 한미동맹의 미래`라는 제목의 글이다.

함 교수는 이 글에서 자주국방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군사적-기술적 합리성`이 아니라 `정치적 합리성`이라면서 현재 노무현정부의 자주국방정책은 지나치게 첨단무기 도입에만 치중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한국군의 자생적 전략기획능력을 키우고, 한국의 전략적ㆍ경제적ㆍ기술적 조건들에 적합한 최적의 전력구조와 무기시스템을 찾아내는 것이 보다 중요한 과제라는 것이다. 예컨대 한국군의 정보능력이 떨어진다고 해서 미국만이 가지고 있는 고가의 C4I 시스템을 도입하려는 것은 잘못된 정책이라는 것이다.

함 교수는 또 자주국방은 전력증강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앞으로의 정치적 협상을 통해 과잉 군사화된 남북한의 군사력을 제한, 감축해 나가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함 교수는 이어 한국의 안보에서 한미동맹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미래 한미동맹은 주한미군 없는, 즉 군사적이기보다는 정치적 동맹이 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하며 특히 앞으로 한미동맹은 공격이 아닌 방어목적의 동맹으로 그 성격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는 이어 한반도가 통일된다 해도 군사력 면에서 중국이나 일본과 필적할 수 없다는 점에서 한국은 이들 나라들과 군비경쟁을 하기보다는 미국과의 동맹을 유지하면서 동아시아의 다자간 안보체제 구축에 앞장서야 한다는 구상을 제시하고 있다.

현재 여야간에 벌어지는 전시작전통제권 회수에 관한 논란은 다분히 정략을 앞세운 소모적인 논쟁의 성격이 강하다. 현실보다 다소 앞선 논의일 수도 있겠으나 한국의 진정한 자주국방의 모습을 어떤 것인가에 대한, 한 안보전문가의 진지한 고민이 담긴 글이라는 점에서 이 글을 소개한다.

이 글은 지난 6월 20일 미국의 민간 싱크탱크인 `노틸러스연구소`에 영문으로 게재된 것으로("The Self-Reliant National Defense of South Korea and the Future of the U.S.-ROK Alliance`) 필자의 양해를 얻어 번역, 소개한다. <편집자>

들어가는 말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된 지 50년 이상이 지난 지금, 한미동맹은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그동안 주한미군은 워싱턴의 대한 안보공약의 핵심 요소였다. 1970년대 이후 주한미군의 일련의 부분 철수는 한국 국민의 안보감각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최근의 주한미군 재배치 계획은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 계획(GPR)`이라는 미국의 새로운 군사전략에 따른 것이다. 이는 한미관계의 기본적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한국의 자체 방위력을 신뢰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는 하지만 (주한미군의) 재배치/감축에 불안해 하는 사람들, 특히 "친미파"들은 한미 양국간의 어떤 불화도 미국의 대한 방위공약을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또 워싱턴의 일부세력들에게는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가 (미국에 대해) "고마와 할 줄 모르는" 일부 한국인들을 다루는 데 유용한 수단이 될 수도 있다.

21세기의 벽두, 미국은 한미동맹을 북한은 물론 중국까지의 봉쇄를 겨냥한 보다 유연한 지역동맹으로 바꾸길 원하며, 반면 한국은 한미동맹이 한반도방위에만 전념하되 동맹 내 미국과의 관계가 보다 대등해지길 원하고 있다. 지난 1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관한 한미공동성명에 대해 한국의 "자주파"는 한국이 이웃국가와의 원치 않는 분쟁에 끌려들어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전략적 유연성) 합의에 만족한 듯이 보이며, 전시작전통제권의 환수가 한미동맹 재조정의 중요한 다음 단계가 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일부 비판세력은 노무현 정부의 자주국방정책이 한미동맹의 근본적 변화를 의미한다고 비판하고 있다(이들은 이와 함께 노무현 정부가 북한 핵문제에 유약하게 대응하고 있으며 한미공조를 소홀히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에 따라 한국정부는 "협력적 자주국방"이란 말을 만들어냈는데, 이는 안보문제를 위해 미국과 협력하지 북한과 협력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분단 이후 남북한은 각각 미소 초강대국과의 관계에서 자주국방을 목표로 삼아 왔다. 그러나 이 말이 스스로의 힘만으로 안보를 책임진다거나 강대국과의 관계를 단절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한미관계의 정상화, 즉 보다 대등하고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추구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할 것이다. 이 글은 한미동맹, 그리고 남북한 군사력 균형을 포함한 남북관계의 분석을 통해서 한국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자주국방정책의 내용, 전제조건, 그 의미 등을 분석하고자 한다.

한미동맹과 한국의 안보

한국전쟁 이후 지난 50여 년간 한미협력의 최대 관심사는 북한의 안보위협이었다. 미국은 또한 혹시 있을지 모를 "남한의 북침"을 막고, 나아가 남북한의 핵무장을 막기 위해 노력해 왔다. 1954년 한미상호방위조약 발효 이후 주한미군은 한미동맹의 상징이었으며 한국의 안보를 지키기 위한 억지력의 핵심이었다. 1971년 미 보병 7사단의 철수, 카터 행정부 때의 추가 철수, 그리고 2003~04년의 주한 미 지상군 재배치 및 감축 계획 발표 등을 둘러싼 갈등과 논란에도 불구하고, 한미동맹은 여전히 굳건하다.

북한의 침략을 억지하는 데 있어서 워싱턴은 오랫동안 주요한, 때로는 지배적인 역할을 해 왔다. 미국은 한반도를 일본제국주의로부터 해방시켰으며, 남한을 북한의 침략으로부터 구해냈고, 각종 원조를 통해 한국군의 조직, 훈련, 장비 습득, 유지 등을 도왔다. 그 과정에서 미국은 한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을 보유해 왔다. 한국전쟁 이후 약 25년간 한미간에는 `미국의 자본과 한국의 병력`이라는 군사적 노동분업 관계가 형성됐었다. 그 후 한국은 비약적 경제성장에 힘입어 자체 국방비를 조달했으며 70년대 중반 이후 율곡사업이라는 이름 아래 일련의 군사력현대화 프로그램을 추진해 왔다.

이에 따라 양국 간에는 `미국의 전략과 한국의 전술`이라는 새로운 분업관계가 형성됐다. 미국은 전략기획 및 전략억지를 담당했다. 1970년대 박정희 정부의 비밀 핵프로그램이 미국의 압력에 의해 좌절된 이후 한국은 재래식 군사력의 현대화에 집중해 왔다. 그러나 "전략적" 군사능력을 획득하려는 한국 정부의 소망에 따라 한국은 탄도미사일의 사정을 늘리고, C4I(지휘, 통제, 통신, 컴퓨터, 정보) 능력을 비롯한 전략정보 및 조기경보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이러한 능력들은 현존 한미동맹 하에서는 중복되거나 덜 긴급한 것이긴 하지만 장래 한국군의 독자 방위능력을 위한 것들이다. 이에 따라 한미 군사관계는 `미국의 소프트웨어와 한국의 하드웨어`라는 새로운 분업관계로 발전했다. 주한미군의 핵심자산은 그 막강한 화력이 아니라 첨단정보능력이다. 한국의 군비조달 계획에는 첨단무기들과 함께 C4I시스템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그 성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할지라도 한국군이 그 정보기술과 관리기술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소화시키지 못한다면 이 첨단무기들도 그저 "하드웨어"에 불과할 뿐이다.

한미간 군사분업관계의 최근 양상은 `미국의 주도와 한국의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두 나라의 안보관계는 기존의 보호자-피보호자(patron-client) 관계에서 보다 대등한 관계로 변모해 가고 있다. 그러나 동맹관계에서 주도권을 쥔 쪽은 미국이며, 한국은 미국에 대해 기존 동맹구조의 정상화, 즉 자율성과 대등함을 요구하면서도 아직은 미국의 주도권에 응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미국 역시 대등함을 원하고 있지만, 워싱턴이 원하는 것은 한국의 방위비 분담 증액이나 미국의 해외군사작전 지원 등 다른 내용의 대등함이다. 특히 후자의 경우는 중국에 대항하는 한-미-일 삼각지역동맹으로 귀결될 가능성도 있다.

한국군의 군사력이 증강된 데 반해 북한군의 군사력은 경제난으로 인해 약화됨에 따라 주한미군은 이제 "잉여" 군사력이 됐다. 북한군은 (군사력의) "단순개수비교(bean count)" 등에서는 남한군을 앞설지 모르나 한국군은 북한보다 훨씬 많은 군사비 투입에 힘입어 군사훈련이나 장비지원, 보급, 그리고 준비태세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질적인 우위를 누리고 있다. 북한은 재래식 군사력 경쟁에서 한국에 압도적으로 뒤처져 있다. 특히 한국은 군사부문혁명(RMA) 덕택으로 전력 구성에서 극히 중요한 요소인 첨단무기 부문이나 정보능력 측면에서 북한에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게다가 산과 계곡이 많은 한반도의 지전략적(geostrategic) 특성에 따라 한반도에서는 공격하는 측보다 방어하는 측이 훨씬 유리하다. 북한 남침의 최악의 시나리오인 대규모 화학무기 사용을 동반한 기습공격이 성공할 확률도 극히 낮다. 북한에 대한 한미 군사력의 우위는 미국이 대북 선제공격을 단행하고 싶어할 정도로 압도적이다.

물론 북한이 주요한 전략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부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수도 서울이 비무장지대에 가까이 위치한다는 이유 때문에 북한이 보유한 장사정포들로 서울에 막대한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점이다. 비록 과대평가된 측면이 있긴 하지만, 북한이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대량살상무기와 실제 보유 중인 장사정포에 의한 위협은 분명 존재한다. 군사력 총량(military capital stock) 측면에서 한국이 우위를 누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북한 사이에는 비대칭적 균형이 유지되고 있다. 다시 말해 한국(및 미국)의 재래식 군사력을 중심으로 한 전쟁수행능력 우위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등) 비용이 적게 드는 억지력 우위라는 군사력 균형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남북한이 각각 서로 다른 (군사력상의) 강점과 취약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핵무기의 동원 여부와 관계없이, 양측 간에는 (전쟁이 일어날 경우) 상호확증파괴의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와 같은 비대칭적 군비경쟁과 같은 안보딜레마를 풀기 위해서는 정치적 해법이 동원돼야 한다. 한국과 미국은 지역내 다른 국가들의 협조를 통해 북한의 핵프로그램을 비롯해 북한과 군비통제 및 군축 협상을 시도해야 한다.

최근 주한미군의 재배치 및 감축계획 발표는 한국인들의 안보위기감을 상당한 수준으로 고조시켰다. 일반여론이 한미관계의 보다 대등한 관계를 요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많은 한국인들이 여전히 뿌리깊은 안보 불안감을 갖고 있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북한에 대한 한국의 경제적, 군사적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불안감을 느끼는 한국인들은 한미동맹 및 주한미군의 계속 주둔을 안보의 핵심으로 간주하고 있다. 실제로 북한과 미국은 한국과의 협상에서 한국인들의 이같은 안보불안감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왔다. 주한미군 재배치 및 감축과 관련해서는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그 과정에서 서울과 워싱턴 간에 불필요한 갈등과 불신이 초래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자주국방정책

미국에의 안보의존을 탈피하고 그에 따르는 잠재적 갈등을 피하기 위해, 그리고 급속한 경제성장에 힘입어 한국은 70년대부터 `자주국방정책`을 추진해 왔다. 자주국방은, 초강대국과의 비대칭적인 동맹 상태에서 스스로의 책임과 자율성, 그리고 안보의식의 증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이는 케네스 왈츠가 말하는 "내부적 균형조성(internal balancing)", 즉 동맹의 정치학에서 상대의 포로가 되지도 않고 상대를 포기하지도 않는 균형을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또한 비대칭적 동맹관계에서 피후견국가가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자존심을 확보하는 것을 지향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닉슨 쇼크, 그리고 한국의 강력한 반대를 무릅쓴 미 보병 7사단의 철수에 대한 대응으로 자주국방정책을 시작했다. 이것은 또한 미국으로부터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 박정희는 미국의 내정간섭에 대해 분노했다. 워싱턴은 70년대 초 박 정권의 권위주의적 통치 및 인권침해에 대한 경고로 대한 군사원조를 감축했던 것이다. 박정희는 국방비 조달의 자립(미국의 무상원조는 76년 종료됐다)을 비롯해 국산무기 생산, 비밀 핵무기개발 프로그램 등을 추진했지만 미국과의 동맹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 역시 친미, 반미의 문제와는 상관없이 자주국방을 추진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천명했다. `자주`라는 말에는 여러 의미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전시작전통제권의 환수, 그리고 국방개혁을 의미한다. 현 한국정부는 자주국방을 매우 진지하게 추진하고 있다. 2005년 노무현 정부는 국방개혁의 미래를 전망한 `국방개혁 2020, 그 전망`을 발표했고, 국회는 반드시 필요한 국방개혁 항목을 규정한 `국방개혁기본법`을 제정했다. 이 법에 따르면 국방개혁은 매 3년 정기적인 평가를 받게 돼 있다. 국회는 또한 2005년말 군사장비의 구입 및 개발을 전담할 방위사업청의 설립을 규정한 법률을 통과시켰다. 방위사업청의 연간 예산은 약 1000억 달러다.

이러한 국방개혁을 계기로 한국군은 한미동맹 및 기존 전력구조를 유지하면서 군을 현대화하는 기회로 삼고 있다. 특히 국방개혁은 주한미군 재배치 및 병력 1만2500명 감축을 보완하는 조치로 간주되고 있다. `국방개혁 2020`에 따르면 한국군의 병력은 현재 69만 명에서 50만 명으로 감축될(대부분 지상군 병력) 예정인데 실제 감축은 2010년부터 시작될 것이다.

한국 국방부는 97년 외환위기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으로 유보됐던 군비증강사업을 재가동하는 한편 한국형헬리콥터사업(KHP) 같은 새로운 사업들을 제안하고 있다. 예컨대 차세대 유도무기(SAM-X), 공중조기경보통제시스템(E-X), 차세대 전투기(F-X, F-XX), 공중급유기, 이지스급 구축함, 무공기추진 잠수함 구입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대규모 군비증강에 의해 국방예산은 GDP 대비 2.6~2.7%에서 3% 이상으로 급격하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러한 전력구조개선이나 현대화사업은 미래지향적이라기보다는 과거에 안주하고 있다. 이 계획들은 현재 상태에서 획득 가능한 한국군의 가상적 능력만을 보여줄 뿐이다. 미래지향적 군사계획에서는 무엇보다도 미래 안보상황에서 예상되는 새롭고 불분명한 위협들에 대처할 수 있는 유연성과 기동성이 강조돼야만 한다. 둘째, 한국은 자신이 놓여 있는 전략적, 경제적, 기술적 조건들에 적합한 최적의 전력구조와 무기시스템을 찾아내야 한다. 한국의 경제력을 감안할 때, 미국 수준의 C4I(SR) 능력을 획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미합동작전을 위해서는 이 시스템이 매우 매력적인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또한 군사비 투자에서의 `합리적 충분성`을 기하기 위해서는 `물자자본(material capital)`과 `인적 자본(human capital)` 투자간의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셋째, 군사부문혁명(RMA)뿐만 아니라 `군사변환`의 또다른 축을 이루는 관리 및 인사부문에서의 혁신도 매우 시급하다. 넷째, F-15K 구매 결정에서 드러나듯이 한국군의 무기구매목록을 보면 자체 무기생산 능력을 높이겠다는 당초 천명된 목표와는 거리가 한참 멀다. 다섯째, 방어지향적 군사능력 향상, 그리고 한국군이 상대적 우위를 누리고 있는 정보기술 등을 통한 억지력 향상을 위한 연구ㆍ개발에 더 많은 노력이 기울여져야 한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군의 자생적 전략기획능력을 키우고, 나아가 주한미군 없는 미래의 방어태세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군비증강 그 자체는 자주국방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없다. 한국은 30년 이상 자주국방을 추구해 왔으나 안보문제에 대한 (대미) 의존심리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자율성에 대한 자각, 책임성, 장기적 비전을 위한 창조성, 그리고 국민들 사이의 광범위한 합의와 지지야말로 자주국방의 기초가 된다.

동맹의 미래

한미동맹의 미래는 한반도 및 동북아의 사태전개에 크게 의존한다. 한국과 미국 모두 변화하는 안보환경에 맞춰 동맹의 성격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한미동맹을 유지하는 한편 주한미군의 역할을 한반도에 고정시키길 원하는 반면 미국은 한미동맹을 지역동맹으로 변화시키는 데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양측의 공동관심사를 추구하고 확대함으로써 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세계적ㆍ지역적 전략과 기본적으로 한반도에 고정된 한국의 전략을 조화시켜야 한다.

남북한간의 화해와 남북간의 군사력 균형이 남측에 유리하게 변화함에 따라 한국과 미국은 새로운 가능성과 도전들을 추구할 수 있게 됐다. 서울과 워싱턴은 북한에 대한 각각의 정책을 긴밀하게 조율해야 한다. 두 차례의 북핵위기 동안 동맹에 긴장이 발생한 것은 부분적으로는 한국과 미국의 서로 다른 우선관심사에 대한 상호조율이 없었기 때문이다. 서울은 의도하지 않은 전쟁을 피하고자 한다. 반면 워싱턴에게는 핵확산 저지가 보다 중요한 관심사다. 남북간의 화해에 발맞춰 북미관계의 타개가 이루어짐으로써 정전체제를 대체하는 평화체제를 확립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이제까지 한미 양자동맹에 의존해 왔던 한국의 안보전략은 동아시아의 보다 다자적인 안보환경에 대응해야만 한다. 한반도 평화과정의 진행과 함께 미국과의 동맹은 이 지역의 새롭고 불확실한 위협들에 대처하기 위한 지역동맹으로 재정립돼야 할 것이다. 한국은 세계 10, 11위의 경제대국이기는 하지만 미래 동아시아지역의 세력분포에서, 통일 여부와는 상관없이 약소국의 지위에 머물 것이다. 따라서 이웃 강국들과의 군비경쟁에 뛰어들어서는 안 된다. 반도국가로서 한국은 중국 육군이나 일본 해군의 상대가 될 수 없다. 한국은 미국과의 동맹을 유지하면서 동아시아의 다자간 안보체제 구축에 앞장서야 한다. 그리하여 이른바 대륙세력 대 해양세력 간의 단절, 나아가 충돌을 피할 수 있다.

지난 1월 한미공동성명은 한미 양국 정부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했음을 시사했다. 2005년 봄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한국의 많은 사람들은 전략적 유연성으로 말미암아 한국이 이웃나라와의 원치 않는 분쟁에 끌려들어갈 수 있다는 이유로 이에 반대했다. 그러나 2005년 11월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은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대한 양측의 합의 도출을 위해 장관급 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이 회담은 그 외에도 광범위한 전략적 문제들에 대한 양측간 합의 도출을 목표로 했다.

한국의 국민여론은 그다지 안심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2006년 합의사항 중 미국은 "한국 국민의 의사에 반하여 한국이 동북아의 지역분쟁에 개입되지 않겠다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는 귀절에도 불구하고 비판론자들은 노무현 정부가 한국의 입장에 대한 미국의 확고한 보장을 받아내지 못한 채, 또는 다른 분야에서의 양보조치도 이끌어내지 못한 채 미국 입장에 굴복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한 전략적 유연성 합의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의 개정을 요하는 사항이며 따라서 국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다른 중요한 문제는 (이 문제에 대한) 대중적 토론이나 정부와 국민간의 의견교환이 없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노무현 정부의 대외정책 의사결정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떨어졌다.

어쨌든 노무현 정부는 한미동맹 재조정의 다음번 주요 단계로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작업에 나섰다. 도날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이나 바월 벨 주한미군 사령관의 발언으로 보아 미국은 전시작통권 환수에 원칙적으로 동의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국이 전략적 유연성 합의에 대한 대가로 작통권 환수에 대한 미국의 양해를 얻어냈다면 이는 중대한 실책이다. 한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는 협상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한국과 미국은 새로운 합동사령부 체제를 구축해야만 할 것이다. 워싱턴은 한국군의 전략기획 및 정보능력이 취약하다는 이유로 전시작통권 환수에 머뭇거리는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한국군의 정보능력 부족을 지적하기에 앞서) 전세계에서 미군의 정보능력에 필적할 국가는 없다는 점이 지적돼야 한다. 군사적-기술적 합리성보다는 정치적 합리성이 훨씬 더 중요하다(미국이 주로 일본군 출신자 중에서 한국군 장교들을 선발한 결과가 어땠는가를 상기해 보라). 만일 정치적 합리성보다 군사-기술적 합리성을 중시한다면 한국인의 자기정체성은 손상되고 한미동맹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서울의 `자주파`들은 미국이 일방적으로 주한미군을 빼내감에 따라 한국인의 안보불안감이 증폭됐고 자존심이 손상됐다고 불평한다. 국가안보에서 심리적 측면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주한미군이 없으면 한국이 안보위기에 처한다는 이른바 `안보공백론`은 허위의식이다. 만일 북한이 한국의 자체방어 의지나 능력을 오판한다면 한국은 평양으로 하여금 현실을 직시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오해하고 있는 것은 북한만이 아니다. 북한 입장에 대한 미국의 오판은 한반도 전체에 대한 미국의 보다 뿌리깊은 몰이해의 일부일 뿐이다. 미국의 긴밀한 우방이자 안정적 민주주의와 번영하는 시장경제, 그리고 수백만의 독실한 크리스찬을 가진 한국에 대한 미국의 무지 또는 오해는 한국인들의 성나게 하고 있으며 한미동맹에도 독이 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한국은 FTA협상과 같은 경제협력은 물론 중국이라는 변수, 그리고 방위비 분담 등을 중심으로 한미동맹의 비용과 혜택에 대한 냉정한 분석에 나서게 될 것이다. 한미동맹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며 한반도와 평화와 통일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미래 한미의 지역동맹은 `미군 없는 동맹` 또는 `정치적(즉 비군사적) 동맹`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전시작전통제권 회수와 국방개혁에 의해 서울은 한국에의 미 지상군 주둔의 필요성을 경감시키면서 양국 군사협력에서의 미국측 요소를 대체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지역동맹은 반드시 선제공격전쟁을 거부하는 방어적 성격의 동맹이어야만 한다. 한국으로서는 동아시아지역에서의 군사분쟁에 참여해 달라는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는 것이 힘들기는 하겠지만 미래의 상호방위조약에서는 원치 않는 군사갈등에 대한 참여를 한국이 거부할 수 있는 조항이 포함돼야 한다.

워싱턴은 서울이 중국쪽으로 기울지도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경제파트너이자 과거 제국주의 일본에 대한 불만, 그리고 북한의 붕괴를 막아야 한다는 공동의 관심사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감한 미사일방어 문제가 보여주듯이, 많은 한국인들은 한미동맹이 중국에 대항하는 한-미-일 삼각동맹으로 발전해 동북아의 안보와 번영을 저해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이웃나라들과 영토분쟁을 벌이는 팽창주의적 중국이나 민족주의적 일본 모두 이 지역의 기존질서를 위협하는 수정주의 세력이 될 수 있다. 만일 미국과 일본이 한국을 제쳐놓은 채 중국에 대항하는 동맹으로 발전한다면 이는 북한은 물론 한국까지도 중국의 품으로 몰아넣는 결과를 낳을 것이며 이에 따라 동북아에는 긴박한 2극 환경이 형성될 것이다.

미국은 한반도의 평화과정에 깊숙이 개입하면서 한국의 동맹으로 남을 것이며 또 그래야 한다. 지정학적, 역사적 이유들로 인해 미국과의 동맹은 한반도 안보의 중심축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우선 수없이 논의되고 있는 미국에서 중국으로의 세력이동은, 중국의 경제성장이나 군사능력에 대한 미래 예측이 지나치게 과대평가됐다는 점에서 실현가능성이 매우 낮은 시나리오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19세기 영국이나 20세기 미국 등 세계적 헤게모니 국가들은 생산성, 유연성, 문화, 지도력 등 이른바 `소프트파워` 측면에서 압도적 우위를 누렸다. 둘째, 한국은 전반적 국력이나 군사력 측면에서 중국이나 일본에 필적할 수 없다. 앞으로도 한국은 미국에게 가치있는 안보자산으로 남아 있겠지만 - 한국은 미국의 동맹국들 중 최대, 최강의 지상군 병력을 보유하고 있다 -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 균형자(balancer) 역할을 하거나 중립국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중국 모두와 협력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대안적 동맹형태를 모색해 볼 필요는 있다. 예컨대 동북아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비중립적 완충/안정자 (buffer/stabilizer) 국가를 상정해 볼 수 있다. 미국의 동아시아정책은 동북아에서의 다자간 안보협력을 지향할 필요가 있다.

결론

남북간 세력균형이 남측에 유리하게 변화하고 남북간 화해가 진전됨에 따라 한국과 미국은 한반도 안보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게 됐다. 이제까지 주로 한미동맹의 힘에 의존해 왔던 한국의 안보전략은 보다 다자적인 안보환경에 대처해야만 한다. 경제적, 지정학적 이유들로 인해 한국은 한미동맹의 틀 안에서 최소한의 자주국방 조건을 충족시키면서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구축을 위한 방도를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미래 한국의 안보와 동북아 지역협력에서 한국의 역할은 한미동맹이 냉전후 차원으로 어떻게 변환되느냐에 따라 크게 좌우될 것이다. 동맹구조는 미군의 재배치와 주한미군의 새로운 역할, 한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동맹군 사령부 구조의 재조정, 그리고 자주국방을 위한 한국군의 국방개혁 등에 따라 근본적으로 재검토될 것이다. 자주국방이 (미국과의) 절연이 아니라 상호 만족할 수 있고 생산적인 역할을 맡는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아가 이제 더 이상 남북한의 안보가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는 점에서, 즉 북한의 안보를 저해해야만 남한의 안보가 확보되는 상황이 아니라는 점에서 북한을 동북아 지역협력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다자적이며 협력적인 안보접근이 필요하다. 한미동맹의 재평가는 한국에게는 일련의 국방개혁 및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등을 통해 한국군의 전략기획, 정보, 작전능력 등을 향상시키는 동시에 한반도의 군비통제 및 군축을 실현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정책제안

(한국과 미국은) 보다 대등한 동맹관계를 형성하며, 동시에 상대방의 주요 관심사 및 상징적 가치들을 인정해야 한다. 한국의 자주국방은 자율성과 동시에 국민적 자존심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한국의 요구를 워싱턴은 인정해 주어야 할 것이다.

보다 유연하며, 동시에 항구적이고 효과적인 동맹관계, 어쩌면 주한미군이 없어도 존속되는 동맹을 지향해야 한다. 한국은 한반도에서의 평화체제 구축과 함께 미국과 공격 목적이 아닌 지역동맹을 맺을 수 있다. 동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정책은 이 지역의 다자적 안보협력을 지향해야 한다.

전시작전통제권을 한국에 이양하고 새로운 합동사령부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합의된 만큼 유연한 주한미군과, 한반도에 고정된 한국군을 기존의 단일한 사령부 구조 안에서 통제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다.

RMA와 군사변환 등 한국의 국방개혁에서는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에 치중해야 한다. 개혁은 정보능력에 대해서는 `합리적 충분성` 정도의 능력을 배양하면서 전략기획, 위기관리, 작전기술 능력 향상에 집중해야 한다.

한국과 미국은 한반도에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군비통제 및 군축을 추구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체제에는 평화조약, 남북한에 대한 주요 강국들의 교차승인, 남북간 및 지역내 경제협력, 군비통제 및 군축 등이 포함돼야 한다.



함택영/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