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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글 또 보기 안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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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고 계시던 시골집의 모습은 아직까지도 아련히 제 머릿속에 남아 있습니다.
완전한 전통 한옥집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나지만, 황토로 된 벽에 볏짚이 듬성듬성 삐져나와있어 투박해 보이면서도, 툇마루에 앉아 밤하늘을 바라볼 수 있어 낭만적이었고, 장지문이 달린, 나무를 때는 온돌방은 지금의 보일러가 설치된 집과 달리 윗목과 아랫목의 난방이 현저히 달라 어른들은 윗목에, 아랫사람들은 아랫목에 앉아 화롯불을 쬐며 군밤과 군고구마를 구워 먹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강렬하게 남아있는 제 기억 한 가지는, 뒷마당에 있던 커다란 짐승 한 마리... 바로 황소입니다.
그때가 아마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으로 기억하는데, 영농의 기계화가 완벽하게 되지 않아서 그랬는지, 실제 그때까지 할아버지께서 소를 이끌고 논과 밭으로 나가셨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개울에 멱을 감으러 갈때나 마을 어귀를 돌아다닐 때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던 소를 본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엉덩이와 등짝에 말라붙어있는 소똥과, 그 소똥에 잔뜩 꼬여있는 파리들을 쫓아내려 기다란 꼬리를 철썩철썩 휘두르며 서있는 커다란 소의 모습은, 어린 저에게 다소 위압감을 주기도 했지만, 커다란 퉁방울 같은 눈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 어느새 친근감을 느끼고 소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거나 풀을 먹여주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소는 천성이 유순하고 부지런하며 참을성이 많아 농경사회에서는 하는 일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논과 밭을 갈고, 짐을 실어 나르며 평생을 보내다가 죽어서는 고기와 가죽, 뼈까지 사람들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 놓다 보니, 우공(牛公)이라고 높임을 받게 되기도 하였으며, 요즘에는 거의 축산업용으로 이용되지만, 예전에는 어렵게 키운 자식들을 대학에 보내며, 기르던 소 한 마리를 팔아 대학 등록금으로 송금했던, 시골 살림에 있어서 큰 밑천이요, 전 재산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모습들은 이제 거의 사라져버린 것 같습니다.
지금 농촌의 모습은 예전과 사뭇 다릅니다.
논과 밭에는 트랙터와 이앙기와 경운기가 소의 역할을 완벽히 대체해 버렸고, 이제 예전에 비해서 풍족해진 - 아직 농촌은 빚더미에 올라가 있지만, 상대적으로 예전에 비해서는 풍족해진 - 농촌의 경제 상황은, 기르던 소를 팔아야 대학 등록금이 생기던 예전의 농촌 모습과 현저하게 달라져 버렸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변화한 세상에서도, 아직까지 소를 키우며, 함께 농사를 짓고 있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변화한 세상의 모습도 이분들에게는 그저 남의일일 뿐, 오늘도 이 노부부는 무려 40년간 함께 동고동락(同苦同樂)한 소와 묵묵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으로 치면 불혹(不惑)의 나이 이지만, 소로서는 평균 수명을 훌쩍 넘겨버린 - 소의 평균 수명은 15~18년 이라고 합니다 - 이 늙은 소는, 노부부의 자가용이자 트랙터, 이앙기, 경운기이며 가장 오래된 친구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수의사는 할아버지에게 이 소가 한해를 넘기기 힘들 거라는 선고를 합니다.
평생을 소와 함께 살아와, 소가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할아버지는 소가 죽는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지만, 그래도 소가 죽을 경우를 대비해 우시장에서 젊은 암소를 한 마리 사옵니다.
새끼를 밴 젊은 암소에게 외양간을 빼앗긴 늙은 소.
외양간을 벗어나자 이 늙은 소는 비가 오면 비를 맞고, 찬바람이 불면 고스란히 찬바람을 맞는 신세가 되어, 이제 할아버지에게 투정을 부릴 때도 되었건만, 비쩍 말라 힘이 없어 보이는 처량한 다리로 우마차를 끌고, 쟁기를 끌며 할아버지에게 헌신합니다.
툭하면 소 때문에 힘들다며 잔소리를 늘어놓는 할머니.
그리고 못들은척 하며 언뜻 보기에 늙은 소에게 일만 시키는 할아버지.
이 노부부의 마음속에 늙은 소는 너무나 크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한쪽 다리가 불편해 걷기도 힘든 할아버지는 소 먹이는 풀에 농약이 묻을까 두려워 밭에 농약 한번 치지 않아, 밭에는 잡초가 무성해 그 잡초를 일일이 손으로 뽑게 되어 언제나 노동의 괴로움에 시달리지만, 새벽에는 사료가 아닌 소죽을 쑤어 늙은 소를 먹이고, 소에게 먹일 꼴을 베느라 매일 산에 오릅니다.
소 때문에 힘들다며 투덜거리는 할머니 또한 그 연배의 노인들이 그러하듯, 좋다는 감정을 싫다고 표현하는, 반어법의 투덜거림으로 소만 신경 쓰는 할아버지에게 야속함을 표현하지만, 할머니 또한 소를 아끼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무려 40년간 함께 한 이들은 사람과 가축이라는 관계를 넘어서, ‘가족’과 같은 관계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할아버지에게 소의 죽음은 자신의 죽음을 보는 것과 같았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할아버지는 소와 자신을 한 몸과 같이 생각하게 된 것 같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참으로 많은 관계를 쌓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그 수많은 관계중,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에게 일방적으로 주기만하는 관계가 있을까요?
헌신적인 부모의 사랑도 각박한 세태의 흙탕물에 오염돼서인지, 점점 순수함을 잃어가고 있는 요즘, 과연 이런 관계를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소에게 보여준 무한한 애정과 신뢰, 그 애정과 신뢰에 보답하기 위해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늙은 소는 정말 쓰러지기 전까지 투정한번 부리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해야 할 일들을 헌신적으로 했습니다.
과연 우리 주변에서 이런 관계를 종종 볼 수 있을까요?
부모가 자식을 버리고, 자식이 부모를 배신하며, 백년해로 하자는 약속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툭하면 갈라서 버리는 수많은 부부들, 그리고 각종 이권관계로 등을 돌리는 형제, 자매들과 친척들, 금전적인 이유로 수십년 우정을 배신하는 친구들....
세상이 점점 이기적으로 변해 가면서 우리는 정말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이 영화 [워낭소리]의 노부부와 늙은 소의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보이는 것입니다.
소가 할아버지를 위해 겨우내 때고도 남을만한 땔감을 선물 해주고 조용히 흙에 묻힌 마음.
모두가 그런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그런 마음이 세상에 가득하다면....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은 상상이지만, 그런 상상을 해보며 하루를 마칩니다.....
사족(蛇足)....
의도된 편집과 약간 작위적으로 보이는 연출 - 예를 들면 소의 눈물을 보여주는 장면 같은, 의도된 편집으로 의심이 가는 몇 장면들 - 때문에 다큐멘터리(documentary) 영화로서 다소 불만족스러운 점은 있었으나, 저는 개인적으로 의도된 편집과 작위적인 연출로 인한 불만족의 무게보다, 감동의 무게가 컸기에 이 영화의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