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일에는 40년전 전태일을 기념하는 주일로 예배를 드리고, 전태일 다리로 갔다.
40년전 시장에서 옷을 만들던 젊은이 하나가 불타  죽었는데, 지금 까지 왜 많은 사람들이
전태일을 되 뇌일까? 2,000년 전에 팔레스틴의 목수의 아들도 태어나 33년 짧은 삶을 살다간
예수 같이. 성서는 계속 이어서 써여져야 하고, 그때 전태일의 이야기가 뒤 이어져야 한다고도 한다.
라고 하는 목소리도 있다.

주일 예배 설교는 평신도 설교가 하였다.
아직 어린 대학생 청년은 전태일을 듣고 알고 있는대로 전태일을 되새긴다.
조금 나이든 청년은 전태일 평전을 읽으면서 첫 전태일을 만났고, 허세욱 열사를 보면서 두번째
전태일일 만났고, 지금은 조성만 열사를 써면서 세번째 전태일을 만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
늙은 노동자 민중으로 살다 분신한 허세욱은 전태일에 비견할 만하다. 택시를 운전하면서도
틈틈히 이 땅의 민주와 자주 평등을 위해서 힘 닫는대로 열심히 살다간 분이기에 그렇다.
이름없이 살다간 그를 보면서 많은 눈물을 흘렸다.

"척박한 땅, 한반도에 태어나 인간을 사랑하고자 했던 ......
척박한 팔레스티나의 목수의 아들로 내어난 한 인간이 고행전에 느낀 마음을 알것도 같습니다." 
라는 유서를 쓰고  88년 5월 조성만은 명동 성당에서 스스로 몸을 날려서 죽음을 맞아 한다.

인간을 사랑하고자 사제의 길을 가려고 준비하면서 이 사회의 잘못된 점을 바로 잡아 보고자
여러 활동을 해 보았다. 그러면서 너무 큰 벽에 부딪치면서 가족을 뒤에 두고 몸을 버린 그의
이야기를 듣고 우리는 눈물을 흘리는데, 그는 얼마나 많은 나날을 눈물 흘리면서 기도 했을까?

그는  문규현 문정현 형제 신부를 따랐다고 한다. 지금도 그는 두 형제신부 속에서 살아
활동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설교자는 이어 말한다.

"시민 여러분 제발 나와 주세요. 여러분이 나오지 않으면 우리 모두 죽습니다. 제발 나와주세요."
1980년 5월 밤 광주 시내에서 했던 방송입니다.  이 방송이 오늘도 기륭전자 동희오토 GM대우 두리반,
그리고 4대강에서는 "제발 함께 해 주세요. 여러분이 도와주지 않으면 우리 모두 죽습니다." 라고 하는데
들리지 않습니까?

설교에 이어 감사기도를 드린다.
자본의 산물인 물질문명의 첨단 제품을 사용하면서 편안하게 살아가고 있음에 감사를 드린다.
그러면서 지금보다 나은 일자리 삶을 누리고자 온갖 노력을 기울이느라 인간으로서 살지 못하면서,
그래도 약간의 양심을 느끼고, 교회에 와서 기도 하고, 사회에도 약간의 관심을 갖고, 그런 교회에
다니는 것으로 안위하는 우리는 부끄러움 느낀다. 인간을 우리 안에 가두어 놓고 그 속에서 움직이지도
못하게 하는 세상에 휩쓸려 살아가야 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기도를 들으니 불같은 성령이 가슴으로 뜨겁게 내린듯하다. 함께 드리는 내 가슴에도 뜨거움이
더해진다. 지금 모든 사람들이 미쳐돌아가고 있다. 그 속에서 '이건 아닌것 같애' 하면서도 어쩌지
못하고 있고, 이도저도 모르고 어디론지 죽을 힘을 다해 뛰기도 하고, 새로운 삶을 모색하기도 한다.
우리가 정신 차리지 못하고 있는 사이 그 굴레는 더쎄게  똬리를 틀어 우리를 옥죄어 우리 모두를
죽음으로 몰고 갈 것이다. 그러기에 전태일을 기억하는것은 나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리라~

전태일 다리로 걸어간다.
매해 걷는 길이지만 올해 더 멀어 보인다. 좁을 길을 걸으면서 청계천이 새로 조성되면서 장애인들이
다니기 힘들다고 싸움을 벌인것을 기억하고, 그들이 이동하기에는 쉽지 않은 길임에 분명하다.

올해가 전태일 40주년이라고 전태일 다리 주변으로 많은 펼침막들이 걸려있고, 전태일은 천으로
하나하나 엮은 목도리까지 하고 있다. 2005년 이곳에 전태일 동상이 들어서고, 계속해서  거리
기도회를 하고 있다. 매해 60명 남짓 참석을 해 왔었는데, 이번에는 그 두배가 넘는120~30명의
교우들이 참석을 하였다. 날씨가 춥지 않아서, 전태일 40주년이어서, 40주년을 맞아 교회에서
도서보급 강연회 추진위원 모집의 영향, 이소선 어머니 방문 등 이어지는 행사 때문일까?
곰곰히 생각을 해 보았다.

95년 전태일 거리를 조성하면서 다리 주위에 동판을 만들때 우리 교회도 참여를 했다.
그래서 우리의 이름이 있는 동판을 찾아 보았다. 가려져 있고, 짧은 시간에 다 찾아
보지는 못했다. 

전태일 일년에 한번만이 아니고, 계속 잊지 않고 살았으면 하는 스스로의
바램을 가지고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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