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람을 온전하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날이 과연 오게 될까요?


인류의 역사는 폭력과 갈등의 역사라고 정의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인류는 언제나 자신과 다른 타인을, 그리고 자신이 속해있는 집단과 다른 반대편의 집단을 배척해왔으며, 심하게는 강한 쪽이 약한 쪽을 억압하며 때로는 폭력을 구사해왔습니다.


이런 갈등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인종간의 갈등, 종교간의 갈등, 민족간의 갈등, 그리고 유산계급과 무산계급의 갈등....


모두가 신(神) 앞에서 평등하고 똑같은 존재인데, 피부색이 다르다고, 사는 장소가 다르다고, 때로는 힘이 없는 약자라는 이유만으로 억압과 착취를 가하기도 했던 것이 추악한 인류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인종중에는 흑인들이, 민족중에는 유대인들이 오랜 세월동안 고된 핍박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로마에 의해 멸망당해 세계 각지로 흩어진 유대인들은 기독교가 유럽의 모든 국가의 종교로 인정받고 강성해지게 되면서 점점 박해를 받게 되지만, 유대인들은 이재에 밝아, 그들 민족이 가진 가장 커다란 재능중 하나인 특유의 상술로 부(富) 축적하게 되고, 오히려 그런 점 때문에 유대인들은 2차 세계 대전 당시 유대인 대학살을 당하게 될 정도로, 오랜 세월동안 ‘반유대주의’라는 차별을 받아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20세기에 들어와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 하는 대단한 집단이 되어 언젠가부터 음모론의 정점에 서게 될 정도로 이제 불행했던 과거의 그림자에서는 상당히 벗어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유대인들은 아직 세상의 편견에서 자유롭지만은 못한 것 같습니다.


흑인들 또한 제국주의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당시, 부족한 노동력을 충원하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끌려와 강제로 노동을 착취당했던 슬픈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흑인들을 많이 착취했던 미국에서는 1863년 링컨 대통령의 노예해방 선언이 있었지만, 흑인들의 인권은 그 후에도 거의 개선되지 않았으며, 1965년까지도 공공장소에서 흑인과 백인의 분리와 차별을 규정한, 지금 생각으로는 전혀 법같지도 않은, 말도 안되는 ‘짐 크로 법’이라는 게 있어서 합법적으로 백인들이 흑인들을 차별하고 인권을 유린해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박해받았던 유대인과 흑인이지만, ‘짐 크로 법’이 폐지되지 않았던 1948년 미국 남부도시 애틀랜타에서 서로의 입장은 사뭇 다릅니다.


미국에서 유대인들은 대부분 주류로의 편입을 마친 상태이지만 - 물론 이 작품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에도 잠깐 등장하는, 인종주의자에 의해 자행된 것으로 보이는 유대교 성전 테러 사건을 보았을 때 유대인들이 완벽하게 주류사회로 편입을 마친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백인 중산층으로서의 유대인이라면 흑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류 계층에 속해 있다고 판단해도 크게 틀린 것은 아니라 생각됩니다. - 흑인들은 아직까지도 백인들에 의한 차별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시대적 배경을 고려 해보았을 때, 이 작품의 두 주인공인 데이지 여사와 운전기사 호크의 만남은, 단지 데이지 여사의 괴팍함 때문에 순탄치 않았다고 판단할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데이지 여사는 자수성가한 중산층 백인이었고, 호크는 인종차별을 당하던 흑인이었으니, 데이지 여사의 냉대와 무시, 일방적이고 고압적인 태도와 흑인을 ‘도둑놈’ 취급하고 불신하는 그녀의 모습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니었을까요?


하지만 이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관계는 점차 변하게 됩니다.


3개에 1달러를 주고 산 연어 통조림 깡통 하나를 호크가 먹었다며 ‘도둑놈’으로 몰아가던 데이지 여사는, 호크의 정직함에 할말을 잃게 되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그녀를 찾아와 운전기사로서의 소임을 다하는 그의 성실함에 결국 마음을 열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날 호크의 고백을 통해 그가 문맹이었음을 알게 된 데이지 여사는 그에게 글을 가르쳐주게 되고, 크리스마스에는 너무나도 ‘귀여운 방식’으로 - 왜 ‘귀여운 방식’이란 표현을 썼는지는 극장에서 직접 확인 하시기를... ^^ - 그에게 알파벳 교본을 선물하기까지 합니다.


세월은 점점 흘러 시대 또한 바뀌게 되고, 두 사람 또한 나이가 들어 호크는 운전을 그만두게 되고, 데이지 여사는 건강 문제로 요양원에 들어갑니다.


어느날 데이지 여사의 아들과 함께 요양원을 찾아온 호크.


데이지 여사는 아들보다 호크와의 대화를 원하고, 아들은 두 사람만의 대화를 위해 잠시 자리를 떠납니다.


대화를 하던중, 거동이 불편해 탁자위에 놓인 파이를 제대로 먹지 못하는 데이지 여사를 위해, 호크는 파이를 한조각 한조각 잘라내어 데이지 여사의 입으로 정성스레 가져다줍니다.


인종간의, 계급간의 장벽을 뛰어넘어 두 사람은 어느새 진정한 친구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저는 이 작품을 고등학교 2학년때 [명보극장]에서 본 기억이 있습니다. ([명보극장]인지 아닌지는 사실 기억이 가물가물 합니다만... 어쨌든 극장에서 보긴 봤습니다. ^^)


당시에 아카데미 작품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는 홍보문구는 자연스럽게 저를 극장으로 끌어들였고, 스크린에서 처음 만난 모건 프리먼(Morgan Freeman)과 제시카 탠디(Morgan Freeman)의 명연기는, 감동적인 내용과 더불어 너무나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이 작품을 다시 볼 기회는 거의 없었고, 제 머릿속에서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의 감동은 서서히 잊혀져 갔습니다.


그리고 20여년이 흘러 스크린이 아닌, 무대에서 다시 만난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는 너무나도 존경하는 손숙 선생님과 신구 선생님의 신들린 듯한 호연과, 대한민국 최고의 연출가중 한분인 윤호진 선생님의 연출에 힘입어 더욱 벅찬 감동을 저에게 안겨 주었습니다.


(원래 리뷰에 존칭을 생략하고 이름만 적었는데, 이분들에게는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네요... ^^)


예순과 일흔이라는 나이를 훌쩍 넘겨버린 두분이지만, 손숙 선생님과 신구 선생님의 연기에는 열정과 힘이 넘쳤고, 게다가 연륜 때문인지 캐릭터에 완벽하게 동화 된 듯한 모습을 보여주며 관객들을 극에 몰입하게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장면전환이 굉장히 빠르고, 2시간여 동안 25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기 때문에 점점 늙어가는 모습을 연기해야 하는, 상당히 어려운 연기임에도 불구하고, 두 분의 연기는 그야말로 완벽 그 자체여서 연기를 공부하는 학생들이나, 외모만 믿고 연기공부를 등한시하는 요즘 젊은 배우들에게 한번쯤 꼭 보라고 권해주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이 연극의 특이한 점은, 짧은 에피소드의 연속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장면전환이 꽤 많은 편인데, 장면 전환을 할 때 무대 양쪽에 자리 잡은, 건반과 기타로 이루어진 두사람의 연주자가 아름다운 선율의 음악을 들려준다는 점입니다.


직접 기타를 연주했던 오상준 음악감독은, 알고보니 뮤지컬 [영웅]의 작곡과 편곡을 담당했던 사람인데, 이 연극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에서도 아름다운 음악으로 관객들의 감정선을 한껏 자극하고 있습니다.


연극의 O.S.T.가 발매되기를 바라는, 저같은 사람이 있을 정도로 아름답고 멋진 음악을 들려주는데, 이 음악 덕분에 장면전환에서도 관객들은 감정의 흐름이 끊어지지 않은 채 다음 장면을 기다릴 수 있기 때문에, 장면전환에 음악을 삽입한 것은 상당히 탁월한 선택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최근 ‘소통의 부재’라는 말이 자주 들려오고 있습니다.


(아마도 파란 지붕 밑에서 툭하면 벙커에 들어가 회의하기를 즐겨하는 어느 분 덕분이겠지요.)


소통 이라는건 어느 한쪽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데이지 여사와 호크 처럼 말이죠.


그리고 그 소통에는 진정성이 있어야 가치를 인정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건성건성, 나는 지금 소통을 하려 노력하고 있으니 너도 소통을 좀 해봐라, 이런 자세로는 진정한 소통을 이끌어 낼 수가 없습니다.


문득.....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며 ‘친서민 정책’을 운운하는 MB정권이 새로 내각을 개편하겠다며 발탁한 후보자들이, 모두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허위취업 등으로 연일 청문회장에서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는 모습을 보며, 그리고 지난번처럼 국민의 반대와는 상관없이 그대로 임명 할거라는 생각에 한숨 쉬다가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가 떠올랐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기다리고 참아야 우리 사회는 소통이 가능하게 될까요?


참으로 답답한 현실입니다.....




사족(蛇足)....


개인적으로 윤호진 선생님이 연극 연출도 자주 해 주셨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습니다. ^^

<STYLE>iframe.openscrap_video_v1{width:100%; height:100%;margin-bottom:20px;}</STYLE> <STYLE>iframe.openscrap_shopping_v1{width:100%; height:100%;margin-bottom:20px;}</STYLE> <STYLE>iframe.openscrap_post_v1{width:100%; height:100%;margin-bottom:20px;}</ST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