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28.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Wovon man nicht sprechen kann, darüber muß man schweigen”(비트겐슈타인)거나 “대화의 기술은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를 아는 게 아니라 무엇을 말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아는 것The art of conversation is not knowing what you ought to say, but what one ought not to say”(F. L. 루카스)이라는 권면처럼, 때로 대화의 논지를 살리고 그 창의적 생산력을 높이려면 말을 가리고 줄이며 묵혀야 한다. 일단 실없는/하고 싶은 말을 내뱉고는 추후에 사과하는 나쁜 버릇을 없애야 한다.(사과는 의외로 나쁜 버릇이라는 사실을 냉철히 기억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 첫째, 논지를 제대로 살피면서 사적 기분에 얹혀 생기는 ‘하고 싶은 말’에 대한 통제력을 배양해야 한다. 둘째, 가급적 애매모호한 말은 피하도록 해야 한다. (물론 ‘가급적’이다.) ~~ 인문학적 대화의 장단과 명암은 죄다 그 텍스트의 애매성에서 발원하는데, 특히 이 애매성을 악용하면서 해석의 방종으로 흐르는 사태는 거의 고질적이다. 게다가 이 악용과 방종의 주체가 입심 좋고, 지위가 높고, 잡다한 정보로 무장하고 있다면 그 폐해는 이루 말할 수도 없을 정도다.
셋째, 해명解明과 변명을 ‘다’ 하려는 욕심을 제어하고 어느 정도의 오해를 각오해야만 한다. 그리고 시간의 힘과 상대의 선의善意와 직관에 의지하는 넉넉한 마음을 지니도록 애써야 한다. 이해 받는 일을 ‘은총grace’이라고까지 과장하기도 하며, 그만큼 현명한 대화 상대를 만나는 일은 희유하지만, 언제나 내 에고를 확장하고 정교화함으로써 대화의 성공을 기할 수는 없는 법이다. 게다가 대화도 공부의 일종이고, 이른바 ‘마음의 경계’를 넓히며 옮기는 공부의 길 속에는 ‘오해’에 대한 다른 태도가 긴요하기도 하다.
김영민, <조각난 지혜로 세상을 마주하다>(글항아리, 2024. 9. 13.) 191-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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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 실수를 많이 저지릅니다. 누구든지,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은 온 몸을 다스릴 수 있는 온전한 사람입니다.”(새번역 성경, 야고보서 3장 2절)
목회자는 자의든 타의든 말을 많이 할 수밖에 없는 직업이다.
그래서 남들보다 말의 실수를 많이 할 확률이 높다.
그래서 정말 말을 조심해야 한다.
말하고 싶은 유혹을 견디고,
아는 것도 모른 체 하며,
상대의 말에 응해서만 말할 줄 알아야 한다.
이렇게 말하려면 우선 듣기를 잘해야 하는데~~~
참으로 멀고 좁고 험한 훈련의 길이다.
- 향린 목회 55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