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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나눔

인간다움의 회복을 위해

by phobbi posted Dec 18, 2024 Views 2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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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4-11-21

2024. 11. 21.

 

의술은 과연 인도주의적이고 존경받는 직업으로 남아 있는가? 아니면 인간의 고통을 줄여주기보다는 오직 생명의 연장에만 초점이 맞추어진 새롭지만 비인간적인 방향으로 진화되었는가? 의대생을 위해 RNADNA에 관한 강의는 수십 가지가 개설되어 있지만 한때 훌륭한 가정의 기본 자질로 여겨졌던 의사와 환자의 관계와 같은 덕목은 이제 배울 기회가 거의 없는 것은 아닌가? 의대에서 고통 받는 환자들을 다루는 데 필요한 재치, 세심함, 예민함, 노련함 같은 것보다 IQ와 성적을 중시한다면 어떻게 될까? 환자들이 던지는 단순한 질문에도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는 젊은 의학도들이 우수한 연구 실적만으로 실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새로운 과학적 기술적 진보를 인간관계의 기술과 통합할 수 있다면 진정한 발전을 이룰 수 있겠지만, 인간 대 인간의 교류를 희생시키는 대가로 새로운 지식이 젊은 의학도에게 전수된다면 그것은 결코 발전이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한 인간에게 초점을 맞추는 대신 숫자와 규모에 초점을 맞추고, 수업의 규모가 커지고, 교수와 학생의 교류가 사라지고 대신 폐쇄 회로 TV 강의, 음성 자료, 동영상 같은 것으로 대체되고, 그런 식으로 점점 더 많은 학생들이 점점 더 비인간적인 방식으로 가르친다면 이 사회는 어떻게 될까?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이진 옮김, <죽음과 죽어감> (2018. 9. 10), 4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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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가 도래했다.

1차 산업혁명에서부터 4차 산업혁명에 이르기까지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노동력,

즉 육체와 정신의 노동력을 대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변화하였다.

 

AI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모든 사물을 인간처럼 생각하는 존재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으로 인간을 만드셨듯이,

이제 인간이 자신의 형상으로 모든 사물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 이런 변화 과정에서 "인간처럼"이라는 부분이 점점 소외되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을 도모하는 것만큼

참 인간다운 사회를 어떻게 꾸릴 것인가,

사람다운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무엇보다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과학적 기술의 진보가 "인간다움"을 얼마나 고려하는가에 따라,

우리 미래가 행복할 것인가, 불행할 것인가가 결정될 것이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우려와 고민은 절대로 꼰대의 잔소리가 아니다.

 

로스가 우려하는 대로 오늘날 대학에서는 교수와 학생 사이가

스승과 제자로 되는 일이 거의 없다. 수만개의 논문은 나오지만 진짜 선생은 찾기 어렵고, 그래서 제자도 양성되지 않는다.

 

강의실보다 뒤풀이에서 더 치열한 학문적 대화가 오가고,

문자로 가득한 세상보다 삶의 현장에서 진솔한 고민들이 오갔던

시대는 정녕 사라진 것인가?

 

참으로 슬픈 일이다.

 

 

 

 

- 향린 목회 18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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