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네팔의 북쪽 도시인 포카라입니다.

월요일에 카트만드에 도착하여 화요일 포카라를 거쳐 헬리콥터를 타고 나우리꽃이라는 아주 오지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은 히말라야에서 여섯번째로 높은 달라기니라는 산(8160미터)이 앞에 있고 뒤에는 그에 맞먹는 높은 산이 있고 가운데 큰 강이 흐르는 고방이라는 지역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건기라서 물줄기가 매우 작습니다. 이 마을은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깊은 골짜기(6000미터 이상) 가 되는 곳입니다.  나우리꽃이라고 불리우는 산 위에 있는 동네는 35가구 정도에 150명의 인구 그리고 학생 35명이 있는 초등학교가 하나 있고, 산 아래 고방이란 동네에는 약 100가구에 100명정도의 학생이 있는 초중고등학교가 있습니다.

이곳 학생들과 그림 그리기를 하는  일본인들이 3번째 하는 프로그램에 저의 부부가 참가하게 된 것입니다. 50대 중반인 저희들은 모두 20명인 이 그룹에서 나이가 적은 쪽에 해당합니다. 반 이상이 60대 중반이상인 노인들입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두번 세번 참가하고 있습니다. 포카라에서 이곳까지 4륜 찝차로 가면 8시간이 걸리지만, 길이 너무너무 울퉁불퉁하여 나이든 많은 여행객들이 이용하기에는 너무 무리가 되어 4명이 타는 작은 헬기로 왔습니다. 히말라야 산맥을 헬기로 넘으면서 보는 자연의 모습은 문자 그대로 입이 벌어지는  장관이었습니다. 걸어서 가면 3일이 걸린다고 합니다.

첫날 도착하여 (이곳에 2년전에 지어진 호텔은 너무나 아름다운 장소에 잘 지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전기사정이 좋지 않아 히터가 없어 밤에는 상당히 추웠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그래도 괜찮은 편이라고 하더군요. 작년에는 너무 추워 옷을 세겹이나 끼어 입었어도 잠을 자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저녁을 먹고 자신들이 담당할 그룹별로 미술 지도 연습을 했습니다. 그림에 소질이 없는 저희부부는 저학년을 위한 종이접기에 참여했습니다. 그후 '도레미송'과 '우리 모두 다함께 손뼉을' 이라는 노래를 율동을 곁들여 준비를 했습니다. 이렇게 히말라야 산 아래서의 첫날밤을 보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해뜨는 모습을 보려했지만, 구름이 짙어 해뜨기는 보지 못했지만, 반달과 반짝이는 별들과 수억만년의 세월을 간직하고 있는 빙하의 눈산들은 우리 모두의 영혼을 다른 세계로 이끌어 주었습니다.

아침 먹기 전에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룹의 리더인 친구가 준비해간 찬송가을 부르고 친구가 기도하고 통역하는 가운데 제가 그룹의 유일한 목사이기에 산상수훈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평화를 주제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지금까지 하늘뜻펴기를 한 가운데 가장 높은 정상에서 하늘뜻펴기를 한 셈입니다.  더구나 산상수훈의 말씀이라 더욱 실감이 났습니다. 

아침을 먹고 우리는 모두 준비한 재료를 갖고 학교를 찾아갔습니다.  학생들은 모두 깨끗하게 차려 입고 우리를 환영해 주었습니다. 사실 이날은 1년 중 이 마을이 갖는 최고의 날입니다. 이렇게 많은 손님들이 한꺼번에 온 적도 없고 더구나 아이들을 위해 이렇게 정성스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날은 이날 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그림 그리기를 하는 동안 온 마을 사람들은 이 주위에 둘러 앉아 이를 구경하는 일종의 마을의 축제였습니다.

저도 미국에 있을 때에 멕시코 유까딴의 원주민(한인 후예들이 포함되어 있음) 선교를 위해 여러번 이런 프로그램을 운영해 본적이 있지만, 아주 작은 일에까지 신경쓰며 준비하는  일본인들의 지극한 정성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70세가 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손주뻘인 초등학생들 앞에서 재롱(?)을 펴는 모습(하모니카, 피리 등의 악기를 갖고 율동을 하였음.)은 우리 한국인들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연이 던져주는 장엄함 속에서 수십시간을 거쳐 찾아온 외지인들(현대문명의 첨단을 걷는 사람들)과 평생 그곳에서 작으마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세상의 끝자락에 사는 사람들과의 만남은 비록 언어는 통하지 않았지만, 마음과 마음, 영혼과 영혼이 만나는 삶의 충만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진행되는 동안 제 아내는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그 전날부터 속이 머슥거리는 경험을 하였고, 아침에는 결국 일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소위 말하는 고산병이 걸린 것입니다.  고혈압 증세도 겹쳐서 일어났씁니다. 하루종일 먹지 못하고 물마저 토하기에 여러가지 방법으로 버텨보다가 결국 할 수 없어 저녁에는 차로 한시간 30분이 걸리는 좀솜 마을의 작은 병원으로 저와 아내는 이동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곳에 산소호흡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병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열악한 곳이었습니다. 철제침대 몇 개에 히터도 없었습니다. 호텔 메니저가 함께 따라와 주어 도와주었습니다.(영어와 네팔어를 모두 잘함)  그곳에는 아내는 밤새 호흡기에 의존하여 포도당 주사를 세개나 맞고 아침에 약간 정신을 차렸고, 다행스럽게도 그곳에서 바로 작은 비행기로 이곳 포카라까지 올 수 있었씁 니다.

아내는 지금도 물도 먹지 못한 채 호텔방에 누어 있고, 저만 이곳 포카라의 시장을 돌다가 한국어 인터넷이 가능한 곳에 앉아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내일 모레 일본인 그룹과 합류하여 카트만드로 돌아가서 그 다음날 일본 동경으로 갔다가 저는 그 다음날 서울에 왔다가 하루밤을 자고 목요일에 미국으로 들어갈 예정입니다.

아픈 아내와 함께 산을 내려오고 찝차를 타고 길 같지도 않은 돌짝길을 한시간 이상 달려 병원 같지도 않은 곳에서 하루밤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전날 비행기 좌석을 알아보았는데, 침들다고 해서 차로 이동할 것인지 아니면 하루밤을 더 자고 비행기로 이동할 것인지를 논의하는 중이었는데... 환자라 선처를 해주었음) 갑작스레 비행기 좌석이 생겼다고 해서 바로 퇴원을 하여 차같지도 않은 앰블런스를 3분 타고 가니까 비행장이었고, 15명이 타는 비행기에 올라타자마자(엔진을 걸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음) 3분만에 이룩하여 20분간 비행을 하여 이곳 포카라에 도착한 것입니다.

어찌보면 다른 여행객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최상의 경험과 최하의 경험을 이틀 동안에 다 경험한 셈입니다.  아내가 빨리 회복되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전기가 자주 끊기기에 이 글이 다 날라갈까봐 이만 줄입니다.  모두 주 안에서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추신: 사실 사진을 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만, 사진 올리기는 해본 적이 없고 인터넷 까페에서 하니 가능하지는 않습니다. 다음에는 사진도 올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추신 2: 아내는 조금 좋아졌고 지금은 카트만드에 도착했습니다. 기도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