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지구 위에서 살아오면서 많은 발전을 이루었고, 지금까지 수많은 문명(文明)이 탄생했지만, 지구 각지에서 서로 다른 문명을 이루었던 고대 도시들과 국가들은 어느 순간 탄생했다가도 소멸해가는 과정을 반복하며 사라져갔습니다.


여전히 세계의 불가사의 운운하며 각종 매체에서 보여주는 고대 문명들의 공통점은 왜, 어떻게 그 찬란했던 고대 문명이 사라질 수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결론은 어떤 재앙(災殃)에 의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인데, 아마도 그 재앙은 질병이나 전쟁, 그리고 자연의 힘에 의한 것이 아닐까 추측될 뿐입니다.


사실 인간의 힘이라는게 자연의 힘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어서 아직까지도 자연의 힘을 막아낼 수 있는 기술이란게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기껏 해야 피해를 최소화 하는 것으로 만족할 뿐이니 말입니다.


아무리 하루 만에 지구 반대편으로 갈 수 있고, 하늘과 땅과 바다, 심지어는 우주까지 갈 수 있는 기술이 있다 하더라도 인간은 자연의 힘 앞에서는 무기력할 뿐입니다.


그래서인지 어떤 액션영화보다도 더 짜릿할 수밖에 없는 것이 재난영화인것 같습니다.


액션 활극영화는 주인공이 결국 모든 고난을 물리치고 악당을 섬멸하고 정의가 승리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거의 당연한 공식이기 때문에 그 중간 과정을 얼마나 아슬아슬하게 만드느냐가 액션영화의 성공 법칙인데 반해, 재난영화는 주인공이 살아남는다는 보장도 그다지 없을뿐더러 - 주인공이 희생하여 남을 살리는 영화가 꽤나 많습니다 - 다가오는 고난(재앙)을 막을 방법이 결코 없으며, 어떻게 그 고난을 피해 달아나느냐가 영화의 주된 이야기이며, 흐름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자연이 곧 주인공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최근의 재난영화는 CG의 발전과 더불어 스케일이 더욱 커졌으며, 과거 미니어쳐로 보여주던 재난과 달리, 정말 실감나는 뛰어난 리얼리티를 자랑하기 때문에 최근의 재난영화는 재난 그 자체가 주인공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재난과 재앙을 주인공으로 한 재난영화는 나름대로의 공식이 있습니다.


재난을 예측, 아무도 믿지 않는 사람들의 비웃음을 참으며 홀로 외로이 경고하는 주인공.


남녀 주인공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


해체 위기였으나, 재난을 통해 다시 마음을 합치게 되는 가족이야기.


모난 성격으로 인해 타인에게 피해를 주거나 말썽을 피우는 사람의 등장 등등...


이러한 천태만상인 사람들이 재난이라는 공통의 시련을 만나 누군가는 희생을 하고, 누군가는 부질없이 목숨을 잃고, 누군가는 끝내 살아남으며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갈등 요소를 해결하게 된다는 이야기는 재난영화의 ‘공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부산 해운대를 초대형 쓰나미가 덮친다는 내용의 영화 [해운대]는 이런 재난영화의 공식들에 충실한 영화입니다.


지진을 연구하는 <김휘(박중훈)>는 일본 열도 서쪽의 잦은 지진으로 인해 우리나라에 거대한 쓰나미가 덮칠 수도 있다는, 결코 부산이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주장을 펼치지만 완고한 학자들과 공무원들에게 묵살당하고, 평생 지진만을 쫓아다니다 보니, 가정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던 그를 딸은 알아보지도 못하게 됩니다.


수년전 원양으로 나갔다가 태풍을 만나 좋아하는 여인 <연희(하지원)>의 아버지를 바다에 잃고 돌아온 <만식(설경구)>은 <연희>에 대한 사랑과, 사랑하는 여인의 아버지를 잃게 만들었다는 죄책감과 회한에 젖어 매일 술에 절어 살아갑니다.


그리고 구조대원으로 일하는 설경구의 동생 <형식(이민기)>은 우연히 바다에 빠진 <희미(강예원)>를 구해줬다가 그녀의 깜찍한 애정공세에 맥을 못추는,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사랑에 어쩔 줄을 몰라 하는 순진남입니다.


이렇게 해운대라는 공간속에서, 착하고 성실하게 나름대로 삶을 영위해가던 이들 앞에 어느날 갑자기, 정말로 느닷없이 초대형 쓰나미가 해운대를 덮치는 거대한 재난이 벌어진 것입니다.


영화는 재난영화의 공식에 맞게 이런 이야기들을 서서히 풀어나가다가 강력한 쓰나미를 통해 이야기를 급진전 시킵니다.


누군가는 서로의 마음을 진심으로 이해하게 되고, 누군가는 미워했던 사람들을 용서하게 되며,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또는 순수한 이타심에 목숨을 초개와도 같이 버리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조금, 아니 상당히 과장되게 표현한다면, 이들에게 있어 쓰나미라는 재앙은 오히려 재앙이 아닌 축복일수도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극한상황을 통해 서로의 진심어린 마음을 알게 되었고, 사랑을 이루었고,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방황하던 사람은 그 의미를 찾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영화 [해운대]와 다른 재난영화들 처럼, 커다란 재난과 재앙을 극복하고 꿋꿋이 희망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아마 찾기 힘들 것입니다.


눈앞에서 사랑하는 연인, 부모, 형제와 친구들을 잃은 사람들이 과연 희망 가득한 마음을 안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주변에 그런 사람들을 보지 못해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커다란 슬픔과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흥행 또한 신경 써야 되는, 특히 이런 막대한 제작비를 쏟아 부은 블록버스터 영화일 경우, 시종일관 재난을 당해 눈앞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되는 장면들을 보여주고 나서,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으로 채워버린채 우울한 결말로 마무리 하기는 조금 힘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재난영화들은 절망 끝에 또다른 절망이 기다리고 있는 결말로 끝을 맺지 않고, 다분히 관객들을 의식하여 희망을 주는 결말로 마무리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서 언급했듯 이 영화 [해운대]는 이런 재난영화의 공식에 더없이 충실하기 때문에, 결말 또한 다소 한국적이긴 하지만 크게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착한 결말’로 마무리 짓고 있습니다.



<윤제균>감독은 그동안 연출해온 코미디 영화와는 그 규모나 내용 면에서 확연히 다른 영화를 무난히 연출해 낸 것 같습니다.


물론 이 영화 [해운대]에도 <윤제균>감독의 전매특허인 화장실유머가 간혹 등장하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극의 흐름을 깨는 부분도 있었고, 굳이 그런 장면을 넣지 않아도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인 영화의 흐름과 연출은 훌륭했고, 배우들의 연기 또한 나무랄데 없이 좋았기 때문에 이 영화 [해운대]에 대해서는 상당히 좋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그나저나 부산 사는 분들은 이 영화를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을지 궁금합니다.


저처럼 겁 많고, 소심한 사람은 불안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바다를 쳐다보고, 일기예보를 검색해보게 될 것 같은데 말입니다... ^^





사족(蛇足)....


역시 남녀가 눈 맞는 데에는 인공호흡이 최고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