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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민이의 겨울 빈활 일기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기고]'절망의 빈곤 희망의 연대' 2007 겨울 빈민현장 참가기 / 손혜민(동덕여대 02)

<1월 17일 수요일>

“빈 공가에서 자는 거라 추울 거야. 침낭 있으면 가져오고, 없으면 이불 가지고 와!.” 겨울 빈민현장활동(빈활)에 갑작스레 참여를 결정하게 되어 그 전날 밤 늦게야 친구에게 준비물을 듣곤 걱정이 앞섰다.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타는 탓에 빈활이고 뭐고 그냥 하지 말까.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3박 4일의 빈활 일정 중 하룻밤만 잘 생각이었고, 이미 결정한 일을 나약한 마음 때문에 뒤엎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단 하루라도 추위에 떨며 잘 생각을 하니 그날 밤은 유난히 방바닥을 더 따뜻이 해 놓고 잤던 기억이 난다.

아침 공기가 맑았다. 방학이라 한동안 늘 늦잠만 잤는데, 그래서 아침 일찍 일어난 것도 오랜만이었다. 그러나 상쾌한 마음과 함께 조금 불안한 감정도 들었다.‘처음’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설레임, 두려움, 기대감 등의 의미가 한꺼번에 일어난 탓일까? 처음 가 보는 빈민현장활동에서 무엇을 겪게 될지,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지 조금은 소심한 성격인 나로서는 당연히 걱정되는 부분들이었다.



△경동여관에 짐을 풀고 모인 곳은 목욕탕. 처음엔 여자목욕탕, 다음엔 남자목욕탕이었다. 목욕탕에서의 일정은 익숙해져갔다. ⓒ민중의소리



△조별발표도 하고, 일정도 소개받았다. ⓒ민중의소리

“예, 지금 삼양사거리에서 내렸어요. 어디요? 아, 경동여관이요? 찾아가 볼게요!”영진이와 삼양사거리에서 내려 빈활 장소를 확인하기 위해 전화를 했다. 길음역 방향으로 10분정도 걸어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가니‘경동여관’이라는 작은 간판이 보였다. 모임시간인 10시를 넘어서 도착해서 그런지 이미 계셨던 분들은 분주해 보이셨지만 반갑게 맞아주셨다. 여관에 짐을 풀고 모인 곳은 여관 아래층에 있는 목욕탕. 목욕탕 안에서 무언가를 한다는 자체가 상당히 어색하고 우스웠지만 빈활 참가 대학생들의 표정은 밝았다. 돌아가며 간단히 자기소개를 했고 그 후 다시 여관 앞으로 모여 발대식을 가졌다. 그런데 발대식을 하는 내내 두리번거리기에 바빴다.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투쟁!”혹은“동지들!”이라는 단어, 구호를 외치며 팔을 치켜드는 동작, 그 동작과 함께 부르는 결연한 분위기의 노래까지 어느 것 하나 익숙한 것이 없었던 것과 대조적으로 주변 분위기는 학생들도, 주민들도, 물론 여러 단체들에서도 자연스러운 모습들이었기에‘빨리 적응해야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발대식을 통해 생긴 걱정스러움을 감추고 다시 목욕탕에 집결하여 점심을 먹고, 향후 일정과 빈활 관련 자료들이 수록된 자료집을 받고 첫날의 일정을 들은 뒤 3개의 조로 조를 나누었다. 앞으로의 일정을 조별로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조원들끼리 서먹한 분위기 속에서 인사를 하고 조장을 뽑았다. 그리고 조 이름을 정한 후 지역 주민과 함께 빈활현장의 주무대인 미아 6지구를 둘러보는‘동네한바퀴’프로그램을 하였다. 자료집에 나온 동네한바퀴 프로그램은 그러나 첫 이미지만으로는‘그저 그런’프로그램일 거라는 생각이 짙었다. 지역사회복지관에서 자원봉사를 했을 때, 지역상황을 알아보기 위해‘지역지도그리기’라는 프로그램을 이미 몇 차례 경험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동네한바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이번 빈활이 어떤 목적인지, 지역의 상황과 주민들의 모습은 어떠한지, 정부는 어떠한 대책들이 있으며 그러나 그 한계는 무엇인지 등을 생각하게 해 주었는데 무심코 지나쳤던 뉴타운 개발 및 도시개발, 그리고 세입자분들의 주거권에 대해 보다 실질적으로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미아 6지구에 총 5개의 단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별로 이 다섯 단체를 만나는 순서는 미아지구를 도는 방향에 따라 달랐는데, 내가 속한 2조에서는 문화연대에서 주최한 희망의 문패달기가 그 처음이었다. 이미 철거가 되었거나 이사를 가서 주민들이 살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희망을 담아 만든 문패를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붙이는 거였다. 문패는‘우리 여기서 그냥 살게 해 주세요~’의 귀여운 표현부터‘세입자도 사람인데...’라는 절망의 표현, 차마 여기에 담을 순 없는 과격(?)한 표현까지 여러 종류였다. 각자의 기발한 아이디어로 서로 문패를 만든 뒤 다음으로 간 곳은 동사무소 앞에 마련된 곳이었다. 원래 장애인관련단체에서 나와 주시기로 했다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아 그 곳에 빈철연에서 자리를 대신해 주셨다. 미아 6지구의 현재 상황을 설명해 주셨고 우리들이 궁금했던 사항들도 질문하였다. 다음으로 들른 곳에서는 쪽방과 노숙인들의 주거환경과 관련된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인권운동사랑방에서는 UN협약에 나와 있는 인권조약을 살펴보았고 세입자, 정부, 조합, 용역깡패 등으로 역할을 나누어 역할극도 하였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임대아파트의 변화 과정과 실제‘세입자로 가정하고 재개발이 된다면’이라는 사례를 통해 지역 주민들의 상황을 간접적이지만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프로그램 내내 무척이나 날이 찼고 길까지 얼어 오르막길인 꼬불꼬불하고 좁은 미아 6지구를 모두 둘러보기가 쉽지만은 않았지만 재개발을 향해 버젓이 있는 집들을 철거한 모습은, 그리고 재개발 후에 지켜져야 할 세입자 분들을 포함한 주민들에 대한 권리가 지켜지지 못하고 있는 모습은 마음까지 얼게 만들었다.



△다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 가운데 사진은 동네에 붙어 있는 벽보. ⓒ민중의소리

그리고 우리는 또 다시 목욕탕에 모였다. 처음엔 여탕에서 모였는데, 어느 새 남탕으로 난로와 자료들이 옮겨져 있었다.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목욕탕이 친근하게 느껴졌다. 몸을 녹이고 다른 조들이 다 모이자 저녁식사를 했다. 앉을 곳도 마땅치 않은 목욕탕에서 각기 자신들의 방법대로 식사하는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었고 그 모습들 때문에 어느새 입가엔 미소가 퍼졌다. 차가운 목욕탕이 이렇게 훈훈하게 될 수도 있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식사를 한 후 잠을 자게 될 공가를 찾아가 청소를 했다. 우선 공가를 보았을 때 차마 표현은 못했지만 가슴이 탁 막히는 느낌이었다. 전기도, 문틀도, 창문도, 보일러도 그 곳엔 아무 것도 없는 말 그대로‘황량한’곳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방을 쓸고, 닦고, 종이 판자를 깔고, 그 위에 비닐장판까지 깔았다. 오후 6시가 넘어 깜깜해 졌지만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한쪽에서는 휴대폰 플래시를 터트리며, 또 한 쪽에서는 수동식 점화기로 불빛을 비추며 청소해야 했다.

이후 다시 목욕탕에서 민주노동당의 김종철씨가‘신개발주의와 뉴타운’이라는 주제로 한 교양시간을 가진 후 장소를 이동하여 여관에서 조별모임을 가졌는데, 아직도 조원들끼리 무척이나 서먹한 눈치였지만 그래도 처음 만났을 적 보다 한결 편안해진 모습들이었다. 10시가 넘어서까지 조별모임을 하고 전체 평가를 위해 다시 목욕탕으로 모였다. 평가가 끝난 후 아까 청소 한 공가로 다시 향했다. 그런데 전체평가를 하는 동안 빈활참여 선생님들께서 처음 공가를 보았을 때와, 아니 청소를 하고 난 후와 비교했더라도 훨씬 아늑한‘집’으로 변신시켜주셨다. 어느 새 불빛도, 난로도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람들도 그 곳에 있었다. 그렇게 빈활 첫 날이 지났다.

<1월 18일 목요일>

예상을 못한 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빈활에 오기 전에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해도 너무 했다. 찬 냉기가 바닥을 통해 등줄기까지 올라 바닥에 깐 판자도, 그 위에 덧댄 비닐도, 침낭도, 내복에 세 겹이나 껴 신은 양말도 소용이 없었다. 말 그대로 온 몸이 냉기로 젖은 느낌이었다. 단순히 날이 춥다는 한파와는 달랐다. 한파는 잠시 스쳐 따뜻한 곳에 몸을 가누면 그 뿐이지만 추운 냉기가 지속되는 이 곳은 머리가 띵해질 만큼 온몸에 서서히 퍼져 결국 누운 몸을 가눈 채 한 잠도 자지 못하고 새벽을 맞아야 했다.

집결지인 목욕탕에서 또 하루가 시작되었다. 아침 식사 후 간단한 일정을 확인하고“행당동 이야기”라는 영상물을 보면서 이전에 있었던 주거권 투쟁의 역사를 살펴 볼 수 있었다. 이후 영상물에도 나왔던 유영우씨가 오셔서 당시 상황과 현재에 이르기까지 주거권 투쟁의 역사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해 주셨다. 이후 점심식사를 마치고 주요 활동인 지역선전전을 위해 포스터만들기와 행진을 하기 위한 준비가 시작됐다. 이 때에는 1,2조 그리고 3조, 이렇게 두 팀으로 나뉘어 지역 선전전을 한 이후에 삼양사거리로 모여 전체 행진을 하는 일정이었다.



△선전벽보를 만들어 붙였다. ⓒ민중의소리



△삼양사거리로 모여 전체 행진을 시작했다. 구호를 외치는 내내 ‘즐거움’이 가득했다. ⓒ민중의소리



△매체를 통해 투영된 투쟁을 외치는 사람들의 이미지는 모두 과격하고 선동적이라고 비쳐졌던 모습들이었는데, 직접 경험해 보니 그게 아니었다. ⓒ민중의소리



△포스터 만들기와 플랜카드 만들기는 우리의 집결지인 목욕탕이 아닌 삼양사거리 방향으로 약 5분 거리에 위치 해 있는 다른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민중의소리


포스터 만들기와 플랜카드 만들기는 우리의 집결지인 목욕탕이 아닌 삼양사거리 방향으로 약 5분 거리에 위치 해 있는 다른 사무실에서 진행되었다. 1, 2조가 예상보다 인원이 많아 어떤 일을 맡을지 처음에는 우왕좌왕하다가 결국 포스터와 플랜카드로 나뉘어졌다. 주민분들께 배포 할 유인물을 바탕으로 포스터를 만드는 작업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그 내용이 가관이었다. 한국의 최고 집부자가 소유한 집이 무려 1.083채라는 내용을 접했을 때, 도저히 1.000채가 넘는 집의 소유가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그리고 그 규모역시 가늠하기 어려웠다. 또한 개발로 인한 주민들의 20%도 채 되지 않는 낮은 재정착률이 암시하듯 뉴타운 개발로 인한 혜택, 실제로 개발된 지역에서 살았던 주민들이 아니라 결국 뉴타운 건립 후 당연히 그 곳에 살 권리가 있는 주민들에게서 돈의 힘으로 그 권리를 빼앗는 시장의 원리가 이곳에서 정부의 강력한 대책 없이 개발우선주의에 입각한 채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무척이나 가슴 아팠다. 그래서였을까. 포스터제작을 눈에 잘 띄게 하고 싶은 욕심은 너무나 큰데 이런 사실을 일반 주민들에게 어떻게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을지, 종이조각 하나로는 이 답답함을 다 담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포스터 제작 전 팀원들과 오랫동안 고민했었다. 이런 고민 덕에 무사히 포스터 제작을 마치고 1, 2조 모두 거리행진을 했다. 유인물을 가지고 주민 분들께 배포하고, 집의 우편함에 끼우기도 했다. 확성기로 뉴타운 개발의 폐해를 알리려 목청이 터져라 외쳤고 여러 구호를 외쳤다. 그런데 지역선전전을 다니면서 느낀 것이 한 가지 있었다. 매체를 통해 투영된 투쟁을 외치는 사람들의 이미지는 모두 과격하고 선동적이라고 비쳐졌던 모습들과 반대로 구회를 외치는 내내 ‘즐거움’을 가지며 행진했다는 점이었다. 난생처음 해 보는 텔레비전 구호, 랄라라 구호 등의 깜찍(?)한 모션은“저게 뭐지?”라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었고, 구호를 외치며 신나게 행진할 수 있다는 사실은 지역선전전을 하는 과정이 투쟁의 일환이지만 진정으로 즐겁게 할 수 있는 투쟁이라는 것이었다. 우리가 말하는 외침은 매체에서 보도되는 과격함도, 선동적인 것도 아니었고 단지 세입자분들의 주거권, 용역깡패들의 청산 등을‘정당’하게‘요구’하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삼양사거리에서 1,2,3조가 모여 다시 집결지인 경동여관까지 행진해 돌아왔다.

저녁식사 후 주민들과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빈민해방 철거민 연합에 소속된 분들인데 청계천 8가 영세상가, 중화 2동, 포일 주공아파트, 우면 2지구 등은 미아 6지구, 12지구와 마찬가지로 철대위 활동을 하고계시는 분들이셨다. 그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 정부가 소위‘있는’사람들에게만 관대한 정부는 아닌지, 우리가 무작정‘가진 자’를 적으로 만드는 것은 결국 정부가 자행한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되었다. 용역깡패로 인한 심리적 위화감 뿐만 아니라 직접적으로 평생을 장애를 가진 채 살게 된 분, 그리고 자살이라는 막다른 선택을 한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법도, 경찰도, 공무원들도 자신들의 편이 아니라는 그 분들의 말에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건 단지, 그 분들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주민들과의 이야기가 끝난 후‘성차별 반대하기’라는 주제로 학생들이 주최한 조별 토론과 전체 토론을 가졌다. 내일 있을 일정을 공유하고 조별 문화제 준비를 알린 전체 평가회의까지 마친 후 모두 숙소로 향했다. 그리고 나도 숙소로 향했다. 하루만 자고 가리라 작정하고 왔지만, 냉기가 흐르는 방에서 자는 것이 고작 3일일 나에게 춥다는 것 자체는 이젠 단순히 피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열악한 주거환경을‘고작 3일’일 지라도 느껴본 것은 현재 불안에 떨며 이 지역에 거주하고 계신 분들의 주거권을 조금이라도 더 생각할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1,083채를 소유한 나라. 개발 뒤 주민 재정착률이 20%도 채 되지 않는 나라. 결국 '뉴타운' 개발로 인한 혜택은 개발 지역 주민들에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뉴타운'이란 말은 자본가들의 수식어일 뿐이다. ⓒ민중의소리


<1월 19일 금요일>

불침번을 조별로 돌아가며 두 시간씩 섰다. 수요일, 그리고 목요일 이틀 동안 3개의 조가 6시간씩 서는 불침번을 조원들이 돌아가며 섰는데, 불침번 마지막 날이기도 했고, 문화제 토의도 할 겸 2조 전체가 함께 불침번을 섰다. 불침번이라……. 혹시 모를 용역깡패의 행태를 살피고 지역 상황을 살펴보기 위한 목적으로 선 것이라고 하는데, 단 몇 가구이지만, 그래도 엄연히 대한민국 주민이 살고 있는 이 곳에서 불침번을 서야 한다는 사실이 씁쓸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어제보단 나았다. 잠을 못 자 피곤에 지쳐서 였는지, 아니면 추위에 조금은 적응이 됐는지 몇 시간이지만 잠을 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중요 활동 중 하나였던 강북구청장과의 만남. 구청 앞에서 집회를 했다. ⓒ민중의소리



△우린 적절한 집에서 살고싶다. 사람이니까. 의식주는 인간 생활의 세 가지 기본요소라는 것도 배웠다. 사람이니까. ⓒ민중의소리


다시 목욕탕에서 아침을 맞았다. 이젠 너무도 정겨운 목욕탕에서 아침식사를 한 후‘스쾃’과 관련된 영상물을 본 후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들 피곤했는지 몇몇은 졸다 깨다 하는 모습도 보였지만 그 모습들조차도 너무도 소중하게 느껴졌다. 가장 중요한 활동은 지하철에서의 선전전과 강북구청에서 구청장과의 만남과 구청 앞에서 집회를 가지는 것이었다. 지역주민 대표 분들과 여러 연대단체, 빈활참여대학생 등 꽤 많은 수의 인원이 참여할 것임을 말씀해 주셨다. 강북구청까지는 조별로 가기로 했다. 지하철을 타러 가기 전 세입자분들의 주거권, 뉴타운 개발의 폐해 등을 알리고 싶은 마음에 점심은 간단히 만두로 요기를 하고 강북구청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목청을 높였다. 일부 시민들은 관심 없다는 표정을 보이기도 했고, 또 일부 시민들은 먼저 유인물을 달라고 부탁하는 분들도 계셨다. 냉담한 반응을 어느 정도 예상했었지만 그래도 생각보단 덜 했던 것 같다. 단지, 냉담한 시민들의 반응을 대응할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는 모습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렇게 열심히 지하철 선전전을 마치고 강북구청으로 향했다. 이미 구청 앞에는 여러 연대에서 오셔서 집회 준비를 어느 정도 마치신 상태이셨다. 우리도 함께 힘껏 구호를 외쳤다. 그렇게 이십 여분 정도 지나 주민대표, 연대단체 대표, 그리고 학생 두 명을 포함한 총 10명이 구청장과의 면담을 위해 구청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나 역시 면담에 들어갔는데, 가기 전에 상당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구청장의 반응과 해결제시 등을 살피고 협상해 가는 과정을 지켜 볼 수 있을 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이었는데, 그러나 이런 예상은 오 분도 채 되지 않아 무참히 깨지고 말았다. 우선 구청장이 아닌 부구청장과의 면담을 가졌다. 그런데 현재 뉴타운 개발과 관련 해 미아 6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태를, 전혀, 말 그대로‘전혀’몰라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솔직히‘어떻게 한 지역의 부구청장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모를 수가 있는가!’ 라는 답답함과 분노에 할말을 잃었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 전반적인 현실일 수도 있이 않을까 라는 생각도 가졌다. 결국 김종철씨가 다음 주 금요일로 면담을 다시 잡는 게 어떠냐고 제의를 했고, 구청 측에 미아 6/12지구의 실태조사를 요구한 후 면담은 마쳐졌다. 기억에 남는 부구청장의 말은“우리 공무원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습니다.”와“잘 모르겠습니다.”뿐이었던 것을 보면 전체 30분도 되지 않았던 면담시간에 부구청정이 한 말은 채 3, 4분도 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일단 다시 만날 약속을 잡았다는 사실과 앞으로 계속 면담을 진행할 것이란 점에서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면담 후 얼마 간 구청 앞에서 집회를 계속 가진 뒤 다시 삼양사거리로 향했고, 거기서 경동여관까지 행진하였다.



△토론하고, 발표하고, 웃고 떠들고 즐기고. ⓒ민중의소리

빈활의 마지막 밤에는 문화제가 진행되었다. 각 조에서 준비한 공연(?)과 함께 여러 가지 볼거리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1조와 3조는 율동을 준비했고 2조는 꽁트를 준비했는데 모두들 짧은 시간 안에 준비를 너무 잘 했다는 생각이 들어 문화제 내내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물론, 중간에 행패가 나 뒤쪽에서 빈활 진행 선생님들과 용역깡패로 추정되는 사람 사이에 약간의 충돌도 있었지만 다행이 무사히 넘어갔다. 가장 인상에 남았던 건 짧은 삼일간의 빈활 과정을 비디오 촬영을 통해 영상물로 만든 것을 보는 것이었다. 자신들의 얼굴이 비추면 부끄러워했지만 그래도 그 간의 과정을 다시 볼 수 있어서 좋았고, 그러나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난 것 같아 아쉽기만 했다. 그리고 그 아쉬움은 빈활이 하나의 이벤트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활동을 하던, 어떤 자리에 있건 자신의 역량 내에서 끊임없는 관심을 가지는 것으로 아쉬움을 대체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문화제까지 마친 후 우리 모두는 경동여관이 아닌 포스터를 제작했던 숙소로 장소를 옮겼다. 여러 단체들에서, 주민분들과, 빈활참가 대학생들이 모두 모였다. 그리고 그 날을 환하게 밝히며 빈활활동의 마지막 밤을 지새웠다.

<1월 20일 토요일>



△'뉴타운'이라는 커다란 벽에 가려 미아동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않는 것일까? '강북의 강남화'라는 '뉴타운', 강북이 강남처럼 살기 좋은 곳이 된다는 말이 아니라 강남사람들이 강북으로 건너온다는 말이 현실에 가깝다. 10% 정도에 불과한 재입주 비율을 보면 알 수 있?


또 다시 눈을 가장 먼저 떴다. 지난 이틀은 추위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해 가장 먼저 일어난 것인데 이번엔 나름(?)대로 따뜻한 곳에서 잠들었는데도 눈이 가장 먼저 떠진 걸 보면 많이 긴장했었던 것 같다. 내 옆으로는 빈활 참가자들이 보인다. 그리고 빈활을 진행하셨던 선생님의 모습도, 2가구 밖에 남지 않아 힘든 투쟁임에도 밝은 모습을 잃지 않으셨던 주민분도 보인다. 그리고 그들이 저토록 평화롭게 자는 모습이 새삼 감동으로 다가온다. 단지 평화롭게 자는 모습을 본 그들이 감동으로 느껴진 이유를, 나는 어떻게 설명해야만 할까.

이제 2월이면 대학생이 아닌 사회인이 된다. 대학 생활 동안 나름대로 많은 것들을 경험해 보려고 노력했는데 빈활활동을 이번에 처음 접했다는 사실이 못내 아쉽다. 보다 나은 사회를 살기 위해, 보다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스스로 노력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아직 배워야 하고 알아야 할 게 더 많다는 사실은 또 다시 세상 앞에 작아지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이번 빈활활동을 통해 조금은 더 단단한 무언가가 채워진 느낌이다. 그리고 이 느낌을 잃지 않으려 한다. 어떤 자리에 있건, 어떤 위치에 있건 빈활을 통해 느끼고 생각했던 것들을 어떻게 더 실질적으로 구체화할 수 있을지 실천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2007년01월30일 ⓒ민중의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