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헤아려보니 지난 해 삼월의 끝무렵이었습니다.

선운사엘 다녀왔었지요.

......


동백꽃 피려면 아직 멀었더군요.

선운사엔 꽤 여러 번 다녀왔지만

'동백꽃'은 아직 한 번도 딱! 맞추지 못했습니다.

눈물처럼 흐드득 지거나 무섭도록 새빨갛게 피거나하는 선운사의

동백꽃을 제대로 한번 딱 맞추지를 못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어느 계절, 어느 달에 가더라도 선운사 언저리는 참 아름답더군

요.


언젠가 훗날 그 언저리에 누추하지만 오두막 하나 짓고 남은 생의 뜨락을

누리고 싶다는 생각 얼핏 들 정도로 말입니다.


하지만 어쨌거나 '도시'로, 내 삶의 현장으로 돌아와야만 하기에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다시 허위허위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그 애잔하지만 달콤했던 짧은 여행의 기억은 그러나 돌아오는 길목에서

여지없이 비참하게 망가지고 말았습니다.


돌아오는 무궁화호 기차의 좌석에서 풍기는 퀴퀴한 냄새에 서서히

기분이 잡쳐지더니 자정이 임박한 영등포역에 내려서자마자...

그야말로, '거지발싸개!' 라는 말이 딱! 이더군요.


여기저기 술 취한 사람들, 그들이 남긴 구역질나는 흔적들,

조금도 아름다와보이지않는, 방자한 애정표현을 하는 남녀,

아무런 생각도 아무런 느낌도 없이 단지 '움직이기만 하는'

무표정한 사람들의 얼굴...


그들이 바로 나랑 같이 길을 가는,

도저히 사랑할 자신도,

사랑하고 싶지도 않은 내 이웃이라는 사실이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애꿎은 이름 한 번 부르고야 말았습니다.


"Oh,my Lord!"


"주님, 저들이 진정 저랑 같은 길 걸어가는, 그리고 제가 사랑해야 하는

제 이웃이란 말입니까?"


문득 아주 오래 전의 어떤 아픈 기억마저 되살아나고 말더군요.

'막무가내로' 뛰는 가슴으로, 막연하지만 맹목적으로 사랑하고 싶었던

민중, 또는 이웃에 대한 열정으로 뜨거웠던 한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가난한 자, 억눌린 자, 의에 주리고 핍박받는 자...내가 마땅히 챙기고

보듬어야 될 것 같았던, '이웃' 에 대한 열정으로 뜨거웠던

그 질풍노도의 세월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주제넘게 또는 주제파악 제대로 못한 채

여기저기를 기웃거렸습니다.


재활원을, 맹아학교를, 세칭 달동네 교회를, 그리고 야학을...


그러던 어느 날 버스를 타고 가다가 문득 커다란 깨달음 얻은 기억이

납니다.


같은 버스를 타고 가던 주변의 사람들,

도무지 사랑하고 싶지도, 인간적인 호의도 느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옆

에 앉아 몸 닿는 것조차 싫어서 빈자리 두고도 서서 가는 못되먹은

자신에게 절망했던 기억이 아프게 되살아났습니다.


바로 내 옆의 '이웃'을 사랑할 수도 없는 주제에 감히 뭔 '민중'이며

'머리 속의 이웃' 이란 말이냐...?

......


그리고 많은 세월 지나서...

그리고는 그냥 아무 생각없이 아니 많은 생각 물리친 채로 달음질 쳐

오다가 지난 주일 문득 조헌정 목사님의 설교제목인 '나의 니느웨는?'

앞에서 '끼익' 하고 그 달음짐에 브레이크가 걸리고 말았습니다.


지금 내 삶의 자리에서 과연 나의 니느웨는 어디일까요?

북한?

미국?

그토록 당연하거나 큰 도식적인 범위로 나아가기 이전에 바로 내 삶의

현장에서 좀 더 가까이 널브러져있는 '나의 니느웨'는 대체 어디인지...


그리고 또한 '그 분' 께서는 과연 이 한심하다못해 '이미 포기해버리신'

제자에게 아직도 '니느웨로 가거라' 라는 요청을 하시고나 계신 건지...

......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지난 주일의 설교말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