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40일동안 광야애서 금식하며 기도하시면서 사순절을 보내셨죠? 저희 교회 올 한해의 사순절은 코로나19로 안하여 비대면 새벽기도회를 하면서 매우 뜻깊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오늘 부활절을 맞아 또 대면예배로 모든 교우가 만나게 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인류는 길고 긴 전염병의 터널에서 험난하고 지난한 여정을 지나
우리가 알고 있던 세계의 문명과 국가의 상식을 모조리 파괴하였습니다.
아직도 진행되는 전염병의 확산에 인간들이 어떤 행동을 보였는지 수많은 사회적 갈등도 반복되고 말았습니다.
고난 받는 이웃들과 함께 하고자 노력하는 예수 따르미들은 1953년에 창립된 이래
하느님과 성서의 가르침에 따라 우리나라의 민주화와 겨레의 통일, 이 땅의 생명과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그러나 교회내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침묵의 댓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습니다.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 누가 19:40). 잠잠한 교회의 상황에서도 생명을 구하려는 소리는 들리지 않고 쥐 죽은 듯이 조용하기 만합니다.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 사제단은 “이성과 신앙의 회복을 촉구하며”성명서에서 “ 과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는 현실을 질타했습니다.
무엇을 부단히 증명하라는 압박이 교회 여기저기에서 들리고 있습니다. 1차 세계대전 발발 초기, 프랑스의 대 음악가 카미유 생상스는" 죽은 자든 산자든, 지금 전장에 있는 보병이든지난 세기를 빛낸 장군이든, 적은 적일 뿐"이라고 했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후 보이콧, 투자 철회, 제재를 통한 소프트파워-연성권력을 그 압박의 수단으로 삼듯이, 서방세계는 산자이든 죽은 자이든 가리지 않고 모든 러시아 예술가들을 대대적으로 보이콧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 땅에 예술은 국적이 없었지만 예술가는 국적이 있었습니다.
예수는 국적이 없고ㅡ신학도 국적이 없지만, 인간은 국적이 있었습니다.
국적이 없는 것은 예술이고, 신학이고 예수입니다. 국적이 있는 것은 예술가이고 신앙인이고 국적을 구분하고, 소속을 구분하고, 성을 구분하면서, 가장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는 " 구분" 짓고, 차별하는 행위임을 고백합니다.
주여 금요일에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안식일 다음날에 부활하기까지의 고난과 부활을 묵상합니다. 기독교는 고난과 부활이란 양축을 중심으로 굴러가는 수레입니다. 그럼으로써 교회의 고통과 고난을 통해 주님처럼 부활하는 기회를 주시려고 하십니까?: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마27:46)...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십자가상에서 일곱 마디의 말씀이 지금 현재 교회의 상황에서 외치고 싶은 일곱 마디입니다.
우리는 주님만이 줄 수 있는 위로의 가능성을 목도하게 됩니다. 가장 참담한 순간에서 조차 인간은 불행을 목도하고 비극을 향해서 걸어가야 합니다. 주님만을 의지 하면서 목표를 향하여 뚜벅뚜벅 걸어 갈 수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한 인간으로서의 고귀한 가치를 위해 어떤 목숨도 헛되어선 안 되듯이 참 자유로운 삶을 위해
주님은 공동체가 공존 하는 지혜를 알게 해주셨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교회의 존립 목적을 다시 한 번 상기합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것은 하느님의 진정한 해방으로 나가기 위한 잠시 멈춤의 상태임을 고백합니다. 이번 사태로 인해서 우리의 영적 각성이 더욱 공고하게 되는 기회가 되기 하여 주소서.
이자리에는 없지만
흩어져 예배하는 우리 형제자매들이
부활의 아침을 기리는 가운데
주께서 영원히 저희와 함께 하시기를 바라며
이제 불안과 두려움을 떨치고 떨쳐 일어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