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기술이라고 하면 아마 보통은 문장을 어떻게 논리적으로 혹은 수사적으로 아름답게 쓸 것인가에 주안점을 둘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쓰는 힘을 갖췄다는 것은 자신의 보이스로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자기 보이스로 지어낸 말에는 고유한 율동과 흐름과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읽었을 때 무엇이 쓰여 있는지 퍼뜩 가늠이 잘 안 되어도 계속 읽어 나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어려운 것, 보통 사람들은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 것 같은 복잡기괴한 이야기를 쓸 때는 반드시 자신의 보이스로 말을 지어야 합니다. 보이스가 생생하고 리드미컬하게 진행되면 독자에게는 ‘흐름’에 휘말려서 ‘정신을 차려보니 끝까지 다 읽고 말았다’와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얼마든지 그럴 수 있지 않을까요? ~~ ‘당신이 말하고 싶은 것이 무언지 잘 모르겠지만, 어쩌다 보니 책을 덮을 수가 없었고,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다 읽고 말았다’라고 고백하는 독자를 얻는 것이 쓰는 사람에게는 가장 기쁜 일입니다.
그러니 의미는 일단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마지막까지 술술 읽을 수 있게 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아가 음독(音讀), 즉 소리내어 읽기를 감당할 수 있게 써야 합니다. ~~~~
음독할 수 있는 문장은 독자의 머리(뇌)가 아니라 몸으로 들어갑니다. 몸으로 스며들어 독자의 신체 일부가 됩니다.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나서 그 글이 이미 독자의 몸의 한 부분이 된 시점에 독자는 무심코 과거에 읽었던 책의 한 구절을 입에 담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심코’입니다. 몸 깊숙한 곳에서 그 말이 떠오르는 겁니다.
우치다 다쓰루 지음/박동섭 옮김, <무지의 즐거움>(도서출판 유유, 2024. 11. 4.) 6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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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스며드는 독서나
몸에 스며들게 하는 글쓰기는 얼마나 대단한가!
한 번 집으면 놓을 수 없는
빠져들어 그만 홀딱 밤을 새도록 만드는
그런 글쓰기를 하고 싶다.
얼마나 쓰고 또 써야 그런 글이 나올까?
- 향린 목회 30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