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 1.
오늘날 무신론이 나타나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 ‘아버지’로서의 신은 철저하게 부정되었고, 똑같이 ‘심판자’로서의 신도 ‘보상자’로서의 신도 부정되었다. 신의 ‘자유의지’도 마찬가지다. 신은 인간의 호소를 듣지 못하며, 설령 듣는다고 해도 도와줄 방법을 알지 못한다. 최악은, 신에게는 자신의 뜻을 분명히 전달할 능력이 없는 것 같다는 것이다. 신은 모호한 존재인가? 이것이야말로 내가 많은 대화를 나누고 묻거나 경청하면서, 유럽의 유신론이 붕괴하게 된 원인으로서 발견하게 된 것이다. 물론 종교적 본능이 강력하게 성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한 본능은 깊은 불신과 함께 유신론적 만족을 거부하는 것 같다.
프리드리히 니체/박찬국 옮김, <선악의 저편>(아카넷, 2018. 11. 27.) 130.
================================
신의 존재가 분명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니체가 일찍이 예언한 대로 신은 현대인들에게 모호한 존재,
더 이상 찾을 필요가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 지 오래다.
그러나 인간의 종교적 본능과 욕망은 여전하기에,
기존의 신이 사라진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빈자리를 채운다.
자본주의 시대이니, 가장 강력한 대안으로 등장한 것은 역시 돈이다.
웬만큼 돈이 쌓이면 다음은 힘을 쟁취하려 든다.
그래도 틈새가 생기기 때문에,
놀랍게 부귀를 누리는 이들도 주술에 의존하곤 한다.
그러나 삶의 허무는 이런 것들로 메울 수는 없다.
삶의 참된 의미를 물으면서
도덕적 가치나 더 고귀한 것을 추구하는 이들도 보이지만,
그렇게 많은 것 같지는 않다.
어떤 경우는 고귀한 도덕적 가치도
삶의 무의미 앞에서는 너무 작고 하찮은 것이 되고 만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허무와 무의미를 견디며
“그냥 살기”의 지혜를 터득해야 하는데,
이것을 과연 기존의 어떤 종교가 감당할 수 있을까?
탈종교, 반종교, 무종교 시대에 과연 그리스도교 교회는 무엇인가?
“우리는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산다네.”
(디트리히 본회퍼 지음/손규태·정지련 옮김, <저항과 복종> 대한기독교서회, 2010. 10. 15. 681-682.)
본회퍼 목사님의 유명한 말이다.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서’는 잘 알겠는데,
‘하나님과 더불어’를 통해 본회퍼 목사님이 말씀하시려고 했던 것은 무엇일까?
올해의 과제다.
- 향린 목회 59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