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그리고 서서히 나이를 먹게 되면, 세상이라는 괴물에게 서서히 잠식되어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바르지 않은 일과 대면했을때 살며시 눈을 감고 모른척 하게 된다던가, 아니면 그 바르지 않은 일에 적당히 동조하고 한쪽 발을 담근채 공모자가 되어 있다던가, 혹은 완전히 그쪽 편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변절자가 되어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세상살이의 경험이 많아지고, 나이가 들면 들수록, 그렇게 행동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합리화가 더욱 철저히 진행되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철든 어른의 행동이요, 삶의 지혜를 깨달아가며 생기는 성숙함의 발로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일쑤입니다.


슬프게도 이런 일들은 저를 포함한 평범한 보통사람들에게 흔히 일어나는 일들인데, 세상살이라는 것이 정말 만만치 않은 일이라 평범한 우리들은 먹고살기 위해 너무나도 쉽게 타협하고, 동조하고, 때로는 적극적으로 가담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가끔 우리들은, 평범한 우리들과 다른 비범한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바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이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맞서 싸우는 그런 사람들 말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이 사회가 그나마 제대로 돌아가는 척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인데, 심지가 굳건하지 못한 나약하고 어리석은 우리들은 이런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주거나 동조하지는 못할망정, 우리가 맞서 싸워야할 사람들의 편에 서서 안타깝게도 이들을 조롱하고, 때로는 조소를 보내기도 합니다.



 



19세기 말, 최후의 낭만주의자라 불리던 에드몽 로스땅(Edmond Rostand)이 쓴 [시라노 드 베르쥬락]의 주인공은 평범한 보통 사람인 우리들과는 달리, 최후의 순간까지 바르지 못한 일에 당당히 맞서 싸운, 타협할 줄 모르는 불굴의 투사였습니다.


실제로 존재했었던 전설적 자유사상가 시라노 드 베르쥬락을 주인공으로 하여 만든 이 작품은, 시라노의 전설적 생애에 애절한 낭만적 순애보를 덧붙인 작품입니다.


당대 최고의 검객이자 시인인 시라노는 불의와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 강직한 성품과 고집스런 성격으로 어딜가나 좌충우돌, 불협화음을 자아내기 일쑤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비겁자와 거짓말쟁이와 협잡꾼들이 넘쳐나기 때문에, 이들은 시라노의 독설을 결코 피해갈수가 없고, 시라노 또한 이들을 모른척, 그냥 지나쳐버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당대 최고의 검객인 시라노는 100대 1의 싸움도 마다하지 않는 용맹한 전사(戰士)이니, 그의 칼끝을 벗어나기란 그다지 쉽지 않은 일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시라노에게도 고민거리가 있었으니, 바로 남들과 다른 기형적으로 큰 코입니다.


자신을 세상에서 보기 드문 추남이라고 생각하는 그는, 어렸을 적부터 마음속에 담아둔 일생의 여인 록산느를 사랑하지만, 자신의 외모 때문에 그녀에게 다가가지 못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록산느의 부름을 받고 설레는 마음으로 약속장소에 나간 시라노에게 록산느는, 크리스티앙에 대한 사랑을 고백합니다.


시라노는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듯 한 아픔을 느끼지만, 사랑하는 록산느를 위해 크리스티앙과의 사랑을 연결해주기로 결심합니다.


찢어지는 가슴의 아픔을 느끼면서도 당대 최고의 시인이기도 했던 시라노는, 그의 마음을 담아 크리스티앙 대신 편지를 써주고, 어느 깊은 밤, 록산느에게 사랑의 표현조차 제대로 하지 못해 쩔쩔매는 크리스티앙 대신 밤의 어둠을 빌려 화려하면서 깊이 있고 진심 가득한 사랑의 밀어(蜜語)를 속삭여 크리스티앙과 록산느의 사랑을 맺어주게 됩니다.


 

 



그러나 록산느를 연모하는 드기슈 장군의 질투로 인해 시라노와 크리스티앙은 전쟁이 발발한 전장의 최전선에 투입되게 되고, 록산느에 대한 사랑을 더욱 키워가던 시라노는 크리스티앙의 이름으로 매일 두차례씩 적군의 진지 사이를 돌파해 편지를 부치게 되고, 그 편지에 감동한 록산느는 크리스티앙의 사랑이 진심이라고 생각하여 위험천만한 전장으로 크리스티앙을 찾아옵니다.


그러나 시라노의 록산느에 대한 사랑을 알게된 크리스티앙은 좌절하게 되고, 전장의 혼란 속에서 크리스티앙은 전사하게 됩니다.


록산느는 크리스티앙을 잊지 못해 수도원으로 들어가게 되고, 14년 동안 시라노는 매주 그녀를 방문해 말동무가 되어 주는데, 초로의 나이에 들어서서도 세상과 타협하지 않은 채, 바르지 못하다고 생각한 일에는 독설을 퍼부으며 칼을 뽑아드는 이 노(老)검객에게 적들은 너무나도 많아, 결국 비겁한 암수에 당해 치명상을 입고 죽음을 눈앞에 둔채 사랑하는 록산느의 옆에서 생을 마감하고자 시라노는 록산느를 찾아옵니다.


마지막 말을 남기는 시라노의 목소리를 듣던 록산느는, 불현듯 그 옛날의 깊은밤, 자신에게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던 사람이 바로 시라노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모든 것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결국 시라노는 일생의 여인의 사랑을 얻게 되었으나, 그렇게도 갈구했던 사랑을 얻게 된 날, 그 여인의 품안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작품은 이렇게 거칠 것이 없어 보였던 한 영웅의 애절한 사랑이야기를 보여주면서도 사회 비판적 요소를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사실 이 작품 [시라노 드 베르쥬락]은 그동안 무대 위에서뿐만 아니라 스크린으로도 옮겨져 많은 사람들이 내용을 알고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저는 1990년 개봉작인, 제라르 드빠르디유(Gerard Depardieu) 주연의 [시라노]로 이 작품을 처음 만났는데 -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호세 페러(Jose Ferrer)가 시라노 역을 맡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동명의 1950년 작품도 있다고 합니다. - 감수성 예민했던 한떨기 고등학생 시절에 이 영화를 봤으니, 영화를 보고나서 한동안 시라노에 푹 빠져 지낼수 밖에요.


 

 



당대 최고의 검객이면서 최고의 시인이었던, 한마디로 문무(文武)를 겸비한, 남자들의 이상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주인공이 남들보다 훨씬 커다란 코 때문에 자괴감에 빠져 사랑하는 여인에게 고백을 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통해서라도 사랑을 이루고자 하는 아름답고 순수한 이야기에 빠져들지 않을 고등학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


게다가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친구와의 의리를 소중히 여기며, 입만 열면 셰익스피어의 대사와도 같은 말들이 흘러나오는 주인공의 모습은 저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이 작품을 두 번 세 번 보다보니, 처음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이번 안석환 배우 주연의 공연에서는, 시라노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통한, 겉으로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 아니라는 이 작품의 주제 보다는 사회 비판적 요소가 더욱 많이 보였는데, 아마 이 작품에 등장하는 불합리한 사회의 모습들이 2010년 현재 대한민국의 모습과 많이 겹쳐져서 그렇게 보인것 같습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을 둘러싼 갈등 요소들은 현재의 대한민국과 그다지 다르지 않습니다.


시(詩)와 같은 순수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작품 속에서 시를 읊으며 빵을 구웠던 시라노의 친구 라그노를 배신하고 다른 젊은 남자와 도망간 라그노의 마누라의 모습처럼 대한민국은 불륜이 판을 치고 있으며, 장병들을 목숨이 위태로운 최전선에 보내놓고 자신은 젊은 아가씨를 꼬시기 위해 전쟁터가 아닌 후방의 수도원에 숨어드는 드기슈장군 처럼 조금이라도 위험징후가 보이면(자신이 그 위험요소를 만들어냈으면서) 벙커 속에 숨어들어 회의를 즐겨 하는 높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한 자신을 모욕하는 노래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주정뱅이 리니예르를 죽이기 위해 100명이나 되는 자객을 보낸 드기슈 장군의 음모는, 극중에서 시라노의 칼 끝에 산산조각 나지만, 2010년 대한민국에서는 현 정권을 비판하는 사람에게 자객을 보내는 대신 밥그릇(직장)을 빼앗아 버리는 치사하고 졸렬한 방법을 통해 탄압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과 조금만 타협을 했더라면 더욱 쉽고 편하게 세상을 살았을 것이 분명한 시라노는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아, 결국 비참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 죽음이 결코 헛된 죽음으로 보이지만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짧고 강렬했던 마지막 순간에 그의 사랑은 이루어졌으니까요.



 



주인공 시라노역을 맡은 안석환은 그야말로 혼신을 다해 궁극의 연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엄청난 대사량을 완벽히 소화하며 무대 위를 종횡무진 휘젓고 다니는 그의 연기는 에너지가 넘쳐흘렀고, 희극과 비극이 공존하는 찰리 채플린의 연기처럼 관객들에게 짙은 페이소스(pathos)를 느끼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예전에 영화 [넘버3]를 본 이후로 안석환 배우의 팬이 되었는데, TV에서의 감초 역할도 좋지만, 그의 진정한 연기력을 볼 수 있는 무대 위에 좀 더 자주 나와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



시라노가 죽으면서 들려주는 감동적인 마지막 대사는 이렇습니다.

 


 

나는 올라가야 돼, 저 달나라로.


소크라테스도 만나고 갈릴레이도 만나고 철학자, 과학자, 시인, 예술가, 음악가, 결투한 사람들, 우주의 여행자들, 사랑하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자, 떠나야겠다. 보아라, 달빛이 나를 맞으러 왔다.


누가 온다. 납으로 만든 옷. 저 놈에 맞서서 싸워야 한다.


덤벼라. 승리만이 싸움의 목적은 아니다. 헛된 싸움에도 의미가 있다.


웬 놈들이 저리도 많으냐. 나의 적들, 비겁자, 거짓말쟁이, 타협자들.


나는 싸운다. 혼자.


월계관도 장미도 다 가져가라.


그러나 다 빼앗겨도 한 가지만은 내주지 않으리라.


나의 이 깃털장식만은!



연극평론가 신현숙님이 적은 글에 ‘깃털장식’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시라노가 살던 17세기의 프랑스에서 깃털장식은 귀족, 군인, 시인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당시 이 세 부류의 인간은 자유, 명예, 이상을 위해 싸웠으며, 진정한 귀족과 군인과 시인이라면 그것은 자존심이었고 의무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시라노는 모든 것을 다 빼앗겨도 한가지, 즉 자존심만은 빼앗기지 않겠다고 세상에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1990년작, 영화 [시라노]의 한글 자막에서는 마지막 대사의 깃털장식을 자존심도 아닌 허영심이라 오역해 관객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자유와 명예와 이상을 위해 싸우는 것을 자존심이자 의무로 생각한 시라노.


비겁자와 거짓말쟁이와 타협자, 그리고 협잡꾼들이 넘치는 21세기의 대한민국에도 시라노와 같은 사람이 홀연히 등장해 이들에게 일갈(一喝)하는 모습을 꿈꿔봅니다.





사족(蛇足)....


공연 팜플렛을 펼쳐보니 맨 앞에 대한민국의 대표 협잡꾼 유인촌의 축사가 적혀 있었습니다.

 

 

 

 

 


솔직히 조금 놀랐습니다.


이 작품의 내용을 제대로 알고 있다면 이런 축사는 쓰지 못할 것 같은데요.


왜냐하면 작품속의 시라노가 지금 현재 살아 있다면, 유인촌에게 바로 칼부림을 했을게 뻔 하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