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저희가 대림절의 긴 기다림을 지나 이제 성탄절 예배를 드립니다. 2022년 올 한 해 세상의 기대와 탄식, 희망과 고통을 모두 지켜보며 그 안에 두루 거하셨던 하나님의 섭리를 저희가 상고하는 가운데, 그런 세상에 빛으로 오시는 아기 예수를 오늘 기쁜 마음으로 맞으려 합니다. 그 길목에서 저희가 기다립니다.
하나님, 당신께서는 오늘 서울 이태원 해밀턴호텔 옆 비좁은 골목길의 인파를 헤집고서 오고 계십니까? 두 달 전 150여 명 젊은이들이 서로 눌려서, 그리고 숨이 막혀서 외마디 비명 속에 스러져간 곳입니다. 그 뒤에는 “나라를 구하다 죽었냐?”는 비아냥 속에 저희 모두가 다시 한번 숨이 막혔던 바로 그곳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도 숨이 막히는 고통을 몸소 느끼며 그 골목길로 지금 오고 계시지 않습니까? 저희가 그곳, 절망의 장소에서 숨 쉴 수 있는 자유를 주시는 희망의 빛으로 아기 예수를 영접하겠습니다.
하나님, 당신께서는 화물연대 기사들의 땀냄새 나는 트럭 조수석에 앉아 오고 계십니까? 권력자들은 합법 파업을 ‘재난’이라 부르고 이들을 ‘조폭’으로 비난하며 반헌법적으로 개입해 무릎 꿇리고선 희희낙락합니다. 한 달 24일, 하루 14시간 일하고 운전석 뒷자리에서 쪽잠 자며 일해온 화물기사들이 이제 안전운임제를 연장할 작은 희망마저 접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선 운행에 복귀한 이 화물트럭의 조수석에서 이들을 위로하며 오고 계시지 않습니까? 저희가 그 최소한의 희망 ‘안전운임제’의 불씨를 다시 지피는 격려의 빛으로 아기 예수를 맞겠습니다.
하나님, 당신께서는 동해상으로 쏘아올려진 북한 미사일의 화염과 굉음에 올라타서 한반도를 내려다보며 오고 계십니까? 한국전쟁 정전 70년 동안 크건 작건, 고강도건 저강도건 전투가 계속되더니 이젠 아예 상호 무력시위에 시도 때도 없습니다. 한쪽에선 주한미군의 전술핵과 사드 배치와 전쟁 연습이, 다른 한쪽에서는 미사일과 핵실험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습니다. 싸움닭이 서로 깃을 세우고 을러대는 것 같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 한반도의 불안을 평화로 돌려세울, 무기경쟁을 획기적인 평화의 경쟁으로 돌려세울 지혜를 갖고 계시지 않습니까? 저희는 연약하나 당신께서 약속하시는 평화의 빛으로 아기 예수를 기다리겠습니다.
하나님, 당신께서는 우크라이나 전선의 참호 속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병사들의 주검 앞에서 그들의 눈을 감겨주며 오고 계십니까? 혹은 민족주의의 이름으로, 혹은 세계평화의 미명 아래 지금도 얼마나 많은 무책임한 전쟁들이 벌어지고 있는지요? 그 모든 전쟁에서 죽는 것은 죄없는 민중들이요, 그 뒤에서 음험한 미소 속에 돈을 세는 것은 군수산업과 그들과 결탁한 권력자들뿐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들 검은 손을 징치할 계획을 갖고 계시지 않습니까? 저희가 당신의 막대기가 되기로 작정하는 가운데 화해와 정의의 빛으로 오시는 아기 예수를 간절히 기다립니다.
이런 모든 골목길과 전선의 참호와 고된 노동의 현장을 거쳐 가장 낮은 곳으로 오시는 하나님, 오늘 자유와 희망과 평화와 화해의 사자로 아기 예수를 기다리는 저희 심령도 어루만져 주옵소서. 저희의 들숨과 날숨 속에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저희의 간절한 기원을 아시겠사오니, 이제 저희는 입을 닫고 임마누엘, 저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기다립니다. 저희 예배를 받으시고, 저희 빈 심령에 오시옵소서.
(침묵)
고통 속에 새로운 기쁨을 주시고, 절망 속에 희망의 빛을 보내 주시는 아기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