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당한 대선


일찌감치 기권하고 멀리 해외로 간 젊은 이들과 달리 나는 대선 날 아침 일직 서둘러 지정된 투표소로 갔다.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서. 전 전날에 우편으로 온 투표확인서와 신분증을 가지고 투표장을 갔다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투표를 하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투표를 거부당한 것이다. 사연인 즉은 이러하였다. 나를 위한 투표용지가 없다는 것이다. 그 전날에 검찰로부터 ‘나는 투표할 수 없다’는 것이고 ‘어제 저녁에 통보를 받았기 때문에 통지를 할 시간이 없었다’고 미안하다는 것이었다. 금년 6월 15일에 있었던 집행유예 사건이 있다고 그렇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총선 시에도 투표권이 없다고 덫부쳐 말하였다. 그 사건을 기억하는 터에 그대로 믿을 밖에 도리가 없어 별로 항의도 못했다.
검찰로부터 통지가 왔다는 것은 여중생 사건으로 ‘여중생 이 죽은지 49재 되는 날 우리는 시청 앞에서 모여서 여중생 49재를 지냈다. 대한문 옆에 자리를 허용받았다. 밀려오는 군중으로 차선을 추가로 점거할 수 밖에 없었고 그것도 관활서인 남대문 경찰서장의 허락 하에 그렇게 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이것이 후에 교통을 방해했다는 것이고 명동성당에서 해산식을 하려거 고 계획하였고 경찰관이 호위까지 하여 미도파 앞길에서 정리접회를 했는데 이것이 또한 교통방해죄라는 것이다. 그 정리집회에서 연설까지 했으니 오죽 ‘쾌심죄’에 해당 됐을까?
생각하면 정권뿐 아니라 사법부도 결국 미국에 종속적이 되지 않았나? 하는 느낌 마져도 주는 판결사건이다. 왜냐하면 사람(여중생을 둘이나)을 바퀴에 깔아 죽인 범인은 무죄평결을 받고 고국으로 환양했을 뿐 아니라 제대를 하고 그곳에 살고 있는 한인교포들이 돈을 거두어 위로금을 주었다는 후문이다. 그런데 범대위 지도급인사들은 한.미합동으로 공동조사를 하라는 것과 범인을 한국법정에 세우고 공정한 재판을 받게 하라는 것 등을 요구했다. 그렇게 말한 지도자가 1년 징역, 집행유예 1년 반을 선고받았다. 그 사람이 대선에서 한국 대통령을 뽑는데 자기 스스로 대통령을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범대위 상임 대표들도 15명이나 된다. 그래도 이 책임은 나 홀로 진 것이다. 그것 또한 불공평한 일이다.
이것이 내가 투표하지 못한 경위이다. 언제쯤 우리 한국정부는 자주 정부를 가지고 국민 개개인의 비젼에 따라 소신껏 투표하는 날이 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