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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나눔

로고스와 사륵스

by 올리버 posted Dec 15, 2024 Views 14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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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4-12-15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오실 때, 그분은 당신의 입맛에 맞게 우리 인간을 바꾸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분은 우리처럼 인간이 되십니다. 그분은 막무가내로 들어와 사람들 위에 군림하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을 짓밟지도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분은 젖을 달라며 애처롭게 우는 아기로 태어나, 그 울음소리로 당신이 세상에 오셨음을 알리십니다. 그분은 법이나 위협을 통해 세상을 바꾸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죽음과 부활을 통해 세상을 바꾸십니다. ~~

 

그분은 고요함 가운데 오십니다. 그분은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모습으로, 연약한 상태로 오십니다. 그분은 전적으로 거저 주시는 선물로 오십니다. ~~

 

그분이 오신 방식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이야기해 줍니다. 적어도 한 가지는 잊지 마십시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죄로 인해 상처 입고 흠 있는 존재라 할지라도 여전히 하느님의 생명을 품을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로완 윌리엄스 지음/민경찬, 손승우 옮김, <삶을 선택하라>(비아, 2017. 12. 25.), 3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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ὁ λόγος σὰρξ ἐγένετο 말씀이 살이 되었다(요 1:14).

 

헬라어 원문 성경은 로고스(말씀)과 사륵스(살)이 바로 붙어 나온다. 

이것이 혁명이다. 이 둘은 함께 붙어 있을 수 없는 단어였다. 

우주 만물을 움직이는 가장 최고의 원리로서의 지성인 로고스가 

가장 밑바닥의 육체성을 그대로 간직한 살덩이 즉 사륵스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영지주의는 늘 육체에 갇힌 영혼의 탈출을 구원이라 여겼던 것이다. 

 

영지주의의 영향 아래 쓰인 요한복음서가 

로고스와 사륵스를 딱 붙여 쓴다는 것이 그래서 혁명이다.

 

오늘날도 많은 한국교회가 예수의 인간성을 강조하는 것에 화들짝 놀라며 몸서리를 친다. 

“예수가 인간이라면 누가 우리를 구원하는가?”

자기 욕망 충족의 구원에 목마른 자는 인간 예수를 멀리해야 했고,

그래서 2,000년 서구 신학 전통에서도 늘 예수는 하나님이셔야 했다. 

안병무 선생님이 민중 사건 속에서 예수를 말했을 때, 

민중의 자기초월로써의 구원 사건을 언급했을 때,

독일 신학자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요한복음서 하나만 보아도, 

이미 말하고 있지 않은가?

많은 이들이 요한복음서를 읽으며 인간이 되신 ‘하나님’에 주목하지만,

요한은 ‘인간’이 되신 하나님에 더 방점을 두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대림절기를 보내는 우리들은

무엇보다 깊은 인간성에 천착해야 한다. 

하나님이 왜 하나님으로 계시지 않고 "인간"이 되셨는가, 

왜 로고스가 로고스로 남아 있지 않고 "사륵스"가 되었는가를 깊이 묵상해야 한다. 

 

- 향린 목회 42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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