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경제적인 측면만을 볼 때 우리는 그야말로 눈부신 성장을 했습니다.


전후 보릿고개를 겪어야 했던 세대의 이야기는 이제 정말로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으며, 독일에 간호사가 파견되고, 중동에 노동자가 파견되어 사막에서 땀을 흘리며 외화를 벌어야 했던 그들의 이야기도 아득히 먼 옛날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어려운 시절이었던 과거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이런 사람들의 과거를 그리워하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 이야기에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는걸 알게 됩니다.


대부분 “그때는 꿈이 있고 희망이 있었다.” 라는 이야기인데, 한 발짝 더 나아가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자세히 살펴보면, 거의 대부분 사람들이 지금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한 위치에 있는, 적어도 강남에 집 한 채 이상을 보유하고 있고 좋은 자동차를 한두대 굴리며 남들로부터 ‘사장님’ 소리를 들으며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통상 전태일의 분신이나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 이한열 사망 사건 같은 비극들은 남의 나라에서 벌어졌던 일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으며, 민주화 운동 보다는 새마을 운동이 대한민국에 훨씬 도움이 된다는 생각으로 “민주화 운동이 밥먹여줘?”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면서, 지금도 이미 배가 불러 터져버릴것 같은 자신의 배를 조금이라도 더 불리기 위해 불철주야 재산 증식에 혈안이 되어 있기 일쑤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그때 그 시절은, 그야말로 불법이 횡행하는 반칙의 시대였습니다.


(물론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건 절대로 아닙니다.)


대통령부터 불법적으로 권력을 강도짓해 빼앗아갔으니, 그 아래 또한 깨끗하지 않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사실.


대기업은 노동자들에게서 노동력을 착취해 배를 채웠고,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은 - 대통령, 정치인이라 적고 떼강도, 혹은 협잡꾼이라 읽습니다. - 그런 대기업에게서 금품을 갈취해 착복하거나 불법적인 정치자금으로 활용했으며, 또 그렇게 정권의 비호를 받게 된 대기업들은 탈세를 밥먹듯 저지르면서 빼돌린 각종 비자금으로 땅투기를 하며 대한민국의 부동산 가격을 천정부지로 치솟게 만들어 버렸으니 말입니다.


이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획득한 사람들은, 이제 자신의 부를 대대손손 물려주기 위해 거대한 시스템을 알게 모르게 구축해 버렸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부를 더욱 축적해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미덕이 되었고, 결과가 중요할뿐 수단과 방법과 과정은 중요치 않게 되었으며, 2등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다는 광고와 어떻게 지내냐는 친구의 물음에 고급승용차로 답을 하는 싸가지 없는 태도가 멋지게 포장되어 광고에 버젓이 등장하는, 도무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나라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여기에는 이웃을 돌아보는 여유도 없고, 모두가 더불어 잘 살아보자는 미덕도 없습니다.


오로지 나와 내 가족이 중요할 뿐이지요.


이렇게 해서 대한민국은 이제 가난한 자들에게는 기회가 없는, 천민자본주의가 만연한 계급사회로 변하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가끔 기회가 찾아오긴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기회가 정당하고 공정하고 정직한 방법이 아닌, 법을 어기거나 무시해야 찾아오는 기회라는데 있습니다.


모두가 바르지 않은 일들을 저지르며 배를 채우고 있는 세상에서, 공정하고 정직한 방법이 아니라고 그 기회를 걷어차버릴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류승완 감독의 신작 [부당거래]는 이렇게 한국사회에 만연한, 불법이 판을 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영화입니다.


경찰청 광역수사대에서 근무하고 있는 최철기(황정민)는 경찰대학교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매번 승진 심사에서 누락이 됩니다.


마침 아동 연쇄 살인사건이 일어나 대통령이 직접 사건에 개입하고, 유력한 용의자가 도주중 경찰의 사격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경찰 수뇌부는 최악의 순간 버려도 차질이 없는 ‘패’로 줄도 빽도 없는 최철기를 지목하여 승진을 보장해준다는 미끼로 그를 아동 연쇄 살인사건에 개입하게 만듭니다.

 

 

 

 


부동산 업계의 큰손인 태경그룹의 김회장을 스폰서로 둔 ‘대한민국 검사’ 주검사(류승범)는 아동 연쇄 살인 사건을 맡기전 최철기가 김회장을 구속시키자 그의 뒤를 캐기 시작하여, 태경그룹의 김회장과 라이벌 관계인 조폭 출신의 해동그룹 장석구(유해진)와 최철기와의 관계를 알아차리게 되고, 이들의 관계는 부동산 업계의 입찰비리건과 아동 연쇄 살인 사건이 맞물려 묘하게 돌아가며 점점 꼬여갑니다.

 

 

 

 


최철기는 장석구의 협조를 얻어내 가짜 범인을 만들어 사건을 일단락 짓게 되는듯이 보이지만 최철기의 약점을 잡게 된 장석구의 무리한 요구에 점점 지쳐가게 되고, 설상가상 주검사와의 관계 또한 악화되어 궁지에 몰리게 되자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파국(破局)으로 치닫게 됩니다.


 

 

 

 

이 영화는 법을 수호해야 하는 경찰과 검찰이 얼마나 썩었는지, 그리고 사회 구석구석에서 얼마나 썩은내가 진동을 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저는 현실은 더욱 심할거라 생각합니다.)


자리보전에 급급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일단 사건을 종결시키려는 경찰.


검은 돈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 챙기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검찰.


뇌물을 받고 가짜 기사를 써주는 기자.


경찰에게는 쩔쩔 매지만, 약자에게는 흉측한 이빨을 드러내는 깡패의 모습까지....


이들은 서로 ‘부당거래’로 얽히고설켜 있는 것입니다.

 

 

 



능력은 있지만 연줄이 없는 최철기는 어떻게 해서든지 위로 올라가야 했기 때문에 조폭과도 손을 잡고, 궁지에 몰려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까지 아등바등 거려 원하는 것을 얻는것 처럼 보이지만, 결국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은 그 자신의 행위였고, 그가 동생처럼 여기던 부하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최철기보다 몇배 더 비열하고 사악했던 주검사는 탄탄한 연줄과 빽 덕분에 그의 비리가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커다란 상처를 입을것 같지는 않습니다.


결국 같은 잘못을 저질러도 그 댓가는 약한 권력에게 더욱 크게 작용하는 되는 것이 2010년 현재 대한민국의 모습인 것입니다.

 

 

1994년 장현수감독의 영화 [게임의 법칙]도 이와 흡사했습니다.


앞뒤 가리지 않고 오로지 위를 향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올라가던 깡패 용대(박중훈)도 결국 모든 것을 얻으려는 찰나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위로 올라가기 위해 발버둥을 쳐도, 열매는 윗대가리들에게만 돌아가고, 상대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그저 윗대가리들의 소모품으로 밖에 쓰여지지 않는건 그때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인 것입니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은 참으로 의미심장합니다.


검찰청 뒤로 보이는 서울의 수많은 고층빌딩의 모습.


일견 화려해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무엇이 있었던 것일까요?


각종 비리와 누군가의 피와 땀을 착취한 ‘부당거래’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지금도 그 빌딩숲 사이로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가는 제2의, 제3의 최철기가 있는것은 아닐까요?


헛된 꿈과 희망을 안은 채 말입니다.....




사족(蛇足)....


개인적으로 황정민과 류승범이 배역을 바꿔서 연기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류승범은 이상하게 아무리 비열하고 사악한 캐릭터를 연기해도 어딘지 모르게 이해가 되는, 다소 정이 가는 얼굴이라서요... ^^

 

 

 

사진출처 : 네이버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