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계림문고]를 기억하십니까?

 

기억하신다면, 당신은 아마 최소 1980년대 이전에 태어난 사람일 것이고, 80년대 이전에 태어났지만 [계림문고]에 대한 기억이 없다면, 당신은 어렸을 적 책에 커다란 관심이 없었거나, 아니면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꽤 비싼 양질의 [삼성당]이나 [계몽사]의 양장본 책들을 읽으며 자란 사람일 것입니다. ^^

 

용돈을 모아 동네 문방구에서 - 요새는 잘 안쓰는 호칭이지만, 예전에는 문구점보다 문방구라는 호칭을 많이 썼지요. - 낱권으로 한권씩 한권씩 사모으던 계림문고는, 당시 500원 정도의 저렴한 가격이었고 - 물론 당시 버스비가 50원 정도 하던 때였으니 어린 아이가 쉽게 살 수 있는 금액은 아니었지만 - 쉽고 간결한 문체와 몇 페이지에 한번씩 등장하는 삽화로 어린이들이 책을 쉽게 접하고, 책읽기의 즐거움을 알려주는데 커다란 역할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는 아마 계림문고의 시리즈들을 거의 다 읽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대부분 용돈을 모아 한권씩 구입해서 봤었고, 일부분은 친구들에게서 빌려봤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제방 한구석에 거의 100권 가까이 모아뒀었던 그 책들이 몇 번의 이사와 짐정리를 통해 이제는 한권도 남아있지 않다는 점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렇게 좋아했던 계림문고의 시리즈들중, 그 당시 제가 몇 번씩 반복해서 읽었던 책들이 있습니다.

 

[괴도 루팡 시리즈], [명탐정 호움즈 시리즈], [삼총사], [장발장], [올리버 트위스트], [아이반호우], [80일간의 세계일주], [몽테크리스토 백작] 등등....

 

그중 [몽테크리스토 백작]은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10번도 넘게 읽어서 표지가 너덜너덜해질 정도였다, 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어린 저를 크게 매료시켰던 작품입니다.

 

  

믿었던 친구들의 배신, 나락으로 떨어진 주인공, 기연(奇緣)을 만나 절세무공을 얻어 초절정 고수로 환골탈태(換骨奪胎)한 무협지의 주인공처럼 드라마틱하게 돌아와 배신자들을 응징하는 장면들, 더불어 기발한 탈옥 장면들과 보물섬에 얽힌 이야기들, 그리고 당시에는 충격적이었던 ‘출생의 비밀’까지.... (요즘 대한민국 드라마에서는 출생의 비밀이 전가의 보도처럼 쓰이는 터라 많이 식상한 이야기지만, 당시에는 ‘궁극의 반전’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커다란 충격을 주었던 이야기입니다.)

 

이런 매력적인 이야기들로 가득한 작품이기에, 어렸을 적, 책 좀 읽는 어린이들에게 [몽테크리스토 백작]은 거의 필독서나 다름없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한번쯤은 문고판으로 읽어봤을 것이라 생각되는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이 작품이 뮤지컬로 제작된다고 했을때 궁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었습니다.

 

과연 이 작품에 커다란 배경으로 등장하는 바다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감옥에서 굴을 파는 장면은?

 

시체로 변신해서 바다에 빠져 탈출하는 장면은?

 

보물섬은?

 

물론 현대의 공연작품에서는 기술의 발달로 인해 공간의 제약이 점점 없어지기는 합니다만, 도무지 제 빈약한 상상력으로는 이러한 공간의 제약을 어떻게 극복할지 상상 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 뮤지컬 [몬테크리스토]는 이동식 무대장치 외에 실버스크린과 빔 프로젝터를 활용한 ‘영상’으로, 공간의 제약을 극복해내는 영리한 무대연출을 선보였습니다.

 

전통적인 공연장의 무대장치가 아닌, 흡사 영화를 보는듯한, 실버스크린에 투영된 영상들은 무대장치와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으며 심지어는 수중장면까지 보여주었으니, 이제 공연에서의 ‘공간’이라는 제약은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합니다.

 

 

 

아, 무대장치가 공연의 전부가 아닌데, 너무 무대장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것 같습니다. ^^

 

이 작품은 너무나도 유명한 [지킬 앤 하이드]의 명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Frank Wildhorn)의 작품입니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넘버들이 너무나 좋았기 때문에, 이 작품의 뮤지컬 넘버들도 꽤나 기대를 많이 했습니다.

 

역시 프랭크 와일드혼의 음악은 기대를 배신하지 않더군요.

 

주인공 에드몬드 단테스와 메르세데스가 친구들의 배신으로 인해 헤어지게 되고, 에드몬드는 감옥에서, 메르세데스는 성당에서 서로를 그리워하며 부르는 [언제나 그대 곁에]는 애절하고 아픈 사랑을 잘 표현하면서도 극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약간은 음울한 멜로디로 관객들의 감정선을 어루만집니다.

 

또한 행복하지 않은 결혼생활에 우울해하던 메르세데스가 과거를 회상하며 부르는 솔로곡, [온 세상 내 것이었을 때]는 관객들에게 아름다운 멜로디를 선사하며, 때때로 과거를 회상하며 추억에 젖는 모든 이들의 감수성을 자극해줍니다.

 

몬테크리스토와 메르세데스의 아들 알버트가 기둥에 묶인채 불렀던 [여자들이란]은 재치 있는 가사와 코믹한 멜로디로 모처럼 관객들의 입가에 미소가 걸리게 만들어주기도 했으며, 복수를 다짐하며 분노를 마음껏 표출한 광기어린 넘버, [너희에게 선사하는 지옥]에서는 관객들을 복수의 동반자로 초대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이 뮤지컬은 주인공의 비중이 너무나 높아,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등장하지 않는 장면이 거의 없습니다.

 

그만큼 힘든 배역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신성록은 훤칠한 키와 긴 팔과 다리를 한껏 활용, 무대를 종횡무진 휘어잡으며 관객들에게 뛰어난 시각적 효과를 제공합니다. (특히 여성 관객들에게는요. ^^)

 

 

그러나 부족한 성량은 다소 아쉬웠습니다.

 

중저음에서는 꽤 매력적이고 파워풀한 목소리를 들려주었으나, 고음에서는 다소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고쳐질 수 있는 부분인지는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옥주현은 나름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크게 힘이 넘치지는 않지만, 안정적인 목소리와 성량으로 어떤 곡이든 잘 소화해 내어서, 이제는 가수가 아닌, 뮤지컬 배우 옥주현이라 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두명의 조연배우에게 주목을 했는데요.

 

바로 아베 파리아역의 조원희와 몬데고역의 최민철입니다.

 

능청맞은 연기와 입담으로 관객들에게 웃음을 안겨주었던 조원희의 연기는 이 공연의 백미였으며, 끝까지 악인으로 죽어간 최민철은 힘있는 목소리와 안정적인 연기로 두 주연배우를 잘 뒷받침 해준 것 같습니다.

 

 

 

이 공연은 복수(復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온 복수.....

 

피는 또 다른 피를 부르기 마련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모두가 알지만, 복수는 끊이지 않았고, 지금도 자행되고 있습니다.

 

몬테크리스토 백작 또한 복수를 위해 남은 삶을 바칩니다.

 

부자가 되었으니, 모든 것을 잊고 그냥 편하게 즐기며 살자는, 친구이자 부하 자코포의 조언과 충고에도 불구하고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자신의 뜻을 절대로 굽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계획했던 복수를 모두 실행 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의 남은 인생이 과연 행복해졌을까요?

 

불교에 “고개만 돌리면 피안(해탈의 세계)인데, 어리석은 중생들이 그것을 모른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몬테크리스토는 고개를 돌렸고, 칼을 놓았기 때문에 결국 행복을 되찾았습니다.

 

결국 용서와 관용이 해답인가요?

 

그러나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아닌,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도 내미는 행위는 평범한 사람은 도저히 행할수 없는 일이기에 참으로 힘든 일이 아닐 수 없겠습니다.

 

생각할 것 많은 2010년의 대한민국....

 

복수가 전부는 아니라는 것, 진실은 언젠가 밝혀진다는 것, 정의는 힘을 가져야 하고, 그 정의가 승리할 날이 언젠가 온다는 것....

 

이 뮤지컬을 보고 나서 저에게 찾아온 ‘잡생각’들 이었습니다. ^^

 

 

사족(蛇足)....

 

저도 남자이지만, 비운의 여인 메르세데스를 보며, 남자들이란 참으로 이기적이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남자들, 반성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