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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교수 "이제 펜을 놓습니다"
지적활동 마감 선언…"한계 깨달을 때 이성적 인간"

2006-09-05 오전 9:10:08





최근 12권의 저작집을 펴낸 리영희(77) 한양대 명예교수가 지적 활동의 마감을 선언했다.

리영희 "이제 펜을 놓습니다"

5일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리영희 교수는 이 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한 개인에게는 무한한 욕심과 집착을 버려야 할 시기가 있는데 그 시간이 온 것 같다"며 "지금까지 쓴 글들을 묶은 저작집 출간으로 지적 활동, 50여 년 간의 연구와 집필 생활을 마감하려 한다"고 말했다.

리 교수는 이어서 "정신적·육체적 기능이 저하돼 지적 활동을 마감하려니 많은 생각이 든다"며 "그러나 내가 산 시대가 지금 시대하고는 상황이 많이 다르고 내가 할 수 있는 한계가 왔다고 봤는데, 마침 그 한계와 지적 활동을 마감하는 시기가 일치해 하늘이 일종의 깨달음을 주는 걸로 생각하고 고맙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리 교수는 그동안의 글쓰기를 통한 현실 참여에 대해 "진실이 거울처럼 통하는 세상을 만들려고 애썼다"며 "우리 사회를, 우리 국민과 국가를 총체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거짓에 대해서, 허위에 대해서 밝혀내고 싶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진실을 가린 거짓으로 권력을 행사하고 지배하려는 개인, 집단, 사상, 이데올로기를 드러내려 했다"고 덧붙였다.

"한계 깨달을 때 이성적 인간"

리영희 교수는 "현실과 담을 쌓기 위해 그동안 지적 활동에 편리하게 꾸렸던 집의 분위기를 싹 바꾸려 한다"며 "군사, 정치, 국제관계, 중국 근현대사, 일본이나 동북아시아 등 현실적 문제에 관한 서적을 관련 연구자에게 나눠주고 있다"고 밝혔다. 리 교수는 "(대신) 동서양 고전, 불교 서적을 읽고 있다"고 덧붙였다.

리 교수는 "자기가 할 수 있는 한계를 깨달을 때 이성적 인간이라 할 수 있고, 마치 자기가 영원히 선두에 서서 깨우침을 줄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은 오만"이라며 "운명에 대해 겸손하게 받아들이려 한다"고 전했다.

리 교수의 절필은 2005년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과의 대담을 통해 그의 삶을 정리한 <대화>(한길사 펴냄)를 낼 때부터 예고된 것이었다. 그는 2000년 11월 뇌출혈로 쓰러진 뒤 건강을 많이 회복하긴 했으나 여전히 집필 작업을 하기는 힘겨운 상황이다. 그는 <대화>를 낼 때도 "고마운 이들의 요청에 마지막으로 보답하라는 뜻"으로 대담에 임했다고 밝혔다.

"작통권 문제, 과거 집권세력의 거짓 논리체계"

노학자의 현실 참여는 `절필` 선언을 하는 시점까지 계속됐다. 그는 "현실과 떠나려 하지만 지금 돌아가는 일들이 이렇게 돼서는 안 되고, 저렇게 돼야 한다는 의견은 없지 않아 있다"며 최근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논란과 관련한 입장을 밝혔다.

리영희 교수는 "오늘날 남북문제, 작통권 문제는 과거 집권세력이 거짓으로 꾸며낸 논리체계들에 의한 것"이라며 "그들이 하는 소리야말로 내가 깨우치려고 한 거짓의 논리였다"고 밝혔다.

이날 <중앙일보>는 김태길(전 서울대 교수) 학술원 원장, 박이문 연세대 특별교수,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 차인석 서울대 명예교수, 차하순 서강대 명예교수 등 학계 지식인 1000명이 "작통권 환수 반대"를 선언한 것을 보도했다. 이는 리 교수의 입장과 대조되는 움직임이다.

"젊은이들이여, 다음 세대를 위한 밑거름이 돼라"

리영희 교수가 50년에 가까이 지속된 글쓰기를 통한 현실 참여를 마무리함에 따라 그가 못 다한 부분은 뒷사람들의 몫이 됐다. 리 교수는 <대화>를 출간한 직후인 2005년 3월 19일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다음 세대에게 다음과 같은 당부를 남겼다.

"지난 세기 그 흉악한, 불행한 세대를 살아온 나를 비롯한 선배들이 포함된 앞 세대들이 가꿔온 나무에 달린 열매를 지금 세대들은 아무 생각 없이 따 먹고 있다. 누가 씨를 뿌렸는지, 나무가 커 오는 과정에서 어떤 고난을 겪고, 얼마나 많은 피눈물이 거름이 됐는지 생각하지 않고 열매를 당연한 것처럼 취하는 경우가 많다.

이제 그런 젊은이들도 다음에 오는 세대에게 뭔가를 남겨야 하는 `생명의 원리`를 깨우쳐야 한다. 단지 열매만 취하기보다는 그 옆에다 나무를 심고, 꽃을 심어 더 크게 자라고, 더 예쁘게 피게 하는 노력을 해야지. 그래야 `생명의 연속성`이 보장되는 것이고.

나는 <대화>를 젊은이들이 읽을 때, 저마다 `리영희`가 돼 책 속의 상황과 직접 부딪쳐보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지나간 역사를 성찰하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도 성찰해서 또 다음 세대를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는 능력을 길렀으면 한다."



강양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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