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우리는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어가며, 어릴 때는 몰랐던 것들을 하나하나 알아가게 됩니다.


이성에 대한 사랑에 눈을 뜨고, 학교라는 곳에서 학문을 배우며 지식에 눈을 뜨게 되며, 사회 활동을 하며 조직, 단체, 집단과 같은 단어에 익숙해지기도 하고, 또한 가정을 꾸리게 되면서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에 눈을 뜨게 되며, 가족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깨닫게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사회의 비정함과 무정함에 눈물 흘리기도 하며, 세상의 주인공은 자신이 아니라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되면서 좌절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배신을 당하기도 하고, 모멸감에 몸부림 칠 때도 있으며, 이런 좌절과 고난 속에서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어른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서서히 변해가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게 됩니다.


어느새 어렸을 적 가슴속에 품고 있던 꿈은 사라져가고, 순수함과 패기 넘쳤던 젊은 날의 모습은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는,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말입니다.


어른이 되어 간다는 것은, 험난한 인생살이를 통해 깨달은 지혜로 인해 세상을 현명하게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할진대, 우리는 오히려 그 지혜를 악용하고 오용하여 세상을 교활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현명’이라는 단어를 자의적으로 판단해서 말이지요.


어렸을 적 가지고 있었던, 순수했던 용기와 패기, 사랑, 올바름에 대한 생각 같은 것들은 세월이 지나며 서서히 흐려지고, 변질되어 다른 의미로의 용기와 사랑과 정의가 되곤 하니까요.


관철되지 않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를 끝까지 부르짖던 용기와 패기는, ‘타협’이라는 새로운 방법을 터득하게 되면서 예전의 모습을 잃어버리게 되고,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상대방 자체를 좋아했던 순수한 사랑은, 어느새 ‘조건’이라는 굴레에서 서서히 변질되어 상대방 자체가 아닌, 상대방의 배경이나 능력까지 따지며 머리를 굴리는 만남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바 없는,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한계인것 같습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 때문이라고나 할까요?


세상이라는 괴물은 책에서 배운대로, 학교에서 배운대로, 올바르게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정의라고 생각했던 것이 비참한 패배를 당할 때도 있으며, 때로는 정의와 불의의 잣대가 올바르지 못해 불의가 정의의 탈을 쓰고 비열한 술책을 저지를 때도 수없이 많지만, 이제 이러한 세상을 알아버린 ‘어른’은 도저히 이길 수 없는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가 되기보다는, 풍차를 무시하거나 피해가는 현명한(현명이라고 쓰고 타협이라 읽는다.) 사람이 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16세기, 스페인의 대 문호 <미겔 데 세르반테스>는 이러한 인류 공통의 세태를, 이제는 ‘인류의 책’이라 불리우는 역작 [돈키호테]를 통해 신랄하게 풍자하였습니다.


스페인의 한 시골 귀족이 밤낮을 잊은 채 기사소설에 탐닉한 나머지, 현실과 소설을 혼동하여 결국은 이성을 잃고, 어느 날 스스로 기사가 되어 세상의 부정과 비리를 도려내고 학대받는 사람들을 도와주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그는 훌륭한 과거의 기사들처럼, 그의 이름에 고향의 이름을 덧붙여 <돈키호테 데 라만차>라고 이름을 짓고, 근처에 사는 농부 <산초 판사>를 종자(從者)삼아 길을 떠나게 됩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고매한 이상주의자인 <돈키호테>와 우직한 종자 <산초 판사>는 가는 곳마다 좌충우돌, 비참한 패배와 비통한 실패를 겪으며 이상과 현실과의 괴리감을 맛보게 됩니다.


하지만 수많은 좌절과 실패 속에서도 결코 꺾이지 않는 그의 이상과 용기, 희망은 커다란 감동을 안겨줍니다.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는 [돈키호테]의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를 주인공으로 하여, 종교재판으로 감옥에 갇히게 된 그가, 비슷한 이유로 감옥에 갇혀 수감되어있는 죄수들에게 그가 구상하고 있는 작품을 공연으로 보여준다는 - 물론 죄수들도 같이 그 공연에 참여합니다. - 내용의 액자식 구성으로 되어있는 작품입니다.


처음에는 <세르반테스>를 모욕하고 불신하던 죄수들이, 혼탁한 세상에서 끝까지 꿈과 이상을 쫓는 한 미치광이의 이야기를 함께 공연하며 그의 진정성과 진실성에 감화되어 서서히 <세르반테스>를 인정하고, 이해하게 된다는 내용이지요.


이 작품은 이렇게 뛰어난 원작에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힘을 덧붙여 걸작의 반열에 오른 것 같습니다.


작곡가 <미치 리(Mitch Leigh)>의 아름다운 뮤지컬 넘버들은, 이 작품의 감동을 한껏 더해주는데, 특히 [이룰 수 없는 꿈(The impossible dream)]은 뮤지컬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어디선가 한번쯤은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하며, <엘비스 프레슬리>, <플라시도 도밍고>등 전 세계의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불렀을 정도입니다.


무대장치의 변환은 거의 없을 정도로 정적이지만, 도저히 지루함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자연스럽고 빠른 장면전환과, 역동적인 안무(자주 등장하지는 않지만), 그리고 앞서 언급했던 뛰어난 뮤지컬 넘버들은 관객들에게 2시간 30분이라는 시간동안 <돈키호테>와 함께 희망과 절망, 좌절과 용기, 사랑과 증오, 미움과 용서라는 극단적인 감정을 한껏 오가게 하며 극도의 감동을 안겨줍니다.


<류정한>, <김선영>배우 캐스팅으로 관람하였는데, 워낙 실력 좋은 배우라 크게 흠잡을데 없었고, 만족스러웠던 공연이었습니다.




작품을 감상한지 벌써 한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가슴속에 그날의 감동이 남아, [이룰 수 없는 꿈]을 다시 들을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결코 이룰 수 없는 꿈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지금 보다는 순수했던, 젊은 시절을 떠올리며 <돈키호테>처럼, 길은 험하고 험해도 정의를 위해 싸우고, 사랑을 믿고 따르리라 다짐하게 되니까요....




사족(蛇足)....



작년에 시공사에서 나온 스페인어판 완역본 [돈키호테]를 구입했는데, 책이 너무 두껍고 무거워서 가지고 다니며 읽기가 너무 힘들다는 핑계로 책장에 고스란히 꽂혀있습니다.


그나저나 저만의 <둘시네아>를 저도 어서 찾아야 하는데, 이거 큰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