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 3.
이상의 것을 정리하자면, 조선사상사에서 특징적인 변화 법칙은 다음과 같다.
우선, 자국의 안전 보장상 이유와 통치 권력의 안정성이라는 이유에 의해 조선에서는 사상의 순수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강하다. 다만 이것에는 ‘다른 사상 체계’와 ‘하이브리드 지향’이라는 대항 축이 있다. 사상이 순수성의 획득을 지향하여 운동하고 있는 시기에는 대단히 약동하는 사회가 실현된다. 이 순수한 사상에 의해 통치가 이루어지고, 국가와 공동체 구성원의 생명을 유지하며, 충실한 시기에는 계속해서 순수성을 추구한다. 이 시기에는 정보가 통제된다. 하지만 어떤 시점을 경계로 하여 순수한 사상의 현실적 효력이 상실되기 시작하면 통치 권력의 의지에 의해 정보의 차단 등 부정적 회전이 시작되고, 사상의 순수성을 사수하고자 하는 운동이 국가와 공동체 구성원의 생명을 열악하게 만든다. 생명의 열악화가 극도로 진전되면, 어느 순간 전격적·혁명적으로 새로운 사상이 도입되거나 발명되며, 정보의 유입과 뒤섞임이 격류처럼 진행되고, 그것과 더불어 사회의 영성적 약동성(가속성)이 일거에 높아진다. 그리고 새로운 사상에 의한 새로운 생명이 사회를 과감하게 변혁해나간다.
오구라 기조 지음/이신철 옮김, <조선사상사: 단군신화로부터 21세기 거리의 철학까지>(도서출판 길, 2022. 10.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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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조선사상사 특징은 저자가 ‘순수성’, ‘하이브리드성’, ‘정보’, ‘생명’, ‘영성’이라는 열쇳말(keyword)을 염두에 두고 일별한 것이다. 단군신화적 세계에서 불교로, 불교에서 유교로, 유교에서 그리스도교에 기반한 서구문명으로의 변화를 보면, 건국부터 21세기까지 이 땅의 변화는 문명사이자 종교사로 읽어낼 가능성이 있고, 사상의 순수성이 획득되었을 때, 대단히 약동하는 사회가 되었다는 저자의 분석은 나름 일리가 있다.
저자는 ‘하이브리드 사상’은 신라의 풍류 사상을 마지막으로 표면상으로는 주류 사상이 될 수 없었으나, 실은 음으로 양으로 조선 주류 사상의 순수 지향성을 위협해 왔다(17쪽)고 말한다.
이런 분석에 따르면 우리 사상은 순수 지향성이 중심이고 하이브리드(혼종성)가 주변이 되는데, 과연 앞으로도 그럴 것인가? 21세기에서 22세기로 넘어가는 과정에서는 오히려 하이브리드가 중심이 되어 기존의 모든 순수성을 품어내는 융합이 더 주류가 되지 않을까? 개별 사상의 순수성보다는 통(通/統)-사상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즉 어떤 면에서 신라의 풍류 사상과 같은 것이 새롭게 등장하지 않을까 한다.
아주 빠른 시간에 전근대를 탈피하고자 노력한 우리는 놀랍게 지금 주술에 의존하고 있는 권력을 맞닥뜨리고 있다. 지금 우리는 근대와 전근대가 뒤섞여 작동하면서 새 시대를 위한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다. 우리의 근대화가 실패한 개인주의적 서구식 근대화를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주술의 시대로 복귀하는 것은 더더욱 어리석은 일이다. 지금 한국은 서구 문명이 보여주지 못한 새로운 근대를 만드는 과정이고, 여기에 기존의 종교는 적절한 하이브리드를 통해 기여해야 할 것이다. 새 시대를 여는 과정에서 한국 그리스도교는 과연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
- 향린 목회 61일차